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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SPRING

LIFE

식재료 이야기 식재료이자 음식인 나물

나물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전통적이며 일상적인 음식이다. 최근에는 나물이 주를 이루는 사찰 음식이 널리 소개되면서 많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채식주의 열풍으로 고급 식당에서도 메뉴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 영국의 피시 앤 칩스처럼 나라마다 대표적으로 떠올려지는 음식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멕시코 하면 타코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멕시코 음식이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는 그저 그 사람이 멕시코 음식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한 나라의 식문화를 특정 음식 한두 가지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떤 외국인이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나물을 꼽는다면 그가 한식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봄나물인 두릅, 냉이, 달래(왼쪽부터)는 이른 봄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봄나물은 맛과 향이 좋아 겨울철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 준다. ⓒ imagetoday

한식의 진수
나물은 단어 자체의 뜻과 용법부터가 복잡하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나물을 찾아보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뜻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예를 들어 고사리, 도라지, 두릅, 냉이 따위가 있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뜻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삶거나 볶거나 또는 날것으로 양념하여 무친 음식’이라고 나와 있다.

즉, 나물이 첫 번째 뜻으로 쓰일 때는 식재료를 의미하고, 두 번째 뜻으로 쓰일 때는 요리한 음식을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이때 요리의 재료는 사전적 범위보다 넓어서 풀이나 나뭇잎이 아니더라도 식물성 재료를 나물 방식으로 요리하면 나물이 된다. 감자는 덩이줄기, 가지는 열매로 풀이나 나뭇잎과는 다른 종류지만 이것들을 세로로 기다랗게 썰어서 소금이나 간장 같은 양념을 넣어 볶거나 또는 삶아서 양념을 넣고 무치면 감자나물, 가지나물이 된다. 호박나물, 무나물도 마찬가지로 재료는 나물이 아니지만 나물처럼 조리한 음식이다.

그런데 콩나물과 숙주나물은 두 가지 뜻이 다 가능하다. 콩이나 녹두를 시루에 담아 싹을 낸 재료와 그걸 무쳐낸 음식의 의미가 둘 다 포함되어 있다.

된장을 풀어 끓여 낸 냉잇국은 한 숟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날 이른 아침에 들판에서 촉촉하게 젖은 흙냄새를 맡으며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

봄철 재래시장에서는 갖가지 봄나물을 바구니에 담아 파는 상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채취할 수 있는 식용 산나물은 3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의 봄나물에는 비타민 C와 무기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 연합뉴스

제철 음식
이처럼 나물은 말 자체가 복잡한 음식이다. 또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이라는 사전 속 설명은 짧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독초의 어린순을 나물인 줄 알고 잘못 먹었다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종종 뉴스에 나온다. 대표적 제철 음식인 나물은 채집 시기도 중요하다. 나물 하면 으레 봄을 떠올릴 정도로 봄철 새순이 막 돋아날 때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식물이 성장하면서 질기고 단단해지면 더 이상 식용이 불가능하다. 물론 어린순이라고 무조건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독성 물질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달래, 돌나물, 참나물, 취나물은 독이 없어서 날것으로 먹어도 무방하지만 고사리나 원추리처럼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는 것들도 있다.

그중 원추리는 관상용 식물로도 매력적이지만 다른 봄나물보다 단맛과 감칠맛이 두드러져 이른 봄 어린순을 즐겨 먹곤 한다. 하지만 원추리에는 콜히친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다. 콜히친은 항염증 작용이 있어 급성 통풍이 있는 사람의 증상 완화에 사용되는 약이다. 최근에는 심근경색 후 심혈관질환이 발생할 위험을 낮추는 예방약으로서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원추리를 나물로 먹을 때 콜히친 성분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섭취하면 구토, 복통, 설사 같은 증상으로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원추리가 성장할수록 콜히친 성분 함유량이 많아지므로 봄철 어린순만 먹어야 하고 끓는 물에 데친 뒤 차가운 물에 충분히 담그는 과정을 통해 수용성 콜히친을 제거한 뒤에 먹어야 식중독을 피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산이나 들에서 자라며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을 산나물이라고 하는데 한국에 자생하는 산나물만 300종이 넘는다. 취나물 하나만 해도 자생종이 60여 종에 식용 가능한 것이 24종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물을 제대로 즐기려면 언제 무엇을 채집해서 어떻게 먹어야 안전한가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냉이는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거나 살짝 데쳐서 된장, 고추장, 다진 마늘과 파, 깨소금, 참기름 등 양념을 넣고 무쳐서 먹는다. © Getty Images

