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는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생을 함께했던 종이다. 서화와 서책은 물론 각종 생활용품과 가구를 만드는 데도 널리 쓰였고, 그런 까닭에 다양한 한지 공예 기법이 발달할 수 있었다. 또한 한옥 부재로 사용돼 한국인의 주거 문화 속에도 깊숙이 뿌리내렸다.
2024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서 열린 수장형 전시 <종이, 봄날을 만나다>의 전시작 중 일부인 김선애 장인의 작품. 높이 153㎝의 발을 비롯해 두 점의 달항아리 모두 지승을 엮어 만들었다. 지승공예는 한지를 잘라 손으로 비벼서 노끈을 만들고, 이를 엮어서 기물을 만드는 전통 공예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10여 년 전 독일 뮌헨에 있는 도이체스뮤지엄에 들른 적이 있다. 독일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과학 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여기서 뜻밖의 전시물과 마주쳤는데, 바로 종이로 만든 한복이었다. 한지로 만든 일상복을 실물로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문헌에서나 마주쳤던 종이옷을 먼 타국에서 대면하게 되니, 미묘한 감회에 휩싸여 그 앞에 한참 붙들려 있었다.
종이옷은 수의나 종교 의례 시 사용한 예가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변방의 군사들에게 솜 대신 종이를 넣은 방한복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종종 나온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추위에 떠는 유랑 거지에게 종이옷을 입혀 돌보라 일렀다. 종이옷이 방한복으로도 활용됐다니, 그 성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종이로 무슨 입성이랴 싶지만, 근래 닥 섬유로 짠 옷감과 양말이 팔리는 것을 보면, 종이 한복은 지혜로운 전통 유산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지승으로 옷을 지어 입기도 했다. 길이 42cm, 너비 133.5cm의 이 옷은 1945년 이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원주역사박물관
일상의 중심에 있었던 종이
김동식 장인의 합죽선. 2015년 국가무형문화유산 선자장으로 지정된 그는 4대째 전통 기법으로 부채를 만들고 있다. 합죽선은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를 말하며, 조선 시대 양반들이 더위를 쫓거나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했던 고급 부채이다.
솔루나 리빙 제공
종이로 책을 매거나 기물을 만드는 것과 옷을 짓는 일은 기술의 난이도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고정된 형태를 마름질하기는 쉬우나 몸을 감싸되 활동이 자유로워야 할 옷은 고려할 조건이 곱절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이옷의 존재는 일반 종이를 압도하는 한지의 고유성을 한마디로 설명한다. 더구나 한지로 갑옷을 지어 입혔다는 데에 이르면 한지의 쓰임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질기고 탄력적인 닥나무 껍질을 겹겹이 중첩해 만든 갑옷은 웬만해서는 화살도 뚫지 못했다.
이처럼 한지의 쓰임은 상식의 틀을 훌쩍 벗어난다. 세상에 태어나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한지는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우리 곁을 지켰다. 장지 장판 위에서 태어나 창호지를 바른 공간에서 살며, 책을 펼쳐 공부하고, 천수를 누린 뒤에는 종이에 싸여 땅에 묻혔다. 혼인 단자에 사주를 적고, 망자를 배웅하는 길에는 오방색 상여 꽃으로, 제사 때는 지방과 축문으로, 신을 불러 접신하는 자리는 종이꽃[紙花]으로 굿판을 가득 채웠다. 한국인의 삶 전체가 한지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온갖 데에 요긴하게 쓰인 한지라지만, 종이로 만든 지우산에 이르면 탄복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물기에 취약한 종이로 우산을 만든 역설은 품 너른 한지의 특별한 오지랖이다. 종이를 이토록 일상의 중심에 깊이 끌어들여 산 이들이 또 있을까.
질긴 생명력
대우건설이 운영하는 브랜드 체험 공간 써밋 갤러리에 설치된 윤규상 장인의 지우산.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실로 연결하고, 들기름 먹인 한지를 붙여서 제작한 작품이다. 한국의 전통 우산인 지우산은 실용성과 심미성을 겸비하고 있어, 현대인의 일상에서도 파라솔이나 인테리어 용품으로 활용된다. 2011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유산 우산장으로 지정된 윤규상은 국내 유일한 지우산 장인이며, 후계자인 아들 윤성호 이수자와 함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대우건설 써밋갤러리
삼국시대에 들어온 종이는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닥종이 한지로 새로이 거듭났다. 종이를 먼저 발명한 중국은 헝겊이나 그물을 풀어 만든 거친 종이를 사용하다가 이후 청단나무 껍질에 볏짚을 섞은 선지를 오늘까지 잇고 있다. 한지와 선지는 재료의 차이도 있으나 종이를 뜨는 방법도 다르다. 한지는 물질할 때 닥나무 섬유를 우물 정자로 교차시켜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켜켜이 중첩하는 반면, 선지는 일본의 화지처럼 결을 한 방향으로 형성한다.
