봄나물은 계절의 풍미를 전하는 별미다. 쑥 향이 올라오는 국 한 그릇, 달래 간장을 얹은 밥 한 숟갈, 냉이를 다져 넣은 된장찌개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다. 하지만 이 향긋한 감각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봄이 겨울만큼이나 혹독했던 우리 선조들에게 봄나물은 별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였다.
봄이 되면 냉이, 봄동, 쑥 같은 제철 봄나물이 식탁에 오르기 마련이다. 봄나물은 비타민과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해 봄철 활력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싱그러운 향은 겨우내 무뎌졌던 미각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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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나게 해주던 묵은 곡식도 봄 앞에서는 바닥을 드러냈다. 가을에 파종한 보리는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어야 수확할 수 있었고, 그 사이 공백은 길었다.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일이 적지 않았다. 배를 곯으며 보리가 여물기를 기다리는 고된 시간을 ‘보릿고개’라 부른 이유다. 보릿고개는 단순히 어떤 시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삶의 문턱을 넘나드는 생존의 시험대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 지독한 보릿고개를 버티게 한 것이 바로 봄나물이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뜻밖의 이야기다. 기근이 심할 때 주식 대신 먹는 구황 작물은 전분 함량이 높아 빠르게 포만감과 에너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메밀처럼. 반면에 봄나물은 가볍고 향긋해 그저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처음 봄나물을 캐서 먹기 시작한 선조들에게 그것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량이었다.
그렇다면 전분 함량이 낮은 봄나물로 어떻게 허기를 달랬을까? 답은 양과 조합에 있었다. 봄이면 산과 들에서 나는 모든 먹을 수 있는 풀을 최대한 활용했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 두릅, 머위, 곰취, 참취 같은 산나물과 들나물은 밥, 국, 반찬, 죽, 전, 떡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의 재료가 되었다. 열량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칡뿌리를 찧어 물에 풀어 가라앉힌 앙금으로 만든 갈분이 대표적인 예다. 또 산에 흔한 소나무에서 전분 함량이 가장 높은 속껍질을 벗겨 말려 가루로 쓰기도 했다. 이렇게 얻은 전분성 재료를 나물과 섞어 죽을 쑤거나 떡을 빚었다. 주식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었지만, 허기를 달래고 몸을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나물 서리’라는 것도 있었다. 가난한 부녀자들이 봄에 산과 들에서 나물을 잔뜩 따게 되면, 부잣집에 무작정 가서 광주리를 풀고 주저앉았다. 그러면 부잣집에서는 그 나물을 어쩔 수 없이 거두는 대신 곡식을 내주곤 했다. 봄나물은 그 자체로 일용한 양식이었으며, 부자로부터 곡식을 받아내는 자산으로 쓰였던 것이다.
이 시기의 음식은 미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기준은 단순했다. 먹을 수 있느냐, 버틸 수 있느냐였다. 그렇기에 봄나물 요리는 자연스럽게 단순해졌고, 조리법은 최소한으로 정제되었다. 데치고, 무치고, 끓이고, 부쳐 먹는 방식이 주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이다.
봄나물로 짓는 밥과 국
곡식이 귀해질수록 밥에는 나물이 섞였다. 쑥, 냉이, 두릅이 들어간 밥은 오늘날 계절 미식으로 인식되지만, 본래는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한 방식이었다. 나물을 잘게 다져 밥을 지으면, 적은 양의 곡식으로도 한 솥의 밥을 지을 수 있었다. 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봄이면 집집마다 나물국이 상에 올랐다. 냉잇국, 쑥국, 달래국은 찌개보다 물을 많이 넣고 맑게 끓여, 가장 흔한 재료였던 나물을 넉넉히 쓸 수 있었다. 국은 밥보다 물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재료로도 많은 식구가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때로는 나물국에 갈분이나 송기 등을 타 포만감을 높이기도 했다. 봄나물로 만든 국은 그렇게 밥상의 중심이 되었다.
춘궁기에 봄나물을 넣어 포만감 높은 국을 끓여 먹던 문화의 원형은 제주에 특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제주에 가면 흔히 접하는 향토 음식 고사리육개장과 몸국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는 고사리육개장을 고사리 국이라 불렀다. 기후와 지형, 토양 등 여러 조건에서 양치식물이 자라기 좋은 제주에서는 이른 봄이면 곳곳에서 고사리를 꺾었다.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넣어 점도 높고 묵직하게 끓인 고사리 국은 추위를 물리치고 허기를 달래기에 알맞은 음식이었다. 고사리는 여러모로 유용한 구황 작물이었는데, 뿌리를 찧은 다음 전분을 받아 국수를 빚거나 전을 부칠 만큼 전분 함량이 높다.