다양한 조리법
나물을 조리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기만 할 것인가, 데쳐서 찬물에 헹궈 쓴맛을 씻어낼 것인가, 볶을 것인가, 오랫동안 숙성시킬 것인가, 간장에 무칠 것인가, 된장에 무칠 것인가, 들기름을 더할 것인가, 참기름을 더할 것인가, 또는 깨소금을 뿌릴 것인가, 들깻가루를 뿌릴 것인가, 고춧가루를 섞을 것인가 등등을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요리한 나물의 맛과 향은 들판의 꽃과 풀만큼 다채롭다. 참취나물은 날것 그대로 맛보면 풋사과 같은 향이 나지만, 데쳐서 무치면 쌉싸름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향미가 올라온다. 방풍나물에도 기본적으로 쓴맛이 깔려 있는 점은 비슷하지만, 귤껍질과 박하를 섞은 듯한 달콤한 풍미는 참취나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봄나물의 대표주자인 달래와 냉이는 그 미묘한 맛과 향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냄새의 심리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인지신경과학자 레이첼 허즈(Rachel Herz)는 자신의 책 『욕망을 부르는 향기』(The Scent of Desire: Discovering Our Enigmatic Sense of Smell)에서 어떤 언어든 후각 경험에만 한정해서 사용되는 단어는 다른 감각 경험에 한정되는 단어보다 훨씬 적다고 지적한다. 달래와 냉이는 허즈의 설명에 딱 들어맞는 나물들이다. 먹고 나서 후각 경험을 말로 설명하다 보면 언어적 한계를 느낀다.

달래는 마늘과 비슷하게 알리신을 함유하여 알싸한 맛을 내지만, 마늘과는 또 다른 상큼한 단맛을 품고 있다. 겨자과 식물인 냉이에도 황화합물 특유의 자극적 향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냉이의 향기를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된장을 풀어 끓여 낸 냉잇국은 한 숟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교차하는 날 이른 아침에 들판에서 촉촉하게 젖은 흙냄새를 맡으며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뜨린다. 물론 달래와 냉이 맛에 대해 백 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 번 맛보는 것이 낫다.

봄철 두릅나무에서 자라는 어린순을 두릅나물이라고 하며, 주로 끓는 물에 데쳐 내어 고추장과 식초, 설탕을 섞어 만든 초고추장을 바르거나 찍어서 먹는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의 맛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 음식이다. 밥 위에 각종 나물과 달걀 프라이, 소고기 고명을 얹은 후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른 봄의 향기
각각의 나물을 음미하며 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지만 고추장과 참기름을 조금 넣고 달걀 반숙을 얹어 밥과 함께 비벼 먹어도 좋다. 비빔밥은 한국 가정에서 반찬으로 만들어둔 나물로 누구나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이면서 국밥과 함께 가장 오래된 외식 메뉴 중 하나다. 맵고 달콤한 고추장의 맛이 지휘자처럼 중심에 서서 다양한 나물이 리듬에 맞춰 함께 섞여 내는 새로운 맛의 변주를 이끈다.

뒤섞어 먹는 비빔밥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간혹 있다. 하지만 나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비빔밥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다. 갖가지 나물이 함께 모여 만들어 내는 비빔밥은 나물 속에 어우러진 다양성과 포용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끌어모은 한식의 진수이다.

한편 특정 지역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나물도 많다. 울릉도 삼나물과 부지갱이처럼 지리적 표시 임산물로 지정된 것도 있다. 최근에는 나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활발해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봄나물의 맛과 손질법, 조리법에 대한 체계적 연구 결과를 보고서로 펴낸 기업도 있다. 또 나물을 이용한 메뉴 개발에 힘을 쏟는 고급 식당도 늘고 있다. 그리하여 나물은 가장 전통적이면서 혁신적인 한식이 되어가고 있다.

정재훈(Jeong Jae-hoon 鄭載勳) 약사, 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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