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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Culture

공존을 위한 건축

Arts & Culture 2026 AUTUMN

공존을 위한 건축 건축가 김정임 이 2012년부터 이끌고 있는 건축사사무소의 이름은 ‘서로아키텍츠(Seoro Architects)’다. ‘서로’는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을 뜻하는 한국어 단어다. 사명에 담긴 의미처럼 김정임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기한 요소들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고찰하고, 그것을 건축 공간에 반영하는 데 관심이 많다. 서울 우면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R&D캠퍼스의 ‘서울 디자인 오피스’ 내부. 반투명 벽체와 격자형 구조물이 공간을 느슨하게 구획하며, 서로 다른 영역 간 시각적 연결을 유지시킨다. ⓒ 신경섭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다. 서로아키텍츠는 여기에 더해 공간 운영의 총체적 시스템을 조직하는 데에도 탁월한 대안을 제시해 왔다. 김정임이 디자인한 공간에서는 서로 떨어져 있던 것들이 만나고, 공고하게 나뉘어 있던 경계가 느슨해진다. 도시와 건물, 회사와 직원, 교실과 복도, 집단과 개인이 공간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초기 대표작이 구(舊) 대우센터빌딩을 리노베이션한 서울스퀘어다. 1977년 옛 대우그룹의 사옥으로 지어진 대우센터빌딩은 압도적인 위용을 과시하며, 한국의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건물로 인식되어 왔다. 서울역 맞은편에 거대한 벽처럼 자리 잡은 이 고압적인 건축물이 김정임의 주도로 2009년 미디어 캔버스를 갖춘 빌딩으로 변모했다. 4만 2천여 개의 LED 램프로 구현된 미디어 파사드는 큰 화제를 일으키며 곧바로 서울의 명물이 됐다. 미디어 파사드 공개 당시 투사된 영상 작품 중 줄리안 오피의 은 도시를 바쁘게 걷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미술과 그것을 지지하는 건축이 조화를 이룬 공공예술 작업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오피스 빌딩은 단순한 업무 시설이 아니라, 도시를 향해 이미지를 발산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인터페이스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건물의 낡은 외관을 새롭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건물과 도시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있다. 서울 성수동은 옛 공장과 창고, 트렌디한 카페와 상업 공간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이곳에 자리한 ‘누디트 서울숲’은 지역의 이러한 혼성적 성격을 ‘어번 하이브리드(Urban Hybrid)’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업무와 상업 등 서로 다른 기능을 한 건물에 담고, 모든 층에 발코니를 설치해 건물 내외부를 연결했다. ⓒ 노경 경계의 재구성 김정임은 사람과 사람, 건축과 도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데 주목해 온 건축가다. 기존 환경을 존중하며, 서로 다른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총체적 환경’을 지향한다. ⓒ 텍스처온텍스처 부동산 개발 기업인 SK D&D의 오피스 플래닝 프로젝트(2019)는 폐쇄적이고 평면적이었던 기존 사무 공간을 입체적이고 유동적인 동선으로 재구성해 풀어낸 작업이다. 경직된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율좌석제를 도입하고, 직원들이 일하며 소통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공간을 개방적으로 열어주었다. 김정임은 “사람의 꽉 막힌 혈관을 풀어주는 장면을 상상하며 공간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한다. 초등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에서도 김정임의 관심은 경계를 여는 일로 향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의‘꿈담교실(꿈을 담은 교실)’ 프로젝트에서 그녀는 2017년부터 3년간 총괄 건축가 역할을 맡았다. 서울의 노후한 초등학교 공간을 리모델링한 이 작업에서 그녀는 교실과 복도를 나누는 단단한 벽을 ‘유연한 경계’로 바꿈으로써 서로 단절돼 있던 두 공간을 중첩시켰다. 이로써 놀이와 모둠 활동이 많은 어린 학생들에게 복도는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라 교실 활동이 확장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김정임에게 건축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매개하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나아가 최근에는 그 관계의 대상이 훨씬 넓어지고 있다. 그녀는 건축물과 관계를 맺는 존재가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형, 자연, 오래된 재료와 폐기물, 심지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생태계까지 건축적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건축물이 놓이는 환경에 관심을 갖지만, 김정임은 그 대상들을 단순한 컨텍스트나 조건이 아니라 사람만큼이나 건축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로 바라본다. 서로아키텍츠 설립 초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던 건축적 실천이 인간과 비인간, 새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관계를 잇는 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그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업이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양천공원 책쉼터(2020)다. 이곳은 부지 선정부터 건축가가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최종적으로 그녀가 선택한 부지는 건물을 세울 수 있는 일반적인 공터가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와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자리 잡고 있는 땅이었다. 그녀는 이 작업에서 건축물의 형태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주변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감나무를 그대로 두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새 건물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건축의 형태를 조절했다. 원래 있던 요소들이 먼저이고, 나중에 들어온 건축이 그 사이에 자기 몸을 맞춘 것이다. 김정임은 이 작업을 “원래 이 땅에 존재했던 나무와 지형, 인공 환경에 건축이 ‘실례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며 슬며시 들어온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이 설계는 그간 김정임이 주로 해왔던 대기업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와는 달리 소규모, 저예산으로 진행된 공공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녀가 오래전부터 고민해온 경계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의 일관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기존 부지에 있던 감나무와 놀이터를 없애는 대신 그대로 수용해 건물을 앉힌 양천공원 책쉼터. 김정임은 건축물이 공원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했다. ⓒ 노경 리모델링의 가치 SK가스 본사 지하 1층의 프리미엄 라운지. 임직원들의 휴식과 창의적인 교류를 위한 복합 공간으로 조성됐다. ⓒ 노경 서울특별시 교육청 ‘꿈을 담은 교실’ 사업으로 새롭게 구성한 원효초등학교 1학년 교실. 복도와 교실의 경계를 느슨하게 풀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 신경섭 김정임은 최근 물질과 생명에 대한 책을 읽으며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건축이라는 행위가 기본적으로 파괴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되, 조금 덜 파괴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빈번한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모색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꼭 필요한 시도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최근 리모델링 작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김정임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도 건물의 표면을 바꾸는 것보다 작동 방식을 바꾸는 데 집중해 왔다. 사람들이 어디로 들어오고 어디로 이동하는지, 막혀 있던 동선을 어떻게 다시 연결할지, 기존 공간을 어떤 방향으로 경험하게 할지를 바꾸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성형 수술’보다는 ‘외과 수술’에 가깝다. 겉모습을 새롭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몸속의 막힌 부분을 찾아 흐름을 다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녀는 리모델링을 통해 ‘재사용하는 것’ 자체의 가치를 인식하게 됐다. 과거에는 오래된 건물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로 흔히 역사적 가치나 건축적 가치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물질적 가치 또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건물이라도 그 자체가 자원이자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김정임이 대구광역시의 의뢰를 받아 리모델링 중인 오래된 창고 건물은 건축 유산이 아닌 평범한 건물이다. 그녀는 다시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얘기한다. 물리적인 변화를 가하기 전에 원래 있던 존재를 인정하는 쪽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이어 오래된 집과 빈집, 혹은 창고를 다시 사용하는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작업들은 그녀가 서로아키텍츠를 설립하기 전, 한국의 대표적 원로 건축가 중 하나인 유걸 의 아이아크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할 때부터 수행해온 대형 사옥 프로젝트들에 비하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작업이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양천공원 책쉼터가 생긴 이후 삶의 만족도가 무척 높아졌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건축가에게 소규모 공공 공간 프로젝트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해주었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하우스 오브 레퓨즈’는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프로젝트이다.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는 지하 공간을 그대로 살려 선큰가든으로 조성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동선을 디자인했다. ⓒ 진효숙 총체적 환경의 구현 서로아키텍츠의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김정임이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적 화두는 무엇일까? 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기존에 존재했던 것들과 새로 형성되는 것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자연과 건축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공존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 건축과 조경, 인간과 식물, 생명과 물질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전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해진다. 이는 그녀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다만 그것이 어떤 형태로 구현될지,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건축’의 모습일지는 그녀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물리적 공간이 점점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건축이 건축다울 수 있는 길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공존하며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투자·배급사 NEW의 논현동 사옥. 경사진 대지의 특성을 살려 로비 바닥의 높이를 달리하고, 앉아 있는 사람과 골목을 지나는 보행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설계했다. ⓒ 신경섭 정다영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 큐레이터

한국적인 현대 회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Arts & Culture 2026 AUTUMN

