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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토종 씨앗이 펼쳐내는 세계

Lifestyle 2025 WINTER

토종 씨앗이 펼쳐내는 세계 토종 작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커지고 있다. 비영리단체 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전라남도 곡성에 마련한 채종포에서 토종 씨앗을 증식해 전국에 보급하는 한편 토종 씨앗에 대한 농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추진 중이다. 씨앗을 채취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작물을 볕에 말리고 있는 변현단 대표. 그녀는 점점 사라지는 토종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2008년 비영리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토종 씨앗 수집부터 증식, 연구, 보급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곡성 읍내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는 산속 농장. 이곳에는 변현단 대표가 현재 가꾸고 있는 토종 작물 200여 종이 자라고 있다. 그녀가 직접 지은 황토집 주변으로 씨앗 창고와 비닐하우스, 토종씨드림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에는 3,000평의 채종포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녀는 2008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은 토종 씨앗을 육종하고, 또 농가에 다시 나눠 싹을 틔우게 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현재 그녀가 대표로 있는 토종씨드림은 약 4,000종의 토종 씨앗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시작된 자생종, 우리 땅에서 대를 이어 키운 재래종, 두 가지를 합쳐 토종이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작물은 대부분 작황을 위해 품종 개량을 거친 것들이다. 변 대표는 대가 끊겨가는 토종 씨앗들을 찾아내기 위해 전국을 샅샅이 훑는다. 먹을거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혹독한 세상살이에서 살아남는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는 충청북도 괴산에 갔어요. 요즘이야 구글 뷰로 보고 어디쯤 가면 좋을지 대충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가 발품을 팔았죠.” 마을 초입부터 시작해 가장 깊숙한 안쪽까지 6개월간 이 잡듯이 뒤져 찾아낸 450여 종의 토종 씨앗이 시작이었다. 그 당시 재래 농법으로 농사를 짓던 할머니들이 대부분 80대의 고령이었음을 고려하면, 토종 씨앗의 마지막 세대를 찾아 그녀가 대를 이은 셈이다. 도시 빈민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먹을 권리’를 보호하는 일로 변모했다. 자립을 위한 길 변 대표가 농사를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하며 살아온 그녀는 자칭 ‘도시 빈민’이 되어갈 무렵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경 경기도 시흥의 기초생활 수급 여성들과 연이 닿아 자활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목표는 여성 빈민들의 자립이었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려면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니 농사를 지어 내다 팔기로 했다. “한번은 옥수수를 수확해서 그 씨앗을 심었는데, 아무것도 안 자라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문제점을 자각했어요.” 당시 심은 옥수수 씨앗은 종자 회사에서 파는 F1 종자로, 균일한 품질의 작물을 일시에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지만, 대신 재수확은 불가능하게끔 개량한 품종이었다. 한마디로 매년 종자를 새로 구매해야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종자였다. “옥수수 종자 하나를 심으면 한 대에 최소 3개가 열려요. 옥수수 1개가 120알이고요. 옥수수 20알에 2,000원씩 판다고 치면 옥수수를 파는 것보다 종자를 파는 게 훨씬 더 이윤이 나죠. 농부들이 전부 씨앗을 사서 재배하고, 다음 해에 씨앗을 받을 수 없으니 악순환이에요.” 농사짓는 데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자, 그녀는 비료를 제한하고 기계를 쓰지 않는 생태 농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최소화하다 보니 잡초와 싸우는 것도 큰일이었죠. 어느 날, 밭에 한가득인 잡초를 보고 ‘저걸 언제 다 매냐, 그냥 확 먹어버릴까 보다’ 푸념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한마디 툭 던지시더라고요. 그거 먹는 거라고.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잡초가 아니라 닭의장풀이었고,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걸 알았죠.” 토종 작물에 대한 변 대표의 관심은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상황에서 시작됐다. 식물도감을 찾아 뒤지던 그녀는 약용 식물에 대한 설명서인 본초 도감에 이어, 조선 시대의 의학 서적인 『동의보감』과 중국의 한의학 서적 『황제내경』까지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상추 대신 토끼풀에 삼겹살을 싸 먹다가 생손앓이를 치유하고, 환삼덩굴로 샐러드를 해 먹다가 천연 수면제를 발견하게 됐다. “결국 약식동원,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토종 작물을 길러 전파한다는 건, 옛 선조들의 지혜와 문화까지 잇는다는 얘기에요.” 점차 사라지는 토종 작물 마트에서 파는 농산물들은 어찌 보면 반만 진실이다. 예를 들어, 시래기와 무는 원래 하나의 작물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품종이 분화되었다. 순전히 시래기를 얻기 위해 심는 무는 무청만 거두고 무는 버린다. 반대로 무를 얻기 위한 종자는 심어서 무만 취하고 무청은 버린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과정은 더 많은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한 결과다. 그 시작은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오른다. “구한말에 일본 농림수산성에서 조사해 기록한 우리 벼 품종이 450종이었어요. 1930년도가 되면 100종도 채 남지 않게 돼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나는 작물을 일본 종자로 대체해 심도록 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먹는 단호박도, 고구마도 모두 우리 자생종이 아니에요. 일본에서 들여온 거죠.” 사진은 전통 방식으로 건조 중인 밭찰벼. 대나무 거치대에 작물을 거꾸로 걸어놓고 말리면, 줄기에 함유돼 있던 수분과 영양분이 건조되는 동안 벼 이삭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밥을 지었을 때 더 향긋하고 맛이 좋다. 일본뿐 아니라 각국 열강이 우리나라 토종 종자를 가져가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콩이다. 지금은 외국의 대규모 종자 회사들이 품종을 개량해 GMO 콩이 다수가 되었지만, 변 대표의 농장에 심긴 토종 콩은 어림잡아 30여 종은 족히 된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 여파로 땅이 피폐해졌죠. 전후에 늘어난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높은 수확량을 목적으로 품종을 개발했어요. 1970년대에 통일벼가 개발된 배경이 바로 그거예요.” 이즈음부터 상업농과 재래농은 명확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상업농은 종자 회사에서 씨앗을 사서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이윤을 꾀하고, 재래농은 전통적 방식으로 씨앗을 받아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지속한다. 식량난을 해결하고 상업농이 우선시되면서 토종 종자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초기에 상업농을 하면서 토종 작물을 키우는 실험을 해봤어요. 요즘 배추는 속이 꽉 차서 김치 담글 때 속을 많이 넣기가 힘든데, 원래 배추는 그렇지 않아요. 좀 성근 대신에 안쪽까지 파랗고, 칼슘이 풍부하죠.” 고추도, 무도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것과 토종 작물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토지 대비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개량된 결과다. 살아남는 것과 아닌 것 변 대표가 밭을 둘러보며 소개해 주는 가운데 종종 냉이며 꾸지뽕 같은 것들을 따다가 건넸다. 그러면서 여러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어떤 건 날씨 때문에 번번이 죽는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작태를 걱정했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태만 봐도 알잖아요. 같은 품종으로만 심다 보면 환경이 변할 때마다 농작물이 다 죽어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심으면 그중 어떤 건 반드시 살아남아요. 토종 씨앗을 보존해 다양한 품종을 심는 것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라는 얘기죠.” 토종 씨앗은 오랫동안 지역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내린 생물종으로 환경 변화에도 생존율이 높다. 변 대표가 지금까지 농가와 나눈 토종 씨앗은 자그마치 1만 종이 넘는다. 사진은 채종하기 전 건조 과정을 거치고 있는 두메부추. 오래전 토종씨드림 초창기에 씨앗 수집을 갔다가 있었던 일이다. 그녀는 강아지풀과 생김새는 비슷한데 뭔가 다른 풀을 발견했다. 동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똘조’라고 했다. ‘똘’은 보통 야생 작물 이름 앞에 붙이는 말이니, 원예화되기 이전의 야생 조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한국에 벼가 450종이라면, 동남아 지역에서는 조가 450여 종으로 그 수를 견줄 만큼 다양하다. 그녀는 “조가 볏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물”이라면서 기후 변화에도 조는 살아남을 거라고 말한다. 변 대표는 언론사에 다니던 2001년, 인도의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를 인터뷰한 일을 터닝포인트로 간직하고 있다. 핵물리학자였지만, 토종 씨앗 운동가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우주 만물이 하나의 원소에서 시작한다면, 씨앗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생하게 마음을 울렸다. “토종 씨앗을 잇는 일에 모든 원리가 내재해 있어요. 제가 곡성으로 이사한 뒤 가장 먼저 공부한 게 물리학이에요. 그리고 지구과학, 생물학, 생리학, 병리학을 차례로 공부했죠. 농사를 지으려면 자연을 알아야 하니까요.”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세계를 누비며 문화 충격도 적잖이 받았다. 궁금한 것은 너무 많고, 궁금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변 대표는 구절초, 맨드라미, 연잎 등 토종 작물들의 꽃과 잎, 씨앗들을 덖거나 말려서 따로 보관한다. 차로 우려내 마시기 위한 용도로,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그녀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책에서 공부한 거랑 사회에 나와서 보는 세상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것들에 관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변 대표는 토종 씨앗을 받는 족족 일단 땅에 심고 본다. 그녀는 유전자 조작 콩이라도 땅에 계속해 심으면 본래의 성질이 나온다고 믿는다.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7년에 걸쳐서 붉은 콩, 분홍 콩, 노란 콩, 검은콩, 흰콩까지 다 제 손으로 받았어요. 유전자라는 건 환경에 따라 그 성질이 나타나기도, 숨기도 해요. 결국은 다 하나의 씨앗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어쩔 수가 없는’ 삶에 대한 박찬욱의 풍자

