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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AUTUMN

문화 예술

인터뷰 한옥에 접목하는 오늘날 삶의 형상

오늘날 한옥은 이중적 제약 아래 놓여 있다. 고유의 형식과 소재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전통의 신화화와 현대 건축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분야라는 선입견이 동시에 존재한다. 조정구(Cho Jung-goo 趙鼎九)는 이런 통념 속에서도 한옥을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건축 양식으로 해석하며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건축가로 주목받고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에 있는 호텔 라궁은 국내 최초의 한옥 호텔로 한국 전통 건축이 시대에 맞게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한옥은 목구조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이다. 근대 이후 한옥은 보편적 주거 양식으로써 그 기능을 잃고, 보존되어야 할 유산 또는 소수가 향유하는 문화 양태로 명맥을 이어 왔다. 변화는 2000년대 이후에 왔다. 고유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통해 한옥이 오늘의 주거 양식으로 되살아나는 중이다.

조정구는 2000년 구가도시건축(guga Urban Architecture)을 설립하던 해부터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곳곳을 답사하며,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도시의 모습을 기록해 왔다. 20년 가까이 이런 노력을 지속해 오는 동안 어떤 곳들은 변하고, 어떤 곳들은 사라졌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균형을 잡고 공존하는 도시야말로 좋은 도시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람의 삶을 담는 건축을 지향하는 그는 한옥 또한 도시에 살아 있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한옥에 대한 재인식
임진영: 현대 건축가의 시선으로 한옥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조정구: 처음부터 한옥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답사를 통해 서울을 찬찬히 봐 오면서 근현대기에 지은 도심 한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통 건축으로서의 한옥이 아니라, 도심형 한옥이 내 관심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북촌 한옥 설계에 참가하게 되면서 한옥의 체계를 익혔다.

임: 전통 건축에 대한 실무를 현장에서 배운 셈인가?

조: 그렇다. 한옥은 대개 책에 나오는 건축 역사를 통해 배우는데, 나는 직접 오래된 집들을 고쳐 나가면서 많이 배웠다. 중요한 건 한옥이 서울의 도시 건축에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한옥 프로젝트가 늘면서 집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같은 작업도 했다. 그러다가 한옥이 현대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했고, 건축가가 그런 요구를 해결해 줘야겠구나 싶었다. 2005년 호텔 라궁을 설계하게 되면서는 건축가가 전통 건축 언어로 한옥을 설계할 수 있고, 현대 한옥에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스스로도 경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임: 호텔 라궁은 당시 한옥을 재구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인 프로젝트였다.

조: 만약 누군가 건축사를 쓸 때 현대 한옥을 규정한다면, 라궁이 최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대적인 프로그램을 전통적인 건축 언어로 새롭게 조합한 작업이기 때문에 건축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전통 건축이 건축 설계 영역과 통합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 점이 시장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임: 한옥이라는 단어가 폭넓게 쓰이다 보니 그 의미와 범위가 광범위하다. 건축가로서 한옥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 보통은 ‘전통 목구조로 지은 기와집’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내가 생각하는 한옥의 정의는 ‘돌, 나무, 종이 등 자연의 소재로 지은 마당집’이다. 최근 파주에 목조주택을 지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한옥집’이라 부른다. 사람들 의식 속에 있는 한옥의 원형을 끄집어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구나 싶었다.

호텔 라궁은 소규모 부티크 호텔의 기능을 전통적 조형미와 조화시켰는데, 각각의 객실에 딸린 누마루에서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지어졌다.

건축가 조정구는 본인이 설립한 건축사무소 구가도시건축 직원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곳곳을 답사하며 살아 있는 건축 양식으로서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합리적인 구성
임: 그렇게 현장에서 알게 된 한옥 구조의 특성은 무엇인가?

조: 한옥 구조의 흥미로운 점은 첫째 간단하다는 것이다. 어려운 구조가 아니다. 두 번째는 굉장히 합리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공간 구성에서 구법까지 합리성과 단순성(simplicity)이 결합되어 있다. 근대 한옥이 어떻게 도시에 대응했는지, 지붕과 바닥 레벨의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간단하고 편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임: 새로운 시도를 할 때도 지켜야 할 한옥의 DNA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조: 한옥의 DNA는 마당과 처마인 것 같다. 마당과 집 사이에 처마라는 중간 영역이 필요하다. 처마는 그늘을 만들 뿐만 아니라 밖에 나와 마당을 볼 수 있는 중간 공간이다. 또 단순함이 중요하다. 한옥 평면을 보면 아이들이 그린 집처럼 간단하게 방이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요즘 짓는 현대 한옥의 구성이 복잡해지는 것은 아쉽다. 외관은 한옥의 느낌을 지키려고 하지만, 내부를 무리하게 설계하기 때문에 내재된 단순함이 파열되는 느낌이다. 잘 지은 한옥을 보면 공간이 자연스럽게 서로 이어져서 흐르는 느낌이 있다. 이러한 공간의 흐름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임: 한옥에 대해 양가적 태도가 존재한다. 전통으로서 한옥을 변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근대 도시 한옥은 가치가 없으며 건축가가 할 일이 아니라는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

