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韓菓)’는 우리나라의 전통 과자를 말한다.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옛사람들의 철학과 삶의 방식도 그 안에 녹아 있다. 최근 K-콘텐츠의 세계적 확산과 전통 디저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의 인기가 맞물리면서 한과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개성주악은 찹쌀가루와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한 뒤 기름에 튀겨내 조청을 입힌 떡으로, 개성 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사진은 한식 다과점 ‘믜요’의 개성주악이며, 전통적인 조리법을 따라 쫀득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을 살렸다.
ⓒ 믜요
‘프랑스 디저트’나 ‘이탈리아 요리’가 한 가지 음식만 뜻하지 않는 것처럼 한과 역시 단일 품목의 과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이 한 단어 안에는 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고, 맛과 질감이 상이한 수많은 과자들이 공존한다. 그런 점에서 한과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다양한 맛의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표현이다.
한과는 조리법에 따라 크게 유과, 유밀과, 엿강정, 다식, 정과, 숙실과 등으로 나뉜다. 유과는 찹쌀가루 반죽을 쪄서 말린 것을 기름에 튀긴 뒤에 조청을 바르고 고물을 입힌 것으로, 대표적으로 강정이 있다. 유밀과는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후 꿀이나 조청에 재워 만든다. 엿강정은 곡식과 견과를 볶아 조청이나 엿물에 버무려 굳힌 과자다. 그리고 다식은 곡물가루를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넣고 문양을 찍어낸 것이다. 정과는 뿌리채소나 견과류 등을 꿀이나 조청에 조려서 만들고, 숙실과는 과실류의 열매를 익혀서 통째로 꿀에 조리거나 삶아 으깬 뒤 본래 형태대로 모양을 만들어 빚는다.
재료와 기술, 그리고 철학
3대째 전통 제조법을 이어온 선미한과의 유과. 국내산 찹쌀을 20일 이상 자연 발효한 뒤 콩물을 섞어 반죽한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 선미한과
한과 가운데서도 유과는 가장 가벼운 식감을 지닌다. 이 가벼운 질감은 상당한 수준의 숙련도와 긴 공정 끝에 생긴다. 찹쌀을 물에 불려 삭히고, 곱게 갈아서 찌고,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말리고, 기름에 튀기는 과정을 거치며 반죽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층이 차곡차곡 쌓인다. 튀기는 순간 그 공기층이 한꺼번에 팽창하며 특유의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 낸다. 겉은 바삭하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금세 녹아 사라지는 그 질감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 낸다. 발효 기간이 짧으면 속이 단단해지고, 반죽이 충분하지 않으면 제대로 부풀지 않는다. 공장에서 기계식으로 대량 생산하는 유과는 며칠이면 만들 수 있지만, 전통 방식대로 하려면 보통 보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유과를 만드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린 만큼 더 가볍고 더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유과의 바삭함은 단순한 식감이 아니라 시간을 견딘 결과다.
유과의 기본 재료가 찹쌀가루인 것과 달리 유밀과의 바탕은 밀가루이다. 유밀과는 고려(918~1392)와 조선(1392~1910) 시대에 여러 차례 금지령이 내려졌을 만큼 사치스러운 음식으로 여겨졌다. 값비싼 밀가루와 꿀,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만드는 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으며,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잔칫상을 번듯하게 차리려면 유밀과를 상에 올려야 했고, 관리들은 상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밀과로 술상을 차려 대접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왕실 혼례의 예물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고급스러운 과자였다. 오늘날에도 대중적으로 즐겨 먹는 약과가 유밀과에 속한다.
전통적인 약과는 밀가루에 참기름을 섞고 꿀과 술 등을 넣어 반죽한 뒤 기름에 지져 꿀이나 조청에 담가 즙청한다. 좋은 약과는 단맛으로 먼저 밀어붙이지 않는다. 은은한 꿀 향과 참기름 향이 먼저 스치고, 촉촉한 결이 천천히 풀리면서 깊은 고소함이 뒤따른다. 우리가 ‘좋은 약과’라고 부르는 맛도 결국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약과(藥果)’라는 단어의 한자를 풀면, ‘약이 되는 과자’라는 뜻이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약과를 만드는 재료들이 모두 귀했다는 사실이다. 아무 때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꿀은 귀한 감미료이자 약재로도 쓰였고, 참기름은 깨를 심고 거두어 볶고 짜야만 얻을 수 있는 기름이었다. 밀가루 역시 흔히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재료들을 한데 모아 과자를 만든다는 것은 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귀하게 대접하기 위해서였다. 꿀을 아낌없이 넣어 만든 약과는 흔하디흔한 주전부리가 아니라 혼례와 회갑, 명절과 제사, 귀한 손님을 맞는 자리에 올리는 극진한 환대의 음식이었다.