Lifestyle 2025 WINTER

‘어쩔 수가 없는’ 삶에 대한 박찬욱의 풍자 박찬욱 감독의 풍자적 스릴러 는 벼랑 끝에 내몰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불안정성을 탐구한다. 블랙 코미디와 도덕적 긴장감이 교차하는 이 작품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적 압박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그들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제도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드러낸다. 박 감독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번 신작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025년 8월 말 개막한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 그는 신작 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이 영화제에 참석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제공, 사진 Jacopo Salvi 한국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 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렬한 심리 묘사와 시각적 대담함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다. 각본, 제작, 연출을 모두 맡은 그는 이번 작품에서 불확실성, 자동화, 도덕성의 붕괴를 다룬 블랙 코미디 스릴러를 선보였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했으며, 박 감독이 20여 년에 걸쳐 구상한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지난 8월, 제82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처음 공개된 뒤, 9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관객에게도 소개됐다. 이 작품은 경제적 불안과 기술 발전이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극 중에는 해고당한 가장 ‘만수(이병헌)’와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아내 ‘미리(손예진)’가 등장한다. 는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사회의식이 가장 뚜렷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극단으로 내몰린 한 남자의 비극을 넘어, 진정한 선택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담아낸다. 이 이야기에 끌리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읽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순간, ‘이건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우선 작품의 핵심이었던 비극에 매료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어쩌면 원작보다 더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저에 깔린 비극에 약간의 유머를 더하면 훨씬 매혹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또한 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따라가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함께 탐구하는, 두 가지 층위를 담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3차 포스터. 이 영화는 2025년 9월 1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였으며, 일주일 후 일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극장에서 개봉했다. 2025년 11월 말 기준, 전국적으로 약 300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다. ⓒ CJ ENM 어떤 장르를 염두에 두었나? 이야기의 구조만 보면 추리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어릴 적에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그런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추리소설은 대개 어떤 미스터리로 시작하는데, 그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고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시작부터 범죄를 저지르려는 한 남자가 등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미스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 작품은 오히려 사회 제도 속에서 점점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는 한 평범한 사람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훨씬 더 강렬하고, 집요하며, 절망적이다. 기본적으로는 비극이지만, 그 속에 깃든 부조리한 유머 덕분에 나에게는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가 영향을 주었나? 이 영화를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도끼〉 리메이크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처음부터 원작 소설에 매료된 것이었고,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는 그 이후에야 보게 되었다. 그의 버전은 톤과 정서가 완전히 달라서, 이 작품은 그 영화의 리메이크라기보다는 원작 소설의 또 다른 해석이라 보는 편이 맞다. 물론 당시 원작의 판권은 여전히 가브라스 감독이 가지고 있어서 제작 과정에서 약간의 조율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였던 미셸이 이번 영화의 제작에도 함께 참여하면서 원만히 진행되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이 이야기를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요즘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냐?”고 물으면, 나는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해 주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0년 넘게, 전 세계 어디서나 반응은 늘 같았다.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미국 스튜디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고 믿었다. 스튜디오들은 영화를 제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은 예산을 제시했다. 의견 차이를 좁히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이 작품이 본래의 의도대로 구현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게 되었다. 이 작품은 단지 현대 한국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디서든, 과거에도 미래에도 언제든 통할 이야기다. 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가 원작이며, 박찬욱 감독이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았다. 주인공이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 CJ ENM 이번 영화에서 가장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이었나? 하나의 주제라기보다는, 서로 얽히고 겹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성과 중심의 노동, 과잉 생산성, 치열한 경쟁, 인공지능까지. 이건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제다. 한국은 이 모든 글로벌 이슈가 한꺼번에,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한국이 겪는 문제들이 다른 나라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AI, 고용 불안, 중산층 붕괴, 남성성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사회적 질문들을 던지면서 자본주의의 단면을 비판하고, 그 너머의 더 큰 의미를 탐색한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정서는 깊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블랙 코미디의 요소들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공허함과 비극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본질이다. 그래서 작품에서 의도대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정리되는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 주인공은 가족을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영화는 그 행동이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묻는다. 관객 각자가 이 가족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길 바란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다. 바로 그런 대화의 화두를 던지는 것이 내가 바랐던 부분이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이번에는 폭력의 강도가 훨씬 절제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폭력을 묘사하는 이유는 공포와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폭력의 공포, 그 뒤에 따라오는 고통을 드러내려면 결국 폭력적인 장면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폭력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까지도 파괴한다. 내 작품 속 폭력 장면이 유난히 아프게 느껴지고, 죄책감의 그림자를 동반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 속 폭력 묘사에 관해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 두 가지 있다. 관객이 그 폭력 장면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폭력을 아름답게 느끼게 되는가이다. 나는 최대한 이 두 가지를 피하려 한다. 물론 나도 다른 감독의 영화를 보다가 폭력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연출의 미학적 완성도에 감탄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내 작품에서 그런 방식으로 폭력을 사용한다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낄 것 같다. 이 영화의 코믹한 요소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만수의 행동이 슬프면서도 동시에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모든 것을 합리화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은 오히려 무너진다. 우리는 도대체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게 되고, 그것이 단지 어리석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코미디가 필요했다. 영화는 한여름의 절정에서 시작해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예보와 함께 막을 내린다. 식물을 사랑하는 만수는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지나간다. 그것이 내가 원했던 배경이었다. 이는 만수가 일하는 회사 이름(처음엔 ‘태양’, 그다음은 ‘문 제지’)에서도 드러난다. 원작에는 AI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각본을 다듬어 가는 동안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AI가 현실에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 만수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을 여전히 습관적으로 한다.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직관’만큼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관객이 그와 함께 그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기를 바랐다. 이병헌과 손예진을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며 도덕적 갈등과 감정의 무게를 끝까지 견뎌낼 배우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병헌이 떠올랐다.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남우주연상에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렬하다. 손예진의 경우, 아내 ‘미리’ 역할에는 낙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다. 실직한 남편을 붙잡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 그런 기운을 가진 배우가 바로 손예진이었다. 촬영 현장 중 배우 손예진의 모습을 담고 있는 비하인드 스틸. 손예진은 극 중에서 주인공 만수의 아내 미리 역할을 맡았다. ⓒ CJ ENM 인상적인 사운드트랙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조용필의 열렬한 팬이었다. 언젠가 그의 노래를 영화에 쓰고 싶다고 늘 생각했고, 딱 맞는 순간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때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악을 한껏 키워 대사에 가려지지 않게,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흐르게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조용필의 명곡이 너무 많아서 어떤 곡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고추잠자리〉가 가장 어울린다고 느꼈다. 장면에 따라 아이러니하게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영화의 장면과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곡을 정한 순간부터 편집은 몇 프레임씩 늘리고 줄이는 세밀한 조율 작업이 되었다. 기타 리프 하나, 가사 한 줄조차 배우의 움직임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 속 장면들은 바로 그 치열한 조율의 결과이다. 나는 어렸을 때 들었던 한국의 명곡들을 늘 영화 속에 담아냈다. 〈박쥐〉에서는 남인수의 노래들, 〈헤어질 결심〉에서는 정훈희의 〈안개〉가 그랬다. 내가 즐겨 들었던 노래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화 속에 다시 불러내고 싶다.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노래들을 거의 모르는 게 아쉽다. 외국의 팝송은 지금도 어디서나 바로 알아듣지 않나. 우리 세대가 사랑했던 한국의 위대한 가수들, 작곡가들도 문화적 기억 속에 그만한 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 묶인 채 살아가고 있는가?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사실 진정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주인공은 영화 내내 그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진실이라기보다 비겁함이 만들어낸 일종의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나약함과 취약함, 결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자기 정당화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때 유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우리가 잠시 한걸음 물러서서 더 명확히 바라보고, 때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조차 버틸 수 있게 해준다. 가장 끔찍한 순간에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이 실직당하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영화 산업 역시 늘 전망이 밝지는 않다. 일자리와 안정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은 누구나 안고 살아간다. 나는 영화라는 예술 자체가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형태는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극장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보는 문화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투자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다 하더라도…. 이미 그렇게 해본 적도 있다. 방식은 바뀔지 몰라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만수가 자신의 제거 대상인 범모(이성민)와 대립하는 장면을 담은 비하인드 스틸.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배우들의 연기에서 현장의 열기가 느껴진다. ⓒ CJ ENM

분재로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

Lifestyle 2025 AUTUMN

분재로 세계를 감각하는 방법 바위틈이나 절벽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교묘히 가지를 틀고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며, 크기를 더 키우지 않는다. 분재는 바로 여기서 영감을 얻은 작업이다. 유상경 씨는 한국만의 조화로운 미감으로 분재를 만들어 키우고 판매하며, 분재를 가꾸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식물 마니아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서간’은 식물을 매입해 그대로 판매하는 일반적인 꽃집과 달리 화분과 이끼, 돌 등을 활용해 식물을 작품처럼 디자인한 뒤 판매하는 공간이다. 오전에는 화훼 농장에 가서 식물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식물을 돌보며 가꾸는 게 그의 주된 일상이다. 서울 서촌의 한적한 어느 골목,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디귿자 모양의 아담한 한옥이 펼쳐진다. 대부분 무릎 높이 아래로 자라는 작은 분재들이 점점이 늘어선 이곳, 서간은 유상경 씨가 운영하는 분재 가게이자 전시관이다. 마당의 자갈, 잡초, 한곳에 켜켜이 쌓아둔 기왓장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 분재는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나무나 풀, 이끼, 돌 등을 심고 배치하는 일 또는 그렇게 가꾼 화초나 나무를 말한다. 유상경 씨는 취미로 분재를 시작했는데 일이 커져 전시관으로 이어졌다. 그는 거의 매일 이곳에 상주하며 40여 개의 분재를 돌보는데, 하루 1~2시간이 꼬박 걸린다. “어릴 때 전라남도 광양에 살았어요. 조경이 잘 된 동네였죠. 그래서 산이며 나무며 바다며 자연과 친숙하게 자랄 수 있었어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이사해서도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근처에 산을 타러 다니곤 했어요.” 말하자면 유상경 씨는 ‘덕후’다. 산에 오르거나 길을 걷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풀과 나무, 이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마음에 드는 자연석을 수집하기도 했다. 독립해 혼자 살게 되면서는 본격적으로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심심할 때면 혼자 식물원이나 농장에 자주 다녔어요. 오래된 화분을 사 모으기도 했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는 주말이면 종일 식물을 만졌어요. 나중에는 집에만 식물이 60~70종이 됐어요.” 집에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몸가짐이 사뭇 달라지는 일이다. 점점 더 부지런해졌다. 가지도 직접 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두었다가 다시 서늘한 곳으로 옮겼다가, 분갈이를 여러 번 해주며 식물이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법을 배울 필요를 느꼈다. “이 식물에 흙을 이걸 쓰는 게 맞는지, 가지를 이렇게 쳐도 되는 건지, 분갈이를 이렇게 자주 해줘도 되는 건지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알게 된 게 분재라는 장르예요.” 서울 서촌의 고즈넉한 골목길 끝에 자리한 서간은 느리게 움직이는 이 지역 특유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유상경 씨는 이곳에서 분재 원데이 클래스와 정규반 수업을 진행한다. 때로는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하고, 작가들의 작품 전시도 개최한다. 오해와 진실 분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스럽고 인위적인 취미로 오해받곤 한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분재를 가꾸고 감상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파리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가지가 어떻게 뻗어져 나가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많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한번은 대학생 손님이 오셔서 분재 가격을 물어보더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다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정말 시간과 돈이 넘쳐서 분재를 사려는 게 아니죠. 저는 오히려 분재를 통해 여유로운 시간을 사는 거라 생각해요.” 또한 분재 하면 많은 이들이 철사를 칭칭 감아 수형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혹은 식물이 비좁은 화분에 갇혀 원래 크기대로 자라지 못하고 간신히 생명을 유지한다고 생각한다. 유상경 씨는 서간에서 원데이 클래스도 운영하는데, 종종 분재에 대한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접한다. 그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화분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부터가 인공이에요. 그렇다면 화분에 옮겨 심은 식물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제한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에게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해요. 가지치기를 적당히 해주고, 필요하다면 철사로 가지를 교정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거죠. 나무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아요. 나무에 하는 모든 일이 애정에서 비롯되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나무가 못나 보이는 계절도 있다. 여름에는 덥고 습해 병충해가 잦기 때문에 이파리가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분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봄과 가을이다. 서간에 방문한 6월 말에는 철쭉이 꽃을 피웠다가 떨구고 딱 한 송이가 남아 있던 참이었다. “좋아하는 수종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보기에 예쁘면 다 좋아하는데, 못생겼으면 또 그런대로 좋아해요.” 식물의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새에 따라 분재는 여러 종류로 나뉜다. 전나무나 삼나무처럼 줄기가 위로 솟아나는 것을 직간, 해송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서 자라는 나무를 사간, 줄기가 아예 바닥으로 늘어지는 것을 현애라고 한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형태는 나무줄기가 길고 가늘게 뻗어 끝부분에 이파리가 달려 있는 문인목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모양을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문인목이더라고요. 옛날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나무라는 뜻이죠. 뜻을 알고 나니 더 좋아요. 깊은 내공을 갖고 있지만 으스대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게 제가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까워요.” 서간에서는 대부분 한국 자생식물을 이용해 분재를 만든다. 특히 그는 꼭지윤노리나 애기범부채처럼 정감 있는 이름을 가진 나무에 더 애착을 느낀다. 그는 이왕이면 우리 자생식물을 위주로 분재를 하고자 다짐했고, 옛 선비들이 그린 수묵담채화 등을 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감을 꾸준히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투박한 미감 유상경 씨는 모든 식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운 실루엣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재라는 방식을 통해 각 식물의 특징과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한다. 사진은 유상경 씨가 핀셋으로 잎을 다듬고 있는 모습.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묵화이다. 여백이 많으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그려진, 화려하진 않지만 슴슴한 맛이 있는 그림이다. “나무도 별 볼 일 없이 그려져 있고, 산도 크긴 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아요. 그 안에서 인간은 아주 작게 존재하죠.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는 순간 위안을 찾는 것 같아요. 서간에 와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식물을 보다 보면 나의 존재마저 없어지는 느낌. 아주 작은 점이 된 기분을 느끼다 갔으면 해요.” 한국 분재의 특징도 이와 비슷하다.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918~1392) 시대 중기의 문헌들에 분재에 대한 기록이 있어, 대략 13세기쯤 이미 분재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분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좀 더 자연스러운 미감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유상경 씨가 좋아하는 백자나 막사발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한 미감에 가깝다. “요즘 생각하는 한국의 멋은 한마디로 조화라고 생각해요. 하나하나가 존재감 없이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있으면서 조화로울 때 더 아름답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나무는 꽃이 지고 나면 볼품없어지죠. 그렇다고 해서 나무를 안 보이는 곳에 들여놓지 않아요. 그 시기마저 수용하는 게 한국의 멋이라고 생각해요. 내년에 또 가장 예뻐질 때를 기다리는 거죠.” 서간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 1시부터 6시까지 열려 있다. 혹한기나 혹서기에는 예약제로 운영할 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 이곳에 있는 나무, 그리고 나무를 감상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다. “요즘은 나무의 뿌리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늘 보는 건 줄기부터 이파리까지 윗부분이지만, 분갈이할 때 보면 뿌리가 무성해요. 살아남기 위해서 무언가를 부여잡고 있는 흔적이죠. 경이로운 마음이 들어요.” 서간 내부에는 곳곳에 분재가 놓여 있다. 봄과 여름에는 화사한 꽃을 만끽하고, 가을에는 붉게 익은 열매를, 그리고 겨울에는 나목을 감상하는 등 분재와 함께하는 일상은 언제나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다.  유상경 씨가 분재에 사용하는 식물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우리 고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재와 어울릴 만한 화분 수집은 물론 고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모으는 것도 그의 취미 생활이다. 사진은 스튜디오 한쪽에 놓여 있는 빈티지 지류함으로 그가 서울 일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찾아냈다.

