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는 단순한 전통 재료를 넘어, 현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조형 언어와 실험의 매개체로 자리한다. 특히 ‘한국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갈망한 이들에게 한지는 그 자체로 비서구적 예술 철학의 구현을 가능케 한 본질적 방법론이었다. 천년 역사를 가진 한지는 시대의 미감과 예술의 가치가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한국 미술의 동시대성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예술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 Opening 21 >. 이정진. 2016.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45.5 x 76.5cm. ed. 10+3AP.
작가 및 PKM 갤러리 제공
< Wind 07-95 >. 이정진. 2007. Photograph on hand-coated Korean Mulberry paper. 75.5 x 144.5cm.
작가 및 PKM 갤러리 제공
한국의 현대 미술가들이 한지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미술 한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단색화의 경우를 보자. 이들 작가들에게 한지는 단순한 전통 재료 이상으로, 작품의 존재 이유를 대변하는 고도의 매체에 가까웠다. 서양의 캔버스가 물감이라는 핵심 재료를 받아내는 보조적 위치에 충실했던 반면, 단색화에서 한지는 보다 주체적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박서보의 유명 연작인 <묘법>은 젖은 한지에 선 혹은 골을 만들어내는 반복적 행위로 작가 자신의 신체성 및 정신성을 담아낸 작업이다. 또 권영우는 한지 표면을 직접 찢고 뚫어서 획득한 종이의 물질성을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치환했다.
인간의 노동과 시간, 역사와 기억이 켜켜이 응축된 한지는 현대 미술가의 작업을 통해 재료 이상의 가치로 나날이 재해석된다. 획기적인 조형 언어와 다채로운 실험의 매체로 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수행과 사색, 그리고 영감의 대상으로 거듭나고 있다. 형식과 사유의 정점에서 한지는 미술가들 각자의 고유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진과 회화, 조각 등의 장르적 경계는 흐려지고, 과거와 현재가 교감하는 등 예술의 스펙트럼이 한결 넓어진다.
몰입의 깊이
<산>. 김민정. 2022. 한지에 먹, 수채물감. 189 x 130cm.
작가 제공
30년 넘는 세월 동안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사진작가 이정진은 재현이나 기록 매체로서의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풍경을 포착해 왔다. 미대륙의 광활한 사막, 흙이나 바위 등의 자연, 한국의 석탑, 우표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까지 수묵화를 닮은 이정진의 작업은 감성과 직관을 통한 시적 울림을 전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국적을 불문하고 보는 이들을 감동시킨 사진의 힘은 한지에서 출발한 아날로그 프린트 작업으로 배가된다. 작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전통 한지의 표면에 붓으로 감광 유제를 바른 후 이미지를 인화하는 독창적인 방식을 개발, 지속해 왔다. 장인정신이라 해도 좋을 수공적 방식은 복제 매체로서의 사진을 재정의하고, 사진의 물성과 회화성, 그리고 시간성을 표표히 드러낸다. 한지 특유의 거칠한 질감을 입은 이미지가 시각을 뛰어넘어 촉각까지 자극하는데, 이는 근래 시도한 아날로그 프린트와 디지털 기법을 결합한 새로운 작업에서도 유효하다.
이정진의 사진은 이 세상의 ‘풍경’을 넘어 ‘초상’을 찍은 듯한 특유의 느낌을 선사한다. 이는 손으로 찢은 듯 거친 한지의 가장자리를 그대로 작업 일부로 살리는 방식 덕분에 더욱 돋보인다. 이미지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흑백 이미지를 숙성시키며 시공간을 초월해 현존하게 하는 것이다. 하여, 이정진의 이미지는 자유롭다. 프레임에 갇혀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해방감으로 가득하다. 이정진에게 한지는 자기 경험과 감각을 보는 이가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인 동시에 사진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몰입의 깊이를 더하는 조력자다.
존재론적 대상
이정진에게 한지가 생명력을 상징한다면, 김민정에게는 사색의 매체이다. 프랑스 남부 생폴 드 방스에 위치한 고즈넉한 작업실에서 작가는 동아시아의 서예와 수묵화 전통, 그리고 동양 철학에 대한 탐구를 한지로 구현한다. 특히 김민정은 한지를 가볍고도 연약한 물성과 오랜 세월을 견디는 강인한 속성을 겸비한 독립적 대상으로 여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작가는 한지를 일일이 자르고 중첩해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해오고 있는데, 이때 한지의 가장자리를 촛불이나 향불로 그을려 먹 혹은 수채 물감이 자연스레 번지는 듯한 우연한 효과를 얻어냈다. 종이(한지)와 자연(불)의 통제 불가능한 협업은 인위적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몽환적 풍경을 그려낸다. 한지 조각들은 작가의 손끝에서 시시각각 색, 형태, 질감 등을 변주해 미묘한 입체감을 더한 신개념 추상화로 완성된다. 동양 예술의 정신과 서양 추상 회화의 어법,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고 포용하는 실험적인 스타일은 작가의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했다.