한국적인 현대 회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이대원 (1921~2005)은 선명한 색채와 경쾌한 붓놀림으로 소박한 전원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는 당대 서구 미술의 유행을 따르는 대신 한국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조형 원리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여기에서 습득한 회화적 언어를 유화로 풀어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으로 마련한 이대원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대원의 그림 앞에 서면 먼저 색이 보인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듯한 나무와 푸른 연못, 노란 들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까이 다가가면 풍경은 수많은 점과 짧은 선으로 흩어진다. 빨강과 파랑, 노랑과 초록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화면 곳곳에서 반짝인다. 이대원은 오랫동안 ‘과수원 화가’로 불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는 별명도 따라다녔다. 경성제국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한때 반도화랑을 운영했으며,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홍익대학교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냈다. 그의 밝은 그림과 화려한 이력은 서로 잘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 남는다. 그의 그림은 왜 이토록 밝고 화려한가? 그 색은 어디에서 왔는가? 단지 작가의 타고난 낙천성 때문일까? 재능 있는 소년 이대원은 점과 선의 표현을 통해 독자적 회화 세계를 구축한 화가이다. 전통 공예의 색과 빛, 동양화의 기법을 재해석하며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 탐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대원은 독학 화가로 알려졌다. 그가 그림을 시작한 시기는 매우 이르다. 13세이던 1933년 이미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대회에서 입선했다. 그의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등학교)의 미술 교사 사토 구니오 (佐藤九二男, 1897~1945)였다. 사토는 수업 시간에 피카소와 야수파 등 서양의 새로운 미술 사조를 소개하는 한편,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도 강조했다. 유영국 (1916~2002), 장욱진 (1917~1990), 권옥연 (1923~2011) 등 훗날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게 되는 화가들도 이 교실을 거쳤다. 1938년 18세의 이대원은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유화를, 공예부에 납힐(蠟纈) 염색 병풍을 출품해 모두 입선했다. 납힐은 밀랍으로 무늬를 막은 뒤 천을 물들이는 전통적인 방염 기법이다. 한 학생이 같은 해 회화와 공예 두 분야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작가의 출발점이 회화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통 미의식과 표현 원리 이대원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조르주 쇠라의 점묘나 빈센트 반 고흐의 역동적인 붓질을 떠올리기도 한다. 과연 그의 회화 언어는 서양 근대미술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1957년 이대원은 아시아재단의 추천으로 미국과 유럽의 미술관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고, 독일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귀국한 뒤 그의 관심은 서구 미술을 모방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국의 미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반과 목기, 반닫이 같은 조선 시대 공예품을 오랫동안 수집하고 자수와 나전 같은 공예 기법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89년 그는 화문집(畫文集) 『혜화동 50년』을 발간했는데, 이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조선 시대의 공예품이지요. 조선조 여인들의 정성이 알알이 담긴 자수의 그 곱고 화려한 색감에는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전통적인 것을 너무 소재에만 집착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은 다시 생각해 볼 일이에요. 물론 작품의 소재를 통해 전통미를 추구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선인들이 갈고 닦은 표현 양식과 기법, 그리고 미의식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 말은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열쇠다. 20세기 한국 화가들에게 ‘한국적인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전통 산수화나 도자기, 민속 문양을 화면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그 답을 찾는 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대원은 전통의 외형을 인용하기보다 전통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예컨대 자수에서 붉은 실과 푸른 실을 나란히 놓으면 두 색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맞닿아 있으면서 각각의 색을 유지한다. 나전의 빛도 그에게는 하나의 단서였다. 어두운 옻칠 위에 박힌 자개는 빛을 공기 속으로 흩어 놓기보다 표면에서 반사한다. 또한 그는 전통 산수화와 사군자를 배우며, 점과 선으로 산과 나무를 표현하는 동양화 기법을 익혔다. 따라서 이대원의 회화에서 한국성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 안에 있다. 그는 오랫동안 축적돼 온 전통적인 미의식과 표현 원리를 자신의 유화 안에서 새롭게 작동시켰다. 이 점에서 그의 색점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와 차이가 있다. 신인상주의의 점묘법은 서로 다른 색을 나란히 놓아 관람자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게 하는 원리를 활용했다. 반면 이대원의 점은 멀리서도 개별적인 색을 유지하고, 여러 겹의 색층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점이 처음부터 서양의 점묘법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묵의 효과를 유화로 옮기기 위해 산의 능선 같은 것을 그릴 때 점을 찍기 시작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담(秘苑)〉.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208 × 504cm. 가로 5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전통 자수와 나전에서 길어 올린 이대원 특유의 색채 감각을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같지만 다른 풍경 1970년대 초 이대원은 고향 파주의 농원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30년 동안 이곳의 풍경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러나 같은 그림을 되풀이한 것은 아니었다. 계절이 바뀌고 햇빛이 달라질 때마다 농원은 새로운 화면이 되었다. 1970년대의 농원에서는 아직 서양식 원근법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까운 곳에 큰 나무가 서고 시선은 그 뒤의 먼 풍경으로 이동한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 공간은 점차 압축되고, 푸른색과 보랏빛 계열의 색조가 화면에서 두드러진다. 1990년대를 지나면서 변화는 더욱 뚜렷해진다. 멀리 있던 산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나무와 연못, 꽃의 색선이 화면 전체에 고르게 퍼진다. 앞과 뒤의 차이는 눈에 띄게 약해진다. 점의 성격도 달라졌다. 1970년대의 색점이 나무와 산, 들판의 형태를 따라 비교적 차분하게 놓였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점이 길어지며 짧고 빠른 색선이 화면을 덮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방향의 색선들이 화면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어느 한곳으로 집중되지 않는다. 얇은 색층을 반복해 겹치면서 화면 전체에 고르게 퍼진다. 이대원의 후기 풍경이 강렬한 색채를 지니면서도 지나치게 격렬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후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그림에서 원근의 깊이가 줄어들수록 오히려 화면의 크기는 커진다. 1990년대 이후 제작된 작품들은 가로 길이가 2m를 넘어 5m, 7m까지 이른다. 그 앞에 서면 관람자는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기보다 그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나의 소실점이 사라진 화면에서 시선은 나무에서 연못으로, 다시 꽃과 들판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동아시아에는 산수화를 이와 비슷하게 경험해 온 오래된 전통이 있다. 옛사람들은 명산을 그린 그림을 방 안에 펼쳐두고 마음으로 그 안을 여행했다. 이를 ‘와유(臥遊)’라 불렀다. 이때 그림은 바깥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라기보다 감상자가 들어가 노닐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었다. 이대원의 후기 과수원도 점차 이러한 공간에 가까워진다. 파주의 농원에서 작업하는 이대원의 사진을 보면, 그는 높은 곳에서 풍경 전체를 내려다보기보다 나무 사이, 땅 가까이에 앉아 있다. 사방에서 솟아난 과일나무 가지가 그의 머리 위를 덮는다. 그가 그린 것은 멀리서 눈으로 바라본 과수원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마음으로 경험한 과수원이었다. 한국 근현대 회화의 한 흐름을 전통적인 ‘산수’에서 서구적인 ‘풍경’으로의 이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이대원의 후기 회화에서는 그 방향이 다시 뒤집힌다. 그는 풍경을 그리면서 그것을 감상자가 들어가 경험하는 산수의 공간으로 되돌렸다. 〈북한산〉. 1938.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 × 100cm. 가을날 북한산에서 받은 인상을 강한 색채 대비로 표현한 작가의 초기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적인 현대미술 〈전설의 마을〉. 1964. 캔버스에 유화 물감. 129 × 79cm. 산과 나무, 사슴, 구름 등 십장생도의 구성 요소들을 평면적으로 병치했다. 전통 회화와 민예에서 자신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을수록 ‘무엇이 한국적인가’라는 질문도 다시 떠오른다. 이대원의 작업은 한국적 현대미술이 과거의 외형을 재현하지 않고도 전통과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화면에는 조선 시대 자수나 나전칠기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전통 산수화의 산을 그대로 옮겨 그리지도 않는다. 대신 자수처럼 색을 나란히 놓고, 나전처럼 빛을 표면에 머물게 하며, 전통 회화처럼 점과 선을 쌓아 자연을 만든다. 전통의 모양을 빌린 것이 아니라 전통이 화면을 만들어 온 원리를 자신의 회화 언어로 바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이대원의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가 열리고 있다. 올해 8월 6일에 시작해 11월 8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학창 시절 초기작부터 말년의 대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약 70년에 걸친 작가의 화업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김원룡 (1922~1993)은 오랜 벗이었던 이대원의 그림을 두고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이 말에서 가져왔다. 이대원의 그림은 실제로 밝다. 그러나 그 밝음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한 장소를 바라보고, 점 하나와 선 하나를 반복해서 놓고, 그 위에 다시 색을 겹치며 만들어낸 밝음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대원을 다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서양에서 들어온 유화라는 매체 안에서 그 원리를 키워냈고, 전통 소재의 재현이나 모방에도 머물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과수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그곳에는 한국의 ‘전통’이 ‘현대’가 되는 하나의 방식이 있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현실로 소환한 전통의 가치

Arts & Culture 2026 AUTUMN

현실로 소환한 전통의 가치 예올은 우리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2년 출범한 비영리 단체다. 문화유산 보호 활동부터 시작해 전통 공예 장인들과 현대 공예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그 바탕에는 전통이 오늘날의 일상에서도 충분히 향유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자리한다. 사진은 서울 가회동에 자리한 ‘예올 한옥’이다. 주로 공예 전시를 선보이는 공간이다. 바로 옆에는 현대식 건물인 ‘예올 북촌가’가 자리하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이민희 677만 명. 한 도시의 인구수가 아니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 1월부터 4월까지 집계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로, 역대 최고치다. 지난해 동 기간과 비교했을 때 21%나 상승했다. 이렇게 늘어나는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쏟고 있다. 아울러 민간 영역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는데, 전통문화의 가치를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예올도 그중 한 곳이다. 실천 가능한 작은 일부터 2026년 5월 열린 예올의 공예 기획전 《Soft Object》에 출품된 박성극 의 도자 작품이다. 도자에 한지 특유의 질감을 구현했다. 예올은 기획전과 공예 후원 사업을 통해 뛰어난 공예가들의 작품을 일반에 소개하고 있다. 예올 제공 “1990년대 중반쯤부터 외국 손님들을 맞을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보여줄 것도, 선물할 것도 마땅치가 않더군요. 무척 안타까웠죠. 한편으로는, 제가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그리 높지 않았어요. 그런데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의 부인이었던 크리스틴 보즈워스 같은 분들과 교류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그분들의 높은 관심이 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죠.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일들을 계기로 해서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분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함께 뜻을 모아 예올을 만들게 됐습니다.” 예올 창립 멤버이자 2013년부터 예올을 이끌고 있는 김영명이사장의 말이다. 이처럼 예올은 회원들이 우리 문화의 가치를 함께 공부하고 알리자는 취지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예올의 철학은 시작부터 확고했다. 거창한 명분 대신 실천 가능한 작은 일부터 찾아 올바르게 지키자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초기 주요 사업 중 하나였던 문화유산 안내판 개선이었다. 관광객들의 눈길은 가장 먼저 안내판을 향하기 마련이다. 그런 연유로 관광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안내판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짜임새 있는 내용으로 관심을 끌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문화유산의 영문 안내판은 내용이 미흡하고 표기도 부정확했으며, 만듦새 또한 세련되지 않았다. 이 사업은 2005년, 한국 불교의 중심지인 서울 조계사부터 본격화됐다. 예올은 조계사의 역사를 개괄하는 종합 안내판과 소장 유물의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제작했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는 여수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문화재 안내 체계 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여수의 문화재를 이순신(1545~1598) 장군 관련 유적, 불교 유적, 근대문화 유적 등 테마별로 나누어 총 150개의 안내판을 도시 전역에 설치하고 소책자와 오디오 가이드도 제작했다. 예올이 초기 사업으로 문화유산 보호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가치와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올은 눈에 띄는 성과를 좇기보다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일에 집중했다. 설립 초기부터 사직단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사직단은 조선(1392~1910) 시대 토지의 신과 곡물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와 함께 조선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던 장소이다. 하지만 종묘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달리 사직단은 일제강점기 ‘사직공원’으로 격하된 뒤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왔다. 이에 예올은 사직단 정비와 복원을 시급한 과제로 여기고, 2003년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사직단의 역사성 회복과 환경 정비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을 열었다. 이를 통해 복원의 필요성을 공론화했으며, 같은 해 사직단의 보호 구역이 기존 9,090㎡에서 4만 3,587㎡로 크게 확대될 수 있었다.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려는 예올의 관심은 사직단에 그치지 않는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여수 애양원 역사박물관의 자료 정리와 번역 작업을 후원한 것도 그중 하나다. 애양원은 1911년 선교사 R. M. 윌슨이 한센병 환자를 위해 설립한 광주 나병원에서 출발, 이후 1927년 여수로 이전을 시작해 1935년 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 현재의 여수애양병원에 이르고 있다. 널리 알려진 유산이 아닐지라도, 자칫 쉽게 잊힐 수 있는 역사까지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예올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2017년 예올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허대춘·안이환두석장의 작업이다. 두석장은 전통 목가구에 쓰이는 장석을 만드는 장인으로, 장석의 세공 기술과 전통 문양을 포크와 같은 일상 용품에 적용해 두석 공예의 새로운 쓰임을 보여줬다. 예올 제공 전통 공예의 오늘과 내일 예올의 ‘부여, 지역 문화 싹 틔우기’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부여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공예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와 지역 공예가들이 힘을 합쳐 다양한 문화 상품을 개발했다. 예올 제공 예올의 사업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우리 문화를 아끼는 시민들이 후원과 자원봉사로 힘을 보태는 협업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 ‘부여, 지역 문화 싹 틔우기’ 사업 또한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통해 구체화됐다. 충청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부여는 고대 국가 백제(BC 18~AD 660)의 마지막 수도로서 120여 년 동안 번영을 누렸던 지역이다. 그래서 백제 시대의 문화유산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언젠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빼어난 조형성을 보여주는 당대 금속 공예의 걸작품이니 그럴 수밖에요. 그런데 박물관을 나서면 부여란 도시에서 백제 문화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 지역의 문화유산과 공예, 그리고 사람을 연결하는 지속 가능한 문화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현재도 활발하게 자문을 해주시는 이상철아트 디렉터, 일본에서 지역 공예 살리기를 추진해온 디자이너 시로타니 코우세이 등 여러 전문가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2012년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김영명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예올은 부여에 소재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최공호교수(2022년 퇴임)의 총괄 아래 관련학과 학생들을 비롯해 도예가, 목공예가, 화가 등 지역 예술인들의 협업으로 부여의 고유성을 표현한 문화 상품을 개발했다. 예올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전통문화를 오늘날 어떤 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예올은 문화유산을 과거에 머무르는 보존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소환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결국 문화란 사람이 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샤넬과 함께 진행해 온 ‘예올X샤넬 프로젝트’가 그런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업이다. “명품의 상징성을 가진 세계적 기업과 함께 장인 정신과 가치를 존중하는 공통된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공예의 미래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예를 들어 금박장과 옻칠 공예가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제작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일반인들이 합리적 가격에 소장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전통이 박제되지 않고 현실 속으로 들어오게 되죠.” 건축물이나 유적과 달리 전통 공예는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일상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함과 필통, 그릇과 화병은 전통성과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킨다. ‘예올X샤넬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인 2013년, 김영명 이사장이 예올을 책임지면서 시작한 사업이 바로 ‘예올이 뽑은 올해의 장인’과 ‘예올이 뽑은 올해의 젊은 공예인’이다. 전통 공예의 기법과 기능을 구현함과 동시에 현대적 쓰임을 위해 개방적 사고를 가진 장인을 선발해 작품 개발과 전시, 홍보, 판매 등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젊은 공예인들에게는 실험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한다. 물론 이런 프로젝트에는 적잖은 고민이 뒤따른다. 대상자 선정부터가 쉽지 않은데, 이는 보수적 성향이 짙은 전통 장인들을 설득하는 데 적지 않은 공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올은 뛰어난 기량은 물론이고, 전통 방식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태도를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야 젊은 공예가와의 협업에서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지고, 서로의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장인은 소목장 조복래선생님이에요. 여러 분야의 자문위원들이 위원회를 열어 선정하는데, 기술적 우수성만 따지지 않고 인품이나 주변의 평판 같은 것도 감안합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변화에 열린 태도를 갖고 있는지도 중요하게 봐요. 점점 빠르게 바뀌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 맞는 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니까요.” 김 이사장의 전언이다. 올해 ‘예올X샤넬 프로젝트’의 두 주인공은 소목장 조복래와 도예가 백경원 이다. 최근 예올 북촌가에서는 두 사람이 합심해 만들어낸 작품들을 《진소 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이란 제목의 전시로 선보였다. 최근 예올 북촌가와 한옥에서 열린 ‘2026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 모습이다.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된 소목장 조복래와 ‘올해의 젊은 공예인’ 도예가 백경원의 작품을 통해 나무와 흙이 지닌 본연의 물성을 조명했다. ⓒ 샤넬 협업의 힘 “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대표는 전통과 지역성의 동시대적 해석에 중심을 두고 작업하는 디자이너입니다. 2019년부터 예올과 전시 및 공예 프로젝트를 함께해 왔고, 2023년부터는 ‘예올×샤넬 프로젝트’의 전시 디렉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새로운 해석과 향유라는 예올의 방향성에는 참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전시를 준비하는 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이사장은 4년째 프로젝트 총괄을 맡고 있는 양태오 디자이너를 언급하며, “덕분에 양질의 프로젝트를 지속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예올과 함께한 장인들, 작가들은 후원과 지원을 받아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로 인한 수익도 얻을 수 있다. 이는 “소비자가 장인들의 후원자가 되게 하자”는 예올의 의지이기도 하다. “전통 공예 장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놓인 경우가 많아요. 사명감만으로 기능이 전수되는 것은 아니니까, 저희의 노력이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또 이런 측면도 있어요. 경첩이나 자물쇠 등을 만드는 장석(裝錫)의 경우, 목가구의 부속물이란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프로젝트를 통해 장석만으로도 작품이 되고, 젊은 목공예가와의 협업으로 장석이 주연이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거든요.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는 작업이었죠.” 예올은 문화유산 보호와 공예 후원 같은 주력 사업 외에도 영어 강좌, 유적지 답사,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전통문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온 예올은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국내 사업에 더해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들과 협업해 기획 전시를 해보겠다는 포부가 그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 문화의 가치를 지키고 새롭게 발견해 온 예올의 시선이 이제 더 넓은 세계를 향하고 있다. 최태원 작가