엿강정은 깨·콩·잣·호두 등 서로 다른 향과 식감을 지닌 재료들이 한데 엮여 고소한 맛과 오독오독한 식감을 낸다. 각각의 재료는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엿강정은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 더 풍성한 맛을 선사한다. 귀한 씨앗과 견과를 넉넉히 넣은 엿강정은 주로 겨울철에 만들어 두고 명절에 손님들과 나누어 먹곤 했다. 엿강정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풍요를 나누며 함께 먹는 기쁨을 누리는 음식이다.
이처럼 유과에는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있으며, 유밀과에는 귀한 재료를 아끼지 않았던 마음이 있고, 엿강정에는 풍요를 함께 나누려는 삶의 방식이 담겨 있다. 이 모두를 한과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재료와 기술, 철학이 켜켜이 쌓여 있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는 한국의집 ‘고호재’의 다과상. 계절 재료로 만든 떡과 한과를 차와 함께 소반에 차려 전통 다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구성했다.
ⓒ 국가유산진흥원 한국의집 고호재
매작과는 밀가루에 소금과 생강즙을 넣어 반죽한 뒤 얇게 밀어 썰고, 가운데 칼집을 낸 다음 뒤집어 리본 모양을 만들어 기름에 튀긴 과자다. 꿀이나 조청을 묻히고 잣가루를 뿌려 마무리한다.
ⓒ 한식진흥원
3대로 이어진 맛의 전승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과의 진짜 매력은 느린 속도에 있다. 한과는 빨리 만들 수 있는 과자가 아니다. 재료를 다듬고, 반죽을 하고, 말리고, 튀기고, 꿀이나 조청에 재우는 과정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말은 곧 기다림 자체가 조리 과정의 일부라는 뜻이다. 조금이라도 더 바삭하게, 더 부드럽게, 오래 두고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만드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수고로움보다 먹을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한과가 혼례와 잔칫상, 귀한 손님을 맞는 자리에 빠지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과는 달콤함을 주는 음식이기에 앞서 정성스러운 마음을 건네는 음식이었다. 그 정성은 기술로 축적되고, 세대를 거치며 결국 전통이 됐다. 이를 오롯이 지켜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손이 많이 갈수록 공정을 줄이고 싶은 유혹은 커지고, 오래된 방식일수록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 사라지기 쉽다. 그럼에도 그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온 곳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전통 병과 전문점 호원당이다.
창업자인 고 조자호 (1912~1976) 선생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양반가 전통 음식과 조선 시대 궁중요리를 익히며 자랐다. 그녀는 1939년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일본 동경제과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 양반가의 전통 음식 조리법을 정리한 『조선요리법』을 펴냈다. 당시에는 구전으로 전해지던 조리법을 글로 남긴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선생은 기록으로 남기는 데 그치지 않고, 1953년 서울 종로에 국내 최초의 전통 병과 전문점인 한식다과원을 열었다. 지금의 호원당이다. 고급 한과의 품격을 일반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호원당의 맥은 3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번화한 강남 지역으로 가게를 옮겨 운영 중이다. 호원당의 한과가 특별한 이유는 맛을 기록으로 남기고, 손으로 직접 만들고, 다음 세대로 전승해 온 시간의 역사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호원당은 국내 최초의 한식 다과 전문점으로, 전통 병과의 맥을 3대째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송홧가루를 반죽한 뒤 다식판에 찍어 만든 호원당의 다식이다.
ⓒ 호원당
일상적 디저트가 된 전통 과자
세련된 패키지에 담긴 ‘골든피스’의 약과. 이 브랜드는 전통 약과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선물하고 싶은 품격 있는 디저트로 탄생시켰다.
ⓒ 골든피스
© Golden Piece
과거, 명절이나 잔칫날에만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었던 한과가 최근 들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한과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리미엄 약과 브랜드 골든피스는 전통 약과의 형태와 조리법을 취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과 패키징, 감각적인 브랜딩, 다양한 제품 구성으로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익숙한 맛은 유지하되 크기와 식감,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다듬어 한과를 ‘선물하고 싶은 디저트’로 제안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시도는 한과가 과거의 음식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식문화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 전통 디저트에 대한 세계적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두 번째 시즌까지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한식을 소재로 삼거나 배경이 된 K-드라마들을 통해 한과 역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했다. 특히 숏폼과 SNS에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한과를 즐기는 모습, 오래된 상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자주 노출됐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흠집이 난 ‘파지 약과'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게도 신기한 볼거리였고, 전통 과자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약과를 커피와 함께 먹고, 유과를 아이스크림 위에 올리고, 엿강정을 와인이나 차에 곁들이기도 한다. 시대가 변해 먹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려는 마음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전통은 오래된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래된 마음을 오늘의 방식으로 이어 가는 데 있다. 한과를 먹는 일은 오래된 과자를 맛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래전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빚어낸 마음을 오늘의 입맛으로 다시 만나는 일이다.
엿강정은 잣·호두·콩·깨 등 곡물과 견과류를 엿물에 버무려 굳힌 한과로, 고소한 맛과 오독오독한 식감이 특징이다.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약과가 젊은 세대의 인기 디저트로 떠오르면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나 커피를 곁들이는 방식도 등장했다.
ⓒ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