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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UMMER

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속가능한 미래

최정윤은 약 30년 동안 현장과 이론,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며 한식의 경계를 넓혀온 요리 연구가이다. 세계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식의 미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2023년 비영리 사단법인 난로학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2025년에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한국 의장으로 임명되어 한국과 세계의 미식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 서울 북촌에 자리한 찻집 해온에서 그녀를 만났다.

최정윤 난로학원 의장은 한국 미식 문화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조선 시대 한양(현재의 서울)에서는 날씨가 쌀쌀해지는 음력 10월이면 선비들이 모여 숯불을 지핀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풍류를 즐기던 풍속이 있었다. 이를 난로회라 한다. 최정윤 의장은 여기에서 착안해 2022년 난로회라는 미식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국내 내로라하는 셰프들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이 이 모임에 다녀갔다. 지금까지 40회 이상, 600명 넘게 참여한 이 모임은 한식의 현재와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공론의 장이 되었다. 최 의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 세대의 한식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이듬해 난로학원을 설립했다.

서울 조선호텔과 하얏트호텔 리젠시 퍼스 호주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활동했던 그녀는 2007년 전설적인 레스토랑으로 회자되는 스페인 엘 불리와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재단에서 경험을 쌓으며 식재료와 음식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길렀다. 이후 2010년부터 올해 봄까지는 국내 대표적 식품 기업 중 하나인 샘표의 ‘우리맛연구중심'을 이끌며, 한식의 뿌리인 전통 장을 현대적으로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이곳은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한식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런가 하면 2023년에는 뉴욕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와 함께 10년의 연구 끝에 집필한 영문 한식 조리서 『더 코리안 쿡북』을 세계적 예술 출판사 파이돈에서 발행하며, 한식의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지난해부터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식 평가 가이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 의장으로서, 글로벌 미식계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 중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보수적이며 엄격한 관점으로 톱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데 반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은 트렌드를 이끄는 화두를 던지는 레스토랑에 방점을 둔다.

최근 국내에서 파인 다이닝 문화가 급부상하고 있다.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경제 성장률이 일정 시점에 도달하면 경험 경제 시대가 도래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GDP가 3만 달러를 돌파한 게 2017년인데, 그즈음 때맞춰 미슐랭 가이드 서울판이 발간된 게 의미심장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셰프들의 도전이 주효했다고 본다. 한국은 1980년대만 해도 해외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는데, 1989년 해외 여행 자유화 이후 유학을 다녀오거나 해외 선진 레스토랑을 경험한 셰프들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 땅에 파인 다이닝을 뿌리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 한식 파인 다이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오랫동안 보유해온 자산이 있다. 한식의 핵심적 키워드인 발효다. 우리가 한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해외 미식가들과 유수의 셰프들이 가장 눈을 반짝이는 대목이 바로 발효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가가호호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을 정도로 발효가 일상화된 문화가 없었던 거다. 더불어 2010년대 초반, 미식 업계에서 ‘산미’가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 점이 발효 미학과 맞아 떨어진다. 엘 불리와 알리시아에 몸담고 있던 시절, 스페인 최고의 셰프들이 내게 힌트를 줬다. 한국의 발효를 미학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샘표에 입사한 것도 발효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어서였다.

그간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과 교류했는데, 각 나라마다 한식에 매료되는 지점이 달랐을 것 같다.

유럽 셰프들이 발효를 연구자 같은 태도로 접근한다면, 일본 셰프들은 재료를 존중하는 우리의 태도에 공명하면서도 한국식 대담함과 투박함에서 신선함을 느끼더라. 동남아 셰프들은 발효와 매운맛이라는 공통의 언어에서 빠르게 접점을 찾았다.