한국적 미감을 담은 패션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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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미감을 담은 패션 아트 ‘패션 아트’는 옷을 예술적 표현의 매개체로 활용하는 현대 미술의 한 영역이다. 금기숙 은 한국적인 맥락에서 패션 아트의 개념을 개척한 국내 1세대 작가다. 그녀는 철사, 구슬, 폐기물 등 통념에서 벗어난 소재로 한복의 선과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웨어러블 아트’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 전경. 금기숙 작가의 작품 기증을 계기로 마련된 이 전시는 40여 년에 걸쳐 패션과 미술,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축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했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금기숙은 가느다란 철사로 마치 3차원 공간에 드로잉하듯 인체나 옷의 형상을 엮고, 그물코 사이사이에 구슬과 천 조각 등을 꿰거나 결합해 시각 효과를 극대화한다. 회화적 요소와 조소적 형태를 접목하는 이와 같은 기법은 평면과 입체, 조형물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패션 아트를 순수 예술의 차원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때 피켓 요원들이 입었던 의상을 꼽을 수 있다. ‘눈꽃 요정’으로 널리 알려진 이 옷은 철사를 엮어 한복 치마의 풍성한 볼륨감을 구현하고, 구슬과 천 조각, 비닐 등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눈꽃과 얼음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의상에 맞춰 머리에 쓴 화관은 과거 고려(918~1392)나 조선(1392~1910) 시대 부녀자들이 착용했던 족두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의상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당시 올림픽 의상 감독 중 한 명이었던 금 작가는 서로 다른 디자인의 피켓 요원들 의상 30벌을 6개월 동안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우리 전통 의복의 핵심은 자연에 순응하는 ‘흔들림’과 ‘떨림’이라 할 수 있어요. 사뿐사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저고리 고름과 치맛자락이 흔들리고, 족두리의 떨새 장식도 파르르 떨리잖아요. 몸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떨리는 시각과 촉각의 감각을 의상에 적용했죠. 이는 다른 나라의 전통 의상에서는 볼 수 없는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생명력과 에너지를 상징한 이 작품은 한국적인 요소로 21세기 감성에 화답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전시장에 설치된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피켓 요원들을 위해 제작된 이 의상은 당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됐다. 금기숙의 패션 아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대기록을 세운 전시 〈백매〉. 2024. 철사, 비즈, 직물. 1,500 × 1,450 ㎜. 작가의 정원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철사로 형태를 만들고 투명한 비즈로 점을 채우면서 매화의 생명력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진사 연화 청자 드레스〉. 1995. 노방. 1,350 × 800 ㎜. 고려청자의 비색(翡色)과 진사의 붉은빛, 연꽃 문양의 상징성을 드레스로 해석한 초기 대표작이다. 동서양 및 과거와 현재의 미를 연결하려는 실험 정신이 담긴 작품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1991년부터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했던 금기숙은 2018년 정년퇴직 후 작업에만 집중해 왔다. 금 작가는 얼마 전 국내 전시 역사를 새로 쓰며 크게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올해 3월 22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린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은 자신의 작품 56점과 아카이브 자료 485점을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기획된 특별전이었다. 이 전시는 40여 년에 걸친 금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패션 아트 전시였음에도,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2026년 꼭 봐야 할 전시’로 평가되며 빠르게 입소문이 돌았다. 관람객들은 익숙한 의복의 형태가 뜻밖의 재료와 결합해 탄생한 작품들에 탄성을 내질렀고, 공예나 현대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작품에 쉽게 다가설 수 있었다. 조명을 활용한 전시 연출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에 관람 대기 행렬이 이어지는 오픈런 현상이 연일 나타났고, 당초 예정일보다 전시 기간을 일주일 더 연장했다. 폐막일 기준 최종 누적 관람객 수는 113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이래 최고 기록이자 국내 단일 전시로도 손꼽히는 대기록이다. 특히 어둠 속에 전시된 최근작 (2024)와 연꽃에서 모티브를 얻은 (2025)가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며 열기를 더했다. 1층 로비 공간에 설치된 와 은 패션 아트가 어떤 방향으로 더 확장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전시를 본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소재는 평범한데 완성된 결과는 비범하다”거나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섬세한 작품”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패션 아트의 개척자 〈학창의(鶴氅衣)〉. 2016. 철사, 비즈. 1,760 × 2,400 ㎜.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평상복으로 입던 겉옷이다. 실제 형태와 비례를 충실히 재현한 작품으로, 흰색과 검은색의 절제된 대비를 통해 사대부의 인품과 학식을 표현했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의류직물학을 전공한 금기숙은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한동안 전업주부로 살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조선 시대 복식을 연구하면서 학자의 길을 걸었다. “원래 꿈이 화가였어요. 그래서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아이들 키우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려 각종 미술 대회에 출품했는데, 계속 탈락하는 거예요. 화가로서는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공부라도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죠.” 그러나 어릴 적부터 지녔던 창작에 대한 열망은 그녀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금기숙은 모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8년부터 이듬해까지 1년간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 시기 미국에는 196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아트 투 웨어(Art to Wear)’ 운동이 패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귀국 후 홍익대학교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에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녀는 한복의 유려한 선과 색감, 전통 문양 등을 조형화하는 데 착안했다.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것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기 위해 만든 다.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같은 고려 청자 유물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청자의 푸른색과 진사의 붉은색, 연꽃 문양을 드레스로 표현했다. 동서양의 아름다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경계를 넘고자 한 실험 정신이 담긴 작품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가의 직물 소재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에 수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듬해 한 패션쇼에서 이 작품이 인용된 것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죠.” 종이와 직물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질되는 데 한계를 느낀 작가는 꽃다발을 묶을 때 사용하는 철사로 직조의 기본 재료인 실을 대체했다. 또한 어느 날 우연히 본 거미줄에서 영감을 받아 패턴에 적용했다. 한발 더 나아가 썩지 않는 폐기물이 환경 문제가 되자 빨대, 스티로폼, 비닐 등을 반짝이는 구슬처럼 사용해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녀의 손에서 옷은 움직이는 조각이 되고, 버려지는 쓰레기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금기숙의 작품을 먼저 알아본 것은 눈 밝은 해외 갤러리였다. 2003년 시카고 제임스 타이거만(James Tigerman) 갤러리에서 전을 개최했는데, 이때 출품한 작품 3점이 갤러리 문을 열자마자 30분 만에 모두 판매되었다. 이 일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고, 곧이어 미네소타, 뉴올리언스, 도쿄, 상하이 등의 대형 갤러리로부터 전시 의뢰가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금기숙은 건축물의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패션 아트를 확장시켰다. 대형 크루즈선 얼루어 오브 더 시즈(Allure of the Seas)호의 6층부터 15층을 관통하는 중정 공간에는 부유하는 형태의 작품 < Dream of Utopia >를 설치해 압도적인 공간감을 연출했다. 또한 미국 텍사스 아르고(Argo) 그룹 본사 로비와 중국 베이징 포스코차이나 본부 중앙홀 등에도 대형 모빌 형태의 작품을 설치해 건축과 패션 아트의 융합을 선보였다. 서울공예박물관 특별전 당시 전시동 로비에 설치된 와 . 의복의 형태에서 벗어난 이 작품들은 금기숙의 패션 아트가 지닌 폭넓은 조형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인내로 엮어낸 예술 유금와당박물관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금기숙 작가. 그녀는 철사와 비즈, 폐소재 등을 활용해 의복을 조각과 설치, 공간 예술로 확장하며 자신만의 패션 아트 세계를 구축해 왔다. ⓒ 이민희 금기숙의 작업실은 기와 전문 박물관으로 알려진 유금와당박물관에 있다. 2008년 개관한 이곳은 금 작가와 남편이 함께 운영한다. 부부의 수집품인 동아시아 와당 및 전돌 5천여 점과 중국 도용(흙 인형) 2천여 점을 소장 중이다. “전통 의복을 연구하다 보니 도용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남편과 함께 국내외 고물상을 뒤지며 하나씩 모은 것을 기증하고 나서도 많이 남았네요.” 금 작가의 남편은 ‘기와 검사’라는 별명이 붙은 유창종 변호사다. 검사 시절 취미로 즐기던 와당 수집을 통해 기와 전문가가 된 그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이던 200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와당과 전돌 1,873점을 기증했다. 이는 단일 종류 유물 기증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한국 와전을 시대별로 망라한 데 더해 중국·일본·동남아시아 와전까지 체계적으로 수집해 컬렉션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기숙의 작업들은 대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어릴 때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에서 꽃이 떨어지면 어머니가 무명실을 손에 쥐어 주셨어요.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보여드리면 양 끝을 묶어서 목에 걸어주시곤 했죠. 그런 기억이 제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금기숙의 패션 아트는 재료와 형식, 개념을 끊임없이 확장해 온 실험의 역사이다. 1990년 서울 동덕미술관(현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3인전 에서 처음으로 패션 아트 의상을 선보인 이래 패션을 단순한 의복에서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제 그녀의 작업은 의상과 조형 예술, 설치, 환경 예술까지 아우른다. “하나하나 손으로 엮고 묶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색채가 어우러지며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하죠.” 하루 대부분을 작업에 빠져 보내는 금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대표작은 언제나 지금 만들고 있는 다음 작품이다. 멈추지 않는 그녀의 손끝에서 패션과 예술의 경계는 오늘도 새롭게 허물어지고 있다. 이기숙 작가