조: 내 입장이 딱 그렇다. 그 두 가지 비판을 다 받는다. 현대 건축가들은 “왜 죽어 있는 것을 살리느냐?”라고 비판하는데, 좋은 관점은 아닌 것 같다. 현대 도시를 보면 여전히 한옥은 존재하고 살아 있다. 반면 그렇게 설계한 결과물이 과연 한옥인가라는 질문도 많이 듣는다. 한 예로 은평구 낙락헌(樂樂軒) 같은 경우, 콘크리트 구조로 필로티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얹었는데 건축상은 탔어도 우수 한옥으로 지정되지는 않는다. 콘크리트 기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 문화가 다시 전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자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기술적, 사회적 진보를 이루며 나아가야 한다. 결국 우리 삶을 담은 한옥을 새로 짓는다면, 문화재 같은 집만 있을 수는 없다. 한옥이 살아 있으려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야 한다.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

“건축가로서 나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는 선을 긋는다고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연장해서 현재 삶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 미래로 다리를 놓는 사람인 것 같다.”

제주 토산리 주택은 비스듬히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거실과 방, 부엌과 다이닝 공간의 높이를 다르게 구성했다.

제주의 전통 가옥은 강한 바람에 견디기 위해 돌로 담장과 벽을 쌓고 낮은 지붕 아래 가로로 긴 형태를 띠는 것이 특징인데, 토산리 주택은 이러한 제주의 풍토와 가옥의 형태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보편적 삶의 구현
임: 현대 건축가 입장에서 한옥은 하나의 유형이다. 이 유형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특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조: 우리 회사의 철학은 보편적 창의에 있다. 어떤 것을 만들든 보편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건축을 하려 애를 쓴다. 새로운 주거로서의 유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 한옥과 현대 건축의 경계가 부서져야 한다고 본다. 한옥은 설계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다양하게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접근법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접근하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건축가가 우리 시대의 집을 짓는 것이 큰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부분 한옥의 현대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북한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낙락헌(樂樂軒)은 전통과 현대의 건축 양식이 공존하는 새로운 주거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콘크리트 구조로 필로티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얹은 낙락헌은 누마루 아래에 현관과 주차 공간을 두어 요즘 생활에 맞도록 설계되었다.

임: 대구 임재양 외과에서 한옥과 일식 가옥에 대한 도시의 기억을 다루었다면, 인제 미명재의 방사형 한옥, 롯데 부여리조트 원형 회랑 등 기존 구법을 새롭게 변형하고 시도하는 작업도 있었다. 한옥의 전형적인 형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통 방식으로 새롭게 디자인하는 건축가의 접근인 것 같아서 흥미롭다.

조: 그렇다. 한옥은 그냥 내가 생각하고 쓸 수 있는 내 언어다. 중요한 것은 장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또 사람들은 무엇을 바랄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형태는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천리포 수목원 디지털 센터는 한옥을 진화시킨다는 개념보다 단순한 구조로 전통 한국식 지붕의 느낌이 나는 건물을 짓고자 했다. 한편 제주도 토산리 주택에서는 현대 언어로 재해석하기보다 실체를 직접 들여와서 적용하기도 했다. 의뢰인은 한옥다운 집을 원했지만 실제로 한옥에 살 자신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제주 민가의 느낌을 살리고 한실을 직접적으로 적용했다. 결국 진화적 회귀라고 생각한다.

임: 건축가로서 한국의, 그리고 우리 시대의 집은 무엇을 담은 집이라고 생각하는가?

조: 한옥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겸손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내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세우지 않고 안아 주고 포용해 주는 집, 그것이 내가 꿈꾸는 집이다. 거기에 앞서 이야기한 처마 아래서 내다보는 풍경, 단순함을 가진 마당집이 중요하다. 그래야 집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임: 도시 답사와 한옥에 대한 꾸준한 실험을 계속해 오면서 ‘보편적 삶의 건축’이란 지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조: 나는 한옥 건축가는 아니다. 스스로 건축가로서 진지하게 내 인생의 경로를 따라서 작업하고 있을 뿐이다. 한옥도 운명 속으로 들어온 것일 뿐이다. 건축가로서 나는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는 선을 긋는다고 생각한다. 과거로부터 연장해서 현재 삶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 미래로 다리를 놓는 사람인 것 같다.
‘삶의 형상을 찾아서’라는 내 모토가 말해 주듯 답사를 통해 삶의 형상을 계속 조사해 왔고, 결국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많은 것들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봐 왔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부터 미래로 조금씩 다리를 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우리 시대의 집, 우리 시대의 자양과 풍토에 맞는 공간을 많이 만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감사한 일일 것 같다.

임진영(Lim jin-young 任鎭咏) 오픈하우스서울(OPENHOUSE Seoul)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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