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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WINTER

복을 부르는 포용의 미덕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호호당의 양정은 대표는 전통을 단순히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과 실용성을 결합해 일상에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재해석한다. 그래서 호호당의 제품에는 한국적 미학뿐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양정은 대표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호호당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는 보자기 포장 문화를 통해 품격 있는 전통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실어 나르기 위한 용도로 네모나게 만든 천을 말한다. 보자기는 이처럼 예부터 가방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방은 정해진 크기에 맞춰서 물건을 담는 데 반해 보자기는 물건에 맞춰서 감싸 담는다.

보자기 문화에는 사람을 대할 때 정성을 다하고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우리의 습성이 잘 드러나 있다. 보자기를 뜻하는 한자 ‘복(幞, 襆)’은 행운이나 행복을 뜻하는 ‘복(福)’과 음이 같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보자기에 물건을 싸두면 복이 든다고 믿었다. 혼례 시 신랑 신부가 주고받는 예물이나 함 등을 포장한 보자기가 대표적인 예다.

보자기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문헌들에 보자기에 얽힌 사화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일상 대소사에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실의 복식과 물품에 관한 규례를 적은 책 『상방정례』(1749)에는 당시 궁중에서 사용하던 보자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적혀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왕과 왕세자가 머리에 쓰는 관 종류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3폭짜리 솜보자기로 포장했으며, 옷은 4폭 홑보자기, 버선과 신발은 3폭 홑보자기로 싸서 보관했다고 한다. 1폭은 오늘날로 치면 약 35㎝ 너비이다. 왕실에서 사용한 보자기의 재질은 주로 비단이며, 홍색 계열을 가장 많이 사용했고, 간혹 자주색과 남색, 청색, 백색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보자기는 옷보, 이불보, 상보 등 싸는 물건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붙는다. 일상에 필요한 물건 외에도 경전을 담는 경전보, 각종 제의에 쓰이는 특수용 보를 비롯해 혼례에 사용되는 사주단자와 함, 폐백 등을 담는 혼수보 등 용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했다. 또 혼례 예물을 싸는 보자기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의 오방색 실로 수를 놓아 부부의 화합을 기원했다.

이처럼 의식주 전반에 걸쳐 친숙한 포장 도구였던 보자기는 근대화를 거치며 사용 영역이 축소되었으나, 오늘날에도 정성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선물 포장에 쓰이거나 각종 예식에 두루 활용된다.

정성을 표현하는 도구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골목에 위치한 호호당 쇼룸에 들어서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중요한 순간들이 한눈에 스쳐 지나간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입히는 배냇저고리부터 돌반지, 복주머니, 한복, 유기그릇과 목각 인형 등 결혼, 임신과 출산, 명절, 각종 기념일에 필요한 전통 생활용품들이 보자기에 담겨 진열돼 있다.

“보자기는 주는 사람의 정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계속 재사용할 수 있어서 매우 친환경적입니다.”

양정은 대표는 보자기의 실용성을 먼저 강조한다. 그녀가 보자기에 관심을 두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보자기는 제 삶의 뿌리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할머니와 아버지가 드라마와 영화 사극에 들어가는 특수 의상 사업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집 안에는 시대에 따라 고증한 한복, 갑옷, 소품들을 만들고 남은 원단이 가득했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남은 천을 모아 보자기를 만들어 쟁여두셨어요.”

그렇게 만든 보자기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 선물 포장뿐 아니라 도시락 주머니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고운 색깔의 보자기에 담아서 주셨다고 한다.

품질과 디자인은 물론이고 가격도 적당해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보자기를 자주 사용할 수 있다. 양 대표가 가격이 비싼 전통 옷감 대신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리사이클 원단을 개발한 이유다.

“집과 작업장이 위아래로 붙어 있다 보니 어쩌다 별식을 하면 넉넉하게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명절 때면 떡과 육포를 만들어 이웃에도 돌렸어요. 음식 포장은 주로 제 몫이었는데, 이런저런 모양을 내서 싸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죠.”