멀리서 비추는 등불 같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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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비추는 등불 같은 연출 이인수는 작가들의 언어를 사랑하는 연출가이다. 희곡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작가가 구현하려는 세계를 탐구하며 무대 위에 실현한다. 또한 그 과정을 함께하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언제나 마음을 열어둔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연극은 모두가 함께 만드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인수는 최근 한국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 중 하나다. 그녀는 깊이 있는 텍스트 분석으로 희곡이 가진 본래의 언어적 힘을 드러내고, 섬세한 연출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연출에는 “좋은 작품은 좋은 글에서 시작된다”는 두터운 믿음이 깔려 있다.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지요.” 2015년, 마틴 맥도나 원작의 을 처음 연출한 이후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쉼 없이 공연을 이어 온 이인수는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에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출한 작품들마다 대부분 호평 일색이었고, 무엇보다 그 과정이 행복한 작업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자신도 속해 있는 ‘글과 무대’라는 창작 집단의 든든한 동료들이 있다. ‘글과 무대’는 네 명의 극작가와 두 명의 프로듀서, 그리고 한 명의 연출가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이들은 각자 개인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글과 무대’라는 이름으로 함께 작업하는 여정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10년쯤 됐으면 번아웃이 올 법하건만, 그녀는 연극 작업이 마냥 즐겁다고만 했다. 한국에서 연극은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OTT를 통해 전 세계적 명성을 얻는 드라마 감독들처럼 높은 인지도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즐거운지 우문을 던졌더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기쁨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극은 이야기의 표현 방식이 무척 다양해요. 같은 이야기라도 정말 소소한 일상처럼 풀어낼 수도 있고, 응축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죠.” 2025년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서 상연되었던 중 한 장면. 창업 2년 차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노동 환경 문제를 고발하는 블랙 코미디다. ‘글과무대’의 중장기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이며 김윤영이 희곡을 썼다. 글과무대는 이인수 연출가가 속해 있는 창작 집단으로 극작가 김윤영, 진주, 최보영, 황정은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글과무대 제공 새로운 세계 이인수가 매료된 ‘새로운 세계’는 무엇일까? 스포일러의 위험을 감수하고 살짝 이야기를 해보자면, 먼저 최근작인 에 등장하는 천수관음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한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갈수록 열악해지는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블랙 코미디다. 극 중에는 두 명, 세 명의 몫을 넘어 수십 수백 명의 일을 대신하는 느낌으로 살다 보니 손이 천 개가 된 인물이 등장한다. 기상천외한 일이지만, 천수관음으로 변신한 인물은 마치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처럼 천연덕스럽게 사무실에서 일하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독특한 매력의 배우 황석정이 출연하는 역시도 노숙자들이 죽어서 집의 일부가 되는 장면이 등장한다.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의 잔인무도한 면모를 너무나 잘 보여주었다. 연출을 하는 동안 이인수 자신도 마음이 아팠다는 또한 마찬가지다. 극작을 가르치는 예술대학 교수와 학생이 주고받는 대화로 구성된 이 작품은 극중극 형태로 한 자매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내밀한 상처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그려내는 데 있어 그 섬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몰입했다는 관객 평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2023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상연되었던 윤미희 작가의 는 ‘보존’이라는 주제 속에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액자소설처럼 뒤섞여 있는 작품이다. 소멸과 영원, 보존과 복원에 대해 추상적이고 우화적이지만 결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보편적 서사가 전개된다. 이인수만의 심도 있는 해석으로 희곡에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극단 제공 섬기는 연출 “20년 넘는 배우 경력에서 이렇게 다정한 연출가는 처음 봤어요. 연출가도 다정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죠.” 는 암 병동에 함께 머무는 일곱 명의 여성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연극에 출연했던 배우 중 하나는 이인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로 50대 중후반의 남성 연출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국내 연극계에서 여성 연출자가 무대를 지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다정한’ 연출로 배우들을 사로잡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인수는 보기 드문 연출가라 할 수 있다. 이인수는 연출이 “텍스트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의도와 구상을 되도록 충실하게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연출”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작품을 연출가에게 넘기고 나서는 ‘더는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연습실에도 일부러 잘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많은 기존 관행으로 볼 때 이인수의 이 말은 참으로 신선하다. 사실 그녀는 극작에 문외한이 아니다. 이쯤에서 그녀의 길고도 긴 ‘가방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녀는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진학했으며, 이후 미국 마이애미대학과 피츠버그대학에서 연극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자로서 커리어도 길지만 극작에 대한 열정도 뜨거워 몇 편의 작품을 썼고, 유학 뒤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희곡이 다른 연출가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정말 힘들었어요. 연출가가 제 작품을 존중하지 않더라고요. 연출가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마음대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물론 그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후 그녀는 극작보다 연출에 집중했다. 다양한 연출 기회를 얻었고, 그때마다 작가에 대한 존중을 첫 번째로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의도적인 작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글과 무대’에도 ‘무대’보다 ‘글’이 앞서 있다. 서로 존중하는 그 하모니 덕분에 ‘글과 무대’는 그 어느 단체보다 풍성하고 역동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23년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초연된 은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18세기 후반, 양반집 별당을 배경으로 당대 여성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흔적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글과무대의 진주 작가가 희곡을 썼다. 글과무대 제공 관객과의 싱크로나이즈 “PPT를 띄우고 강연할 때보다 PPT 없이 그냥 이야기할 때 듣는 이들의 집중도가 더 올라간다는 연구가 있대요. 저는 연극이 그런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장소, 실물 소도구가 없어도 이야기만으로 장소와 도구를 상상하게 하는 게 연극이고, 그걸 보는 관객과 배우들의 뇌는 그 순간 싱크로나이즈드 되는 거죠. 저는 그게 연극의 대단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과의 교감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변이다. 7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올랐던 공연 시 이런 일이 있었다. 직원들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대표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객석에서 느닷없이 “미친놈”이라는 욕이 날아왔다고 한다. 그만큼 관객들이 몰입하고 공감했다는 말이겠다. 또 공연을 다 보고 나가면서 “과로하면 안 돼. 과로하면 죽어”라고 일행에게 속삭인 관객도 있었다. 이인수는 그런 순간이 제일 기쁘다고 했다. “제 사촌 언니 딸이 과로사하겠다 싶은 곳에서 일하다가 이 연극을 보고 직장을 그만둔 뒤 새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좋더라고요” 고전 인문학의 재해석 이인수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고전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다. 지난 5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레퍼토리 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를 연출하기도 했거니와 필립 리들리의 나 앨런 베넷의 ,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등 굵직한 해외 작품들 여러 편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문학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라는 공연에서도 여실히 묻어난다. 미국의 두 남녀 작가 엘리자베스 비숍과 로버트 로웰이 일평생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은 이 작품은 네 명의 배우들이 한 공간에 앉아서 이렇다 할 동선 없이 편지를 읽는 형태로 공연되었다. 짧은 영상에 중독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진중한 작품을 매우 아날로그적 형태로 무대에 올리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그러나 그녀는 ‘관객에 대한 믿음’으로 이 작품을 연출했고,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한 사람이 다른 이성과 사랑에 빠져도, 각자의 삶이 어떤 굴곡을 거치든 서로에게 ‘저기 멀리 등불 하나 들고 기다려 주었던 존재’였던 두 사람의 우정의 결, 그 텍스처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인수의 이 변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이기도 한 듯하다. 작가의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결을 충실하게 구현해 관객들이 그 작품과 교감하게 하고, 그로 인해 마침내 사람들을 위로하는 등불 하나 켜는 일 말이다. 이인수가 보여줄 다음 등불이 어떤 색으로 빛날지 사뭇 기대된다. 진주 작가가 극을 쓴 는 2021년 두산아트랩 공연에서 쇼케이스로 첫선을 보였고, 이듬해 두산아트센터 소극장 무대에 정식으로 오른 작품이다. 어느 예술대학의 극작 수업에서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인수 연출가는 세대 간 동행과 연대를 중점적으로 표현했던 쇼케이스와 달리 2022년 공연에서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면하고 극복해 가는지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숨 고르기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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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의 미덕 김차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으로 제74회 에미상 스턴트 퍼포먼스 상을 받은 스턴트 배우이다. 그녀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누군가 대신할 수 없는 연기로 작품에 기여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도 현장을 누비는 베테랑 배우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스턴트 배우 김차이는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베스트 스턴트팀(Best Stunt Team) 연습실에 출퇴근할 때마다 오토바이를 애용한다. 그녀를 비롯해 베스트 스턴트팀 배우들은 < 오징어 게임 >으로 비영어권 최초 에미상 스턴트 퍼포먼스상을 받았다. 당신은 김차이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녀는 영화와 드라마 속 액션 장면에 숨을 불어넣는 스턴트 배우이다. 글로벌 히트작 (2021)에서 주인공들 중 하나인 새벽을 연기한 배우 정호연의 대역이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과 같은 해 11월 개봉한 영화 에서는 여우 역으로 개성 있는 액션을 선보이며 얼굴을 알렸다. 이 영화는 제20회 뉴욕 아시안영화제에서 다니엘 A. 크래프트 우수 액션시네마 상을 받았다. 또한 (2023), (2023) 등 국내외에서 주목받은 한국 영화의 무술팀으로 활약했다. 최근에는 한소희, 전종서 주연의 영화 와 전도연, 김고은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촬영으로 바빴다. 는 김차이가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 (2015)에서 함께한 두 배우들과 재회한 작품이라 더욱 뜻깊었다. 지난 1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한 결과, 이제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의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스턴트 배우로 우뚝 섰다. 나만의 무기 이 여정의 시작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소극적인 어린아이였던 김차이에게 숨겨진 끼가 있음을 직감한 어머니는 딸을 연기 학원에 보냈다. 덕분에 그녀는 초등학생 때부터 과자 광고를 찍고 아역 배우가 되었지만, 연이은 오디션에 지쳐 사춘기 시절 잠시 방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고등학교와 대학 연기과에 진학하며 배우의 꿈을 놓지 않았다. 기회를 잡으려면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도 일찍 얻었다. 아크로바틱에 자신 있었고, 몸 쓰는 일에 늘 뛰어났던 그녀는 액션에 눈을 돌렸다. 배우는 넘쳤지만, 액션 전문 배우는 흔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작품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액션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어디서 액션 연기를 배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남들보다 운동을 잘한다고 해서 감독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김차이는 대학 교양 과목으로 택한 호신술 강의를 듣던 중 인연을 만났다. 호신술을 가르치던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달리 돋보이는 그녀를 눈여겨봤고, “격투기 선수로 키워 보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액션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에게 당시 스턴트 배우로 활약하던 제자를 소개했다. 이들의 만남은 또 다른 스승을 모시는 기회로 연결되었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스턴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닌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한 김차이는 어린 시절 태권도, 검도, 스피드 스케이팅 등을 즐겨 했고 자신의 강점과 특기를 살려 스턴트 전문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일에 대한 자긍심 김차이는 스턴트 배우로 일하면서 복합적인 감정의 터널을 통과했다고 고백했다. 오래전 계획한 대로 액션이라는 강점을 키울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정극 연기에 대한 갈증도 깊어졌다. “대역이 아닌 ‘진짜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언제나 마음 한쪽에 있었어요. 꿈을 꿈으로만 남기고 싶지 않아 조급했던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널리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서 작품에 기여한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강조했다. 스턴트 배우로서 자긍심을 다지게 한 동력은 트로피였다. 김차이는 을 함께한 스턴트 팀원들과 같이 제74회 에미상 스턴트 퍼포먼스 상을 받았다. , , 와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받은 상이라 더욱 놀라웠고 기뻤다. 쉽게 얻어진 상은 아니었다. 한여름엔 뙤약볕 아래에서 400여 명의 군중들과 호흡을 맞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시퀀스를 완성했다. 한겨울에는 살이 에이는 추위에도 맨살을 드러내야 했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새벽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절박한 심경을 액션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호연 배우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펴봤고, 신체적 특징과 습관을 면밀히 관찰해 액션 연기에 반영했다. “내가 살면서 이런 상을 받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김차이는 수상 후 3년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벅찬 감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스턴트 배우들을 대표해서 받는 상으로 여겼다”는 말을 덧붙였다. 액션 베테랑을 향해 김차이는 액션, 스릴러 장르에 주로 출연하지만 사실 로맨스 영화를 즐겨왔다고 한다. (2003)처럼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보며 혼자 펑펑 운 적도 있었다. 촬영 현장에서는 모든 에너지를 뿜어내지만, MBTI가 ‘I’로 시작하는 내향형 인간인지라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걸 낙으로 삼는다. 그런 김차이의 곁에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녀가 중국에서 촬영을 하던 시기에 만나게 된 중국인 친구다. 그녀는 연출을 전공하면서 한국 영상 산업에 관심이 생겨 서울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2016년부터 우정을 쌓아온 두 사람은 급기야 룸메이트가 되기에 이르렀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친구가 요리를 해줘요. 중국인답게 따뜻한 차도 자주 내주고요. 처음에는 영어로 소통했는데, 점차 서로의 모국어에 익숙해지고 있죠.” 친구가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그녀도 중국어를 조금씩 익힌 덕분에 이제는 제법 의사소통이 수월해졌다고 한다. 친구의 안내로 상하이 여행을 다녀온 김차이는 그녀에게 한국을 알려주고 싶어 얼마 전 강릉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나 자신을 일에만 너무 가두고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찾아오는 여유로운 시간을 중히 여기며, 앞으로 더 많은 곳에 가볼 계획이에요.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도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동료들과 풋살 팀을 꾸려 휴식하듯 운동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숨 고르기의 미덕을 깨우치자 목표를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20대에는 “스턴트 연기의 특성상 30대 후반이면 은퇴해야 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많았다”던 그녀는 이제 환갑이 되어도 촬영장을 누비는 액션 베테랑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꿈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배우로서 얼굴을 드러낸 자신을 상상하기도 한다. 다시 연기 공부를 열심히 해서 40대가 되기 전에 이름 있는 배역을 맡아보고 싶기도 하다. 그 바람을 전하는 김차이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세상은 넓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에서도 일해 보고 싶어요. 언젠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의 앞길은 창창하니까요!” 김차이 씨가 동료와 함께 훈련 중인 모습. 촬영 현장은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평소 동료들과 합을 맞추는 연습에도 최선을 다한다.

