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Archive

2016 SPRING

SPECIAL FEATURE

오늘날 한국 극장 : 사람들과 동향 특집 5 창극이 살아나고 있다

‘판소리 오페라’를 표방한 창극의 ‘현대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오래 된 내용과 형식의 틀을 깨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전통 판소리를 새롭게 탄생시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국립창극단이 이 뜻깊은 흐름의 중심에 있다.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무형유산이기도 한 판소리는 공연 양식이 매우 단출하다. 부채를 든 가수 겸 이야기 전달자인 소리꾼 1인에 북 반주를 하는 고수(鼓手) 1인, 이렇게 단 두 사람이 공연의 주체이다. 소리꾼은 북 장단에 맞춰 노래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말로 내용을 전달하는 '아니리'를 중간 중간 끼워 넣는다. 또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몸짓과 표정으로 상황을 그려내는 '발림'을 한다.
판소리가 완성되려면 여기에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추임새이다. 고수와 청중이 군데군데에서 창자의 흥을 돋우거나 소리꾼의 솜씨와 이야기 내용에 칭찬과 공감을 표현하는 짤막짤막한 감탄사가 추임새이다.
구전설화(口傳說話)를 토대로 한 전통 판소리는 말하자면 1인 오페라인 만큼, 가수의 소리가 공연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옛 소리꾼들은 요란하게 물이 떨어지는 깊은 산 속의 폭포수 밑에서 소리 수련을 했다.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굉음 사이를 소리가 뚫고 튀어나가지 못한다면 온전히 득음을 했다고 할 수 없다"라는 것이 판소리 세계의 통설이었다. '득음(得音)'은 사전적으로는 '소리를 얻었다'는 뜻이지만 소리꾼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한 의미가 있다.

판소리의 쇠퇴와 창극의 등장
판소리는 조선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17세기 후반부터 서민사회를 중심으로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에는 서민들은 물론 양반들 사이에서도 판소리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러 많은 명창이 배출되었고 어전에서 판소리를 한 명창들이 크고 작은 벼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판소리는 여러 가지 내외적인 요인들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출중한 장인이 아닌 고만고만한 소리꾼 수의 증가, 독연(獨演) 양식에 대한 싫증, 일본 신파극이나 중국 청 시대의 경극 또는 서양 근대극의 유입과 서구식 극장의 건립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에 진입하면서 징후는 더욱 뚜렷해졌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1인극이 아니라 2인 이상의 소리꾼이 나오는 소리예술 공연 장르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것이 판소리가 진화된 형태의 창극이다. 1908년 서울 원각사에서 공연되어 한국 근대 연극의 문을 연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인직의 <은세계>는 한국 최초의 창작 창극이었다. 창극은 점차 출연자도 늘어나고 서구식 극장의 더욱 사실적인 무대에서 공연되면서 종합예술의 성격을 키워나갔으나 창작극이 활발하게 개발되지 않는 등 여러 이유로 오랜 기간 활력을 찾지 못했다.

창극의 현대화
그런 현실 속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년 또는 노년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던 창극 공연에 연극과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들 중심으로, 비교적 젊은 관객들이 밀려들어 표가 매진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흡사 창극이 부흥기를 맞은 것 같은 분위기다. 이는 내용의 새로운 해석과 현대적 감각의 무대미술이 어우러진 창극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산하 단체 중 하나인 국립창극단이 이러한 작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크게 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은 고전 판소리 12바탕 중 내용이 온전히 전승되어온 5바탕, 즉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창극화를 창극 경험이 없는 한국 내외의 저명한 연출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둘째, 한국 것이 아닌 외국의 고전 명작을 창극화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우선 전통예술에는 익숙하지 않은 대신 서양의 극예술에 친숙한 국내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성악예술이기 때문에 잘 보존, 유지해야 하며, 창극은 판소리에서 파생된 극 예술이기 때문에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서구인들의 눈으로 창극을 재해석하거나 서구의 고전을 한국의 예술장르로 표현함으로써 외국인들이 더욱 쉽게 한국의 창극에 접근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T셋째로는 12바탕 중 창의 내용이 온전히 전해 내려오지 않는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등 7바탕을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면서 과감히 재해석, 재창작하는 가운데 창극의 연극적인 성격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이 세 방향의 노력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창극이 동시대성과 보편성을 얻어 가고 있다. 적어도 요즘 관객의 뜨거운 반응을 고려하면 이제 창극은 고리타분한 옛 것이 아니다. 전통극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공연예술로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세 편의 ‘판소리 오페라’
창극 부활의 신호탄은 국립창극단이 오랜 기간의 준비 끝에 2011년 9월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 새로운 개념의 창극 <수궁가(水宮歌 Mr. Rabbit and the Dragon King)>였다. 해외 거장 연출가를 초청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창극을 만들겠다는 'World Master's Choice' 프로그램의 첫 사례로, 독일의 저명한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가 연출을 맡았다.
프라이어 연출의 작품 해석이나 무대는 한국의 창극 팬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원전 <수궁가>의 내용은 우화적이다. 심각한 병에 걸린 바닷속 용왕이 토끼 간을 약으로 쓰면 된다는 말을 듣고 충직한 별주부를 시켜 육지에서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오게 한다. 멋모르고 용궁에 왔던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용왕을 속이고 무사히 풀려나 육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영민한 토끼가 상징하는 민중과, 용왕 및 별주부로 대표되는 지배층 사이의 갈등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는 별주부를 돈과 명예를 좇는 세속적인 캐릭터로, 토끼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영리한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용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명 연장에 골몰하는 지배계급으로 묘사됐다. 또 용궁의 천정에는 수많은 페트병을 매달아 환경오염을 풍자했다. 표현주의 화가로도 명성이 높은 아힘 프라이어는 직접 무대 막과 의상, 가면을 디자인했으며 창극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소리를 하며 움직였다. 그간의 창극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강렬한 시각 이미지의 무대였다. 또 원래 판소리에 있던 풍자와 해학의 내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려내 관객들의 웃음을 자극했다. 예를 들어, 별주부의 요청에 따라 용왕이 토끼의 화상(畵像)을 그려보라고 지시하는 장면에서는 김홍도, 아이웨이웨이, 앤디 워홀, 알브레히트 뒤러, 피카소가 등장한다. 젊은 관객들에게는 고루하게 비칠 수 있는 창극이 화려하고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공연의 성격을 규정하는 수식어도 '창극' 대신 '판소리 오페라'라고 붙였다.
<수궁가>에 이어2014년 11월에는 외국의 거장 연출가에 의한 두 번째 작품인 <다른 춘향(A Different Chunhyang)>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였다. 연출은 루마니아 출신의 미국인으로 북미와 유럽에서 오페라 및 연극 연출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안드레이 서반(Andrei Serban)이 맡았다.
이 작품의 원작 판소리인 <춘향가>는 고위 관료의 아들 이몽룡과 은퇴한 기생의 딸 성춘향 사이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연출가 서반은 <다른 춘향>을 통해 춘향을 사랑이라는 이상적 가치를 지키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미지로 그렸다. 이에 비해 이몽룡은 순수성이 결여된 듯한 인물로 묘사했다. 이몽룡은 고위 관료의 아들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여인과 반짝 사랑을 하다가 이해득실을 따지고 결국 그녀를 잊는다.

