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Guardians of Heritage > 상세화면

2025 SUMMER

과거에서 온 현재의 인형들

연희공방 음마갱깽은 오랜 역사를 지닌 한국 전통 인형극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 요소를 도입해 전통 인형극을 확장하고 대중화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또한 기존 인형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과 움직임이 가능한 인형을 개발하고 있다.

흔히 꼭두각시놀음으로 불리는 덜미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전통 인형극이다. 남사당놀이 이수자이자 전통 연희 집단 음마갱깽 대표인 음대진은 인형 제작과 극 창작 및 연출을 통해 전통 인형극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에 마리오네트극, 일본에 분라쿠가 있듯이 한국에는 꼭두각시놀음이 있다. 전통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놀이의 일부이다. 남사당놀이는 40여 명의 남성들로 구성된 유랑 극단 남사당패가 선보였던 전통 민속 공연이다.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를 비롯해 현대의 텀블링과 비슷한 살판,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이), 덜미 등 총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덜미가 바로 꼭두각시놀음인데, 연희자들은 꼭두각시놀음이라는 용어 대신 보통 덜미라고 부른다.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조종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꼭두각시놀음은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서 박첨지놀음이나 홍동지놀음이라고도 불린다.

이 인형극은 음악, 춤, 곡예와 같은 기교 외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인형극의 등장인물들은 양반 주인과 저항하는 하인, 늙은 부부와 남편의 첩, 속세의 쾌락에 빠져버린 승려, 끝없는 억압과 착취로 고통받는 민중 등 각기 다른 사회 계층의 전형적인 인물을 대표한다. 극은 단지 이야기의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신분제에 갇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풍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평등과 인간 존중의 이상을 보여 주기도 한다.

사회상 반영

꼭두각시놀음은 포장막을 치고 사방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워 공중무대를 만든 다음 인형 조종자인 대잡이가 포장 안에 들어앉아 인형이 달린 막대기를 잡고 움직인다. 인형들은 상반신만 포장 위로 올라와 관객들과 마주한다. 대잡이가 막 안에 들어가면 관객들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무대 앞에 앉은 산받이가 내뱉는 소리를 통해 객석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산받이는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대개 악사(樂士) 중에서 이 역할을 맡는다. 대잡이와 산받이가 재담을 주고받으며 1시간 남짓 극을 끌어간다. 이들이 중간중간 관객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꼭두각시놀음은 무대와 관객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형태를 띤다.

창작극 < 절 대목 >의 한 장면. 전통 연희와 전통 건축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절을 짓고 부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번뇌, 깨달음을 그리고 있다.
© 음마갱깽

고려 시대의 문신이자 시인인 이규보(1168~1241)가 쓴 「관농환유작(觀弄幻有作)」은 꼭두각시놀음을 본 후 감상을 시로 남긴 작품이다. 꼭두각시놀음의 극본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시를 통해 고려 시대에도 극본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꼭두각시놀음의 내용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보통 7~10막으로 구성된다. 주인공 박첨지의 일대기가 펼쳐지면서 서민들의 애환과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풍자, 종교를 뛰어넘는 구원 등이 묘사된다.

꼭두각시놀음은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끊어질 뻔했으나 1964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에는 남사당놀이의 나머지 다섯 종목도 추가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9년 남사당놀이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새로운 시도

연희공방(演戱工房) 음마갱깽은 남사당놀이의 덜미 인형을 직접 제작해서 가장 활발하게 공연하는 단체로 꼽힌다. ‘음마(音摩)’는 소리를 어루만져 음악을 만든다는 뜻이고, ‘갱깽’은 대장간에서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이들은 기존 덜미 인형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표현과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개발해 현대에 맞는 전통 인형극을 보여 준다.

음마갱깽은 2016년 연희자이자 인형 제작자인 음대진(Eum Dae-jin 陰大眞)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출신 7명이 모여 창단했다. 현재 인형 제작 및 예술감독, 기획자, 작곡가, 디자이너, 연희자 등 총 18명이 활동 중이다.