이야기를 건네는 패션을 꿈꾸다

Lifestyle 2025 SUMMER

이야기를 건네는 패션을 꿈꾸다 이승주(Sung Ju Beth Lee) 디자이너가 2017년 론칭한 다시곰(Darcygom)은 한국 전통을 모티브로 삼은 패션 브랜드이다. 브랜드명에는 ‘다시 한번 더’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모던 한복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을 제시하고 있다. 디자인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매개체라 생각하는 이승주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승주 디자이너는 선염 직물인 색동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이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승주 디자이너가 이끄는 다시곰은 전통을 현재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구현하는 브랜드이다. 옛날 선비들이 착용했던 정자관의 형태를 본뜬 가방, 한복 저고리의 동정 깃 디자인을 활용한 점프슈트, 색동을 전면에 내세운 스니커즈 등 전통적 요소에 재치와 개성을 뒤섞으며 특색 있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업사이클링 디자인도 병행한다. 브랜드명 다시곰은 부사 ‘다시금’의 옛말인데, 이 작명에는 그녀가 추구하는 패션의 가치가 담겨 있다. 기존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그녀는 미국, 캐나다, 독일, 탄자니아 등지로 옮겨다니며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 그 세월을 합치면 17년이다. 패션 문외한이었던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어느 날 불쑥 한복과 침구 등으로 유명한 서울 광장시장에 찾아가 옷 짓는 법을 배웠다. 그러고는 2017년 브랜드를 론칭하고 패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에는 오뚜기, 카스 등 국내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을 펼쳤고, 디자인 영역도 계속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박물관,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과도 협업해 뮤지엄 스토어에 제품을 입점시키기도 했다. 패션 디자인과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나? 내가 해외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탄자니아였다. 당시에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당장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미래를 그려보다가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해외를 돌아다니는 동안 각 나라의 전통 원단이나 옷을 사 모았더라. 베트남에서는 아오자이를, 일본에서는 유카타를 사왔는데 막상 내게는 한복 한 벌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광장시장을 찾아갔고, 재봉하시는 분에게 대뜸 옷 만드는 걸 배울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지만 선뜻 알려주겠다는 분이 있어 재봉을 배웠고,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 산하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다가 브랜드까지 만들었다. 정말 우연이었다. 어릴 적, 한복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나? 어린 시절을 북미에서 보냈다. 4~5살 때쯤 한복을 처음 입어봤는데 빨간색, 주황색에 장미가 그려진 옷이었다. 지금봤더라면 촌스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정말 예뻐 보였고 공주 옷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더 자라면 사이즈가 안 맞을 텐데 계속 입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타향살이를 하면 고국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남동생은 한식에 빠졌는데, 나는 옷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싶다. 다양한 굵기와 색채의 색동을 조합해 선보인 프로젝트. 2021년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레드 핫 몽드(Red Hot Monde Magazine)』에 소개되었다. © 오승준(OH Seungjune) 색동은 다시곰의 시그너처다. 소비자들이 색동에 매료되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잊히는 것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 광장시장에서 색동 원단을 구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색동을 만드는 곳이 이제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요가 적으니 공급도 없어진 것이다. 색동은 한국의 문화유산인데 사장될 위기에 처한 것이 안타까웠고, 그래서 색동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여러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었다. 브랜드 이름처럼 ‘무언가를 다시’ 부흥시키는 경험이었다. 색동의 쨍한 색감에 매력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었고, 원단 자체가 주는 노스탤지어를 좋아하는 이들도 많았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됐나?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한류와 연계한 한복 프로젝트 공모전이 열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돌 같은 유명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과 달리 나는 평소 좋아하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중심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내 제안이 채택되었고,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협업해 ‘애매모호한 다시곰밀림(Ambiguous Jungle)’이라는 타이틀로 2021년 SS 컬렉션을 준비할 수 있었다. 식품 제조 기업 오뚜기와 협업한 프로젝트로, 오뚜기가 제공한 현수막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 오승준(OH Seungjune)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로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정말 많지 않은가. 나는 스토리텔링을 중시하고,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작업을 시작한다. 디자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실용성이다. 나는 “이 옷을 입고 지금 당장 지하철에 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지금 내가 안에 받쳐 입은 상의는 네크라인을 한복 저고리처럼 디자인하고, 발열 원단을 써서 만든 기능성 옷이다. 전통적인 모티프와 스타일, 기능성을 접목하는 것이 다시곰 스타일이다. 패션 잡화에 특색 있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재미 때문인가? 가방을 만들어서 ‘놀부백’이나 ‘갓백(Gat Bag)’ 등의 이름을 붙였다. 놀부는 전래 동화 『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심술궂은 형인데, 동화책을 보면 정자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자관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평상시에 착용하던 모자로,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가방을 제작했다. 그런데 이 가방 명칭을 ‘정자관백’이라고 지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뾰족한 형태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놀부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서 그렇게 지었다. 갓백은 갓 모양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그대로 이름을 붙였다. 2음절이라 부르기도 쉽고, 영어 단어 ‘god’도 연상되니 재미있었다. 소금을 담는 포대는 튼튼하지만 물류비로 인해 한 번 쓰고 전량 폐기된다. 이승주 디자이너는 국내 대표적 천일염 생산지인 신안군 비금도에서 버려지는 소금 포대들을 업사이클링해 의상을 제작했다. © JUNG Ji Hoon 전통 복식의 실루엣을 현대인의 체형에 맞게 디자인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한복의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는 자연스럽게 잡히는 주름이다. 그 주름이 체형을 보완해주고 움직임을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평면 재단이 답이다. 입체 재단으로는 구현이 어렵다. 업사이클링 디자인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먼저 잡고 그다음에 어울리는 소재를 찾는다. 하지만 업사이클링은 주어진 원단을 가지고 시작한다. 즉 디자인 프로세스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일단 기상천외한 원단을 찾는다. 어릴 적에 패션 디자이너 경쟁 프로그램인 를 즐겨 봤다. 말도 안 되는 미션이 주어졌는데도 출연자들이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나도 그렇게 챌린지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친구 차가 폐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동차 시트 원단을 떼어내 옷을 만든 적이 있다. 폐현수막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이 나온다. 기업들이 행사에서 사용한 현수막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기업과 연계를 맺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더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해외 박물관들과는 어떤 협업 과정을 거쳤나? 오뚜기와의 협업을 눈여겨본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제안으로 뮤지엄 스토어에 몇 가지 제품을 입점하게 됐다. 이후에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내 작업을 흥미롭게 여긴 것 같다. 동대문에 위치한 서울패션허브 봉제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승주 디자이너. 그녀는 전통의 재해석과 업사이클링을 통해 지속가능한 패션을 꿈꾼다. ‘한국적’인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와 비슷한 세대라면 델몬트 오렌지 주스 병을 알 것이다. 옛날에는 주스를 다 마시고 나서 그 병에 보리차를 담아 사용하는 집들이 많았다. 그 병에 보리차를 보관하면 한동안은 보리차 뒷맛에서 희미하게 오렌지 향이 느껴진다. 그게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스라하게 남아 있는 것. 오늘 하루를 사는 데 크게 필요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이 한국적인 것이 아닐까?

