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아름지기(이하 아름지기)는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문화 단체이다. 문화유산 환경 개선 사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전통문화를 가까이에서 누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 개발한다. 아름지기는 전통문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촉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통의옥 사옥 2층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현대적인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아름지기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2001년 신연균 현재 명예 이사장을 중심으로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당시는 전통 보존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고, 도처에서 고유한 생활 문화가 사라져가는 상황이었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문화가 없어지겠다”는 우려와 절박함이 재단 출범으로 이어졌다.
민간 코디네이터
아름지기의 첫 행보는 ‘정자나무 가꾸기’였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자리한 정자나무는 보통 수령이 수백 년이어서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다. 여름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니,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더위를 피하곤 했다. 또한 정자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넘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에 액운이 들면 정자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도 많았다. 마을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정자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소통의 공간이자 지역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아름지기는 정자나무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하여 이를 가꾸고 주변을 개선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사업은 기업 후원과 개인의 재능 기부를 통해 2002년 경기도 평택의 수령 43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나무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 썩은 부위를 치료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외에도 지지대와 울타리, 벤치 등을 마련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이 사업으로 서울 돈암동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흥천사의 느티나무(보호수), 경상남도 함양의 운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등 훼손되어 가던 문화유산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정자나무 가꾸기와 함께 아름지기가 힘을 쏟은 것은 ‘궁궐 환경 가꾸기’였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사람이 살며 보살피지 않으면 금방 허름해지기 마련이다. 아름지기는 2003년 8월부터 20년이 넘은 현재까지 매해 봄과 가을이면 조선(1392~1910) 시대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을 청소한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시민들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관심 있는 회원들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전각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때를 닦아내는 한편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각 내부를 수리하고 도배를 새로 하거나 후원 조경을 정비하는 등 사업을 한층 확장했다.
이후에는 창덕궁뿐 아니라 덕수궁, 경복궁 등 다른 궁궐들에서 가구와 장신구 등 전각 내부의 집기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왕실 용품을 재현하는 프로젝트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장인들로 자문단을 꾸려 주제 및 품목을 선정하고, 고증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다. 그리고 완성된 재현품은 조선 시대 의궤와 실록 등 다양한 사료를 참조해 배치한다.이로써 역사 속의 궁궐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름지기는 국내외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국의 문화유산 안내판 디자인 개선 작업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디자인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맺은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을 시작으로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창경궁, 덕수궁, 종묘까지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는 파동을 일으켰고, 민관 협력에 의한 공공디자인의 바람직한 사례로 널리 회자되었다.
2016년에는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목조 주택을 개조해 서울 한양도성의 전시 안내센터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제주도의 대표적 지질 유산인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서귀포시와 협약을 맺어 경관 개선 사업에 착수했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면서 한국의 전통미를 반영한 현대적인 공공디자인은 관람객들의 편의뿐 아니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 속에서 아름지기는 기업과 기관 사이에서 민간 코디네이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아름지기는 에르메스 코리아의 후원 및 국가유산청과의 협업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경복궁 사정전의 가구 및 집기 재현 사업을 진행했다. 다분야 전문가들과 무형유산 장인들이 참여하여 고증을 통해 총 14종 20점을 제작했다. 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아름지기 제공
일상의 쓰임을 위해
아름지기는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협약을 맺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5대 궁궐의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아름지기 제공
경복궁 서쪽 문인 영추문을 마주 보는 아름지기 건물은 주택인지 사무 공간인지 언뜻 가늠하기 어려운 외관이다. 현대식 건물 1층의 전시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사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대로를 향해 있는 목재 미닫이문을 열면 경복궁 돌담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현대식 건물과 한옥이 서로 바라보는 구조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아름지기의 사무 공간이고, 한옥은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아름지기의 한옥은 전통의 원형을 가져오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불편함을 개선해 새로운 쓰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우리의 의식주 문화와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곤 한다.
아름지기의 전시와 관련해 장영석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기획의 취지는 전통문화의 정수를 탐구하고 오늘에 되살려 그 가치를 내일로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환경에 부합하는 시의성,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 이야기, 그리고 현대 혹은 다음 세대에게 전할 창의적 시도를 함께 담습니다.”
이를 위해 아름지기는 매해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우리 전통 공예품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전통 기술을 되살려보려고 합니다. 예컨대 한국 음식이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이를 꼭 와인과 먹어야 할까? 우리 음식에 맞는 우리 고유의 술과 함께 즐길 수 없을까? 그런 고민을 전시에 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의도의 핵심은 전통문화가 소수의 특별한 향유물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지난 2006년 열렸던 <우리 그릇과 상차림>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도예가 민영기의 막사발, 이기조의 백자, 이윤신의 청자 그릇으로 꾸민 찻상, 반상, 돌상 등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를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하고 의미 있는 돌상 차림 확산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로 돌상을 대여하고 돌떡을 키트로 제품화한 비즈니스가 많이 생겼으니까요.”
2017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린 아름지기의 해외 한복 전시 < Couture Korea 우리의 옷, 한복 >은 규모나 화제성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예감할 수 있었다.
“전시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교민분들과의 만남이 많았는데, 전시 내용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해외 문화 기관과의 협업, 큰 규모의 해외 전시에 대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어서 저희에게도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연결과 확산
사진은 2023년 아름지기 사옥에서 개최된 《blurring boundaries: 한복을 꺼내다》의 전시 장면.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함께 조선 시대 복식을 토대로 현대적인 한복 디자인을 제안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
해마다 봄기운이 완연해질 무렵이면 아름지기 사옥을 일반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가 열린다. 2022년 첫 행사에는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조명 기구에 100년 만에 불을 밝혔던 2018년의 프로젝트를 상세히 소개했다. 오픈하우스는 아름지기의 주요 사업을 공개해 전통을 잇는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조명하는 한편 한복과 장신구를 직접 착용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팝업 스토어도 운영한다.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기금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아름지기 기금 마련 바자’는 해를 거듭하면서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참여로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름지기 차세대 멤버인 영프렌즈가 있다. 아름지기 영프렌즈는 새로운 아름지기 활동 네트워크와 기금 모금, 그리고 국내외 사업의 확산을 모색하고자 결성된 후원자 그룹이다. 바자회 같은 모금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며 상품 구매가 얼마나 매력적인 후원 방식인지 알리는 데에도 주력한다. 전통문화를 매개한 브랜드 외에도 지속가능성, 친환경, 공정무역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들의 참여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름지기는 지난해 제2대 홍정현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아름지기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름지기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이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2018년 진행된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전시 장면. 전통적인 제사의 형식과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늘날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바뀌고 있는 제사 문화를 집중 조명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