모자반과 메밀가루로 걸쭉하게 끓인 몸국은 육지에서 나는 봄나물을 쓰지는 않지만, 해조류를 바다의 나물로 본다면 또 다른 형태의 봄나물 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자반은 겨울부터 이른 봄이 제철이어서 바다의 봄나물이라 할 수 있다. 걸쭉하고 묵직한 몸국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여전히 북녘의 삭풍이 기세를 부리는 이른 봄의 추위도 한결 누그러지는 듯하다. 바람이 잦은 제주에서는 몸국이 오랫동안 바람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육지에서는 애탕국을 주목할 만하다. 애탕국은 쑥을 활용한 봄철 대표적 음식인 동시에, 고기가 들어가 과거에는 보양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소고기 양지머리나 사태를 삶아 넉넉히 육수를 내고, 삶은 고기를 잘게 다진다. 쑥은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짠 뒤 곱게 다진다. 다진 고기와 쑥으로 완자를 빚어 밀가루와 달걀을 입히고,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한 육수에 넣어 끓인다. 쑥의 화사한 향과 고기의 단백질이 어우러진 이 음식은 단순한 나물국이 아니라, 봄을 넘기기 위한 한 그릇의 생존식이었다.
각양각색 반찬
예전에는 나물이 귀한 겨울철을 대비해 이른 봄, 제철 나물을 햇볕에 바짝 말려 저장해 두곤 했다. 나물을 말리면 수분이 빠지면서 영양분이 응축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는 장점이 있다. 요즘에는 굳이 겨울철이 아니어도 별미를 즐기기 위해 말린 나물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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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무침도 반찬의 자리를 넘어, 한 끼를 채우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데친 나물을 무쳐 큰 그릇에 담아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나물의 양이 늘어날수록 밥의 양은 자연스레 줄었다. 굶주린 와중에도 선조들은 나물을 상성에 맞게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 등으로 달리 양념해 잠깐의 미각적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나물 전 또한 빠지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 나물은 반죽의 중심 재료가 되었다. 잘게 썬 나물에 소량의 곡물 가루를 섞어 부쳐냈다. 밀가루가 남은 집은 밀가루를, 바닥난 집은 갈분이나 메밀가루, 도토리 가루 등을 썼다. 어떤 나물이든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나물 전의 장점이었다. 씀바귀 전, 쑥전, 머위 전은 봄철 식탁에 흔히 올랐고, 많지 않은 기름으로 부쳐낸 나물 전은 허기를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처럼 배추김치를 사시사철 먹을 수 없던 시절, 봄에는 봄나물로 김치를 담갔다. 머위 김치, 달래 김치, 유채 김치, 봄동 김치 등은 오래 두고 먹기 위한 저장 식품이라기보다 제철에 바로 먹는 생김치에 가까웠다. 장아찌로 만들어 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금 손에 잡히는 것을 활용한 김치였다. 특히 돌나물로 담근 물김치는 향이 좋다.
죽과 떡, 나물의 확장
3월 하순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봄나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 시기에 전통시장에 가면 직접 캔 봄나물을 좌판에 벌여 놓고 판매하는 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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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전과 김치가 비교적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면, 보릿고개에 죽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였다. 적은 재료로도 많은 양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봄나물은 죽의 주재료가 되었다. 봄나물로 죽을 끓일 때는 전을 부칠 때처럼 특정 나물 하나에 기대지 않았다. 조화를 이루는 나물을 한데 넣고 푹 끓여 양을 늘렸다.
그중에서도 냉이 죽은 『본초정화』에 “눈을 밝게 하고 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나온다. 이 책은 약용 식물을 소개하는 기존의 서적들을 편집해 만든 의서이다. 그런가 하면 방풍죽은 조선 시대의 문인 허균(1569~1618)이 우리나라 전국의 토산품과 별미 음식을 소개한 자료 『도문대작』에 등장하기도 한다. 죽은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몸을 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봄나물은 죽을 통해 다시 한번 역할을 넓혔다. 나물을 데치고 무치던 방식에서 나아가, 물과 함께 오래 끓이며 한 끼를 연장하는 재료가 된 것이다.
떡 또한 봄나물과 결합했다. 쑥떡은 오늘날에도 즐겨 먹는 대표적인 봄철 별미이다. 쑥은 떡의 색과 향을 더하는 재료로 인식되지만, 본래는 떡의 양을 늘리고 곡물 사용을 줄이기 위한 재료였다. 쑥을 많이 넣을수록 곡물 가루는 적게 들어갔다. 떡은 제사나 명절 음식이기도 했지만, 춘궁기에는 허기를 달래는 실용적인 음식이었다.
봄나물 문화는 단순한 계절 음식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관찰하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며, 부족한 자원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집단적 지식이었다. 어느 나물이 언제 돋고, 어떻게 손질해야 쓴맛이 덜한지, 어떤 조리법이 배를 더 오래 든든하게 하는지는 모두 경험을 통해 축적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봄나물을 향과 일시적 계절성으로 소비한다. 봄나물은 여전히 향긋하고, 여전히 소박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생존의 기억이 있다. 봄나물은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결핍을 견디는 기술이었다. 애탕국 한 그릇, 나물밥 한 공기의 소박함 속에는 긴 보릿고개를 건너온 식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