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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WINTER

생활

책+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한 작가의 고투가 새롭게 드러나다

『먼지 외 단편들』

이태준 작, 자네트 풀 번역, 304페이지, 25달러, 뉴욕: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 2018년

이태준은 한국 근대 문학에서 중요한 작가이지만, 1946년 서울에서 평양으로 이주를 결심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남한에서 1988년까지 금지되었다. 30년 전에 이 금지가 해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영어권에서 번역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로 후기 식민 시대와 1945년 해방 후 단편을 모은 『먼지 외 단편들(Dust and Other Stories)』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마침내 개선되었다.
이 단편집의 두드러진 주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위기의 시대에 자신의 예술에 충실하고자 했던 작가의 고투가 그것이다. 많은 단편에 자전적인 인물 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생존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물론 가치 있는 작품을 쓰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장마」(1936)에서 작가는 유명한 동시대 작가들이 신문이나 잡지 기고자 또는 편집자로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이 「패강냉」(1938)에서 주장하듯이 “예술이 무엇보다 먼저다”라고 믿으면 삶은 훨씬 더 고달파진다.
「해방전후」(1946)는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현이 일제 식민치하와 해방 후에 작가로서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고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제 당국이 그에게 글로 제국에 충성할 것을 강요했을 때 “나는 그냥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그의 조용한 외침은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에 이바지하는 도구로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말이다. 식민 압제자들의 의지에 고개를 숙이는 건 삶이라 할 수 없기에 현은 일본의 프로파간다 대변자가 되기보다 차라리 글쓰기를 포기하겠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다렸던 해방은 어떤 구제도 가져오지 않았고 그는 또 다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좌파와 미국의 후원을 받는 우파의 분쟁 사이에 끼게 된다. 현을 통해 자신의 우려를 드러내는 작가는 예언적이다.

좌파가 국가를 지배하게 되면 “국가는 자기파괴적인 불화로 인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2년 후 두 개의 정부가 한반도에 따로 세워지고 그 후 2년 후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1949년에 쓰인 「호랑이 할머니」에서 작가가 북한의 공산당 정책에 부합하려 노력하면서 당국이 원하는 프로파간다를 생산하려 시도하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북한이 교육과 과학적 진보와 미신 타파를 강조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표제작 「먼지」(1950)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그리고 있다. 미국과 미국을 후원하는 남한을 그로테스크하게 희화화하는 것은 놀랍지 않지만 주인공 한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국가의 영혼을 위해 중립적으로 머물고자 애쓰는 또 다른 인물이다. 그는 (또 다시 예언적으로) 하나의 한국이 나머지 한국을 따돌리면서 화해와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라 우려한다. 결국 그는 각성을 하게 되고 공산당 기원의 타당성을 깨닫게 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그의 운명은 독자의 마음속에 확실함보다 의구심을 남겨놓는다. 그의 글을 보면 이태준이 결코 사회주의 노선을 진실로 믿지 않은 게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가 역사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으며 오늘날까지도 그의 운명이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한 이유다.
양극화된 이념과 의견들 사이에 종종 중립적 토양이 부재해 보이는 요즘 같은 시대에 책략보다 예술을, 이데올로기보다 이상을 고수하고자 했던 작가의 고투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호주 정원 디자이너의 깊이 있는 가이드