문화의 차이를 즐기다

Lifestyle 2025 SPRING

문화의 차이를 즐기다 고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나리카와 아야(Aya Narikawa) 씨는 오랫동안 아사히신문 문화 담당 기자로 활동했다. 그런 그녀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바로 한국 영화였다. 그녀는 최근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한층 더 힘쓰고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에서 영화 칼럼니스트로 변신한 나리카와 아야 씨가 홍대 앞에 위치한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달에 4편가량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그녀는 독립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이곳을 자주 찾는다. 한 편의 영화를 두 번 이상 관람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2021년 개봉 20주년을 맞아 재개봉한 한국 영화 < 고양이를 부탁해(Take Care of My Cat) >를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딱 20대 초반 시절의 나와 닮았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고치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녀는 일본을 떠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가족과 멀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나리카와 씨는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 그 바람을 이뤘다. 2002년에는 어학 연수생, 2005년에는 교환 학생으로 서울을 찾았던 그녀는 9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아사히신문을 떠나 2017년 한국에 정착했다. 오랜 시간 그녀를 사로잡은 한국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가교 역할 나리카와 씨는 영화관을 운영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영화 감상을 즐겼고, 어학 연수를 계기로 한국 영화에 깊이 빠져 버렸다. 문화 담당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일본에 방문한 한국 영화인들을 인터뷰하거나 그들의 통역을 도맡기도 했다.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인이자 한국 영화 팬으로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도 갈증이 있었다. “한국 드라마와 K-Pop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그에 비해 한국 영화에 대한 일본 대중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 설국열차(Snowpiercer) >가 개봉했을 때 제가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는데, 봉준호 감독이니 기사를 크게 실어줘야 한다고 부탁하자 그게 누구냐고 묻던 아사히신문 데스크의 반응에 실망했던 기억이 나요. 한국 영화를 마음껏 깊이 취재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직접 탐구를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한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주변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학생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녀의 선택에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나리카와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영화로 배운 한국 나리카와 씨는 자신의 사연에 흥미를 느낀 한국 기자의 제안을 받아 수년째 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문화 이야기를 쓴다. 경기도 일산에 거주 중인 그녀는 부산, 전주, 제천 등 한국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다가 겪은 일에 대해서도 적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끼는 지역은 제주라고 한다. 제주도는 자연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상흔도 간직하고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리카와 아야 씨가 한국과 일본에서 펴낸 책들. 그녀는 한국에서 일본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북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제주 해변에서 돌고래를 목격한 것도 행복했지만, 일본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4·3평화기념관(Jeju 4·3 Peace Memorial Hall)에 다녀온 일도 뜻깊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Peppermint Candy) >(2000)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처음 접했고, 오멸 감독의 < 지슬(Jiseul) >(2013), 류승완 감독의 < 군함도(The Battleship Island) >(2017), 장준환 감독의 < 1987 >(1987: When the Day Comes)(2017) 같은 영화를 보며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익힌 그녀는 무작정 역사를 공부하는 것보다 재밌는 영화를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녀는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에서 재일코리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구소 주최로 ‘재일코리안 영화제’를 개최하며 뿌듯했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2025년 2월, 나리카와 씨는 마침내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 논문 주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영화 교류 양상 연구(South Korea-Japan Film Exchanges Since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였다.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매체에 한국 영화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고, 방송에 출연해 양국의 문화를 알려온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이 논문에는 재일코리안 촬영 감독 이병우(Lee Byung-woo), 일본의 한국 영화 배급사 시네콰논(Cinequanon) 대표 이봉우(Lee Bong-woo) 등의 사례도 언급된다. 모두 양국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부터 활동해 온 인물들이다. 나리카와 씨는 “지금보다 상황이 어려웠을 때 양국 교류에 나섰던 사람들이 택한 방법을 알아가면서 현재의 나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용기를 얻었다”라고 곱씹었다. 논문 집필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아사히신문 선배 기자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이병우 촬영 감독의 손녀를 만난 일이다. 재일코리안 영화인들에 관한 기록이 부족해 연구가 쉽지 않던 차에 이병우 씨의 손녀에게 귀중한 자료들을 전달받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쌓았던 내공 덕분일까요? 제가 만나야 할 사람, 필요로 하는 자료가 있을 때 우연히 제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일들이 한국 생활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북카페의 꿈 논문이 무사히 통과된 다음, 나리카와 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쿄에 다녀왔다. 2020년 한국에서 출간된 후 2024년 10월 일본에서도 출간된 저서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의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리카와 씨가 한국에서 써온 칼럼들을 묶어서 펴낸 책이다. 행사가 열린 공간은 ‘독서가의 거리’로 알려진 진보초의 한국 책 전문 서점 ‘책거리(Chekccori)’였다. 이날 서점 스태프들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의 문화를 전파 중인 나리카와 씨에게 근사한 상장을 만들어 선물했다. 상장에는 그녀에게 항상“차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돼라”고 당부했던 어머니의 말도 인용되어 있었다. 나리카와 씨는 북토크 자리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그녀는 독자들의 질문을 듣고 5년 후 계획을 고민해 봤다고 한다. “‘책거리’의 반대 버전, 그러니까 한국에서 일본 책과 영화를 소개하는 북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어요. 그곳에서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독립영화 상영회도 열고 싶고요. 이렇게 말하다 보면 도와주는 사람이 또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리카와 아야 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 영화 칼럼을 비롯해 신문에 연재하는 기사들과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 자신만의 북카페를 상상하며 미소 짓는 나리카와 씨는 이제 자신을 걱정하던 일본 친구들에게서도 “정말 즐거워 보인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녀는 “일부러 즐거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없는데도 그런 말을 자주 들어서 신기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말과 글로 나누는 동안 자연스럽게 웃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닐까? “타지에서의 삶이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그렇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한 발짝 나가본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요. 한번 해보고 나면 기대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어요!” 나리카와 씨는 작은 도전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른 책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신선한 일본 영화를 감상할 날이 매우 기다려진다.

삶을 이야기하는 아트 토이

Lifestyle 2025 SPRING

삶을 이야기하는 아트 토이 한국의 아트 토이 신(scene)은 해외에 비해 출발이 늦은 편이지만, 꾸준히 성장하며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로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받으며 협업하는 작가들도 여럿이다. 올해로 결성 18년째인 핸즈인팩토리(Hands In Factory)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조형미가 뛰어난 피규어를 넘어 삶을 매개하는 아트 토이 작업을 선보인다. 2008년 결성된 핸즈인팩토리는 한국 아트 토이 신의 1.5세대에 속한다. 업템포(사진 오른쪽), 락쿤, 하종훈(사진 왼쪽) 세 사람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팀을 이끌어간다. 이들은 국내외 전시 및 글로벌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작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트 토이는 창작자의 철학이 깃든 장난감이다. 작가의 세계관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조형화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입체화한 피규어와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 서브 컬처로 치부되었던 아트 토이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2000년대 중반부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신규 컬렉터층으로 등장했고,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로써 소수의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향유되던 아트 토이 문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핸즈인팩토리는 국내 아트 토이 분야의 현재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크루이다. 2008년 결성된 이 그룹은 업템포(UpTempo, 본명 이재헌), 락쿤(RocKOON, 본명 박태준), 하종훈(Ha Jong-hun) 세 사람이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유로운 스트리트 컬처를 원동력 삼아 한국 아트 토이 신의 새 지평을 활짝 열어가고 있다. 아트 토이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시작했나? 업템포: 우선 평면의 그래픽 디자인을 입체로 만들어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아트 토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주제를 구현하는데, 이런 점을 젊은 층이 힙하다고 느끼며 열광한다. 아트 토이 문화의 기반이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마치 악보를 읽지 못하는 이들이 기존 질서에 반하는 랩을 만들고, 오늘날 힙합이 전 세계를 관통하는 장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아트 토이도 일종의 ‘카운터 컬처’인 셈이다. 또한 아트 토이는 팬들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대표적 캐릭터 ‘러닝 혼즈(Running Horns)’는 ‘Run again and the again’이 슬로건이다. 내 작업을 좋아해 주는 이들에게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당신의 속도대로 꿋꿋하게 달려라”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업템포 작가의 대표 캐릭터는 뿔 달린 초식 동물을 의인화한 ‘러닝 혼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캐릭터에 담아내고 있다. 핸즈인팩토리가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종훈: 한마디로 명쾌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트 토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 때도, 돈이 되지 않을 때도, 어떤 조건에도 상관없이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 자체가 흥미롭다. 만들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른다. 이것이 꾸준히 창작을 이어올 수 있었던 또 다른 원동력인 것 같다. 각 캐릭터들의 성장과 세계관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 업템포: 보통 아트 토이 작가들은 캐릭터를 창조할 때 자신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요소를 투영한다. 내 경우도 과거에는 스트리트 컬처의 반항적 성격을 표현하거나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인형 놀이하듯 캐릭터에 입히곤 했다. 그래서 초기 작품에는 농구 시합하는 청년들이나 래퍼의 모습을 한 러닝 혼즈가 많았다. 최근에는 우편 집배원이나 정비사 같은 새로운 캐릭터가 생겨났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적 기준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멋지게 보이더라. 하종훈: 도마뱀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 ‘하자드(Hazard)’를 만든 게 2016년이다. 나 역시 당시에는 캐릭터의 외형 묘사에 집중했다. 10년 정도 지난 지금은 캐릭터의 성격을 확장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주력한다. 겉모습이 귀엽다거나 스타일이 좋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도마뱀 사육장을 디오라마로 연출하고 있다. 캐릭터가 살아가는 환경을 구현함으로써 생태계의 공존과 삶의 방식을 강조하고 싶었다. 하종훈 작가의 ‘하자드’는 꼬리가 잘려도 계속 살아가는 도마뱀을 형상화한 캐릭터이다. 그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강인한 의지로 삶을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캐릭터에 반영한다. 북청사자 프로젝트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업템포: 우리는 러닝 혼즈와 하자드 캐릭터를 북청사자와 접목해 2023년 12월 공개했다. 스니커즈 브랜드 세븐에잇언더의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우리는 단순히 그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기존의 스니커즈 디자인에 핸즈인팩토리의 성격을 어떻게 매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북청사자가 떠올랐다. 거대한 사자 가면을 뒤집어쓰고 여러 사람이 호흡을 맞춰 춤을 추는 북청사자놀음(Bukcheong Saja Noreum, Lion Mask Dance of Bukcheong) 말이다.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한 번도 한국적인 작업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기회에 전통 민속놀이를 모티프로 한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세븐에잇언더가 북청사자의 털을 신발끈으로 연출해 보자는 제안도 해줘서 더욱 생동감 있는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2023년 말, 핸즈인팩토리가 스니커즈 브랜드 세븐에잇언더와 협업하여 제작한 북청사자 캐릭터.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음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핸즈인팩토리 제공 한국은 아직 아트 토이 마켓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아쉬움은 없나? 업템포: 지금 우리나라에는 아트 토이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플랫폼이나 채널이 없다. 아트페어에 참여하거나 전시회를 개최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개인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 온라인 스토어에서 작품을 거래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중개자가 개입되었을 때보다 구매자와 작가가 더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친밀감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장과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아트 토이가 ‘문화’를 넘어 ‘산업’의 단계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아트 토이의 트렌드는 어떤가? 하종훈: 과거에는 점토가 주된 재료였고, 3D 프린터가 상용화되면서는 대부분 이 방식으로 제작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이루어 낸 상향 평준화의 반향으로 레트로 느낌이 물씬한 수제 아트 토이가 떠오르는 추세이다. 예컨대 나무를 재료로 써서 의도적으로 투박한 느낌을 주는 식이다. 레진을 사용할 때도 조각칼로 디테일을 덧입히는 등 핸드 메이드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하종훈 작가의 또 다른 캐릭터 바인(VINE)은 퇴근길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곡해 듣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핸즈인팩토리 제공 솔로보다 팀으로 활동하는 이점은 무엇인가? 업템포: 혼자 작업할 때는 한계가 명확하다. 스튜디오에서 제작에만 열중하다 보면,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기 어렵고 익숙한 영역에만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이들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견을 접할 수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피드백을 얻기도 한다. 팀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도움도 받으면서 혼자였다면 결코 구현하지 못했을 작업을 해나가기도 한다. 핸즈인팩토리의 올해 계획은? 업템포: 패션 브랜드 뉴에라의 마스코트 캐릭터 ‘팔로(FFALO)’ 디자인을 우리가 했다. 올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컴플렉스콘(ComplexCon)에 뉴에라와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아트 토이 작가로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업템포 작가의 작업 공간. 언젠가는 러닝 혼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종훈: 내 작품을 2D나 그래픽으로만 전시해 보고 싶다. 우리끼리 대화하면서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 오로지 디자인으로만 전시를 꾸려 관객들에게 그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다. 스티커만 몇 백 장씩 있는 전시회는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 본다. 스케치 작업을 하고 있는 업템포 작가(왼쪽)와 도색 작업 중인 하종훈 작가(오른쪽). 아트 토이 산업이 발달한 해외에서는 작업 과정을 세분화해 분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핸즈인팩토리는 디자인과 모형 제작, 도색 등 일련의 과정을 모두 각자 혼자서 전담한다.