김민정에게 한지는 매 순간 마주하는 가장 익숙한 재료이자 자신의 피부나 다름없는 존재론적 대상이다. 또한 기다림과 절제, 반복과 순환, 선과 도를 시각화하는 수행의 무대이기도 하다. 한지를 태울 때 작가는 명상하듯 호흡을 가다듬고, 그렇게 집중해서 얻어낸 조각들을 하나하나 얇게, 섬세하게 쌓아 올리는 노동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그녀의 작업은 태워 없애야만 얻을 수 있으며, 비움으로써 채워진다. 겹겹의 한지에 스민 사유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는 순간, 보는 이들은 치유의 힘을 체험하게 된다.
시간의 기억
전광영에게 한지는 기억의 매체이다. 그 작업 세계의 바탕에는 어린 시절, 한약방을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약재를 한지로 정성스레 감싸던 오래된 장면이 자리한다. 전광영은 고서를 찢은 종이로 서로 다른 크기의 삼각형 스티로폼을 일일이 감싸고 끈으로 묶어 한약방의 약첩 형태로 만든다. 언뜻 보자기로 싼 선물 같기도 한 조각들은 작품의 가장 실질적인 기본 단위이자 조형 언어가 된다. 이렇게 만든 조각 수천, 수만 개를 정교하게 합판에 붙인 <집합>은 그중에서도 가장 회자되는 작가의 대표 연작이다. 불규칙하게 삐죽삐죽 돌출된 조각은 부조 같은 화면에 율동감을 불어넣는다. 급기야 작가는 유기적 움직임을 극대화한 거대한 조각을 만들어내며 작업 영역을 대폭 확장하기도 했다. 베니스를 비롯해 각지에서 선보인 평면이자 입체인 작업들은 “민족의 혼과 얼을 담고 싶다”는 한국 작가로서의 바람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
작품의 주재료인 고서, 그리고 이를 이루는 빛바랜 한지는 곧 선인들의 기억을 의미한다. 작품 곳곳에 새겨진 문자와 시간 같은 단서들이 그들의 일상과 역사, 배움과 기록의 의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지를 입은 조각들은 서로 충돌하고 때론 강렬하게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만든다. 작금의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고, 천연염료로 얻은 밝은 색채를 빌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고 그 정서를 감싼 전광영의 한지에는 상상 이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집합 13-MA008>. 전광영. 2013. 한지에 혼합 재료. 250 x 200cm.
© 전광영 & CKY 스튜디오
물질과 정신의 공명
<첨벙첨벙 화산재 응시 – 황홀망恍惚網 #140>. 양혜규. 2022. 한지, 알루디본드, 액자. 62 x 62cm.
작가 제공, 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양혜규의 한지는 인간 문명의 보편적인 단서로 작용한다. 그동안 작가는 물질과 영성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특히 2020년부터 매진하고 있는 <황홀망> 연작은 무속 전통에 사용되는 종이 무구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콜라주 작업이다. 무속에서는 제의를 치를 때 한지를 특정한 방식으로 접고 오려 ‘넋전’을 만드는데, 망자의 혼이 서리도록 하는 용도이다. 종이 무구가 물질과 정신이 공명하는 관계를 상징한다는 믿음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샤머니즘, 민속 또는 이교적 전통과 관련된 신성한 종이 오브제들이 전해오고 있으며, 한국의 한지를 비롯해 일본의 와시, 중국의 추피지 등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 <황홀망>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통용되어 온 종이의 영적 특성을 현대 미술의 언어로 체화했다.
양혜규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알려졌지만, 초창기부터 줄곧 평면 작업에 애정을 표해 왔다. 작가에게 평면성은 재료를 접고, 자르고, 붙이고, 겹겹이 쌓는 일이다. <황홀망> 역시 갖가지 문양 및 장식으로 추상적인 겹과 층을 생성하는데, 이는 그간 블라인드, 짚풀, 방울 등의 재료를 가공해온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다른 점은 조각 및 설치 작품이 물리적 공간을 구축한다면, ‘납작하게 하는 행위’로 탄생한 평면 작업은 역설적으로 더 다채롭고 밀도 높은 층위를 품는다는 것이다. 접히고 축약된 <황홀망>은 평면성과 입체성의 이분법을 초월한 잠재적 추상의 세계로 매번 도약한다. 작가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종이, 즉 한지가 바로 그 세계로 진입하는 문이자 문고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