난로학원은 한식 레스토랑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전통 한식 문화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난로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사진은 난로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김명성 발효연구소의 메주이다. 메주는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을 담그는 원료이다.
난로학원 제공

해외로 진출한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도 큰 화제다. 현지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생각의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식당이란 건 결국 손님들에게 사랑받아야 살아남는다. 손님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가 본질이 된다. 문화라는 건 사람들이 향유하면서 나온 결과물이지,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고추장찌개는 한식일까? 아마 조선 시대 선비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이 고추장을 대중적으로 먹기 시작한 시기를 통상 19세기 무렵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고추장과 라면, 떡볶이가 대표적인 한식으로 인식되지 않나?

현지화도 같은 맥락이다. 변화와 발전, 새로운 조합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고정관념에 갇히면 외면받고 고립되면서 결국 소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고추장과 라면이 붐이지만, 매운맛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단 매운맛을 통해 한식을 경험하게 되면, 차츰 한식의 깊고 넓은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거라 본다.

기본적으로 한식은 한 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먹는 ‘공간 전개형’ 식문화다. 코스에 따라 서빙되는 파인 다이닝의 ‘시간 전개형’ 식문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간극이 충돌하지 않고 섞일 수 있을까?

파인 다이닝에서는 요리의 온도나 셰프의 창의적 의도 등 정교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파인 다이닝의 정교함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다. 예컨대 2026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4위인 온지음에서는 메인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도록 서빙하거나 각 코스마다 어울리는 김치를 페어링해 준다. 시간의 문법과 공간의 문법은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호응한다. 서양 파인 다이닝 역시 엄격한 코스 방식에서 벗어나 공유와 커뮤널 다이닝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한 상의 동시성과 풍요로움을 잘 번역하면, 파인 다이닝의 문법을 한층 넓힐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현재 한식 파인 다이닝 업계가 풀어나가야 할 가장 큰 과업은 무엇인가?

첫째로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시급하다고 본다. 단순히 일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빠르게 한식을 확산하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식당에서 일해본 외국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한식당을 차리는 경우도 왕왕 접한다. ‘한식이 잘된다’는 얘기는 다음 세대들이 한식을 계속 먹느냐, 그리고 한국 바깥에서 한식을 얼마나 즐기느냐의 종적, 횡적 의미를 모두 내포한다.

둘째로 로컬의 확산이다. 쉽게 말해 서울 말고 다른 지역의 식문화를 고루 선보여야 한다는 거다. 파인 다이닝이 발달한 나라들에서는 각 지역의 고유한 음식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하며 미식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2024년 부산이 미슐랭 가이드 평가 대상 도시로 추가되면서, 우리에게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54위를 차지한 ‘산’의 셰프 중 한 명이 부산 출신인데, 메뉴에 부산의 향토 음식인 돼지국밥이 있다. 본인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국제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셰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한식 파인 다이닝의 지난 10년을 신선함과 스펙터클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이제는 깊이와 축적을 향해 나아갈 시기다. 지속 가능성이 가장 큰 화두라 할 수 있다.

난로학원을 설립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가?

셰프들이 식당을 차리면 열 곳 중에 일곱 곳이 문을 닫는다. 요리와 경영은 전혀 별개의 분야다. 그래서 난로학원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멘토링이다. 미식뿐 아니라 파이낸스, 마케팅, 브랜딩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문화 산업으로 봤을 때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플랫폼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만 봐도 미식의 힘이 패션과 영화, 와인, 럭셔리와 얽혀 200여 년간 성장해 왔다. 일본 음식 역시 디자인과 공예, 콘텐츠와 함께 발전했다. 음식이라는 건 외딴 섬이 아니다. 난로학원에서 하는 일은 한식이 오래 설 수 있는 생태계를 짓는 거다.

엘 불리 레스토랑과 요리과학연구소 알리시아 재단을 이끌었던 셰프 페란 아드리아가 2025년 난로학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의 셰프들과 함께 전라남도 장성에 위치한 백양사 천진암에서 정관 스님에게 한국 발효 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난로학원 제공

김예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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