가족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

Lifestyle 2024 WINTER

가족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 낯선 도시에서 실패 없는 식사를 하려면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라는 말도 있다. 어디로든 이동이 가능한 기사들은 곳곳에 위치한 가성비 좋은 음식점들을 훤히 꿰고 있을뿐더러 시간과 경험을 바탕으로 검증된 리스트이니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감나무집 기사식당’은 맛집에 밝은 기사들의 발길이 밤낮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감나무집 기사식당 주인 장윤수 씨가 손님상에 내 놓을 음식을 서빙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사식당은 말 그대로 기사, 그중에서도 택시 기사들을 위한 식당이다. 기사들을 주 고객으로 맞이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차를 댈 수 있는 넉넉한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 메뉴는 다양할수록 좋지만, 시간이 걸리면 곤란하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이나 밤중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저렴한 가격, 푸짐한 양, 변함없는 맛이 더해져야 한다. 365일, 24시간 열려있는 식당 감나무집 기사식장의 주인인 장윤수(張倫秀) 씨의 하루의 시작은 매일 다르다. “새벽부터 나올 때도 있고, 시장을 가는 날이면 좀 늦을 때도 있고. 시간을 정해두고 일을 하지는 않아요. 집에서 잠시 쉴 때도 모니터로 가게를 수시로 들여다봐요. 모니터링하다가 손님이 많다 싶으면 만사 제쳐두고 냅다 뛰어가죠.” 한국의 기사 식당은 주차장 구비, 푸짐한 한 상, 빠른 회전 등이 특징이다. 주차장, 식당, 살림집이 나란히 붙어 있는 구조다. 일과 휴식을 분리할 수 없는 이 구조는 장 씨에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집이 가까워야 통제가 돼요. 바쁘다고 호출하면 금방 갈 수 있으니까. 24시간 전천후지.” 한 번에 70여 명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은 점심식간이면 순식간에 만석이 된다.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중인 감나무집이 문을 연 건 25년 전이다. “다른 데서 한정식집도 하고, 갈빗집도 했는데 잘 안됐어요. 다 털어먹고 집으로 들어왔지. 여긴 우리 집이니까. 처음에는 함바집(건설 현장에 임시로 지어 놓은 식당)을 했어요. 일꾼들이 일을 일찍 시작하니까 우리도 새벽 장사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근처를 오가던 택시 기사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들이 더 늦게까지 장사하면 좋겠다고 해서 24시간 문을 열기 시작한 거죠.” 언제 찾아가도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데다 값은 저렴하고 음식은 맛있다. 국과 반찬도 매일 바뀐다. 당연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근처에 기사식당이 많았는데 순댓국, 설렁탕 같은 단일 메뉴만 있었어요. 우리는 백반집이었지.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형편이 좋지 않고 맞벌이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일하다 보면 집에서 밥을 못 챙겨 먹으니까, 집밥이 그리웠겠죠. 사 먹는 음식은 혼자 먹기도 어렵고, 비싸기도 했으니까요. 여기 오면 미역국, 된장국, 콩나물국처럼 집에서 늘 먹는 국과 반찬이 있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집에서 먹던 음식 그대로 장윤수 씨의 고향은 충청도이다.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나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농사를 크게 짓느라 집은 언제나 일꾼들과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할머니와 어머니는 늘 주방에서 밥을 짓고, 김치를 담그고, 나물을 무쳤다. “맨날 다듬고 무치고, 그거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배추 뽑고 오이 따서 잘라보고 무쳐보고 짜다, 싱겁다, 이거 넣어보자, 저거 넣어보자면서 놀았죠. 국물 내고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도 만들고…. 어른들이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가 가서 공부하라고 혼내면 도망 다니고…. 재미있는 게 따로 있는데 공부가 되겠어요? 나는 요리사하고 음식 장사 하련다, 그거 하면서 재미있게 살련다, 생각했죠.” 집에서 해 먹던 음식 그대로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는다. 강원도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된장도 직접 담근다. 감나무집의 인기 메뉴인 돼지불백과 오징어볶음 “기사들에게 빨리 내놓을 수 있는 음식, 그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저렴하지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뭘까 하고 연구 많이 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 돼지불백이죠.” ‘돼지불백’ 즉 ‘돼지불고기백반’은 이곳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이다. 메인 메뉴인 돼지불고기를 푸짐하게 쌈 싸 먹을 수 있게 상추, 배추같은 야채도 함께 낸다. 여기에 밑반찬 서너 가지와 계란프라이, 잔치 국수가 쟁반에 함께 나온다. 밥이 가득 담긴 밥솥이 식당 한쪽에 있어 추가로 주문하지 않아도 밥을 양껏 먹을 수 있다. 메인 메뉴인 돼지불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반찬과 국 등도 리필할 수 있다. 식사 후에는 자판기의 무료 커피와 건빵으로 입가심도 할 수 있다. 연말에는 택시 안에 놓아둘 수 있는 작은 달력을 만들어 나눠준다. “전에는 눈대중, 손대중으로 내가 간을 보면서 만들었는데, 우리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내 레시피를 다 문서로 만들었어. 옛날 맛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거지.” 레시피와 일일 판매량은 ‘일급비밀’이다. 집 같은 식당, 가족 같은 손님 이전에는 감나무집을 찾는 손님은 단연 기사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일반인들의 비중이 훨씬 많다. 다양한 반찬을 맛볼 수 있는 백반집이 점점 사라져 있는 요즘,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가성비 있게 즐길 수 있어 젊은이들이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도 많이 찾는다. 또 한국의 집밥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장윤수 씨의 하루는 손님이 많은 때와 적은 때로 나뉜다. 매일 새벽 시장을 봐서 가게로 온다. 바쁜 아침 시간에는 식사를 거르고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 두 시경에 점심을 먹는다. 세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가능하면 휴식을 취한다. 휴대전화를 잠깐 들여다보고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주말 저녁 시간이 제일 바쁘다.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의 행렬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주방과 홀을 오가며 손님들의 상을 살피면서 부족한 것은 채우고 필요한 것은 가져다준다. 어떤 걸 잘 먹는지, 무엇을 남기는지 체크하여 더하고 덜할 반찬을 정한다. 밤 열 시쯤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최근에는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집밥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 한국의 집밥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손님이 24시간 방문하고 있다. 평일에는 새벽 한 시쯤 식당을 나서지만 주말에는 새벽 서너 시가 되어서야 손을 털 수 있다. 남편은 함께 장을 보고 바쁜 시간이면 주차장도 관리한다. 엄마를 닮아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든든한 동지가 되어 함께 일한다. 일일 2교대 또는 3교대로 일하는 직원은 스무 명이 넘는데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모두가 가족이고 ‘한집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식구이다. 집밥을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돼지불백, 순두부찌개, 생선구이 세 가지로 시작한 메뉴는 이제 열 가지로 늘었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기사들을 위해 줄기차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후회는 안 해요. 지금도 요리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렇게 행복해요. 여기에 밥 먹으러 오는 이들도 나한텐 식구나 다름없어요. 가족 밥 해 먹이는 일이 이렇게 좋아. 난 피곤한 줄도 모른다니까.” “돼지불백 하나요!” 성미 급한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외친다. 장윤수 씨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번진다.