무대도 파격적이다. 나선형 계단이 있는 차가운 철골의 검정색 구조물이 무대 양 옆에 서있고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물로 실개천을 표현했다. 영상도 큰 비중으로 활용했다. 영상 속에서는 춘향과 몽룡이 한복을 입은 채 사랑을 나누는데 무대 위의 몽룡은 노트북을 사용하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세 번째 사례는 한국의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로서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이었던 이소영 연출의 <적벽가(赤壁歌, Song of the Red Cliff)>이다. 2015년 9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이 작품에서는 무대와 창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뤘다.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가운데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중심으로 조조의 화용도 피난까지를 다루는 판소리 <적벽가>를 이소영은 정치풍자극으로 개작했다. 수많은 영웅, 장수들이 등장하여 전장의 용맹함을 전하는 남성적인 내용은 전쟁의 와중에 아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스러져간 민초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 작품은 특히 무대미학이 빛났다. 오케스트라 피트로부터 솟아올라와 무대를 떠받치는 것은 북이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것은 딱 하나, 거대한 부채 형태의 구조물이다. 부채는 낡아서 한지가 다 뜯겨 나간 채 살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무대 뒷면을 채우는 한지 느낌의 영상막은 전통 판소리 공연 모습을 보여준다. 고수가 치는 북소리에 맞춰 창자가 부채를 쥔 채 소리를 하는 판소리의 본디 모습을 무대의 한 구성요소로 형상화한 것이다. 부채 구조물은 무대 위에서 회전 또는 위치 변경을 통해 조조가 부대를 지휘하는 언덕이 되기도 하고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제갈량의 초옥, 또는 군선(軍船), 새 등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장면이 이어지면서 영상막과 무대 바닥에는 대나무, 무릉도원, 점, 선, 면 등의 수묵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상징적 무대에서 송순섭 명창의 도창(導唱)과 소리꾼들의 창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해 냈다.

그 밖의 성과
창극의 현대적 해석과 번안에 대한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또 다른 형태의 창극 대중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시리즈 중 <변강쇠타령>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연출 고선웅, 2014년 6월 초연)라는 타이틀로 다시 태어났다. 섹스의 화신 변강쇠에 초점이 맞춰졌던 원작을 헌신적인 여성 옹녀의 심리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개작한 이 작품은 국립창극단 역사상 가장 긴 23회의 공연일정 동안 연일 입장권 매진을 기록했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2012년 11월 한태숙 연출의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으로 재탄생했다. 공원과 호수가 있는 소문난 중산층 주택단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그리스 비극 <메디아>의 창극화(연출 서재형, 2013 년 5월 초연)는 창극의 영역 확대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고, 2014년 3월에는 베스트셀러 영화로 이미 잘 알려진 <서편제>가 윤호진 연출의 같은 제목 창극으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5 년 3월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이 국립창극단의 의뢰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연출가 정의신에 의해 창극으로 제작돼 역시 엄청난 관객몰이를 했다.

보존과 현대화
국립창극단의 창극 대중화•세계화 작업을 뒤에서 밀고 강력히 추진하는 힘은 안호상 국립극장 극장장과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에게서 나온다. 김성녀 감독은 "판소리는 한국의 전통 성악예술이기 때문에 잘 보존•유지해야 하며, 창극은 판소리에서 파생된 극 예술이기 때문에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국내외의 저명한 연출가에게 맡겨 판소리 12바탕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해 무대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언급한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수궁가Mr. Rabbit and the Dragon King>는 한국에서 공연을 마치고 2011년 12월 독일 부퍼탈 극장(Wuppertal Opera Theater)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 9월 다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올려졌다. 고선웅 연출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올해 4월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Theatre de la Ville) 초청으로 프랑스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창극이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 무대에서 경극이나 가부키와 나란히 공연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강일중(姜溢中) 연극평론가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