중국이 송대부터 고려지를 꾸준히 요구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송의 시인 소동파와 명나라 화가 동기창이 고려지를 애용했고, 원나라는 고려에 한지 10만 장을 한꺼번에 요청한 적이 있으며, 자금성 내부를 온통 고려지로 배접한 사실은 한지의 저력을 말해준다. 더욱이 한지는 홍두깨로 두드려 겉을 매끄럽게 다듬는 도침 공정을 필히 거친다. 질기고 매끈한 한지의 질감이 여기서 나온다.
한지의 종류는 재료와 용도에 따라 수십 가지를 헤아린다. 쓸모가 많으니, 전국의 물 맑은 곳이면 어디든 닥나무를 심어 한지 제작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 가운데서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일대는 고급 한지 명소로 꼽혔다. 북악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가에는 한지 뜨는 지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궁궐과 관청이 코앞이라 전국에서 이름난 장인들이 몰려들었고, 관청용 종이를 생산하던 관아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제지 공장이 들어서자, 그 많던 장인들이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졌다.
한지가헌의 2025년 기획전 <산세의 형상> 전시 전경. 국내 대표적 한지 생산지인 괴산, 전주, 안동의 한지를 여러 명의 공예 작가들이 현대적으로 해석해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한 전시이다. 서울 북촌에 위치한 한지가헌은 전통 유산인 한지의 우수성과 쓰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2020년부터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한지의 장점은 첫째가 내절성이다.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도 견디는 강도를 말한다. 공식 실험에서 양지는 불과 스무 번 남짓에 끊겼으나, 한지는 800회 이상을 견디는 놀라운 격차를 보여준다. 그것도 기계식 한지가 이 정도였으니, 손으로 두드려 올을 살린 전통 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지의 가치가 이러하니 낡은 자투리 하나도 허투루 버릴 수 없었다. 조선 시대에 사초로 쓴 종이를 물에 흔들어 먹을 지운 뒤에 다시 사용하기를 반복한 기록이 보인다. 과거 시험 낙방자의 답안지 낙폭지로는 옷이나 세간을 만들었고, 신발이나 삿갓을 만들기도 했다. 한지를 으레 다시 쓰다 보니 ‘돌아온 종이[還紙]’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한지는 닳아 없어질 때까지 질긴 생명을 놓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책의 기능을 다한 파지는 손으로 비벼 꼬아서 노끈을 만들었다. 이 노끈을 촘촘히 엮어 반짇고리나 함 같은 생활 기물을 만드는 것을 지승공예라 한다. 이런 기물들은 정감이 넘칠 뿐 아니라 생태적 측면에서도 더할 나위 없다. 여기에 옻칠을 하면 훨씬 견고해지니 쓸모가 더 많아진다. 진흙으로 구워 만든 자라병도 지승으로 감싸 말안장에 채우면, 먼 여정에도 안심하고 목을 축일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종이, 봄날을 만나다>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섬유예술가 엄윤나의 ‘백미’ 시리즈. 지끈을 한 줄씩 쌓아 올려 미싱 작업을 한 것으로, 현대적인 한지 공예의 세계를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활용 기술의 정점
한지는 전통 가옥에서 방바닥에 바르는 장판지, 창과 문에 바르는 창호지, 벽에 붙이는 도배지 등 다양한 용도로 두루 활용되었다. 사진은 건축사사무소 선재가 전라북도 정읍에 신축한 한옥으로, 채광과 환기를 위해 한지를 현대적으로 활용했다.
건축사무소 선재 제공, 사진 박영채
2025년, 전통문화 후원 재단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은 지호장 박갑순이었다. 샤넬이 후원한, 예올 북촌가에서 열렸던 전시 <자연, 즉 스스로 그러함>에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한결같이 호평을 쏟아냈다. 그동안 보아온 공예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풋풋한 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호는 풀로 반죽한 한지 죽을 거푸집에서 굳혀, 필요한 그릇을 만들던 서민의 생활 기술이다. 옷감 자투리로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만들어 썼듯이, 한지를 비단처럼 귀하게 여긴 알뜰함이 지호의 본질이다. 재료를 재구성하여 용도를 바꿀 때는 특별한 솜씨와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쓸모를 다한 종이를 활용한 점은 지승과 유사하나, 지호로는 작은 표주박에서 큰 독까지 크기 제한 없이 만들 수 있다. 오지그릇조차 버거운 가난한 서민들이 지호로 선호한 기물은 단연 종이독[紙甕]이었다. 여기에는 주로 쌀과 같은 곡식을 넣어 사용했다.
재료를 귀하게 여기고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한 삶의 출발점이다. 지호에서 겸손과 절제된 태도를 배우게 된다. 물질의 풍요를 누린 결과가 기후 위기를 초래한 문명의 역설 앞에서 생태적 삶을 배울 만한 데가 어디 한지뿐이겠는가. 빼어난 유산도 시간의 유속을 거스르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 한지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늘었으나, 일상과의 격절로 인해 한지 장인의 얼굴에는 그늘이 한층 짙어간다. 손 글씨로 편지를 써본 적이 까마득하다. 더뎌서 불편해도 느림의 가치를 알아채고 내 삶에 일부나마 적용해 보는 것이 유효한 해결책이다. 그것이 한지를 내일의 유산으로 전하는 디딤돌이다.
최공호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