LP로 맺어진 인연

Lifestyle 2024 WINTER

LP로 맺어진 인연 커티스 캄부는 모험심으로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오게 되었다. 12년 후 그는 자신이 두 개의 음반 레이블을 운영하고, 한국의 유명 뮤지션 박지하와 결혼하여, 중고 레코드 가게 두 곳을 운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울 마포구 상수역 근처에 위치한 두 번째 빈티지 음반 가게 모자이크 웨스트에서 음반을 듣는 커티스 캄부.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등의 플랫폼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손쉽게 스트리밍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LP 앨범이 다시 유행하고 있으며, 그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레코드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산업을 보유한 미국에서는 지난 해 LP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앞섰다. 글로벌 팝 스타부터 한국 현대 음악가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이 LP로 앨범을 발매하고 있으며, 젊은 층이 LP 구매를 주도하고 있다. 서울에서 두 개의 빈티지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커티스 캄부 씨에게는 이러한 트렌드가 낯설지 않다.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그는 17살에 고향을 떠나 파리로 갔다.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결심하면서 뉴욕, 도쿄 등을 제쳐놓고 가장 낯선 도시인 서울을 택했다. 캄부 씨는 2012년 한국에 도착해 교환학생 과정을 마친 후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는 음악 덕분에 자신의 사업적 감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음악 애호가로서 몇 년 동안 중고 음반 업계 사람들과 인맥을 쌓으면서 그의 음반 컬렉션은 점점 늘어났다. 2020년에는 광희문 근처 신당동 뒷골목에 자신의 첫 번째 빈티지 레코드 숍인 모자이크를 오픈했다. 신당동 일대가 유명세를 타기도 전이었다. 첫 매장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온라인 판매 사업을 시작했고, 지난해 홍대 근처에 두 번째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다. 재능은 있지만 해외에 판매 채널이 부족한 국내 아티스트들을 알리고 싶어서, 브레인댄스레코즈를 통해 한국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의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한일렉트로닉스를 만들어 오래된 음반을 재발매하거나 국내 아티스트의 새 앨범을 발매했다. 그는 이 앨범에 대해 “세월의 흐름에 잊힐 뻔했다가 구해낸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매장도 관리하고, 벼룩시장에서 레코드를 찾고, 매주 사무실에 입고되는 수천 장의 레코드도 분류하느라 바쁘게 보내지만, 여유가 있을 때는 그의 오랜 취미인 디제잉을 즐기기도 한다.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LP판과 CD를 가지고 계셔서 항상 음악을 찾았다. 어머니는 친구들이 준 믹스 테이프를 차 안에서 들으시곤 했다. 소울을 특히 좋아하셨고, 디페쉬 모드, 더 휴먼 리그 같은 영국 신스팝을 많이 들으셨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지? 젊었을 때는 힙합을 많이 들었다. 집에서는 주로 빅 웨더, 마빈 게이, 샤데이 등 정통 소울 음악을 즐겼다. 그러다 사이키델릭 록 장르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들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한 장르만 듣다가 다른 장르로 넘어가곤 했다. 한국에 왔을 때는 아방가르드, 실험 음악, 일렉트로닉 음악 등 다소 특이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 머무르게 된 계기는? 콕 짚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의 역할을 찾았다랄까. 한국의 음악 산업은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돕고, 사람들은 나에게 도움을 준다. 나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녹아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현대카드에서 스페이스 마케팅팀에서 일했고, 이후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로 부서를 옮겨 부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어떻게 음반 레이블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주변에 해외 발매를 할 만한 수준의 아티스트들이 있었지만, 인맥이 없어서 해외에서 음반을 발매하지 못하고 있었다. 메이저 회사에는 인맥이 있는 분들이었지만, 언더그라운드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배급사나 음반사 대표들을 꽤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음반을 발매 및 배급하기로 결정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나에게 최고의 프로젝트는 퓨어디지탈사일런스(PDS)라는 밴드였다. 정말 실력이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내가 그들을 만났을 때는 콘서트를 쉰 지 한참 됐을 때였다. 여전히 소음 실험을 하는 두 명의 남자들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밴드를 다시 모아 웰메이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앨범은 한 학생이 1990년대 후반 퓨어디지털사일런스 밴드에 대해 만든 아마추어 다큐멘터리를 리마스터링한 것이었다. 전부 영어로 번역하고 프로젝터를 구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라이브로 상영했다. 정말 많은 분이 찾아주셔서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 큰 모험이었지만 나에게는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많은 분들, 특히 재미교포들로부터 감사하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들은 한국어가 유창하진 않았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자신에게 한국적인 정체성이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한국에도 비주류 문화를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가 있기를 바랐다는 것이었다. 어떤 계기로 빈티지 레코드 샵을 운영하게 되었는지? 원래는 퓨어디지탈사일런스의 2집 앨범을 발매하려고 했지만,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배송비가 문제였다. 배급사에 보내면 손해가 막심할 것 같았다. 현대카드에서 이직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거주 비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소소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몇 백만 원씩 투자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비자가 나온 후에는 지금의 빈티지 레코드 숍인 모자이크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 중구 신당동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 있는 모자이크 서울  ⓒ 모자이크 매장 위치로 신당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신당동에서 멀지 않은 창신동에서 산 적이 있다. 그리고 자리를 빨리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예산이 많이 부족했는데 아내는 광희문 일대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부동산 몇 군데를 찾아다니며 물어봤지만, 그들에게서 “없어, 없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나이 드신 분들을 많이 만나봤고,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나만의 기술이 있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비타민 병 음료를 사 들고 부동산에 여러 번 찾아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리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직접 가보니 아직 공개 매물로 나오지 않은 곳이었다. 가서 보자마자 느낌이 딱 왔다. 가격도 좋고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모자이크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다양성과 퀄리티, 그리고 꾸준하게 새로운 앨범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대량으로 레코드가 입고된다. 진짜 최고 중의 최고의 음반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음반들만 들여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객의 일반적인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꽤 다양하지만, 20대~40대가 대부분이다. 40대는 40~49세까지 다양하다. 그와 직원들은 매장에 진열된 앨범과 책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손 글씨로 메모해 놓기도 한다. 두 매장은 어떻게 차별화되어 있는가? 1호점은 아프리카, 브라질, 레게, 희귀한 그루브(미국 1960~70년대, 소울, 펑크 등) 등 월드뮤직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재즈 음반도 많이 선보인다. 2호점은 좀 더 ‘길거리’ 음악에 가깝다. 힙합, 하우스, 테크노, 디스코, 1980년대 댄스 음악, 뉴욕에서 형성된 다양한 음악들과 얼터너티브 록, 인디,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펑크 메탈, 트래시, 하드록, 록 클래식도 다수 갖추고 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어떤 경험을 하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이 레코드 매장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서관과 비슷하다. 우리가 세심하게 나눠 놓은 다양한 장르별로 직접 음반을 찾아보고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가. 5년 전에 만났다. 아내의 앨범을 발매하고 싶었지만 결국 발매하지는 않았다. 아내의 음반사에서 이미 역할을 잘하고 있더라. 아내는 그 분야에서는 꽤 유명인이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에 개봉한 (2023)이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했다. 많은 프로젝트에서 협업 제안을 받고 있어서, 해외 작업에서는 내가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모자이크를 통해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음악을 경험해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향후 계획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중고 음반 산업이 하나의 비즈니스로서 제대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아직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정식 사업으로 인정받고 국내에 더 많은 매장이 생겨서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액션의 재구성

Lifestyle 2024 WINTER

액션의 재구성 류승완(柳昇完) 감독의 2015년 블록버스터 < 베테랑 >의 후속작 < 베테랑2 >는 비질란테가 사적 제재를 가하는 과정에서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칸 영화제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류승완(Ryoo Seung-wan, 柳昇完)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과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조명하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연출 스타일을 보여 주는 감독이다. 특히 역동적인 액션 연출과 캐릭터 중심의 강렬한 서사가 돋보이며, 사회적 메시지와 오락성을 조화롭게 결합한다. 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은 20년 넘게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액션 영화로 유명한 그는 사회 문제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흥행 돌풍을 일으킨 < 밀수 >에서는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생계를 잃게 된 해녀들이 겪는 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올해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 베테랑 2 >는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개봉해 15일 만에 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편 전작 < 베테랑 >은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9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한국 영화사상 다섯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둔 영화가 되었다. 그 인기는 국내를 넘어서, 2019년에는 유명 배우 살만 칸(Salman Khan) 주연으로 인도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만(Miachel Mann)이 또 다른 리메이크작을 준비 중이며,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 히트 2 > 가 완성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 베테랑 >은 2015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를 통해 처음으로 해외에 선보였고, < 베테랑 2 >는 올해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받아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그동안 칸 영화제에는 다수의 한국 영화가 공식 초청된 바 있다. 김지운(金知雲) 감독의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한재림(韓在林) 감독의 < 비상선언 >, 나홍진(羅泓軫) 감독의 < 황해 >, 박찬욱(朴贊郁) 감독의 < 아가씨 >, 윤종빈(尹鍾彬) 감독의 < 공작 >,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봉준호(奉俊昊) 감독의 < 기생충 >이 있다. 류승완 감독은 2005년 권투 영화 < 주먹이 운다 >로 감독주간에 초청받아 칸 영화제에 데뷔했다. 지금은 유명 스타가 된 동생 류승범(柳昇範), 그리고 2004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박찬욱 감독의 < 올드보이 >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한국 영화의 아이콘 최민식(崔岷植)이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의 초기작 중 하나인 < 주먹이 운다(Crying Fist) >(2005)는 왕년의 복싱 스타이자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였던 주인공이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세련된 테크닉과 액션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에 중점을 둔 영화이다. 용필름(Yong Film) 제공 전편 < 베테랑 >에서는 황정민(黃晸玟)이 거침없고 화끈한 형사 역을 맡아, 부패하고 사디스트적인 재벌 3세를 잡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아인(劉亞仁)이 재벌 3세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유머와 강렬한 액션,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베테랑 2 >에서는 오달수(吳達秀), 장윤주(張允柱) 등 전편에서 감칠맛 나는 연기를 펼쳤던 배우들과 황정민이 다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정해인(丁海寅)이 강력 범죄 수사대에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다. SNS에서 범인의 정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전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가운데, 주인공 형사와 그의 팀원들은 수사 방법과 논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류승완의 최신작 의 한 장면. 2024년 9월 개봉한 이 영화는 전국적으로 750만 명이 넘는 누적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CJ ENM 제공 2005년과 비교해 이번 칸 영화제 경험은 어땠는가? 19년 전에는 뤼미에르 대극장을 멀리서 바라보는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때는 훨씬 더 어렸고,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는 여기에서 내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인사이더가 되어, 내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 다른 의미 있는 변화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인식이다. 19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객석이 꽉 차지도 않았고, 인터뷰 요청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액션 영화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나는 충청남도 아산(牙山)이 고향인데, 대도시는 아니지만 문화가 발달한 곳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부터 홍콩 영화 등 아시아 작품까지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시절 나는 홍콩 무술 영화와 멋진 배우들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액션 배우에 대한 강렬한 인상이 뼛속까지 영향을 주었고, 동작과 제스처를 포착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액션에 대한 나의 접근법도 진화했다. 지금의 나에게 ‘액션’은 단순한 신체 동작이나 바디 랭귀지가 아니다. 캐릭터의 진화, 심리, 사건의 전개, 스토리에 따라 바뀌는 관객의 생각과 기분까지 담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이다.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2006)는 무술 감독이자 액션 배우인 정두홍(Jung Doo-hong, 鄭斗洪)과 함께 감독 자신이 주연으로 직접 출연한 영화다. 와이어에 의존하지 않은 맨몸 액션의 효과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 씨네21 < 베테랑 >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9년이 지나 < 베테랑 >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유가 궁금하다. 1편의 성공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고,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내 스타일에 충실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 국내 관객들에게 탈출구 같은 재미있는 영화를 선보이고 싶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영화 속 사건과 유사한 사회적 논란이 불거지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 베테랑 >을 촬영하면서 인물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1편의 성공 때문에 같은 소재로 바로 뛰어들기가 쉽지 않았다. 1편에서는 선과 악에 대한 묘사가 너무 도식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명료한 구분이 성공 요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피상적으로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정의 실현 방식은 복잡한 현실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현실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 베테랑 >의 흥행 이후 그 뒤를 잇는 다양한 국내 영화와 드라마가 나오고 성공을 거두면서, 나는 전작을 답습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간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2021년 아카데미 영화상에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된 정치 스릴러 < 모가디슈 >도 있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새로운 방식으로 < 베테랑 >을 다시 선보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개봉작 < 베를린(The Berlin File) >은 국제적인 음모에 휘말려 서로를 쫓은 이들의 추격전을 그린 영화다. 완벽한 캐스팅과 창의적 액션, 밀도 높은 스토리 등으로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승완의 동생이기도 한 배우 류승범(Ryoo Seung-bum, 柳昇範)은 류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린다. ⓒ 씨네21 속편에서 논란이 된 ‘박선우’는 어떤 인물인가? 의도적으로 캐릭터와 스토리에 논란의 여지를 두었다. 어떤 반응이든 관객들이 그들 자신의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다. 관객들이 어떤 논란에 대해 개인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은 관객이 그 논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의도한 바가 바로 그것이다. 홍콩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 조니 토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몰입감 있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굵고 짧게 대답했다. “주인공이 실수를 해야 한다”는 아주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사적 제재를 가하는 사람은 결국 벌을 받는다. 류승완의 영화에서는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흥미로운 지적이다. 내 영화에서 실제 주인공은 박선우가 아닌 서도철 형사다. 서도철이라는 인물의 장점이자 박선우와의 차이점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의 임무에는 충실하다는 점이다. 범죄자라도 일단 목숨은 살리고 보는 인물이고, 그것이 서도철에게는 진정한 정의다. 박선우를 전통적인 빌런으로 묘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정의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개념, 그리고 그사이의 갈등을 탐색하고자 했을 뿐이다. 정의(正義)는 관점과 역사적 맥락, 적용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정의(定義)된다. 따라서 절대적인 정의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본다. 감독이 관객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관객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2편의 스토리는 어떻게 달라졌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옛날이 더 편하고 쉬웠고 현재가 제일 힘들다는 인식이 항상 있다. 자신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나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수월하고 다른 곳이 더 편안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결국 누구나 똑같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발전의 속도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베테랑 > 1편이 개인보다는 사회와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편은 사회 전체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예를 들어, 서도철의 아내가 베트남 여성과 아이들을 돕는 장면이 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의 모습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사회에서도 한 사람만이라도 깨어 있고 자각하고 있다면, 희망의 씨앗은 이미 거기에 있다. 인류를 구하겠다며 말만 거창하게 늘어놓는 정치인보다는 가족, 친구, 동료를 돌보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이 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여론의 영향력이 바뀌었다고 보는가? 한국 사회에는 연대감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만의 독특한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육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소 단절된 느낌이다. 한국인이 해외로 여행하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고,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게다가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어, 섬나라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함께 뭉쳐야 했기 때문에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과 SNS 덕분에 기성 세대에 비해 전 세계와 훨씬 더 많이 연결되어 있다. 해외에 있는 사람들과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어 뛰어난 글로벌 감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서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유대감은 여전히 강한 편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글로벌 커뮤니티 참여가 확대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 베테랑 3 > 제작 가능성은? 현재 첩보 액션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파헤치는 남북한 비밀 요원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 베테랑 3 >에 대해서는 배우들과 논의 중이다. < 베테랑 2 >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후속편 제작을 검토할 예정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 밀수(Smugglers) >(2023)는 밀수의 세계에 빠진 해녀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영화다. 몰입감 높은 연출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시대 배경을 잘 살린 미술이 호평을 이끌어 냈다. ⓒ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