『한국의 정원: 전통, 상징, 회복력』

질 매슈스, 208페이지, 44.50 달러, 서울: 한림출판사, 2018

그녀의 최근작에서 정원 디자이너인 질 매슈스는 종종 당연하게 여기는 평화롭고 자연적인 공간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매슈스는 여러 차례 일본의 파괴 대상이 되기도 한 한국의 오래된 정원 역사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한 후에 한국의 정원이 다른 전통 정원들과 다른 면에 주목한다. 아마도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조화다. 한국의 정원에서는 자연에 질서를 강요하는 인간의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
풍수, 샤머니즘, 불교, 유교 등 다양한 한국의 정신적 전통을 짧게 훑어보는 것은 이 전통을 충분하게 평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정원을 이해하는 기초를 제공한다. 이어지는 상징에 대한 챕터는 특히 계몽적이다. 바위의 수와 배치, 심겨진 나무와 식물의 형태, 또는 연못과 섬의 모양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알면 정원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분량이 가장 많은 두 번째 챕터에서는 궁궐의 정원, 능의 정원, 불교 사찰 정원, 유학자의 정원을 포함해 한국의 가장 멋진 정원 스무 곳을 감상할 수 있다. 매슈스는 각 정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자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데 거의 페이지마다 실린 아름다운 천연색 사진은 텍스트를 보완한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 정원 용어 사전과 더 읽을 거리를 포함해 유용한 표와 도해뿐 아니라 이름난 정원 목록과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를 담고 있다. 이제 한국의 정원에 대한 지식과 전통적인 조원에 대한 감상으로 무장한 독자는 이 지식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어질 테고 가능하면 많은 정원을 방문해 보고 싶을 것이 분명하다.

국악 이단아들의 입체적 진화

「차연」 (Difference 差延)

By Jambinai, Audio CD $13, MP3 $8.91, London: Bella Union [2017]

© The Tell-Tale Heart

잠비나이는 국악을 베이스로 한 크로스오버 활동으로 해외에서 포스트메탈, 포스트록으로 분류되며 반향을 일으킨 밴드이다. 정규 1집 앨범 「차연」은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크로스오버상 수상작이다. ‘차연’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철학 용어로, 기표를 인식하는 기의의 시각적 차이와 시간적 연기를 합친 말이다.
머릿곡인 ‘소멸의 시간(Time of Extinction)’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술대로 타는 거문고 소리가 단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위를 강렬하고 무거운 일렉트릭 기타가 온통 뒤덮는다. 이윽고 기타 음이 걷히면 해금이 애틋하게 몸부림친다. 이 대목에서는 살풀이춤 같은 전통춤이 연상된다.

다음 곡은 ‘그레이스 켈리’인데 모나코 왕비가 된 미국 배우의 아름다운 외모와는 거리가 먼 음악이다. ‘선명했던 내 꿈 거짓 같은 시간 속에 죽어 있다 절망과 함께’로 시작되는 가사는 인더스트리얼 메탈처럼 강렬하고 차가운 합주 속으로 한바탕 빨려 들어간다. 마치 그레이스 켈리의 초혼제를 지내는 듯하다.
‘바라밀다 pt.1(Paramita pt.1)’는 여백의 미가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다. 절규하듯 고조된 거문고와 장구, 일렉트릭 기타가 뭉뚱그려져서 목탁 소리의 리듬처럼 울려 퍼진다. 하나의 실체가 눈앞에서 해체되는 듯하다. ‘구원의 손길(Hand of Redemption)’은 헤비메탈이나 하드코어 음악 팬들이 좋아할 만하다. 하드록 넘버의 기타 솔로처럼 해금이 무아지경의 애드리브를 펼친다.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 잠비나이의 이런 점이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보편성의 핵심인 듯하다.
마지막 곡 ‘커넥션(Connection)’은 해금과 거문고가 취주 악기를 배경으로 국악과 뉴에이지의 중간쯤 되는 색깔을 만들어 낸다. 모든 트랙을 통틀어 가장 긍정적이고 밝은 빛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마이크 올드필드가 그의 1집 앨범 「Tubular Bells」에서 반복하며 살을 붙여 갔던 진행을 연상시키는데, 점차 고조되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얼마 전 작고한 가야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황병기(1936~2018)가 1975년에 발표한 「미궁」(迷宮)은 그 독창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던 국악 앨범이다. 이후 잠비나이의 「차연」에서 국악 앨범의 입체적 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세계 무대에서 공연하느라 바쁘지만, 앞으로 나올 앨범들을 통해 이들의 더 좋은 작품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설렌다.

찰스 라 슈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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