어려서 보고 자란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일까? 음식 포장으로 시작된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은 대학에서 전통 식생활 문화 공부로 이어졌고, 한때는 오너 셰프로서 한식당 ‘정미소(井米所)’를 운영하기도 했다. 체력이 따라가지 못해 2년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이 일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이후 선물 요리에 집중했다.

“주로 폐백, 이바지 음식을 주문받았는데, 포장용 보자기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과거 저희 집에서 작업하시던 분들을 수소문해 원단을 구해서 직접 만들었죠. 음식 보고 온 손님들이 보자기 포장에 반해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보자기는 어떤 형태의 물건이든 포장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다. 또한 묶기, 접기, 꼬기, 감기, 땋기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아름다움을 배가할 수 있다.

대중화 위한 소재 개발

2011년 문을 연 호호당은 세련된 보자기 포장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외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뷰티 브랜드 설화수를 시작으로 구찌, 루이비통, 보테가 베네타 등 해외 명품 브랜드와도 협업해 답례품, 선물 포장 작업에 참여했다.

“설화수의 경우 10년째 디자인 작업을 함께 해오면서 저 또한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래도록 간직할 가치를 먼저 생각하게 됐죠.”

이 과정에서 그녀는 보자기를 일상에서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전통 보자기는 실크나 모시로 만드는데, 너무 고가여서 한계가 있었죠. 전통의 아름다움을 누구나 손쉽게 누렸으면 하는 고민이 소재 개발로 이어졌고, 이를 충족할 기능성 섬유를 찾게 됐습니다.”

양 대표는 가격대를 낮추기 위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렇게 만든 리사이클 원단을 인정받아 호호당은 2021년 GRS(Global Recycled Standard, 국제 재활용 표준) 친환경 기업으로 공식 인증받았다.

"저희와 협업하고 있는 호텔신라 보자기는 현재 100%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호당 보자기도 일부 천연 소재 외에는 바꿔나가는 중이고요.”

양 대표가 2024년 새롭게 선보인 색동 바구니. 색동은 예로부터 귀한 일에 사용하는 옷감이었다. 조선의 제21대 임금인 영조(재위 1724~1776)가 정순왕후를 왕비로 책봉할 때 사용했던 두루마리의 색동을 재해석했다.

복을 부르는 마음

보자기 포장에서 생활용품 브랜드로 발돋움한 호호당은 굵직한 국내외 행사에 공식 기념품으로 채택돼 호평을 받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경복궁 영추문 천장에 있는 백호를 응용해 자수 마그넷과 보자기 가방을 선보였고, 2021년 서울에서 개최된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 정상회의 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문양을 응용한 보자기 가방을 제작해 화제가 됐다.

“원단에 들어가는 문양은 주로 우리 민화에서 응용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그 귀여운 호랑이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호호당이 해온 일을 인정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 대표가 이끌던 호호당은 무역회사에 다니던 남편 김준식 씨가 2016년 합류해 해외 직수출의 길이 열렸다. 현재 호호당은 서울과 대구, 베트남 호찌민에 공장을 둔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호호당은 제가 결혼할 때 ‘늘 좋은 일만 있으라’고 어머니가 저희 가정에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듬해인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무척 막막했어요. 혼자 출산을 준비할 때는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배냇저고리를 만들면서 그 허전한 심경을 추스를 수 있었죠. 어머니가 염원하신 것처럼 저도 호호당을 찾는 분들께 좋은 일만 가득 담아 드리고 싶어요.”

보자기에 담는 정성스러운 그 마음이 복을 부르나 보다.

부부간 신뢰와 화목을 상징하는 목각 기러기는 전통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예물이었다. 장인이 호두나무를 정성스럽게 깎아 만든 호호당의 목각 기러기는 주로 전통 옷감인 양단이나 노방 보자기로 포장한다.

이기숙작가
이민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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