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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AUTUMN

목포를 느낄 수 있는 아홉 가지 맛

더없이 맛깔난 음식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기쁨과 활력을 준다. 목포는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음식이 넘쳐나는 도시다. 오래전부터 풍부한 해산물을 이용한 향토 음식이 발달했다. 그래서 목포에 방문한 여행자들은 이름난 관광 명소보다 맛집을 먼저 찾는다. 목포야말로 미식 힐링 여행지로 손에 꼽을 만한 지역이다.

‘삼합’은 세 가지가 잘 어울린다는 뜻으로, 홍어 삼합은 잘 삭힌 홍어에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먹는 음식이다. 김치는 오랫동안 숙성된 잘 익은 묵은지일수록 더 좋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홍어의 톡 쏘는 맛과 냄새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든다. 홍어 삼합에는 흔히 시원한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다.
© 이민희

전라남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목포는 ‘미식의 고장’으로 통한다. 지척인 서해와 남해에선 철마다 신선한 생선이 잡히고, 인근에 자리한 너른 평야에선 찰진 곡식이 익는다. 미식가로 자처하는 사람 중에서 목포 맛 여행을 안 한 이는 없다. 목포야말로 한식의 본향이다. 목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신선한 민어나 갯장어,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갓김치 등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목포 음식은 한둘이 아니다.

2019년 목포시는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진미를 소개하면서 목포가 ‘맛의 도시’임을 선포했다. 홍어 삼합, 민어회, 세발낙지, 꽃게무침, 병어회, 준치 무침, 갈치조림, 우럭간국, 아귀탕이 그것들이다. 사실 목포에는 품격 높고 역사가 오래된 ‘맛’이 많아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이런 고민에 해결책을 제시한 게 목포에서 꼭 맛봐야 할 아홉 가지 맛, 이른바 ‘목포 9미(九味)’다.  보통은 어떤 고장에서 꼭 한번은 경험해 봐야 하는 먹거리를 다섯 가지 정도로 꼽는다. 그런데 목포는 9미를 꼽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넘쳐난다. 

시큼하고 톡 쏘는 맛

목포를 대표하는 먹거리는 누가 뭐라 해도 홍어 삼합이 으뜸이다.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에 한때는 외면당했지만, 지금은 고급스러운 별미로 인기 있다. 삭힌 홍어와 김치, 돼지고기 수육을 함께 먹는 음식이다. 홍어는 목포를 넘어 전라도 음식의 핵심이자 지역의 정체성을 한껏 드러낸 식재료다. 가오릿과에 속하는 홍어는 서해 연평도나 대청도 등에서도 잡히지만, 목포 인근 섬인 흑산도에서 어획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1년에 새끼를 최대 두 마리까지만 낳기 때문에 흑산도 홍어가 더 귀하다. 금어기가 끝나는 11월부터 잡기 시작하며 이듬해 3월까지 가장 맛이 좋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 서식하는 민어는 여름철 대표적 보양식이며, 주로 찜이나 회로 먹는 고급 생선이다. 민어회는 식감이 쫄깃하며 은은한 단맛이 돈다. 생선 살만 먹는 다른 지역과 달리 목포에서는 껍질과 부레, 지느러미까지 먹기 때문에 민어 철이 되면 제대로 된 민어회를 즐기기 위해 목포를 찾은 미식가들이 많다.
© 목포시

아귀찜은 아귀를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 등의 재료와 함께 갖은양념을 하고 고춧가루와 녹말풀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 음식이다. 예전에는 못 생기고 볼품없는 생선이라 하여 아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아귀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지금은 값이 비싼 생선이 되었다.
© 목포시

최상품으로 치는 흑산도 홍어 대부분은 목포 어판장에서 경매로 전국에 팔려나간다. 육지 사람들은 홍어를 당연히 삭혀 먹어야 하는 줄로 알지만, 흑산도 주민들은 삭히지 않은 홍어회를 즐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홍어를 삭혀서 먹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남해 일대에는 왜구가 자주 출몰해 피해가 컸다. 왕은 주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섬을 비우는 공도 정책을 펴 대응했다. 이에 따라 흑산도 주민들이 육지인 나주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이때 배에 홍어를 실었다. 나주에 도착해서 보니, 볏짚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홍어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며 상한 것처럼 보였다. 주민들은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먹었는데, 그 맛이 오히려 좋고 탈도 나지 않았다. 홍어가 볏짚 안에서 자연 발효되어 건강식이 된 것이다. 다른 유래는 흑산도 주민들의 경제 활동에 기인한다. 주민들은 홍어를 나주 영산포에 가져가 곡식과 물물교환했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면 상하기 일쑤였지만, 역시나 버리기 아까워 그냥 먹었다. 오히려 맛이 좋고 소화도 잘돼 나주 시장에 팔았는데, 찾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두 사연 모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시큼한 냄새와 톡 쏘는 맛은 어지간한 미식가가 아니고서는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홍어는 썩지 않는다. 체액에 많은 요소 성분 때문이다. 홍어는 죽으면 요소가 암모니아와 트라이메틸아민으로 분해된다. 이 두 가지 성분이 홍어를 숙성시키며 특유의 맛과 향을 발생시킨다.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전라도 지역민들만 즐긴 음식이 홍어였다. 전국권 진미로 인정받게 된 게 고작 10여 년 전이다. 한국의 미식 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색다른 맛을 찾는 이가 늘고, 건강식으로 홍어의 가치가 알려지면서부터다. 요즘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영국인 조슈아 대릴 캐럿이 운영하는, 구독자 수 6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도 자주 등장하는 음식이다.

