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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심장을 움켜쥐기 위해 왔습니다”

“귀로 들어와 심장을 울리는 공연을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해줘 고맙습니다. 덕분에 아들에게 한국 전통의 멋을 설명해줄 수 있었어요. 우리 2년에 한 번씩 꼭 합시다.” 덴버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교민들과 함께한 뒤풀이는 또 다른 공연 무대였다. 대금과 장구가 다시 등장하고 구성진 소리와 함께 너나없이 어울려 밤을 지새웠다.



순조롭지 않았던 공연 준비
미국 덴버와 솔트레이크 공연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비자발급 허가서가 나오지 않아 출국 3일 전에야 외교통상부의 협조로 간신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미국 대사관의 비자심사 인터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느껴보았을 불편함과 지루한 기다림 끝에 공연에 참가한 21명은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출국 전날에야 미국에 간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수많은 메일과 우편이 오갔고, ‘올림픽 준비에 준하는’ 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었던 현지 한인회는 비자발급 문제라는 상상도 못한 상황에 무척 당황하였다.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자칫 공연취소라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까 염려스러워 출국길에 오르기 전까지 피를 말리는 긴장감에 시달렸다. 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는 갑작스럽게 정전까지 일어나 ‘과연 덴버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라는 염려를 하게 됐다. 그러나 마침내 후텁지근한 덴버 공항에 도착하자 그간의 우여곡절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었다. 광활한 로키 산맥을 가로질러 달리는 차 안에서, 교인 숫자가 10명에서 100명에 이르는 80여 개 한인 교회가 <판 굿>이라는 공연 명칭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적극 협조해주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2,500명을 감동시킨 덴버 공연
무대 준비와 리허설을 포함하여 공연을 모두 마치는 데 주어진 시간은 하루였다. 건물 안에서 흡연이 금지된 법령 때문에 화물 반입 통로에 옹기종기 모여 흡연을 했고, 의상 다리미질에 몸 풀기, 조명 및 음향 세팅으로 반나절을 다 보냈으며, 오후에 들어서야 리허설을 할 수 있었다. 비디오는 봤으나 실제 공연을 본 적이 없었던 폭스 코리아나를 비롯한 교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리허설을 지켜봤다. 리허설 후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공연 사회자로 섭외한 NBC의 뉴스앵커 제이미 킴은 약속시간을 30분이나 넘겨 공연 직전에야 극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녀는 탁월한 순발력으로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내용을 숙지했다. 역시 프로는 뭔가 다른가 보다 싶었다.
드디어 공연 30분 전. 2,700석임을 감안하면 로비가 전쟁터여야 하는데 어째 한산하기만 했다. 아! 가슴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며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몇 분 후 드디어 총영사님이 로비에 등장하셨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관객이 갑자기 로비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객석은 거의 채워졌다. 이제 그들의 심장을 울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그들의 심장을 울리고 말았다.
덴버 공연예술센터의 객석 2,700석 중 2,500석(미주 중앙일보 추산) 점유, 한인 주류사회 인사 대거 참여, 현지인이 관객의 65%를 차지하며 성황리에 펼쳐진 축제의 땅 덴버 공연은 ‘사물 앉은 반’으로 시작해 ‘북춤’, ‘교방춤’, ‘채상소고춤’ 및 ‘오방진 굿’으로 마무리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인 어린이 합창단과의 합동 무대
덴버에서의 가쁜 숨을 가다듬고 다음으로 향한 도시는 솔트레이크시티다. CIA보다 월등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모르몬교 본부가 자리해 보수적인 곳이었다. 동계올림픽을 제외하면 그다지 세상에 알려질 일이 없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시원스럽게 뚫린 고속도로와 날씬한 고급 오토바이가 선입견을 날려버렸다. 기다리고 있는 건 재담이 대단한 교민들. 유쾌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준 그들의 자랑은 전 세계 수퍼모델 중 18위에 랭크된 혜박이었다. 유명한 딸 덕분에 본인 이름을 밝히는 것도 잊은 혜박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3일간 현지 가이드로 기꺼이 나서주었다. 한편 공연을 준비하고부터 보낸 메일에 회신이 거의 없어 노심초사했는데 오히려 깜짝 선물이 준비돼 있었다. 한인 어린이 30명이 3개월간 이번 공연을 위해 ‘아리랑’을 비롯한 노래 3곡을 연습했다는 것이었다. 공연 방향의 급선회가 불가피해진 순간이었다. 어린이 합창을 자연스럽게 공연에 녹여내려니 본 공연 역시 음악을 강화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야 했지만 기꺼이 할만한 즐거운 일이었다.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은 CBS 계열의 지역방송 출연이 공연 당일 아침에 잡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급하게 즉흥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스튜디오도 없는 작은 방송국이었지만 편집실에 울려퍼진 대금 소리에 한 관계자는 그 자리에서 공연 표를 사버렸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타대학 내 킹스버리 홀이 우리의 공연장이었다. 동계올림픽 개•폐막 행사를 비롯해 유수의 공연단이 거쳐간 대표적인 극장이라며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공연장의 낙후된 음향시설을 보충하기 위해 빌려온 음향 부스는 계속 삐걱거렸다. 이 와중에 어린이 합창단은 객석에 들어서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상황이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전사처럼 나선 이가 있었으니 우리의 무대감독이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공연과 잘 어우러진 어린이 합창단의 수줍은 목소리는 관객과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전통문화의 감동을 남기다
4개 대학에서 참여한 60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 그들은 무대 뒤를 밟아본다는 경험에 다소 흥분했는지 공연 준비보다는 어수선하게 객석과 백 스테이지를 뛰어다니는 것에 더 열을 올렸다. 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그들은 가장 열성적인 관객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장기는 역시 진한 보너스 공연. 커튼콜과 함께 다시 시작되는 연주에 맞춰 관객과 예술가가 통로를 따라 극장 앞 작은 광장까지 행렬을 나섰다. 무대에서보다 더 높은 점프로 원을 그리며 마당에서 벌린 또 다른 ‘판 굿’에는 인종의 차별도, 나이의 벽도 없었다. 이날 1,600명(객석 총 1,900석, 관객의 70%는 현지인) 관객의 가슴에는 아마도 한국 전통문화의 진한 감동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톰 크루즈, 데이비드 베컴도 다녀갔다는 솔트레이크시티 메인 스트리트의 어느 예쁜 선술집에서 우리는 흑맥주와 과일맥주를 나눠 마셨다. 언젠가 스키도 타고 한잔하러 다시오자는 약속을 뒤로한 채 제트기처럼 나는 여객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