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 산책]
최다함 대리가 추천하는
《태어난 게 범죄》
《태어난 게 범죄(Born A Crime)》
트레버 노아 저, 김준수 옮김|부키|2020.10.29
책의 주인공인 트레버 노아를 미국의 유명 정치풍자 토크쇼 진행자이자 BTS
그래미 수상 진행을 맡았던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MC인 줄로만 알던 터라
서점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흡사 딱 걸린 탈출범 같은 그의 흑백사진과
‘태어난 게 범죄’라는 타이틀의 조합은 원래 임무였던 전공서적은 까맣게
잊은 채 홀린 듯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습니다. 첫 장부터 이어지는
매력적이고 빠르고 생생한 진행은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고 먼 나라의 먼 이야기겠지라는 예상과는 달리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아파르트헤이트(아파르트헤이트 체제하 이인종 혼인금지법(1945) 등
다수의 법안을 통해 인종격리정책에 의한 인종별 분리의 발전이
추진되었음)의 유색인종으로서의 삶을 통해 저 자신을, 이웃을, 사회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내 이름을 골라야 할 때가 오자 엄마는 남아공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선조 중에도 없는 이름인 트레버를 선택했다. 성서에서 딴 이름도
아니었다. 단지 그냥 이름이었다. 엄마는 자기 자식이 운명에 얽매이지
않길 원했다. 엄마는 내가 어디든 자유롭게 가고,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이든 자유롭게 되길 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의 이름을 고를 때 이름 한 자 한 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운명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름을 고르는 전문가를
섭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녀의 이름에 부모의 염원과 축복을 담는
우리의 오랜 전통이지만, 이 책은 이름의 뜻에 대해, 그 이름이 부여하는
인생의 추에 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트레버의 어머니의 바람처럼 저자가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됐는지는
그만이 알겠지만요.
“나는 외부자가 내부자로 사는 것이 사실은 내부자인데 외부자로 사는
것보다 쉽다는 걸 배웠다. 백인이 힙합 문화에 빠져 흑인들하고만
어울리기로 결심한다면 흑인들은 그에게 ‘멋진데, 백인 청년. 원하는 대로
해 보라고’ 하고 말해 줄 것이다. 흑인이 자신의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백인들 사이에서 살며 골프를 치려고 한다면 백인들은 ‘괜찮아. 나는
얼뜨기를 좋아해. 그는 안전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흑인이
백인 문화에 따르면서도 여전히 백인들 사이에서 산다면? 헤아릴 수조차
없는 증오와 조롱과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동화되고자 하는 외부자는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동류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부정한다면, 그런 사람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이 에덴 파크에서 내가 겪었던 현상이었다.”
외국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며 가족 모두가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외국인인
친구, 혼혈 친구, 귀화한 친구, 외국인이지만 한국을 좋아해 한국에 가정을
꾸린 친구, 그 반대인 친구 등 다양한 문화 계층에 소속된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부자가 외부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목격해왔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러 가는 모든
일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엿보고 책의 플롯을
따라가며 인지적 지식과 이해의 지평을 넓혀주는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계신 재단 동료 여러분들과 여러
가지 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을
볼기짝 찜질을 피해, 법의 심판을 피해, 그리고 의붓아버지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뛰고 또 뛰는 트레버 노아의 노정에 조심스레 초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