‘문제아’에서 ‘문제 해결사’로 - 건축가 양수인

Arts & Culture 2026 SUMMER

‘문제아’에서 ‘문제 해결사’로 - 건축가 양수인 양수인은 2010년부터 건축사사무소 ‘삶것’을 운영하며, 뚜렷한 개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이다. 건축은 물론 광고 캠페인, 상징 조형물 등 다양한 작업을 병행한다. 삶것을 ‘건축에 기반을 둔 디자인 회사’로 소개하는 그는 건축가가 삶의 다기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결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건축이 '예술'이 아니라 '실용'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최적의 명료한 해법을 찾기 위해 영역을 넘나들곤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2017년 선정작 ‘원심림’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설치된 이 작품은 바람과 원심력을 이용해 그늘을 만드는 가벼운 건축을 실험한 프로젝트로, 양수인의 이름을 건축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 신경섭 에서 최근의 까지 건축가 양수인이 설계한 지난 15년의 작업을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모의 변화다. ‘이것저것’ 할 때의 ‘것’과 ‘삶’을 합친 사무소 이름 ‘삶것’의 모토처럼 그는 상징 조형물(이것)부터 대형 오피스(저것)까지 우리 삶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물들을 디자인해 왔다. 겉으로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는 작은 작업과 큰 작업 사이에는 일관된 전략이 흐른다. 주어진 조건을 그저 수용하기보다 비틀어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태도다. 이러한 전략가적 면모는 한국의 아틀리에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유독 두드러진다. 양수인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2010년 서울로 돌아왔다. 그가 머물렀던 뉴욕과 달리 서울은 여전히 지을 것이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은 도시였다. 그가 안정된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온 이유 역시 이 도시의 다이너미즘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 사회가 경제적 성장을 넘어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는 흐름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괴짜 예술가에 가까운 1인 건축가에서 출발해, 직원 20여 명을 이끄는 중형 설계사무소의 대표로 성장하는 동안 개인, 기업, 공공을 넘나들며 다양한 고객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작업의 스펙트럼 역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마치 하와이의 서퍼가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듯 그는 도시의 리듬과 속도를 즐기며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하와이에 몇 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다. 가벼운 건축 삶것 건축사사무소를 이끄는 양수인은 건축가를 ‘문제 해결자’라고 정의한다. 그는 고정된 스타일에 얽매지 않고, 장소와 조건을 읽고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설계를 통해 건축과 도시, 일상의 관계를 새롭게 제안해 왔다. ⓒ 이민희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당선작 은 양수인을 대중에 각인시킨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 이전에도 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아르코미술관·소마미술관이 공동 주최하여 청계천에 설치한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 옆에 새로 생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넓은 앞마당에 세워진 이 작업은 훨씬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업에는 양수인이 주요한 디자인 방법론으로 제시해온 ‘가벼운 건축’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 은 무거운 구조 대신 가벼운 장치로 그늘을 만드는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지붕은 구조체와 기초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바람과 회전력, 즉 원심력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그늘을 만든다. 패브릭을 매단 장치는 모터와 플라스틱 날개를 통해 회전하며 위로 올라간다. 이들이 모여 하나의 지붕과 같은 상태를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일종의 관람 환경으로 적극 고려되었다. 초록색 구름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휴식 장치는 엄격한 그리드 체계 위에 세워진 미술관 건축에 경쾌한 감각을 더했다. 공격적인 리노베이션 문화 관련 기업 컬쳐랜드의 서울 대치동 사옥이다. 주변 건물과 채광, 조망 조건을 면밀히 분석해 공간을 배치하고, 유리 루버와 테라스, 옥상 정원을 통해 업무 공간과 외부 환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 신경섭 가벼운 건축에 이어 양수인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또 다른 영역은 리노베이션이다. 그는 이를 단순히 기존 건물을 보존하는 행위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노베이션이 놓인 경제적 조건과 현실에 주목한다. 그는 기후 위기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신축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노베이션은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사회경제적 해법이 된다. 더불어 한국에서 건물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즉흥적인 현장 중심 제작 방식 사이에서 완성된다. 양수인은 제작 측면에서 이 긴장 상태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리노베이션은 설계와 시공을 오가며 보다 적극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수인은 기존 건물에 깊이 개입하는 리노베이션을, 의학 용어를 빌려 ‘침습 수술’이라 부른다. 이러한 태도가 잘 드러나는 작업이 인천 이다. 폐수 처리 공장이었던 건물을 문화 시설로 전환한 이곳에서 그는 기존 건물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법규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해법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새 건물을 기존 건물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공장 내부를 관통하는 고리 형태의 구조를 삽입하고, 이를 로비와 동선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독립된 증축으로 인정받으면서, 새 건물만 법규를 충족시켰다. 기존 공장은 손대지 않은 채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개입이 공존하는 재생 건축이 완성되었다. 문제 해결의 디자인 인천의 옛 화학 공장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코스모 40. 기존 산업 시설의 골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증축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재생 건축의 모델을 제시했다. ⓒ 신경섭 “주어진 상황에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명료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 양수인이 말하는 이 전략은 특히 오피스 건물 설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비싼 대지 위에서 의뢰인의 경제성과 공간의 효율성, 그리고 건축가의 창의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약과 규제가 많은 작업이지만,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에서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이 의뢰하는 빌딩 설계는 그의 성향과 잘 맞는다. 은 이러한 접근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무실, 문화 시설, 임대 상가가 결합된 복합 건물로 대지 조건에 따라 형태와 배치가 결정되었다. 남쪽에는 인접 건물이 붙어 있기 때문에 코어와 주차를 그쪽에 집중시켰다. 대신 업무 공간은 동·서·북 세 방향으로 열어 채광과 환기를 확보했다. 저층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공연장이 들어서고, 상층에는 일부를 들어 올린 스카이 오피스를 배치해 전망을 넓게 확보했다. 건물 곳곳에는 테라스와 옥상 정원을 두어 사용자들이 언제든 외부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외관에는 유리 루버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는 서향의 강한 빛을 차단하면서도 낮과 밤의 인상을 다르게 만든다. 이 건물은 주변 조건을 읽고, 빛과 전망, 공간을 하나의 논리로 풀어낸 결과다. 마치 방정식을 풀듯 도출된 해법이다. 말로 설계하는 건축가 코스모 40 내부 모습이다. 유리와 철골로 만든 신축동을 기존 건물의 왼편에 끼워 넣었다. ⓒ 신경섭 최근 양수인의 관심은 AI다. 다만 그는 이를 유행이 아닌 철저히 ‘도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2025년 8월 삶것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그는 AI를 활용해 실제 설계 공모안을 제작한 실험을 공개했다. 동료 건축가들의 큰 관심을 끈 이 실험의 핵심은 설계 행위의 인터페이스가 마우스에서 언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하나의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대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빠르게 생성되고 수정되며, 때로는 폐기되는 임시적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 이는 기존의 자동화 설계 방식과는 다르다. 정해진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최적화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낸다. 건축가는 이를 지시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양수인은 이 실험을 통해 AI가 건축가를 대체하는 존재라기보다 건축가의 언어적 사고를 실행 가능한 도구로 변환하는 매개체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육군사관학교 내 위치하는 원불교 화랑대 교당은 원불교 신자 및 장병들의 신앙 생활을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은 이 건물의 핵심으로, 영적인 전이와 몰입감을 극대화하도록 유리 입면으로 디자인되었다. ⓒ 신경섭 속도와 태도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설계와 시공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오설록 티하우스는 공장에서 제작한 건축 부재를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함으로써 100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완공될 수 있었다. 건축의 주요 공정이 현장이 아닌, 공장에서 이루어졌던 프로젝트이다. ⓒ 최용준 1975년생인 양수인은 한국 사회가 긴 개발기를 거쳐 국제 사회의 동시대로 진입하던 1990년대에 이십 대를 지나왔다. 그는 이른바 ‘X세대’라 불리는, 한국의 문화적 풍요를 처음 체감한 세대에 속한다. 이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선진국’의 환경을 경험했고, 콤플렉스 없는 태도로 작업을 이어왔다. 그의 모토는 단순하다. 조직의 규모를 키우고,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며, 즐겁게 창작하는 것. 그는 누구보다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시간은 또 다른 흥미로운 활동으로 확장된다. 2024년에는 자신이 설계하고 공동 투자한 ‘틸라’ 사옥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후 『볼것』이라는 책자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과 포럼 등을 열고 있다. 그의 에너지는 건축 내부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문화로 확장된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과 태도는 서울이라는 초고도 도시의 작동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된다. 양수인의 건축은 특정한 스타일이나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에 가깝다. 느리고 무거운 건축의 속성에 비해 그가 제안하는 가볍고 빠른 건축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처럼 보인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환경은 그가 어디서든 작업할 수 있는 감각과 근육을 만들어준 최적의 테스트베드였을지도 모른다. 기존 건축의 전제를 의심하던 문제아는 이제 문제 해결사의 위치에 선 중견 건축가가 되었다.

두 세계를 잇는 조각

Arts & Culture 2026 SUMMER

두 세계를 잇는 조각 1935년생인 김윤신은 1970년대 한국 조각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1세대 조각가이다.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국내 주류 모더니즘에서 단절된 채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 문법을 구축했다. 동양의 음양 사상에 기반을 둔 작업 철학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해 오고 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 처음으로 초청, 국내외 갤러리들의 주목을 받으며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2024년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김윤신 개인전 《Kim Yun Shin》 전경이다. 작가가 한국으로 거점을 옮긴 후 국내에서 처음 개최한 전시이며, 목조각 연작과 함께 회화 작품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나무를 깎고, 돌을 다듬는다. 어쩌면 예술의 가장 오래된 몸짓이 이런 것 아니었을까? 우리가 예술을 갈망하고 추앙하는 이유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최첨단 시대에 문득 아련히 떠오르는 근본에 대한 그리움. 김윤신의 작품 앞에서 그저 먹먹하게 한참을 서 있는 이유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에서 최근 최대 규모의 김윤신 회고전이 열렸다. 소원을 비는 돌탑처럼 쌓아 올린 나무, 든든한 장승처럼 우뚝 선 나무, 껍질까지 고스란히 제 모습을 드러낸 나무까지. 1970년대부터 이어온 김윤신의 목조각이 숲처럼 펼쳐졌다. 그녀의 별명은 ‘전기톱을 든 90세의 할머니 조각가’. 그녀가 든 톱은 나무를 베어 숨을 끊어놓는 게 아니라 나무를 다듬어 숨통을 열어준다. 희한하게도 그녀의 작업은 차가운 돌조각에서도 나눠먹을 수 있는 빵 같은 온기가 감돈다. 예술로 다독인 역사의 상흔 김윤신은 나무 및 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 세계를 일구어 온 한국의 1세대 조각가이다.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실험을 통해 조각, 회화, 그리고 회화 조각이라는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해가고 있다.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김윤신은 잘 나가던 작가, 안정적인 교수 자리를 박차고 198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이유는 하나. 그곳의 나무가 좋아서다. 40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 열린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개인전은 방탄소년단의 RM을 비롯한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 전시장을 다녀간 또 다른 중요 인물이 있었으니, 이듬해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았던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였다. 이후 세계 최고 비엔날레의 초청, 글로벌 갤러리의 러브콜, 아트페어에서의 주목, 뉴욕·런던에서 열린 개인전…. 수십 년간 지구 반대편에서 묵묵히 작업만 하던 김윤신은 이렇게 재발굴됐다. 두 세기를 건너, 두 대륙을 가로지르며 오로지 예술 하나로만 사는 그녀에게 기자들이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다. “왜 당신 삶에는 작업밖에 없나요?” 김윤신의 답은 매번 똑같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니까요. 왜 나무 조각이냐고? 어려서부터 나무는 내 친구였어요. 내가 나무이고, 나무가 곧 나예요.” 그 말을 이해하고, 그녀의 작품 앞에서 서성이게 하는 먹먹함의 뿌리를 찾기 위해 8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 작가는 어린 시절을 강원도 북부 안변의 산골 마을에서 보냈다. 두 지역 모두 현재 북한 영토이다. 1남 5녀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그녀의 언니들은 결혼해 출가했고, 열한 살 위 오빠는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중국 만주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곁에는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느 날 책 싼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산을 넘어 학교를 오가던 김윤신의 눈앞에 아름드리 소나무 수십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저 좋은 나무를 왜 베었을까. 아휴, 저걸 다 일으켜 세워야 하는데!” 그때는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기로, 일제는 전투기 연료 확보를 위해 소나무의 뿌리를 캐고 송진을 짜냈다. 또래 아이도 없는 산골 마을에서 김윤신의 친구는 나무뿐이었다. 꽃과 벌레가 말동무였으며, 수수깡과 진흙이 장난감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나를 데리고 산에 가셨어요. 3대 독자 외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를 매일 드렸어요. 내가 작은 돌 하나를 찾으면 어머니는 그 위에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시고, 촛불이 꺼지면 나는 또 다른 돌을 가져와 그 위에 얹고 또 촛불을 켰죠.” 김윤신은 1945년 여름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중국에서 해방을 맞았다. 어수선한 시기에 홀로 두만강을 건너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와 재회했다. 몇 년 후에는 한국전쟁이 터졌다. 열다섯 살 김윤신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떠밀리듯 피난을 떠났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녀는 폭죽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버지와 언니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트라우마가 됐을 법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김윤신은 예술혼으로 다졌다. 쓰러져 간 소나무와 죽어 간 생명들에 사랑과 정성을 담았다. 나무토막을 켜켜이 올린 1970년대 제작한 ‘기원 쌓기’ 연작의 출발 지점이다. 한옥 집 짓는 방식처럼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나무토막을 맞추며 쌓아올렸다. 그러다 보니 전시 후에 작품이 흩어지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원목을 중간중간 깎고 다듬어 쌓아 올린 형태의 작업이 탄생했다. 깎은 나무에서 새벽의 돌탑이 어른거린다. 원시 사회의 ‘토템’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작가는 이것을 “삶이 매달린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곤 했다. . 2013. 캔버스에 유채. 150 × 460 cm. 개인 소장. © Kim Yun Shin 사진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작가 제공 작가 정신의 탄생 .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 135 × 202 × 56 cm.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소장. © Kim Yun Shin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김윤신은 1955년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했다. 단색화의 하종현, 전위예술(아방가르드)의 이승택 등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1964년 12월에는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전후 프랑스로 간 한국의 미술가 대부분은 중견 남성이었으니, 조각을 공부하러 파리로 간 여성 예술가는 김윤신이 처음이었다. 파리에서 그녀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경험했고, 내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추상미술에 눈을 떴다. 조각을 가르쳐 드리며 가깝게 지낸 이응노의 ‘동백림 사건’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68혁명의 자유로움도 체득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1969년 봄,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그녀는 주목받는 조각가가 됐다. 1973년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이우환·권영우·김창열과 함께 한국 대표로 초대됐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여성 조각가 단체 ‘한국여류조각가회’ 발족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1978년부터는 나무 껍질을 그대로 둔 채 속살을 다듬어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나무의 고유한 형태를 지키면서 그 안에 작가 정신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마침내 김윤신은 자신의 작업에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개체가 ‘합이(合二)’되어 ‘하나(合一)’로 만나며, 그 합이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인간 존재처럼 계속 무한대적으로 합과 분이 반복된다. 전기톱을 사용해 분(分)에 의하여 창조된 선과 면은 합(合)인 동시에 분(分)이다. 나의 정신, 나의 존재, 그리고 나의 영혼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김윤신의 작가 노트 ‘재료와 대화를 시도하다’ 중 한 대목이다. 두 세계의 합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026년 3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개최된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층 전시장 전경. 이곳에는 작가의 예술 세계가 형성되기 시작해 완성에 이르렀던 1990년대까지의 주요 작품들이 선보였다.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작품은 우직하고 작가는 솔직하다. 김윤신은 이민 간 조카의 초청으로 방학을 틈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는 단순하고 근원적이었다. 지평선이 아름다웠고, 사람들이 순했으며, 재료가 될 굵고 단단한 나무가 무성했다. 해방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김윤신은 두려울 게 없었다. 길가에 쓰러진 가로수를 끌어다가 작품 두 점을 만들었다. 무작정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전시를 하고 싶다 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설득했다. 호평과 함께 1985년 현지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작가의 목조각은 ‘자연주의’다. 그녀는 작업에 맞춰 나무를 구하지 않는다. 일단 원목을 구해다 작업실에 펼쳐놓고 며칠 동안 관찰한다. 나무의 크기, 형태, 단단함, 향, 껍질, 옹이와 나이테까지 자세히 관찰해 특징을 파악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대화’라 부르는데, 소통하고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전기톱을 든다. 나무 그 자체에서 작업이 시작되고, 나무와 호흡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쉼없이 완성해 나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뜻밖의 전환을 불러왔다. 원목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주변에 버려진 목재를 모아다 작업했다. 못 없이 나무를 잇는 방식으로 일으켜 세웠다. 각 면에 색을 입히니 풀 죽은 나무에 생기가 돌았다. ‘회화-조각’인 셈인데, 어차피 김윤신에게는 평면과 입체라는 장르의 경계도 없었다. 고립의 제약이 오히려 두 세계를 하나로 합일시켰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국적 문물로서 남미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가졌지만, 김윤신은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모더니즘이 한창일 때 스스로 낯선 땅의 이방인이 된 그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한국성을 구현했다. 서양에서 빌려온 문법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끊겼던 우리의 오래된 문법을 다시 찾아 이었다. 김윤신에게 작품은 닫힌 결말이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시작되는 열린 과정이다. 합쳐서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의 하나가 되는 무한한 순환 속에서 조각가의 소원은 여전히 단 하나다. “내 소원은 작업하다가 죽는 거야. 예술이 삶이 되어야지.”