홍어 맛집으로 목포에선 ‘덕인집’이 역사가 오래됐다. 이 집에는 홍어 간으로 끓이는 홍어애탕도 있다. 된장을 푼 홍어애탕은 그야말로 극강의 건강식이다. 홍어와 라면을 접목한 음식을 파는 ‘목포라면 홍어라면’도 SNS를 중심으로 유명해졌다.

갈치조림은 토막 친 갈치를 양념하여 조린 반찬으로, 식당뿐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자주 조리해 먹는 음식이다. 기름에 지져낸 갈치구이도 비리지 않고 담백해 누구나 좋아한다. 갈치 중에서도 9월 말부터 목포 앞바다에서 잡히는 먹갈치는 산란을 앞두고 있어 유난히 달고 맛이 좋다.
© 한국관광공사

다채로운 해산물 요리

목포 앞바다에 있는 섬 암태도 등이 주산지인 민어는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다. 더위로 지친 몸에 영양을 보충해 준다. 민어는 조선 시대 왕의 밥상에 올랐던 귀한 생선이다. 목포엔 ‘민어의 거리’가 있는데, 이곳에는 영란횟집을 비롯해 민어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

낙지도 목포의 별미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홍어와 함께 잊히지 않는 맛으로 꼽는다. 돌 틈이나 갯벌에 서식하는 낙지는 양식이 어렵다. 수명이 고작 1년인 낙지는 작은 게, 새우류, 조개류 등 먹이가 풍부한 서해 갯벌에서 사람이 직접 채취한다. 영양소가 풍부한 낙지는 조리법에 따라 음식 종류도 많다. 낙지탕탕이는 산낙지를 도마 위에 놓고 칼로 탕탕 치면서 잘게 다져 육회, 달걀노른자와 비벼 먹는 음식이다. 낙지 초무침은 각종 채소와 잘게 자른 낙지를 시큼한 식초 양념에 무쳐 먹는다. 연포탕은 목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파는 식당이 많지만, 제대로 된 연포탕을 맛보려면 역시 목포라야 한다. 각종 채소로 우린 국물에 낙지를 통째로 넣어 끓여 먹는다. 과음한 뒤 속을 달래기 위해 먹는 해장 음식으로 연포탕만 한 게 없다. 여러 고문헌에는 기를 채워주는 음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목포시 남교동에 있는 ‘가락지 죽집’은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오래된 가게다. 부모님에게 가게를 물려받아 60년 동안 음식을 만들어 온 배옥님 할머니는 손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가게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죽과 칼국수 등을 파는데, 특히 국산 팥으로 쑨 담백한 팥죽과 쑥떡에 하얀 팥고물을 입힌 쑥굴레가 인기 있다.
괜찮아마을 제공

꽃게살을 발라내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 밥에 비벼 먹는 게살 비빔밥도 매우 인기다. 이 음식이 대표 메뉴인 장터식당은 늘 문전성시다. 손맛이 좋기로 소문난 목포 사람들은 병어나 준치, 갈치 같은 생선을 조림이나 튀김 등 다채롭게 조리해 선보인다. 보통 회로 즐겨 먹는 우럭은 목포에서는 그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우럭간국의 재료가 된다. 반건조한 우럭을 푹 끓인 우럭간국 또한 연포탕과 함께 해장에 으뜸이다.

목포만의 특별한 메뉴

한편, 짜장면은 삶은 면에 각종 소스를 부어 먹는 음식으로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지만, 한국의 짜장면은 맛의 결이 다르다. 우리식 춘장과 잘게 저민 돼지고기, 양파, 애호박 등을 함께 볶다가 전분을 넣고 뒤척거려 완성한다. 맛이나 조리법이 평준화된 음식이지만, 지역에 따라 달걀 부침개를 얹어 주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를 쓰는 곳도 있다.

목포에는 일반적인 레시피와 구별되는 독특한 짜장면이 있다. 70년 넘게 3대가 지켜온 노포 ‘중화루’의 특별한 메뉴다. 이곳에서 개발한 ‘중깐’이라는 이름의 짜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1970~80년대 이 지역 손님들은 탕수육 등 요리를 먹고 후식으로 기스면이나 짜장면을 주문했다. 이미 요리로 배를 채운 손님들은 후식을 많이 남겼다. 그게 아까웠던 2대 주인은 면의 굵기를 가늘게 줄이고, 채소나 고기도 잘게 다져 함께 비빈 후식용 음식을 만들었다. 죽처럼 씹기도 전에 후루룩 넘어가는 중깐은 단박에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그저 후식이었던 이 음식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면서 오히려 보통 짜장면보다 찾는 이가 많아졌다. 2000년대 중반엔 차림표에 당당히 메뉴로 이름을 올렸고, 2022년엔 상표 등록도 했다. 중깐은 오직 목포 중화루에서만 맛볼 수 있다. 7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또 다른 노포 ‘쑥꿀레’에선 쑥이 재료인 작은 크기의 떡을 판다. 흰색 팥앙금을 버무린 떡인데, 여기에 조청 등을 부어 먹는 디저트다.

목포를 상징하는 대표적 토산품 중 하나가 세발낙지이다. 일반 낙지보다 다리가 가늘고 크기가 작지만, 맛은 더 뛰어나다. 사진은 낙지탕탕이로, 산낙지를 잘게 썰어 육회와 함께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 한국관광공사

K-팝과 <오징어 게임>으로 대변되는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한식도 덩달아 인기다. 그중 김밥이 인기 급상승 중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주인공들이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나온다. 김밥의 재료인 김의 주산지가 목포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이다. 말리기 전의 물김이 재료인 전통 음식이 이 지역에 있다. 물김을 넣어 끓인 탕이다. 낙지나 생선 등과 물김을 함께 넣어 끓이면 바다의 향과 맛이 그윽하다.

박미향음식 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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