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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제주 생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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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제주 생활] 나무

서울 출장 때문에 회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800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울에서 온 관광객 두 명이 “여기는 시골이라 버스가 자주 안 오나 보네” 이런 말을 하길래 서귀포에 사는 사람으로 기분이 그랬던지 “여기는 시골이 아니고 전원도시입니다. 서울에는 사람이 나무고, 서귀포는 나무가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해놓고 문득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출장 가서 서울 관광객에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서울을 주의 깊게 보았더니 서울에도 나무가 많이 있었다.


서귀포 오기 전에 서울에서 거의 30여 년을 살아놓고도 서울에 나무가 많은 걸 알지 못하다가 서귀포에 와서 서울에 나무가 많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육지에서 흔히 보던 나무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가로수를 예로 들면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벚나무, 양재동 가로수 길에 심겨 있는 메타세쿼이아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는 먼나무, 담팔수, 굴거리나무, 야자수, 벚나무가 있다. 벚나무만 제외하면 이곳과 저곳의 나무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오랫동안 살았던 곳에선 익숙함 때문인지 그 지역에만 있는 다름을 잘 모르고 살다가 그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있을 때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갑자기 내 옆에 있는 가족, 동료의 소중함을 그동안 잊고 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움을 느끼기보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주변에 무관심했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주도 유배 오신 옛 선조들도 이런 생각을 하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세상사는 게 그렇고 그런가 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 외롭지가 않다. 나무를 통해서 나를 다시 보게 된다.


글 이상훈 정보화기획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