과거의 가치를 미래로 잇는 사람들

Arts & Culture 2026 SUMMER

과거의 가치를 미래로 잇는 사람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하 아름지기)는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문화 단체이다. 문화유산 환경 개선 사업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전통문화를 가까이에서 누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 개발한다. 아름지기는 전통문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촉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통의옥 사옥 2층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현대적인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아름지기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2001년 신연균 현재 명예 이사장을 중심으로 사회 각 분야의 리더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당시는 전통 보존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고, 도처에서 고유한 생활 문화가 사라져가는 상황이었다. “지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문화가 없어지겠다”는 우려와 절박함이 재단 출범으로 이어졌다. 민간 코디네이터 아름지기의 첫 행보는 ‘정자나무 가꾸기’였다. 마을 입구나 길가에 자리한 정자나무는 보통 수령이 수백 년이어서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하다. 여름철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니,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더위를 피하곤 했다. 또한 정자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넘어,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지켜주는 신령한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마을에 액운이 들면 정자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도 많았다. 마을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회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정자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소통의 공간이자 지역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아름지기는 정자나무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하여 이를 가꾸고 주변을 개선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 사업은 기업 후원과 개인의 재능 기부를 통해 2002년 경기도 평택의 수령 430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나무의 건강 상태를 진단해 썩은 부위를 치료하고 영양을 공급하는 외에도 지지대와 울타리, 벤치 등을 마련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이 사업으로 서울 돈암동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흥천사의 느티나무(보호수), 경상남도 함양의 운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등 훼손되어 가던 문화유산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정자나무 가꾸기와 함께 아름지기가 힘을 쏟은 것은 ‘궁궐 환경 가꾸기’였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사람이 살며 보살피지 않으면 금방 허름해지기 마련이다. 아름지기는 2003년 8월부터 20년이 넘은 현재까지 매해 봄과 가을이면 조선(1392~1910) 시대 궁궐 중 하나인 창덕궁을 청소한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시민들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관심 있는 회원들 및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전각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묵은 때를 닦아내는 한편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각 내부를 수리하고 도배를 새로 하거나 후원 조경을 정비하는 등 사업을 한층 확장했다. 이후에는 창덕궁뿐 아니라 덕수궁, 경복궁 등 다른 궁궐들에서 가구와 장신구 등 전각 내부의 집기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왕실 용품을 재현하는 프로젝트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과 장인들로 자문단을 꾸려 주제 및 품목을 선정하고, 고증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다. 그리고 완성된 재현품은 조선 시대 의궤와 실록 등 다양한 사료를 참조해 배치한다.이로써 역사 속의 궁궐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름지기는 국내외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전국의 문화유산 안내판 디자인 개선 작업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디자인이 제 역할을 해내고 있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맺은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을 시작으로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창경궁, 덕수궁, 종묘까지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이는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꾸는 파동을 일으켰고, 민관 협력에 의한 공공디자인의 바람직한 사례로 널리 회자되었다. 2016년에는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목조 주택을 개조해 서울 한양도성의 전시 안내센터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제주도의 대표적 지질 유산인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서귀포시와 협약을 맺어 경관 개선 사업에 착수했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면서 한국의 전통미를 반영한 현대적인 공공디자인은 관람객들의 편의뿐 아니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 속에서 아름지기는 기업과 기관 사이에서 민간 코디네이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내고 있다. 아름지기는 에르메스 코리아의 후원 및 국가유산청과의 협업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경복궁 사정전의 가구 및 집기 재현 사업을 진행했다. 다분야 전문가들과 무형유산 장인들이 참여하여 고증을 통해 총 14종 20점을 제작했다. 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함께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아름지기 제공 일상의 쓰임을 위해 아름지기는 문화유산 주변의 공공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협약을 맺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 5대 궁궐의 안내판을 새로 디자인해 설치했다. 아름지기 제공 경복궁 서쪽 문인 영추문을 마주 보는 아름지기 건물은 주택인지 사무 공간인지 언뜻 가늠하기 어려운 외관이다. 현대식 건물 1층의 전시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사옥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대로를 향해 있는 목재 미닫이문을 열면 경복궁 돌담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현대식 건물과 한옥이 서로 바라보는 구조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아름지기의 사무 공간이고, 한옥은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아름지기의 한옥은 전통의 원형을 가져오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불편함을 개선해 새로운 쓰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우리의 의식주 문화와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곤 한다. 아름지기의 전시와 관련해 장영석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기획의 취지는 전통문화의 정수를 탐구하고 오늘에 되살려 그 가치를 내일로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환경에 부합하는 시의성,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 이야기, 그리고 현대 혹은 다음 세대에게 전할 창의적 시도를 함께 담습니다.” 이를 위해 아름지기는 매해 활발히 활동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우리 전통 공예품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전통 기술을 되살려보려고 합니다. 예컨대 한국 음식이 글로벌화하고 있는데 이를 꼭 와인과 먹어야 할까? 우리 음식에 맞는 우리 고유의 술과 함께 즐길 수 없을까? 그런 고민을 전시에 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의도의 핵심은 전통문화가 소수의 특별한 향유물이 아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일상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지난 2006년 열렸던 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도예가 민영기의 막사발, 이기조의 백자, 이윤신의 청자 그릇으로 꾸민 찻상, 반상, 돌상 등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전시를 통해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하고 의미 있는 돌상 차림 확산에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로 돌상을 대여하고 돌떡을 키트로 제품화한 비즈니스가 많이 생겼으니까요.” 2017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린 아름지기의 해외 한복 전시 < Couture Korea 우리의 옷, 한복 >은 규모나 화제성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예감할 수 있었다. “전시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교민분들과의 만남이 많았는데, 전시 내용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해외 문화 기관과의 협업, 큰 규모의 해외 전시에 대한 노하우를 익힐 수 있어서 저희에게도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연결과 확산 사진은 2023년 아름지기 사옥에서 개최된 《blurring boundaries: 한복을 꺼내다》의 전시 장면.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의상 디자이너 크리스티나 김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옷공방이 함께 조선 시대 복식을 토대로 현대적인 한복 디자인을 제안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 해마다 봄기운이 완연해질 무렵이면 아름지기 사옥을 일반에 공개하는 ‘오픈하우스’가 열린다. 2022년 첫 행사에는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 조명 기구에 100년 만에 불을 밝혔던 2018년의 프로젝트를 상세히 소개했다. 오픈하우스는 아름지기의 주요 사업을 공개해 전통을 잇는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조명하는 한편 한복과 장신구를 직접 착용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 같은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과 팝업 스토어도 운영한다.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기금 마련도 중요한 과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아름지기 기금 마련 바자’는 해를 거듭하면서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참여로 화제를 낳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름지기 차세대 멤버인 영프렌즈가 있다. 아름지기 영프렌즈는 새로운 아름지기 활동 네트워크와 기금 모금, 그리고 국내외 사업의 확산을 모색하고자 결성된 후원자 그룹이다. 바자회 같은 모금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며 상품 구매가 얼마나 매력적인 후원 방식인지 알리는 데에도 주력한다. 전통문화를 매개한 브랜드 외에도 지속가능성, 친환경, 공정무역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들의 참여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름지기는 지난해 제2대 홍정현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아름지기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름지기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창조적 계승이 우리의 일상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누구나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발걸음을 이어갈 것이다. 2018년 진행된 《가가례家家禮: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전시 장면. 전통적인 제사의 형식과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늘날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바뀌고 있는 제사 문화를 집중 조명한 전시다. 아름지기 제공