음마갱깽 작업실 한쪽에 놓인 덜미 인형들. 덜미 인형은 하반신과 팔꿈치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인형을 어떻게 잡고 조종하느냐에 따라 살아 있는 듯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저희는 덜미 인형극 단체인 만큼 처음부터 창작극에도 전통적 요소를 꼭 넣자는 원칙을 정했어요. 대잡이와 산받이, 그리고 관객의 구도 안에서 전통 인형극의 요소가 하나라도 나오게 합니다. 마리오네트극에 덜미 하나, 테이블 인형극에 산받이를 넣는 식이죠.”

음마갱깽 대표 음대진은 남사당놀이 이수자이다. 그는 덜미 인형뿐 아니라 마리오네트라고 불리는 끈인형, 손을 인형 안에 넣어서 연기하는 손인형 등 다양한 형태의 인형을 제작해 개성 있는 오브제극을 보여 주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 러시아,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각지의 인형 전문가들을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그는 꼭두각시극에 나오는 절을 짓고 허무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전통 건축인 대목(大木) 이수 과정을 수료하고, 실제로 절 짓는 현장에 들어가서 상세히 배우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2023년 무대에 올린 창작극 <절 대목(大木)>은 세간의 호평과 함께 극단이 크게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덜미 인형은 팔꿈치와 하반신이 없는 게 특징인데, 대잡이에 따라 여러 동작이 가능합니다. 음악을 타며 춤 동작을 할 때면 투박하지만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덜미는 대사 외에도 즉흥적인 재담을 통해서 극을 이끌어 가다 보니 관객의 몰입도가 매우 높다.

“공연을 하다 보면 인형에 사람의 감정이 투사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관객 입장에서 앞에 막이 드리워지고 인형만 나와 있는 상태에 놓이면 인형에 신경이 집중되죠. 또 인형과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 노출돼 있는 경우에도 인형의 동선에 따라 관객의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형극임에도 눈물을 흘리는 관객분들도 많습니다.”

그는 사람이 보여줄 수 없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인형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음대진 대표가 덜미 인형을 제작하기 위해 도면 작업을 하고 있다. 인형은 성별과 성격에 따라 디자인이 다른데, 그는 주로 관상 책을 참고해 캐릭터의 특징을 담는다.

해외 관객들의 반응

음마갱깽을 세상에 제대로 알린 것은 2020년 황해도 장연(長淵) 지역에서 전승되던 인형극을 재현한 <꼭두각시극> 공연이었다. 장연 꼭두각시극에 사용되었던 전통 인형들을 복원해 제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른 현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공연은 음마갱깽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아 매년 무대에 올리고 있다.

“황해도 장연 꼭두각시놀음의 경우 대본 채록본이 남아 있었어요. 대본에 나와 있는 6점의 덜미 도판을 토대로 29개 인형을 재현했습니다.”

인형극은 대본이 먼저 나오기도 하지만, 인형을 먼저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그때는 인형의 성별, 성격, 특징에 따라 디자인을 하는데 주로 관상 책을 참고한다. 또한 비뚤어진 성격이라면 코를 비튼다든지 말이 많은 캐릭터라면 입을 크게 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잡아서 표현한다. 밑그림이 완성되면 모눈종이에 옮겨 그려서 나무 도판에 붙이고 조각한다.

“덜미 인형은 얼굴부터 손잡이까지 일체형이에요. 얼굴 윤곽을 따고 코를 중심으로 조각하죠. 입이나 안구가 움직이는 구조라면 전체 얼굴을 먼저 완성한 뒤 뒤통수를 파내고, 어깨판과 팔을 만든 뒤 마지막으로 의상을 제작합니다. 사람이 입던 옷을 리폼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2024년 5월에는 모스크바 킥클랍(KykLab) 극장에서 음마갱깽의 대표 레퍼토리 세 작품을 옴니버스극으로 올려 화제가 됐다. 전석 매진을 기록한 이 공연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한국 인형극이다. 지원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기획으로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에 이어 이탈리아 토리노 인칸티연극제(Incanti Theatre Festival)에도 참가해 꼭두각시놀음 중 일부를 공연했어요. 해외 관객들의 열띤 반응에 K-인형극의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인형 제작자로서 그의 꿈은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서 덜미를 알아봐주는 것이다.

음대진 대표의 작업 공간. 그는 탈이나 소도구 등 작품에 필요한 도구들을 모두 직접 만든다. 처음에는 인형 하나를 만드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지만, 지금은 며칠 만에 만들 정도로 손에 익었다.

이기숙(Lee Gi-sook) 작가
이민희 사진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