누구나 그리고 즐기는 민화의 즐거움

Lifestyle 2024 AUTUMN

누구나 그리고 즐기는 민화의 즐거움 과거 민화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민화 수집가나 연구가들이 등장하고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화가들의 작품이 주목 받으며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취미로 민화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고, 공모전, 아트페어, 갤러리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민화 강사 신상미 씨는 취미로 시작했던 민화의 매력에 빠져 지금은 민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직장인에서 민화 강사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신상미 씨. 열의에 가득 찬 수강생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이 공간의 이름은 모리화(毷離畫)이다. 번민 모, 떠날 리, 그림 화 즉 ‘일상의 근심을 떠나 보내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민화’를 배운다. 민화는 조선시대 때 집안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한 실용화이다.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되는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민화’로 불린다. 한 겹 한 겹 색을 쌓다 신상미(申湘媄) 씨에게는 두 종류의 ‘날’이 있다. 수업이 있는 날과 수업이 없는 날. 일주일 중 사흘은 수업이 있고, 사흘은 없다. 나머지 하루는 ‘배우는 날’이다. 수업이 있는 날에는 7시쯤 일어나 중학생인 딸을 학교에 보낸 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작업실로 간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21평짜리(69m²) 오피스텔로,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처음에는 집에서 동네 분들 모아놓고, 돈도 안 받고 가르쳤어요. 본격적으로 수업을 해보자 마음먹고 일 년 전쯤 작업실을 얻었어요. 경복궁 근처라 임대료는 비싸지만, 그 덕분인지 전국에서 배우러 와요.” 작업실에 도착하면 전기차를 충전시켜 놓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한다. 이후 작업실로 돌아와 작업용 앞치마를 메고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수업 준비를 한다. 첫 수업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3시간을 꽉 채우고 끝이 난다. “처음에는 책상 다섯 개를 놓고 시작했어요. 지금은 여덟 개가 되었죠. 한 클래스에 8명 정도 들어오시고, 총 여섯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자리가 나면 들어오려고 대기하고 있는 분들도 많아요.” 민화는 전공자, 비전공자의 차이가 별로 없다. 밑그림이 있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골라 채색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추어도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결과물도 좋은 편이다. 신 씨의 수강생들이 그린 작품들. 같은 밑그림이라도 그리는 이의 취향과 선호하는 색 등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완성된다. “민화는 가루 물감을 아교로 개어 한 겹 한 겹 색을 계속 쌓아가는 작업이에요. 한 작품 완성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리는데, 명상하듯이 천천히 하다 보면 계속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어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죠. 다들 재미있게 다니세요.” 특별한 재능이나 기술이 없어도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난다. 일상의 소소한 근심을 까맣게 잊고 온전히 몰두하는 시간이다. 밥 먹고 그림만 그렸다 민화 강사가 되기 전, 신상미 씨는 20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대기업에서 벽지, 바닥재, 가구 필름 등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였다. “2000년 초반, 컬러와 패턴 등 디자인이 다양한 장판(壯版 한국의 주택에서 방바닥에 까는 PVC로 된 시트) 시장이 어마어마했어요. 장판에 민화 나비를 넣어보고 싶어서 민화 작가를 소개받았어요.” 그것이 처음 만난 민화였다. “직장을 정말 열심히 다녔어요.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일요일에도 일을 했죠. 그러다가 4년 전쯤 아이가 아파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수십 년 동안 매일 하던 일을 갑자기 안 하게 되니 스트레스가 컸어요. 몸도 마음도 엉망이었죠.‘이대로는 안 되겠다, 어디 가서 꽃이라도 그리자’ 하고 집 앞 공방을 찾아갔어요. 그때부터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재미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말 밥 먹고 그림만 그린 나날이었다. 한 곳에서 그릴 수 있는 민화가 한계가 있다 보니 화실을 서너 군데 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그렸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어갔다. 남들이 10년 걸려 배울 걸 2~3년 만에 익혔다. 어느 순간 병풍 하나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병풍 그리기를 시작했다. 1년쯤 걸리는 작업을 3개월 만에 끝냈다. 그때 그린 병풍으로 ‘제 15회 대한민국 민화공모대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정도면 화실을 차려도 될 것 같아 작업실을 열고 수강생을 받기 시작했다. “저는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안 맞는 사람이더라고요. 뭔가를 시작하면 몸이 상할 정도로 몰두해요. 칭찬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그림을 시작하면서 활력이 생기고 아이를 돌볼 시간도 생겨서 아이도 저도 건강해졌어요.” 빠른 시간 안에 민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이유 중 하나는 직장생활 때의 경험이었다. 벽지, 바닥재, 가구 필름 등을 디자인하면서 빨강, 노랑, 파랑으로 색을 조합하는 작업만 20년을 했다. “제가 색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었던 거죠. 민화는 정해진 색이 없어요. 같은 그림이라도 작가마다, 공방마다 색이 다르죠. 여러 색을 실험해 보고 칠해보면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거예요. 오방색(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청색, 흰색, 적색, 흑색, 황색)을 화려하게 써야 민화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간색’이라고 불리는 중간색을 적극적으로 쓰는편이죠. 오방색은 한옥에는 어울리지만, 현대적인 인테리어와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제가 출품한 병풍도도 출품작 중 제일 어두운 그림이었어요. 요즘은 톤 다운된 노란색, 겨자색에 꽂혀 있어요.” 매주 화요일은 민화 명장 스승님께 전통 민화 그림을 배우러 간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시상식 날 원로 선생님들께서 앞 줄에 앉아 계셨는데, 아빠랑 너무 비슷하게 생기신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한테 가서 ‘저 좀 받아주세요’ 했어요. 그림 속 꽃 하나, 나비 하나에도 다 의미가 있거든요. 그리다 보면 알고 싶어져요. 그래서 책도 많이 읽고 수업도 듣는 거죠. 수업 중간에 밥도 먹고 막걸리도 한잔하면서 선생님께 수업을 받고 있어요.” 어설픔도 맛이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작업실에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여기서 제 작업도 해야지 싶었는데, 점점 회사처럼 되다 보니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그래서 개인 작업은 집에서 해요. 그런데 이제는 화실 이름도 걸려 있고, 제가 가르치는 사람이 되니 그림에 힘이 들어가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림 그리는 것이 예전만큼은 재미가 없어요. 회원들 그림 봐 드리고, 그 그림들이 점점 나아지는 걸 보는 게 훨씬 좋아요.” 수강생은 주로 40~50대 여성들이다. 작업대에 그림과 재료를 잔뜩 펼쳐놓고 수다를 떨며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인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날린다. 민화는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는 그림이다. 그래서 전공자, 비전공자 할 것 없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고 말한다. “혼자서 작업을 하면 그야말로 무념무상이에요. 쉬는 날에 종일 미적거리다가 저녁에 시작할 때가 많은데 정신차려보면 새벽이에요. 저희 엄마가 70대인데 엄마도 제 수강생이에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마추어의 어설픔도 민화의 맛이에요. 저희 화실은 아직 회원전을 연 적은 없지만, 회원전을 열면 작품도 잘 팔린다고 하더라고요.” 수강생들의 즐거움이 신 씨의 보람이자, 회사 다닐 때는 몰랐던 기쁨이 된다. 새벽 서너 시까지 그리고, 서너 시간 자고, 하루 아홉 시간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한 끼 챙겨 먹기도 힘들지만, 모든 게 감사하다. 열정을 쏟았던 직장생활의 끝에 새롭게 찾은 길이 감사하고, 경력이 짧은 자신에게 배우기 위해 먼 길을 오는 사람들이 감사하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최근 아버지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겨자색, 그리고 파란색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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