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상품들이 나날이 인기를 얻고 있다.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감상하던 유물을 모티브로 만든 이 상품들은 과거에 머물던 유산을 현재의 일상으로 불러들인다. 나아가 K-컬처의 새로운 자원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함께 선보인 BTS 정규 5집 의 공식 상품.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유물인 성덕대왕신종의 문양을 재해석했으며, 2026년 상반기 진행되었던 뮷즈 브랜드 협업 중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 빅히트 뮤직 & 하이브
국립중앙박물관의 약진이 거세다. 이곳은 지난해 관람객 수 650만 명을 돌파했다. 국제 미술 전문지 『아트 뉴스 페이퍼(The Art Newspaper)』가 올해 3월 발표한 ‘2025년 관람객 수’ 조사에 의하면 루브르박물관 904만 6,000명, 바티칸박물관 693만 3,822명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 세계 3위에 올랐다. 올해도 1월부터 5월까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을 집계한 결과 외국인을 포함해 총 325만 5,160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2% 증가했고, 그중 외국인 관람객의 증가율은 약 57.8% 늘었다. 이런 수치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뮷즈’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깊어졌다. 뮷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국립경주박물관 등 전국 13개 소속 박물관들이 소장한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한 상품 브랜드이다. ‘뮤지엄’과 ‘굿즈’를 합쳐서 만든 이름으로, 관람객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고 박물관을 자주 찾고 싶은 곳으로 느끼게 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2022년 론칭한 뮷즈는 불과 몇 년 사이 이제 줄을 서서 구매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가 되었다.
기념품에서 브랜드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시리즈는 뮷즈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이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이 개발되었으며, 2026년 상반기까지 누적 판매량 6만 1,000개를 돌파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규모가 큰 국공립 박물관부터 작은 사립 박물관까지 기프트 숍은 어디에 가나 대부분 존재한다. 그런데 유독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가 이토록 화제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전까지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보통 ‘기념품’이나 ‘문화 상품’이라 불렸다. 유명한 유물의 사진을 프린트한 엽서나 문구류처럼 단순한 상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뮷즈는 1차원적 해석을 넘어, 독특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생소했던 이름이 어느새 익숙한 고유명사로 널리 사용될 만큼 대중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또한 해외에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인 반가사유상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장 내 ‘사유의 방’에서 만날 수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각각 6세기 후반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됐다. 이 오래된 유물들을 본뜬 미니어처는 출시되자마자 큰 화제를 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제품으로 확장됐다. 이 외에도 목조건물에 여러 빛깔로 무늬를 그려 장식하는 단청(丹靑)을 키보드와 접목한 ‘단청 키보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 (1745~1806 추정)의 풍속화 속 취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술잔으로 불러들인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처럼 대담한 시도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녹인 상품으로 인기를 견인했다.
자체 개발하거나 공모를 통해 선정한 상품 외에도 브랜드나 K-팝 뮤지션들과의 협업은 뮷즈의 화제성을 넓히는 한 축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와 함께 개발해 선보인 BTS 컬래버레이션 상품이 주목받았다. BTS의 정규 5집 <아리랑> 발매를 기념해 제작된 이 상품들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성덕대왕신종의 문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BTS의 완전체 복귀에 맞춰 출시된 이 상품들은 박물관 상품관에서만 이틀 만에 약 4,3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협업은 뮷즈가 동시대 대중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의 뮷즈 구매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외국인 고객 매출은 약 1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들에게는 국내에서 주목받는 상품들뿐만 아니라 박물관 방문을 기념할 수 있는 마그넷 같은 뮷즈가 인기다. 뮷즈는 해외로도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일례로 2025년에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와 연계해 뮷즈를 선보였으며, 올해에는 LA한국문화원에서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한 뮷즈들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이처럼 뮷즈는 국경을 허물며 K-컬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2026년, 김구(1876~1949)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국가유산진흥원이 선보인 문화 상품.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의 삶과 정신을 굿즈로 해석했다.
ⓒ 국가유산진흥원
전통 목조 건축물을 장식하는 단청 문양을 기계식 유선 키보드에 적용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에 문화유산을 접목한 상품이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를 만드는 사람들
2026년 뮷즈 공모 선정작인 ‘금강산 색동 공기’는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오방색을 활용해 한국적 미감을 담아낸 상품이다. 케이스에는 자개로 금강산을 형상화했다. 출시 후 여러 차례 품절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인공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복궁 시대를 마감하고 2005년 용산에 신축 개관하면서 전시관 외에 공연장과 식음료장 등 문화·편의 시설이 크게 확충됐다. 이에 앞서 공연과 문화 상품 개발, 편의 시설 운영 등을 담당하기 위해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문화재단’이 설립됐고, 이듬해 박물관 개관과 함께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으로 새롭게 출범했는데, 박물관 상품 개발은 재단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재단 내 부서 중에서도 상품기획팀이 이 사업을 지휘한다. 상품기획팀 최임자팀장은 뮷즈의 지향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관람객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모두 똑같은 문화 상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는 국립박물관만의 정체성을 담기 위한 새로운 뭔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문화 상품이라는 일반적인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박물관 상품이라는 독자성을 부여하기 위해 ‘뮷즈’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죠. 론칭 이후 여러 가지 다양한 상품을 개발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든 유물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입니다.”
뮷즈 개발은 보통 한 해의 전시 스케줄과 맞물린다.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주요 유물의 특징을 고려하고, 그것을 시류에 맞게 디자인해 상품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공모전을 통해 상품을 발굴하거나 외부 업체의 수탁 상품들을 선정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게 뭔지 시장 조사를 정말 많이 해요. 하지만 아무리 디자인이 뛰어나고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더라도, 유물의 스토리와 동떨어진 상품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은 디자인, 아이디어, 실용성, 유물의 가치가 모두 조화롭게 잘 어울린 제품이에요. 그래서 인기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상품 개발 실무를 직접 맡고 있는 김나정 (Na Jung Kim) 대리의 말처럼 수없이 쏟아지는 상품들 가운데 대중적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처럼 문화유산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신경 쓸 것들이 많다. 자칫 잘못하면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상품의 확장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품은 비단 뮷즈만이 아니다. 국가유산진흥원 역시 국가유산을 바탕으로 한 문화 상품 브랜드 ‘K-Heritage’를 운영한다. 대표 상품으로는 ‘조선왕실등 만들기 키트’가 있다. 궁중 야간 연회에서 사용되었던 사각 유리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DIY 상품으로, 2020년 출시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K-Heritage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가 하면 2025년 문을 연 서울역사박물관 뮤지엄 숍도 새로운 굿즈 명소로 부상 중이다. 브랜드 이름은 따로 없지만,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유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특화 상품과 전시 연계 상품 등 110여 종의 상품을 선보였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문화유산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가 계속될수록 관람객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방식 역시 다양해질 것이다.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술 취한 선비 세 사람을 모티브로 만든 소주잔 세트. 차가운 술을 따르면 취기가 오른 듯 캐릭터의 얼굴이 붉게 변한다.
ⓒ 이민희
조선 시대 궁중 야간 연회에서 사용하던 사각 유리등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DIY 키트. 2020년 출시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국가유산진흥원의 대표 문화 상품이다.
ⓒ 국가유산진흥원
박의령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