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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세계에 알리는 브루스 풀턴 교수: “한국의 첨단 기술, 한류라는 문화 흐름 안에도 문학과 소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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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세계에 알리는 브루스 풀턴 교수: “한국의 첨단 기술, 한류라는 문화 흐름 안에도 문학과 소설이 있습니다”
사진출처 : 올리버 만(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많은 사람들이 문학과 거리를 두는 요즘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문학과 대중은 꽤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런 시대에 한국의 소설, 시, 극작품 그리고 웹툰까지 섭렵하는 한 외국인이 있습니다. 40년 가까이 한국 문학을 번역해온 미국의 브루스 풀턴 교수(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입니다. 번역가로서는 소설을, 교수로서는 시와 노래를 더 좋아한다는 그에게 한국 문학의 의미를 묻고 싶었습니다.



KF뉴스레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난해 가을 KF의 미국 평화봉사단 초청 사업 때 한국을 다녀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참여자들과는 달리, 교수님은 한국의 발전상을 잘 알고 계셔서 함께 하는 소감이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프렌즈 오브 코리아가 마련한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의 한국 재방문 프로그램은 저뿐만 아니라 40년 가까이 함께 번역 작업을 해온 제 아내 주찬 풀턴에게도 매우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다른 단원들보다는 한국의 변화를 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이번 프로그램에서 받은 인상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 아름다운 시골에서 느낀 새로운 감흥, 한국 음식을 먹는 즐거움, 풍요로운 한국의 구전 문화, 특히 민속촌을 방문했을 때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수십 년간 한국과 친숙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다른 단원들이 한국을 관광하는 느낌을 받을 때, 마치 고향을 방문하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네요.



약 40년 전에 교사로 재직했던 전북 장수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기분이 어떠셨어요? 달라진 것들이 많겠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있던가요?

네, 제가 1978년에 영어 교사로 재직했던 장계중학교를 아내와 방문했습니다. 오래 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 교사 문인택 씨와 그 학교의 새 교장, 교감 등 다른 교사들을 만나 학교와 학생에 대한 그분들의 헌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제가 함께 살았던 한국인 가족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했는데요. 정말 반갑고 기뻤습니다.
  장계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78년에는 ‘리’였지만 이제는 ‘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장계중학교 학생 수는 제가 근무하던 당시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아요. 많은 이들이 마을을 떠났을지 몰라도, 따스한 인심과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교수님은 1983년부터 한국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하셨는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문학만의 특별한 매력이나 강점이 있습니까?

정확히는, 우리 부부의 첫 번역 작품이 출판된 해가 1983년이고, 실제로 한국 문학을 번역하기 시작한 건 1980년입니다. 한국 문학의 매력은 언제나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황순원 씨의 단편에 매료된 것도 그런 이유이고 아내와 제가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번역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국 문학작품을 읽고 연구하며 번역할수록 한국의 구전문학에 감동하게 됩니다. 구전문학이 필수적으로 갖고 있는 연기의 전통을 포착해서 언어, 성격 묘사, 분위기로 풀어내는 현대 문학작품들도 그렇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저와 아내는 현대 소설을 주로 번역하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강의할 때는 ‘시가(詩歌)’에 더 집중하는 편입니다. 특히 신라, 고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로 쓰인 서정시에 점차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 150편 이상의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직간접적으로 출간하셨는데, 그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이 있다면요? 하나만 꼽기 어려우시면, 여러 작품을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최고로 꼽는 작품’이라는 것이 사실 좀 모호한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품 혹은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선택했다고 보시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1) 오정희, 강석경, 김지원 소설집 ‘별사(別辭)’
우리가 이 세 작가를 고른 건 황순원 씨의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품집은 1989년에 나왔는데 저와 아내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판한 번역서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집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이유는 이 작품집이 한국 현대소설, 특히 한국의 여성 작가들에 대해 비교적 광범위한 관심을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거의 만 부 가량 팔려 소규모 출판사나 학술서적 출판사에서 낸 한국 문학 번역서 단행본으로서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우리가 이 작품을 번역했던 건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행본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추진과정에서 야기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룬) 주제 때문만이 아니라 기만적일 정도로 단순한 문체 때문인데요, 그 문체에는 모든 연령층에 고루 읽히고 싶은 작가의 소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최윤 소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이 소설은 1980년 광주 의거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라는 주제의 중요성과 세 부분으로 나누어 풀어내는 뛰어난 서술이 매력적입니다. 정신적 외상을 입고 시골을 헤매는 소녀, 그 소녀를 유린하는 건설 노동자, 그리고 그녀를 찾으려 애쓰는 대학생들의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이 중편과 다른 소설 두 편을 번역해 묶어 2009년에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최윤의 세 작품’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이 책은 미국 비평 매체인 북리스트와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 좋은 별점 평가를 받았습니다.