표준이라는 구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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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이라는 구심점 가구 스튜디오 스탠다드에이(STANDARD.a)는 공장식 조립 가구가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15년 동안 꾸준히 수제 디자인 가구를 선보여 왔다. ‘가치를 굳건히 지켜내는 것이 표준’이라는 이들의 믿음은 갤러리, 카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복합문화공간 등 여러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이들을 만났다.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스탠다드에이의 쇼룸에서 류윤하, 이학준, 안민규(왼쪽부터) 공동 대표가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15년 동안 묵묵히 핸드 크래프트 가구를 선보이며 브랜드의 단단한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 국내의 디자인 퍼니처 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이름이 알려진 몇몇 대형 브랜드와 서울 외곽의 소규모 가구 공장들을 통해 판매되는 가구들이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무렵 목공이 대중적인 취미로 부상하는 가운데 직접 디자인을 해서 가구를 제작하는 공방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더불어 디자인한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 형태 또는 국내외 유명 가구를 큐레이션하여 공간을 연출한 퍼니처 카페가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스탠다드에이는 그런 흐름 속에서 2011년 출발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류윤하, 안민규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목공을 취미로 시작하다가 외연을 넓힌 이학준 세 사람이 공동 대표로 스탠다드에이를 이끌고 있다. 이들은 첫 발을 내디뎠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철학으로 가구를 만든다. ‘독일, 스웨덴, 일본,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누구나 금세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원목 가구 브랜드가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우리가 대표가 될 순 없을까?’ 스탠다드에이의 이러한 포부와 도전은 점점 그 목표에 닿아가고 있다. 브랜드명 ‘스탠다드에이’에서 철학이 느껴진다. 소문자 ‘a’는 알파를 뜻하는데, 표준에 특별한 알파를 더하되 과하지 않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는 오브제 성향이 강한 제품보다는 공간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가구를 지향한다. 그래서 소재도 처음부터 원목으로 정했다. 더불어 브랜드 슬로건인 ‘Standard not Normal’에는 표준이 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치를 지켜야만 얻을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을 반영했다. 원목은 스탠다드에이의 정체성이다. 주로 어떤 목재로 가구를 만드는가? 기본적으로 오크, 체리, 월넛 세 가지를 쓰고 메이플을 추가로 활용한다. 목재를 10년 이상 다뤘지만, 아직도 어렵다. 나무의 산지가 바뀌면 가공하는 법도 달라진다. 보통 미국산 목재를 사용하는데, 미국은 지역마다 기후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목재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재료를 다루기가 까다롭다. 그럼에도 원목 가구는 만져봤을 때 질감이 좋고 정서적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지점을 고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코팅의 경우 가급적이면 오일이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래커칠로 표면에 막을 씌우면 목재가 지닌 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가구를 만들 때 전통적인 미감도 고려하는가? 공간의 성격과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작업한 H&B 스토어 올리브영 안국역점의 경우, 서울 북촌에 자리한다. 인근에 경복궁과 창덕궁이 있고, 바로 맞은편은 골동품 가게가 즐비한 인사동이다. 뒤로는 북촌한옥마을이 있다. 그래서 이곳은 지역성을 반영해 한옥을 모티프로 리뉴얼되었다. 우리는 퍼니처 아티스트 김현희 작가와 협업해 고가구에서 볼 수 있는 장석을 알루미늄 디테일로 표현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섞으려 시도했다. 새로운 느낌을 위해 전통 가구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월넛도 사용했다. 그리고 2024년 말에는 ‘세븐스도어’를 운영하던 김대천 셰프가 비건 레스토랑 ‘비움’을 오픈할 예정이라며 우리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찰 음식에 뿌리를 둔 채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어서 그는 한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어 했다. 한식 이미지를 가구에 녹여 달라는 의뢰를 받고, 기존 2번 의자를 기준으로 새 의자의 형태를 다듬었다. 그때 한옥 창살에 착안해 의자의 등 부분을 세로선으로 채웠다. 샘플을 제작해 실제로 사용해 본 후 제품을 출시한다고 들었다. 스탠다드에이 설립 초기, 판매한 제품에 문제가 생겨 다시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이후부터 우리는 일정 기간 샘플을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문제가 생길 만한 요인들을 미리 해결하고 디자인을 수정해 최종 형태를 결정한다. 5번 의자는 지끈을 직조하는 서양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데, 뒤집어 보면 ‘ㄱ’자로 꺾인 못이 박혀 있다. 그 못에 끈을 걸면 언젠가는 빠지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서양 문화권에서는 사용자들이 못을 다시 박거나 고쳐서 사용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불량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서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견고함을 보완하기 위해 수십 개의 못을 하나로 합친 판을 만들어 대체했다. 만약에 디자인과 기능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기능을 먼저 염두에 두고 형태를 찾는 편이다. 쇼룸 한쪽 벽면에 연출된 스탠다드에이의 대표적인 모듈형 원목 책장과 다양한 스툴 제품들. 짜맞춤 기법의 정교함과 오일 도장 마감으로 나무 본연의 결을 살린 디자인이 돋보인다. 스탠다드에이를 대표할 만한 가구는 무엇인가? 기준은 역시 판매량인 것 같다. 초창기에는 고객들이 다이닝 테이블 2번과 3번을 가장 많이 찾았다. 요즘에는 의자를 많이 구매한다. 7번 의자는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모수 서울’과 ‘품서울’ 등 유명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에서 이 의자를 가져간 후 입소문이 났다. 7번 의자는 우리가 기존에 만들었던 가구들에 비해 화려하다. 의도적으로 형태감이 도드라져 보이게 디자인했다. 이 의자를 만들고 나서 어디에 두면 가장 좋을까 상상했을 때 떠올랐던 공간은 레스토랑이었다. 통상 3시간가량 이어지는 긴 식사 시간 동안 자세를 편하게 바꾸려면 딱딱한 등받이보다 부드러운 등받이와 편한 팔걸이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는데, 유명한 셰프들이 이 의자를 선택해서 놀랍기도 하고, 우리의 의도가 적중한 것 같아 뿌듯하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각자 선호하는 가구가 다르긴 한데, 대체로 6번 의자를 편안해한다. 스탠다드에이의 현재 시그니처인 7번 의자. 스탠다드에이의 의자 시리즈 중 화려한 축에 속하는 이 의자는 사용자를 배려한 우아한 곡선 라인이 특징이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조민석 건축가의 매스스터디스와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첫 작업인 원남교당은 어떠했나? 매스스터디스가 원남교당 내부에 들어갈 벤치를 제작할 수 있는 목공팀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연이 닿았다. 그간 우리가 작업했던 공간들은 대부분 층고와 면적이 일정한 편이었는데, 원남교당은 스케일이 달랐다. 공간 자체가 둥글고, 층고도 높았다.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열 번도 넘게 찾아가 공간이 비로소 익숙해진 후에 작업을 시작했다. 따뜻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가구 모서리들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적용했다. 유서 깊은 건축물인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주한 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스탠다드에이가 정교하게 되살려낸 계단 난간. 도면이 없는 상태에서 사진에만 의존해 원작자의 건축적 유산을 고증해 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건물 내부를 부수고 골조만 남긴 상태에서 안전 진단을 했는데, 콘크리트와 철근이 삭아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복원이 불가능했기에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으로 지을 것인가, 동일한 형태로 다시 지을 것인가라는 숙제가 있었다.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1922~1988) 건축가의 작업인 만큼 최대한 살릴 것은 살리고, 조금씩 새로운 터치를 넣기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는, 상징적이고도 중요한 계단의 난간 작업을 맡았다. 굉장히 까다로운 형태였는데, 설계도도 없고 사료는 빛바랜 사진 세 장이 전부였다. 처음에는 고사했는데, 우리가 안 하면 목재로 복원할 수 있는 팀이 없어 금속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참여했고, 도면도 없이 사진에 의지해 만드느라 굉장히 고생했지만, 고가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건물이 보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그 외에도 피크닉 같은 복합문화공간, GS25, 우아한형제들 같은 기업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스탠다드에이만의 방법론이 있다면? 가장 어려운 점은 실무진과 결정권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거나 명확히 소통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감사하게도, 디자인적으로는 실무자들이 우리 작업을 믿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 풀어나가기 수월한 편이다. 같은 업종이라도 공간에 따라 분위기는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디렉팅하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의견을 귀담아듣는다. 정답이 따로 있진 않지만, 시간을 들여 깊게 고민하면 정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기능이나 제작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보완하는 쪽으로 접근한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의 대부분이 최소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헤리티지가 쌓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준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 15년이다. 패널을 이용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가구는 만드는 쪽도 편하고, 쓰는 사람도 적당히 사용하고 버릴 수 있다. 이렇게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에 직접 손으로 공들여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묵묵하게 우리만의 시간을 쌓아 나가고 싶다. 스탠다드에이는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건축가와 협업하여 원남교당의 내부에 설치되는 가구 작업을 도맡았다. 건물 내부의 높은 층고와 원형 구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가구 모서리들을 부드럽게 마감했다. 스탠다드에이 제공

한 폭의 그림이 된 절제의 미학

Arts & Culture 2026 SUMMER

한 폭의 그림이 된 절제의 미학 서울시무용단의 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을 논할 때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국가무형유산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미니멀한 연출과 정제된 군무로 국내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전통 의례의 맥락 속에서 친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섬세하게 조율해 냈기 때문일까? 1막 장면으로, 문과 출신의 벼슬아치인 문관들의 춤 문무이다. 흰색 단령을 입고 간결한 관모를 쓴 무용수들이 대열을 만들며 의례의 시작을 알린다. 두 개의 ㄷ자 형태 조명이 설치된 무대 디자인은 종묘를 시각화한 것이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는 종묘제례악이라는 다소 낯설고 어려운 주제에도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평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는 한국의 전통을 모티브로 한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구체적인 수치가 그것을 증명한다. 2022년 초연 이후 해마다 90%가 훌쩍 넘는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해 왔는데, 공연이 오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 성과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반복된 재공연에도 불구하고 약 3,000석의 객석을 꾸준히 채우며 안정적인 수요를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가 일시적인 화제성을 넘어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의 이례적인 행보는 해외 무대까지 이어졌다. 이 작품은 초연 이듬해인 2023년 뉴욕 링컨센터에 초청되어 현지 관객들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예술 주간’ 프로그램 중 유일한 유료 공연이었음에도 3회 공연이 모두 전석 매진되었다. 당시 뉴욕의 여러 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작품의 독창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올해 1월에는 제41회 뉴욕 댄스&퍼포먼스 어워드에서 의 안무가인 정혜진, 김성훈, 김재덕이 ‘최우수 안무가·창작자’ 부문에서 수상했다. 통상 ‘베시 어워드’라 불리는 이 상은 뉴욕에서 공연한 작품 중 가장 예술적이고 혁신적인 성취를 이룬 작품과 예술가에게 주어진다. 베시 어워드에서 한국 예술가가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를 계기로 는 국제 공연예술계에서도 유의미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성과만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높은 객석 점유율이나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 그리고 수상 경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전부는 아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일까? 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몰입의 순간에는 남다른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1막 중 한 장면이며, 무과 출신의 관리인 무관들이 추는 무무이다. 이 춤은 검술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현재’로 호출된 전통 서울 종로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종묘는 조선(1392~1910)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쉽게 말해 조선의 왕과 왕비를 기리기 위한 의례 공간인 셈이다. 종묘제례는 종묘에서 거행되는 의례를 뜻하고, 종묘제례악은 의례가 거행될 때 연행되는 음악, 노래, 춤을 통칭한다. 종묘제례악에는 음악과 노래뿐만 아니라 춤도 포함이 된다. 과거 조선 사회에서 ‘악’은 음악과 노래, 춤 모두를 지칭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무용단의 는 이 의례에 등장하는 ‘일무’를 모티브로 했다. ‘일무’는 ‘줄을 지어 추는 춤’을 일컫는데, 64명이 여덟 줄로 정렬해 추는 팔일무가 일반적이다. 종묘제례악에는 크게 ‘보태평’과 ‘정대업’이라 불리는 음악이 사용되며, 일무는 선왕들의 문덕(학문의 덕)을 기리는 문무 ‘보태평지무’와 선왕들의 무공(군사상의 공적)을 찬양하는 무무 ‘정대업지무’로 나뉜다. 특별한 장신구와 의복, 유장한 멋이 있는 음악, 부드럽게 절제되어 있는 군무는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독특한 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일무를 포함해 다양한 한국 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작품을 수정하며 연출적인 부분을 보완하고 있지만, 4개의 막을 차례로 선보이는 큰 구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1막에서는 전통 일무의 특징적 요소를 뼈대로 한 창작이 선보이는데, 작품의 지향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이어지는 막을 예비한다. 2막은 버드나무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춘앵무를 모티프로 한다. 춘앵무는 본래 1인무지만, 이 작품에선 대형 군무로 확장하여 재미를 더했다. 펄럭이는 넓은 소맷자락마저 춤의 일부가 되어 우아함을 극대화한다. 3막에서는 무용수 3명이 대나무의 절개를 보여주듯 절제된 미를 구현하며 작품의 호흡을 정돈하고, 마지막 4막에서는 ‘신일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일무가 펼쳐진다. 각 막은 서로 다른 주제에 따라 그에 걸맞은 춤과 음악, 의상을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4막 ‘신일무’의 한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듯 음악과 의상, 춤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무용수들의 유기적인 군무는 작품이 지닌 생명력과 동시대적 감각을 보여준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협업으로 빚어낸 무대 궁중 무용인 ‘춘앵무’를 재해석한 2막 장면. 본래 춘앵무는 화문석 위에서 추는 춤인데, 이 작품에서는 붉은 화문석을 공중에 매달아 무대 장치로 화려하게 연출했다. 서울시무용단 제공 에는 여러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러나 가 선사하는 가장 직접적인 매혹의 원천은 단연 무용수들의 정제된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미장센이다. 깜깜하게 암전된 극장 속 하얗게 펼쳐진 무대 위에 정렬한 무용수들은 그 자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정확하게 맞물리는 대형의 변화가 무대를 살아 있는 장면으로 바꿔놓으며 시각적 쾌감을 제공한다.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를 사용하되 다양한 움직임과 효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자유로운 운용 방식을 택한 음악도 작품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완성도는 협업의 결과다. 안무가 정혜진은 한국 춤의 구조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며 독특한 조형성을 만들어 낸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는 의상과 색채, 무대 이미지를 통해 각 장면의 분위기를 선명하게 구축하며, 막마다 서로 다른 시각적 리듬을 부여한다. 그간 , , 등의 작품으로 국립무용단과 호흡을 맞추며 정구호가 창조한 한국적 이미지는 서울시무용단의 에서 새롭게 응집된다. 여기에 김재덕의 음악이 더해지며 의례가 지닌 느리고 엄숙하다는 고정관념을 때로는 따르고, 때로는 벗어나며 몰입의 방식을 설계한다. 서로 다른 장르에서 축적해 온 감각이 작품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가 정교한 하나의 풍경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간 종묘제례와 같은 전통 의례는 동시대 한국 공연예술계에서 자주 다뤄지지 않았다. 는 의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하는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의례가 지닌 세련된 카리스마를 동력으로 한 시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의례를 기반으로 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역시 가 열어 보인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 온 는 앞으로 국내외 무대에서 어떤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갈까? 한국의 전통 의례를 새로운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공연예술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어떤 가능성을 열어 보일까?

