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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PRING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른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수많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공동체 중심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해 왔다. 최근 해녀를 소재로 한 K-드라마와 다큐멘터리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소개되면서, 해녀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haenyeo(해녀)’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정식 표제어로 등재되었다.

제주 해녀 문화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섬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여성 공동체 문화이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26년 1월에는 'haenyeo’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 한국관광공사

한반도 남단에는 거친 계절풍이 깎아 만든 현무암의 섬 제주가 있다. 수백 년 동안 섬사람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척박한 토양과 가늠할 수 없는 기상 조건으로 인해 농경이 어려워지자 그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에 의지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해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별도의 호흡 장비 없이 바다로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지식, 신앙적 의례와 공동체적 연대가 결합되면서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제주의 자연환경이었다. 과거에는 남성들도 함께 참여했으나, 점차 여성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8~19세기에 이르러 여성들이 수중 채취 작업의 대부분을 전담하며 가계 경제에서 핵심적인 주체로 부상했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전문적인 해녀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고대 문헌에 의하면 이들은 주로 ‘잠녀’ 혹은 ‘잠수’라 불렸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왕(재위 491-519) 503년 ‘진주 캐는 사람’에 대한 언급이다. 조선 시대(1392-1910)에 들어서면서는 확실한 분업이 이루어졌다. ‘포작’이라 불리는 남성들이 깊은 바다에서 전복을 따고, 여성들은 주로 해조류를 수확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 남성 잠수부들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물질’은 여성들이 전담하게 되었고, 이들을 ‘바다의 여인’, 즉 ‘해녀’라 부르게 되었다.

공동체 윤리

제주 해녀들은 예로부터 생계를 잇기 위해 별도의 장비 없이 맨몸으로 깊은 바다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했다. 이러한 어업 방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해녀박물관

해녀들은 산소통 없이 오로지 숨 참기, 경험, 강인한 체력에 의존한다. 숙련된 해녀들은 약 20미터 깊이까지 내려가 전복, 성게, 소라, 해조류 등을 채취한다. 수면 위로 올라올 때 이들이 내뱉는 독특한 휘파람 소리인 숨비소리는 호흡을 조절하는 동시에 자신의 안전을 알리는 신호이다. 해녀들은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작업 수심도 각각 달라서 상군은 가장 깊은 곳에서, 하군은 해안가에서 작업한다. 해녀는 절대 혼자 잠수하지 않고 마을 단위의 공동체로 움직인다. 이들에게 협업은 필수다.

이러한 공동체 윤리는 바다 너머까지 이어진다.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인 잠수굿을 올리고, 노를 젓거나 쉴 때는 삶의 고단함과 해학, 강인한 회복력을 표현한 민요를 부른다. 지속가능성이 세계적 화두가 되기 훨씬 전부터 해녀들은 어린 전복을 잡지 않고 산란기에는 조업을 금하는 등 자원 관리의 지혜를 실천해 왔다. 이러한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다.

해녀의 역사 또한 제주 너머까지 이어진다. 19세기 후반부터 해녀들은 한반도 전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원정을 떠났다. 1930년대에는 제주도 밖에서 활동하는 해녀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 이러한 이동성은 근대 한국사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노동 이주와 문화 교류 양상을 반영한다.

해녀의 수는 196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제주 해안가 마을의 소녀들이 물질을 배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감귤 농업이 확대되고 관광 산업이 발전하며 제주의 모습은 바뀌었다. 새로운 생계 수단이 등장함에 따라 해녀 인구는 급감했다. 현재 남은 해녀 대부분은 고령층이고, 해녀 공동체의 규모는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다.

제주 해녀들 사이에서는 물질을 하기 위해 인근 해역으로 배를 타고 나가거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노동요가 전승된다. 일반적으로 ‘해녀 노래’라 불리는 이 민요는 노 젓는 동작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리듬이 사용된다.
ⓒ 언스플래시

세계 공용어가 되다

해녀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녀에 대한 국제적 인식은 오히려 높아졌다. 한국어 문헌은 방대하게 존재하나, ‘해녀’라는 단어는 영문 자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같은 권위 있는 역사 사전에 새로운 단어가 등재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문헌적 근거가 쌓여야 한다. ‘해녀’라는 용어는 최근 학술 연구, 다큐멘터리,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2025)와 같이 제주를 배경으로 한 K-드라마 덕분에 전 세계 시청자들은 제주의 해안 문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2026년 1월, 해녀는 "한국에서 생계 수단으로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잠수사"라는 정의와 함께 한국 문화에서 유래한 단어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최고의 기록인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영속적 의미를 갖는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영어권에서 꾸준히 사용된 어휘들을 수집하여 해당 언어의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한번 등재된 단어는 영구적으로 영어의 일부가 된다.

그동안 제주 해녀의 삶은 주로 한국어 문헌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독보적인 문화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해녀’라는 단어 자체가 영어권이나 그 외의 외국어 문헌에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면서 그 이름과 역사는 세계 공용어 속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록 이것이 전통의 존속을 보장하지는 못할지라도, 해녀의 삶이 인류의 언어와 세계 문화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음을 인정받은 셈이다.

물질은 죽음의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기에 해녀들은 바다에 나가기 전 신들에게 안전과 풍요를 빌곤 했다. 사진은 영등굿을 지내는 장면으로, 제주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이다.
ⓒ 국가유산청

조지은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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