(4) 황정은 소설 '뼈도둑'
우리가 읽어본 사랑 이야기 중 가장 강렬한 작품입니다.

(5) 채만식 희곡 '낙일(落日)'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작가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쓴 작품 모음집으로 2017년 출판되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오랫동안 느껴온 유대감과 중요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시리즈로 묶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이 번역 작품집을 냈는데요. 대표작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접근 방식을 지양하고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풍부한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6) 김사과 소설 '미나'
이 소설을 고른 이유는 두 여고생 사이의 애증관계를 그린 이 소설이 새천년시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만연한 정신병리적 분위기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고, 우리가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아주 강렬한, 최면에 걸리는 듯한 경험을 했기 때문인데요, 나중에 우리의 번역 작품을 접한 비평가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30년 넘게 한국 문학, 소설을 번역해오고 계시니 한국 문학의 변화나 흐름 역시 체감하실 것 같습니다. 과거의 한국 소설은 남성적이며 가부장적인 정서가 있었다고 평하신 적도 있고, 사실주의적인 강점이 있는 반면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보시기도 했어요. 요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군사독재 시절에 비해 오늘의 한국 문학이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리적 통찰도 더욱 풍부합니다. 그런가 하면 소설 출판에서는 성 평등이 진작되었지만, 시와 연극 분야는 여전히 남성이 우세해 보입니다. 새천년시대 소설에 나타난 장르적 요소들을 보는 건 즐겁지만 이야기가 좀 더 강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계를 뛰어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것도 기쁩니다. 한반도 너머의 배경, 인물, 주제를 포함하는 소설들이지요.
  시 분야에서 김혜순 씨가 중요한 시인으로 부각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저는 김 시인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국 구전문학의 연기적 전통과 서양 연극의 혁신적 요소들을 솜씨 좋게 섞어 보다 실험적 작품을 써내는 극작가들의 태도도 환영합니다.



현재 번역 중이시거나 출간을 앞둔 작품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좋은 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어 기쁜데요. 김숨의 소설 ‘한 명’을 번역했는데 하와이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이 결정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한국 장편소설입니다. 또 우리가 번역한 여성 작가들의 장편들을 놓고 여러 출판사와 논의 중입니다. 2019년에는 앞에서 말씀 드린 ‘채만식 읽기’와 유사하게 다양한 작품을 묶어 ‘황순원 읽기’ 같은 책을 만들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 재직 중인 로스 킹 교수와 한국 현대 패러디 소설집을 만들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저는 우리가 번역해서 허핑턴포스트에서 2015년에서 2016년까지 웹툰으로 연재했던 윤태호의 그래픽 노블 ‘이끼’를 책으로 만들어줄 출판사를 찾고 있습니다.



끝으로 KF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출판되는 책의 60퍼센트 가량은 번역서라고 합니다. 나머지 40퍼센트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책들인데 그 중에서도 소설은 매우 소수입니다. 그러니 한국 문학 독자 수가 감소하고 있고 영어권 세계에서 한국 문학의 인지도가 대단하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문학은 한국을 보여 주는 창문이며 그것은 어떤 학술 서적이나 경제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창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안타깝습니다.
  KF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반적으로 한국 현대소설은 현대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 사회, 그리고 정신적인 면까지 아주 많은 것을 국내외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시는 정신성과 세계관이 풍부하며, 한국 현대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숭고한 구비문학의 전통을 유지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첨단적인 기술국가 대열에 합류했는지, 또 한류라는 문화적 파도로 전 세계를 휩쓸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따뜻한 커피나 음료 한 잔을 들면서 영어로 번역된 많은 한국 현대소설집 중 한 권을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혹은 과거나 현재의 한국 시, 또 점점 많이 번역되고 있는 한국의 극 작품을 펼쳐 놓고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김다니엘

브루스 풀턴 교수와 그의 아내 주찬 풀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