시간의 흔적을 품다 - 건축가 조성룡

Arts & Culture 2026 SPRING

시간의 흔적을 품다 - 건축가 조성룡 1944년생인 조성룡은 한국 현대 건축에서 독자적 목소리를 내온 건축가다. 그는 공간에 내재한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는 유무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하며, 이를 현재와 연결하려 한다. 공동 주택이나 공공 건축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크고 작은 공동 주택과 미술관, 기념관, 공원 등을 꾸준히 설계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내에 있는 꿈마루는 원래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지어진 건물이다. 노후화로 인해 철거 후 신축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조성룡 건축가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레노베이션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덕분에 이곳은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다. ⓒ 김재경 “신축이나 증축만이 아니라, 오래된 장소와 건물을 재생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성룡의 이 말은 그의 건축 철학을 단적으로 웅변한다. 그의 작업은 형태의 완결을 궁극적 목표로 삼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켜켜이 쌓이며 공간과 건물 표면에 남는 ‘흔적’을 통해 의미가 축적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흔적은 단순히 소멸이나 쇠퇴의 증거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과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조성룡의 건축은 그 자원을 어떻게 촉발하고 보살필 것인지를 묻는 지속적 실천이다. 한반도 남단에 자리한 작은 섬 소록도에 조성된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 시설물’이 대표적 사례다. 2016년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기념 조형물 제작에 대한 의뢰가 들어왔지만, 그는 조형물 대신 소록도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안내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센병 환자들의 주거지인 이 섬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것인지 고민한 끝에, 그는 1970년대 지어진 낡은 주택 한 채를 레노베이션하여, 이곳에 살았으며 또한 여전히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것이 소록도를 위해 건축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조성룡에게 건축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는데, 건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수많은 후배 건축가들에게 모범이 되고 자극을 주었다. 도시와 사람, 시간이 만나 만들어내는 서사를 보다 섬세하게 읽어내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성룡의 업적은 완성된 건물 자체에 있기보다는 설계 과정에서 그가 제기했던 질문들이 쌓여 만들어낸 담론에 있다. 공공적 맥락을 중시하는 그의 시각은 설계 공모를 비롯해 교육·주거·문화 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조성룡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적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해 온 건축가이다. 건축물의 화려한 외관보다는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닌 삶의 방식을 우선시한다. 특히 그는 공간에 내재한 역사의 흔적을 절제된 미학으로 되살려내는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 한겨레신문 설계 공모에서 시작된 문제의식 설계 공모는 으레 제한된 프로그램과 규정, 촉박한 일정이라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계 공모는 건축가가 장소의 맥락을 압축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훈련의 장이 되기도 한다. 조성룡에게도 그것은 단순히 좋은 평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설계 공모의 까다로운 조건들은 조성룡에게 대지가 지닌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날카롭게 접근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초기 스케치와 다이어그램, 비교안들은 이후 실현 단계에서 형태와 기능을 검증하는 이론적·실무적 자산으로 남았다. 조성룡은 1983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및 기념공원’ 국제 공모에 당선되면서 건축계에 등장했다. 서울 잠실에 있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기념성과 일상성의 접점, 공공적 기억의 조직을 고민한 이 작업은 시설이 도시 경관과 시민 삶을 연결하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파트의 질서가 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입주자들이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도록 각 동의 1층을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 비웠으며, 주차장과 주거동 사이에 널찍한 마당을 설치했다. 이 경험은 공적 시설의 설계가 기념적 요소와 일상적 사용을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 주었고, 이후 공공 프로젝트에서 장소성·공공성과 관련된 판단들을 반복적으로 촉발시켰다. 그에게 설계 공모라는 장은 결국 완성된 건물 하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질문을 발화하고 검증하는 연습장이었다. 그 연습은 이후 작은 작업이나 큰 공공사업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응노의 집’은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인 이응노를 기리기 위해 고향 홍성에 세워진 기념관으로, 그의 굴곡진 생애가 건축으로 형상화된 곳이다. 조성룡은 옛 문헌을 조사해 과거의 지형을 살려내고, 완만한 산기슭을 따라 황토색 건물들이 주변 풍경 속에 녹아들도록 소박하게 디자인했다. 그러나 공간 내부는 긴장감이 감돌게 설계하여 외부와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 김재경 품위 있게 늙어가는 건축물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 시설물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사용되었던 옛 병사 한 동을 레노베이션한 공간이다. 섬 초입에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던 건물을 없애는 대신 소록도를 찾는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환영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 김재경 교육 시설은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런 공간은 단지 기능을 모아 놓은 그릇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 만남과 공적인 행위가 만들어지는 배경이자 촉매다. 조성룡이 인하대학교 학생회관 설계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단순한 프로그램 충족이 아니라, 내부 공간이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공동의 행동 양식을 길러내느냐였다. 그는 계단과 라운지 같은 가변적 회합 공간을 통해 우연한 만남을 촉발하고, 토론과 자발적 활동이 가능해지도록 했다. 조성룡은 또한 건축 재료가 시간의 흐름을 수용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건물의 벽과 바닥, 손잡이와 계단의 마감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되고 닳는다. 조성룡은 그것을 건축물의 ‘풍화’라 일컫는데, 이 풍화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진행된다. 시간이 흐르며 쌓인 손때와 자국이 곧 공동체의 서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여러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품위 있게 늙어가는 건축’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어떤 건물이든 지어진 그 순간부터 서서히 낡아가기 마련이므로 건물의 노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수십 년 전 지어진 낡은 건물들을 무작정 철거한다고 해서 도시 문제가 전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는 건물이 자연스럽게, 품위 있게 풍화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대안이자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조성룡이 재료와 디테일을 신중히 고려하는 이유다. 그가 지은 건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운치가 느껴지는데, 이는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이다. 이는 주거 설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거 설계에서는 작은 결정들이 일상의 풍경을 바꾼다. 창의 위치, 중정의 크기, 마감재의 촉감 같은 미세한 선택들이 쌓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이 개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러한 판단은 단기적 편의가 아니라 장기적 삶의 질을 염두에 둔 설계적 약속이다. 장소성에 대한 관심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의 본체는 한국 현대 건축 1세대인 건축가 나상진이 1968년 설계한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이다. 이 건물이 철거 대신 재생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설계자였던 나상진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재조명받게 되었다. ⓒ 김재경 한편 조성룡에게 전시와 문화 시설은 건축적 사유를 공개적으로 시험하는 장이다. 1989년 도쿄에서 열린 은 제24회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주목받은 한국 현대 건축을 소개하는 건축 전시였다. 이 전시에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하나로 참여한 조성룡은 관객들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 장소성에 대한 자신의 건축적 사유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읽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장소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장소의 기후적·경관적 조건을 설계 장치로 전환한 경기도 용인의 근대미술관 계획과 해운대 빌리지 프로젝트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작업들에서도 장소성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부속 건물인 꿈마루는 공원의 이용성과 프로그램을 연결해 세대 간 경험을 매개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며, 선유도 공원 관련 작업에서는 기존 장소의 생태적·문화적 맥락을 재해석하고 회복하는 노력이 읽힌다. 특히 해운대 빌리지나 선유도 공원처럼 자연과 맞닿은 장소에서는 염분·습기·바람 같은 물리적 조건과 생태적 변화가 설계 시 고려 사항이 되고, 그것들이 표면과 형상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도록 구성된다. 그런가 하면 미술관 같은 문화 공간은 단지 전시물을 담는 그릇을 넘어서 관객의 경험을 매개하고 도시적 기억을 생산하는 능동적 장치로 작용한다. 조성룡의 작업에서 개념적 스케치와 실천적 건축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드로잉과 모형은 현실적 제약을 넘어서는 상상을 촉발하고, 당선된 공모안이나 실현된 건물은 그 상상을 검증하고 재정의한다. 대한주택공사의 초고층 아파트 당선 사례는 밀도와 수직성, 공동체 형성 문제를 재검토하게 만들었고, ‘바로크’로 불린 설계는 표면의 리듬과 형식적 실험을 통해 시간성과 경험의 중첩을 묻는 시도였다. 조성룡의 개념적 실험은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물리적·제도적 제약은 다시 개념을 숙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 순환은 조성룡의 설계 언어를 다층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단일한 스타일이나 표면적 미학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설계 태도를 확립하게 했다.

