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을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국가무형유산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미니멀한 연출과 정제된 군무로 국내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전통 의례의 맥락 속에서 친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섬세하게 조율해 냈기 때문일까?
1막 장면으로, 문과 출신의 벼슬아치인 문관들의 춤 문무이다. 흰색 단령을 입고 간결한 관모를 쓴 무용수들이 대열을 만들며 의례의 시작을 알린다. 두 개의 ㄷ자 형태 조명이 설치된 무대 디자인은 종묘를 시각화한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일무>는 종묘제례악이라는 다소 낯설고 어려운 주제에도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평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일무>는 한국의 전통을 모티브로 한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구체적인 수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2022년 초연 이후 해마다 90%가 훌쩍 넘는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해 왔는데, 공연이 오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 성과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반복된 재공연에도 불구하고 약 3,000석의 객석을 꾸준히 채우며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일무>가 일시적인 화제성을 넘어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일무>의 이례적인 행보는 해외 무대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은 초연 이듬해인 2023년 뉴욕 링컨센터에 초청되어 현지 관객들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예술 주간’ 프로그램 중 유일한 유료 공연이었음에도 3회 공연이 모두 전석 매진되었다. 당시 뉴욕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의 독창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올해 1월에는 제41회 뉴욕 댄스&퍼포먼스 어워드에서 <일무>의 안무가인 정혜진, 김성훈, 김재덕이 ‘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에서 수상했다. 통상 ‘베시 어워드’라 불리는 이 상은 뉴욕에서 공연한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혁신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과 예술가에게 주어진다. 베시 어워드에서 한국 예술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를 계기로 <일무>는 국제 공연예술계에서도 유의미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높은 객석 점유율이나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수상 경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일까? <일무>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몰입의 순간에는 남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1막 중 한 장면이며, 무과 출신의 관리인 무관들이 추는 무무이다. 이 춤은 검술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현재’로 호출된 전통
서울 종로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종묘는 조선(1392~1910)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쉽게 말해 조선의 왕과 왕비를 기리기 위한 의례 공간인 셈이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거행되는 의례를 뜻하고, 종묘제례악은 의례가 거행될 때 연행되는 음악, 노래, 춤을 통칭한다. 종묘제례악에는 음악과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포함이 된다. 과거 조선 사회에서 ‘악’은 음악과 노래, 춤 모두를 지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이 의례에 등장하는 ‘일무’를 모티브로 했다. ‘일무’는 ‘줄을 지어 추는 춤’을 일컫는데, 64명이 여덟 줄로 정렬해 추는 팔일무가 일반적이다. 종묘제례악에는 크게 ‘보태평’과 ‘정대업’이라 불리는 음악이 사용되며, 일무는 선왕들의 문덕(학문의 덕)을 기리는 문무 ‘보태평지무’와 선왕들의 무공(군사상의 공적)을 찬양하는 무무 ‘정대업지무’로 나뉜다. 특별한 장신구와 의복, 유장한 멋이 있는 음악,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는 군무는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일무를 포함해 다양한 한국 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작품을 수정하며 연출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있지만, 4개의 막을 차례로 선보이는 큰 구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1막에서는 전통 일무의 특징적 요소를 뼈대로 한 창작이 선보이는데, 작품의 지향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이어지는 막을 예비한다. 2막은 버드나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춘앵무를 모티프로 한다. 춘앵무는 본래 1인무지만, 이 작품에선 대형 군무로 확장하여 재미를 더했다. 펄럭이는 넓은 소맷자락마저 춤의 일부가 되어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3막에서는 무용수 3명이 대나무의 절개를 보여주듯 절제된 미를 구현하며 작품의 호흡을 정돈하고, 마지막 4막에서는 ‘신일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일무가 펼쳐진다. 각 막은 서로 다른 주제에 따라 그에 걸맞은 춤과 음악, 의상을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4막 ‘신일무’의 한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듯 음악과 의상, 춤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유기적인 군무는 작품이 지닌 생명력과 동시대적 감각을 보여준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협업으로 빚어낸 무대
궁중 무용인 ‘춘앵무’를 재해석한 2막 장면. 본래 춘앵무는 화문석 위에서 추는 춤인데, 이 작품에서는 붉은 화문석을 공중에 매달아 무대 장치로 화려하게 연출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일무>에는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러나 <일무>가 선사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혹의 원천은 단연 무용수들의 정제된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미장센이다. 깜깜하게 암전된 극장 속 하얗게 펼쳐진 무대 위에 정렬한 무용수들은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정확하게 맞물리는 대형의 변화가 무대를 살아 있는 장면으로 바꿔놓으며 시각적 쾌감을 제공한다.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사용하되 다양한 움직임과 효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자유로운 운용 방식을 택한 음악도 작품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완성도는 협업의 결과다. 안무가 정혜진은 한국 춤의 구조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며 독특한 조형성을 만들어 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의상과 색채, 무대 이미지를 통해 각 장면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구축하며, 막마다 서로 다른 시각적 리듬을 부여한다. 그간 <묵향>, <향연>, <산조> 등의 작품으로 국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추며 정구호가 창조한 한국적 이미지는 서울시무용단의 <일무>에서 새롭게 응집된다. 여기에 김재덕의 음악이 더해지며 의례가 지닌 느리고 엄숙하다는 고정관념을 때로는 따르고, 때로는 벗어나며 몰입의 방식을 설계한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축적해 온 감각이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일무>가 정교한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간 종묘제례와 같은 전통 의례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다. <일무>는 의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하는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례가 지닌 세련된 카리스마를 동력으로 한 시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의례를 기반으로 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역시 <일무>가 열어 보인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 온 <일무>는 앞으로 국내외 무대에서 어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까? 한국의 전통 의례를 새로운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공연예술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어떤 가능성을 열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