스크린의 질감, 환각의 감각

Arts & Culture 2026 SPRING

스크린의 질감, 환각의 감각 람한(본명 한지혜)의 작업은 매끈하고 꿈결 같은 형광 팔레트 속에서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스크린의 질감을 회화적 경험으로 옮기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시각 언어를 제시하는 그녀의 작업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는다. < Case_01_01(toxin) >. 2020.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100 × 100cm. 2020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커미션. © 람한, 휘슬갤러리 람한은 자신을 디지털 페인터라 소개한다. 작업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미술가를 통상 ‘디지털 아티스트’라 부르지만, ‘디지털 페인터’는 그리 흔한 용어가 아니다. 그녀는 붓과 물감 대신 태블릿 펜과 픽셀로 그림을 그린다. 떠오른 생각과 일상의 풍경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액정 태블릿에서 스케치와 채색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스케치부터 마감까지 즉흥성이 크고, 디지털 파일의 기록성을 활용해 끊임없이 수정·갱신한다. 화면 위에 색을 찍고 선을 긋는 작업 과정을 분명한 회화 행위로 인식하는 그녀는 관람객이 작업의 ‘회화성’에 집중하길 바란다. 디지털이 일상화된 오늘날, ‘디지털 페인터’라는 명명은 회화의 정의가 갱신되어야 함을 환기한다. 블로그에서 미술관으로 디지털 환경을 바탕으로 한 람한의 작업은 가상과 현실, 기억과 환상이 뒤섞인 독특한 세계관을 선보인다. 서브컬처의 요소들이 작품에 녹아 있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열성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다. © 람한, 휘슬갤러리 작가의 이름 ‘람한’은 활동명이다. 학창 시절 별명 ‘람쥐’에서 딴 ‘람’에 본래 성 ‘한’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람한은 10대 후반부터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블로그에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게재해 왔다. 디지털의 가상 세계는 그녀에게 일찍부터 활동의 장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에 재학하면서는 인스타그램(@ram__han)으로 개인 작업을 꾸준히 공개했으며, 출판사의 책 표지 의뢰를 비롯해 애플·LG OLED·빅히트·SM 엔터테인먼트 등과 협업을 병행했다. 2017년 첫 개인전 《나이트캡》을 열고, 일러스트레이션 화집 『Let’s meet at 7pm』을 발간하는 등 소규모 전시와 출판물을 통해 차츰 활동 반경을 넓혔다. 2018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개최한 단체전 《유령팔》에 참여하게 되면서 람한은 비로소 제도권 미술계에 본격 진입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SNS를 통해 람한의 작업을 발견하고, 디지털 기반의 가상 세계를 창작 거점으로 삼아 매체와 형식을 실험하는 작가로 그녀를 주목했다. 그동안 온라인에서 작업을 선보여 온 그녀는 이 전시에서 처음으로 대형 설치 연작을 전시장에 구현했다. 가로·세로 3미터 규모의 디지털 페인팅 연작은 ‘컴퓨터 안’의 작업을 ‘컴퓨터 밖’으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한 계기였다. 디지털 질감을 오프라인에서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그녀는 조명용 필름(백라이트 필름)에 아카이벌 프린트를 한 뒤 뒤쪽의 LED 광원으로 비추는 라이트 패널 방식을 고안·적용했다. 호텔 객실을 모티프 삼은 이 연작에는 어항이 나란히 들어선 벽장, 침대 위에 뛰어오른 흰토끼, 원형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비행기 등이 배치되어 있다. 공간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판타지만을 부각시킨 이 연작의 향수 어린 색감과 구성은 영화 속 러브호텔 장면, 그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1989년생의 세계관 < Save our souls_05 >. 2022. 디지털 프린트. 14 x 28cm. © 람한, 휘슬갤러리 < Room type 02 >. 2018.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300 × 300cm. 2018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유령팔》 커미션.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소장. © 람한, 휘슬갤러리 휘슬 갤러리 이경민 대표는 “세대론으로만 환원하면 비평의 여지를 좁힐 수 있으나, 작가가 소재를 선택하고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에 동세대의 관심사가 강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1989년생인 람한의 미감은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에 깊게 닿아 있다. 그녀는 ‘아니메’의 세계에서 성장했으며, 일본 만화 특유의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미학과 조형미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99년 발매된 넥슨의 롤플레잉 게임 일랜시아가 주는 자유도 높은 세계관과 동서양 미감의 결합은 람한이 펼쳐내는 상상력의 지층을 이룬다. 그녀는 지금도 새로운 게임을 발견하면 그 세계관을 직접 체험해 보는 편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SF 영화와 피겨 문화 또한 주요한 참조 목록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을 상징하는 가수 엄정화의 와 이정현의 로 대표되는 사이버 감성의 대중음악 비주얼은 밀레니얼 기억과 결합해 화면에서 재조합되고, 인터넷 대중화 초기에 검열 없이 접한 자극적인 이미지들이 남긴 시각·정서적 흔적은 형광 계열 팔레트의 질감으로 응결된다. 람한은 《유령팔》 이후 2020년 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2024년 예술경영지원센터 우수 전속 작가 기획전 《다이얼로그: 경계인간》 등 국내 주요 기관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의뢰 작업도 활발하다. 특히 책 표지 작업에서 람한은 SF·판타지 서사를 색감과 구성으로 충실히 시각화하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다.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리커버 특별판(2020)은 퇴마 판타지의 공기를 유니크한 팔레트로 포착함으로써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김보영의 『사바삼사라 서』(2024), 정보라의 『너의 유토피아』(2025) 등의 표지 작업은 각 작품의 정서를 관통하는 시각적 입구로 기능했다. 2023년 아트바젤 홍콩 설치 전경. © 람한, 휘슬갤러리 디지털 텍스처의 회화적 전환 < Expectancy >. 2019. 디지털 프린트, 라이트 패널. 150 × 150㎝. 2019년 시청각에서 열린 람한, 박혜인 2인전 《Ghost Shotgun》 설치 전경. © 람한, 휘슬갤러리 2022년과 2024년 휘슬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pawning Scenery》와 《Inaudible Garden》은 디지털 페인터로서 람한의 야심과 고민을 집약해 보여준 자리였다. 우선 《Spawning Scenery》에서 그녀는 매끈한 디지털 화면의 특성을 극대화하고자 색과 표면의 감각을 밀도 있게 탐구했다. 에서는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이키델릭한 색채의 끈적하고 반짝이는 덩어리들이 뒤엉키고 폭발하며 화면을 채운다. 인간과 동식물이 결합된 크리처 드로잉 연작과 가상현실 작업 등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대중 매체와 서브컬처에 축적된 기억과 감각을 재조합해 판타지를 덧입히고, 이를 관람자의 체험으로 전환하려는 목표를 드러냈다. 한편 《Inaudible Garden》에서는 ‘정원’이라는 주제 아래 식물과 여성 이미지를 다루며 표현 방식을 한층 응축했다. 연작은 제목으로 ‘튤립’을 명시하지만, 백라이트 필름에 아카이벌 프린트된 이미지는 단번에 꽃으로 읽히지 않는다. 온전한 튤립 원본을 그린 뒤 일부를 확대·복제·재조합하고 그 위에 드로잉을 더해 활자처럼 배열한 결과다. 보다 추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디지털 회화의 고유성을 드러내려는 의도다. 람한은 모니터에서만 포착되는 결, 빛의 번짐, 픽셀과 브러시가 만드는 미세한 차이를 관람자가 그대로 감각하도록 출력과 재현의 여러 단계를 실험한다. 람한의 회화는 도구의 전환을 넘어 지각의 확장에 가깝다. 붓 대신 펜, 안료 대신 픽셀을 들었을 뿐 여전히 회화의 본질을 수행하며, ‘디지털 페인터’라는 명명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굳혀가고 있다.

과거의 풍속이 현재의 트렌드가 되다

Arts & Culture 2026 SPRING

과거의 풍속이 현재의 트렌드가 되다 온양민속박물관은 한국인들의 전통 생활 양식과 관련된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립 민속 박물관이다. 방대한 유물을 주거·생업·의례 등 유형별로 구분해 조명한다. 전시관뿐 아니라 야외 정원도 잘 조성돼 있어, 역사 교육과 휴양을 겸하는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2024년, 온양민속박물관이 개관 46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 모습. 좌식 생활 문화를 대변하는 소반의 다양한 쓰임새와 형태를 살펴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시다. 온양민속박물관 제공 온양민속박물관은 충청남도 아산시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사립 민속 박물관이다. 총 8만 2,644m² 대지에 본관, 구정아트센터, 카페,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이 박물관은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인 계몽사를 창업한 구정 김원대(1921~2000) 회장이 1978년 사재를 털어 설립했다. 1970년대 한국은 빈곤 퇴치 및 산업화를 목표로 한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우리 고유의 생활 문화가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 회장은 민속학, 고고학, 서지학계 학자들로 자문단을 꾸리는 한편 학예사들이 전국을 다니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민속품들을 수집했다. 전통 의복부터 밥그릇, 소반, 쟁기, 지게 등 불과 몇 십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지만, 오늘날엔 쉽게 볼 수 없는 희귀품들이다. 민속 유물의 가치 온양민속박물관 본관은 3개의 상설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한국인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은 본관 1층이며, 입구 맞은편에 뮤지엄숍이 자리한다. 온양민속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고려(918~1392) 시대 법회에 사용된 청동북, 19세기 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세자 의례용 갑주(갑옷과 투구)와 갑주함, 고종(재위 1863~1907)의 아버지 이하응이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 흉배 등 일부는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유산으로 지정됐다. 소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도 흥미롭다. 제작 연도(1162)와 함께 봉안처와 출토지가 분명한 천수원명 청동북의 경우, 이순신(1545-1598) 장군의 묘소 인근에 거주하던 한 주민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1977년 발견했다고 한다. 단순히 고물이라 생각한 그는 “비누 한 장 값도 되지 않는다”는 고물상 말에 도로 가져갔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화재관리국에 연락했고, 박물관과 연결되었다. 비로소 유물의 가치를 알게 된 그는 설립자가 건넨 사례비를 끝내 마다하고 기증했으며, 박물관의 보존과 연구를 거친 청동북은 발견된 지 47년 만에 보물로 지정됐다. 제3 전시실에는 실용성과 조형미를 겸비한 전통 공예품을 비롯해 한국인의 민간 신앙과 놀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통 연희 중 하나인 탈놀이에 쓰이는 다양한 종류의 지역별 탈들이 한쪽 벽에 걸려 있다. 야외 전시장 한쪽에 자리한 전통 가옥은 1878년 지어진 너와집(소나무 판재로 지붕을 올린 집)으로, 강원도 삼척에서 박물관 자리까지 해체해 옮겨오는 데 당시 돈 1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현재 화폐 가치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당시만 해도 집 한 채를 먼 지역까지 이전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너와집은 단순한 건축 유물을 넘어, 산간 지역 생활 문화와 함께 박물관의 수집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높다. 이러한 민속자료는 부유한 사람들이 구입하는 값비싼 미술품이나 골동품과 달리 지금 보존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낳은 결과다. 건축 기행의 명소 본관 건물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구정아트센터는 건축가 이타미 준이 한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설계한 건축물이다.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각종 문화 행사와 특별 전시가 이곳에서 진행된다. 온양민속박물관은 건축 순례지로서 빠지지 않는 명소다.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본관은 한국 현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김석철(1943-2016)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웅장한 본관 건물은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한국 전통 건축물 특유의 긴 처마와 누마루가 안정감을 주고, 건물 외관과 내부 벽면은 붉은 벽돌과 검은 벽돌을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로 교차해 조화를 이룬다. 설계 당시 백제(기원전 18~서기 660) 시대의 무덤인 무령왕릉 내부의 벽돌 쌓기 방식과 색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옛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 1만여 점이 전시된 본관은 총 6만 4,800m² 규모로 3개의 상설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실은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일생과 의식주, 제2전시실은 농어업과 사냥, 채집 등 한국인의 생업, 제3전시실은 각종 민속 공예와 민간신앙, 놀이, 학술과 제도 등으로 구분해 전시 중이다. 각 전시실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동선은 관람객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이는 건축 설계 단계부터 각 공간에 전시될 유물의 실제 크기와 배치를 계산해 전시실을 구성한 결과다. 또한 제1전시실은 실제 전통 가옥의 부엌, 안방, 대청, 사랑채 등으로 구성하고 과거를 ‘체험’하기 위해 외부 빛을 최소화한 반면, 제2전시실의 경우 상단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들여 각종 생활 도구의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이와 같은 자연광은 높은 천장고를 확보한 중앙 홀의 상단 창문을 통해서 매일 달라지는 빛의 장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온양민속박물관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건축물이 있다. 1982년 준공한 구정아트센터는 재일 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의 국내 첫 건축물이다. 그는 2005년 프랑스 예술 훈장인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2010년 일본 최고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받은 세계적 건축가로 국내에선 제주 포도호텔, 수풍석뮤지엄, 방주교회 등을 설계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건축에 앞서 돌이 많은 이 지역의 특징을 연구했다. 그러고는 돌을 캐 돌담을 쌓고 질 좋은 황토를 채취해 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었다. ‘이순신이 성장하고, 죽어서 묻힌 곳’이라는 지역성을 담기 위해 건물은 전체적으로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을 형상화했다. 멀리서 봐도 타원형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정아트센터의 중앙홀 내부로 들어서면 흰색과 흙벽돌이 어우러진 건축물이 그 자체로 예술품임을 알 수 있다. 탁 트인 공간에 두 개의 큰 기둥이 한눈에 들어오고, 11m가 넘는 천장고와 가로 세로 겹겹이 교차하며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목재 대들보를 보노라면 흡사 거대한 목선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박물관에서 힙플레이스로 온양민속박물관은 개관 당시 관람객이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였지만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2013년 구정아트센터를 레노베이션해 공연과 전시, 문화 행사를 아우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개관하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2022년 지역의 공예 자원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한 아산공예창작지원센터와 카페 온양이 생기면서 관람객의 연령대가 크게 낮아졌다. 지원금과 기부금 의존도가 높은 사립 박물관으로서 가장 큰 현안은 홍보와 관람객 유치다. 요즘 홍보에 한몫하는 것은 박물관 굿즈 브랜드 ‘Objet Onyang’이다. 지역 작가들과 함께 개발한 전통 탈 마그네틱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하우스오브신세계 숍에서도 판매될 만큼 인기 상품이다. 또 팽이치기, 연날리기 같은 전통 놀이 체험 키트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곳은 개관 초기부터 축적된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향후 체계적인 전시와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올해 1월 김은경 관장은 박물관 재건과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 관장은 설립자의 3남 2녀 중 막내딸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2028년 개관 50주년을 앞두고 전시와 도록 발간을 병행하는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정아트센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박물관이 트렌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본관 제1 전시실에는 의식주 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유물들이 생애 주기별로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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