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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UTUMN

생활

한국의 벗들 “결혼 이주 여성은 평등하고 자립적인 삶을 원한다.”

이레샤 페라라는 국적을 불문하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차별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시민단체인 톡투미를 이끌고 있다. 톡투미의 목적은 이들이 평등한 대우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페라라가 사용하는 주요 도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예술적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려 애쓰는 것이다.

모니카 인형은 이레샤 페라라가 이끌고 있는 기혼 이주 여성 자조 단체 톡투미를 대표하는 사업이다. 회원들뿐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방문해서 인형을 만들 수 있으며, 판매 수익금은 이 단체의 활동비로 사용된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결혼 이주 여성은 30만 명이 넘는다. 국제 결혼은 특히 농촌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신혼의 4분의 1이 한국인 남편과 이주 여성 아내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여성들을 한국어를 이상하게 말하거나,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아주 능숙하게 하는 ‘외국인’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게 이해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결혼 이주 여성은 이제 귀화한 한국 시민이며 약 80만 명으로 추정되는 다문화 가정의 기둥이다. 그들은 국적, 직업, 가족 등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한국인 남편의 아내가 되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다. 그래서 이들은 한국과 사랑에 빠진 결과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크게 들릴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태생이 외국인인 거주자가 200만 명 이상이고, 다문화가정 구성원의 수는 2020년에 100만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적응하고 이끌다
이레샤 페라라는 1999년 서울에 있는 한 방직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왔다. 그녀의 계획은 패션디자인 경험을 얻은 후 석 달 후에 한국을 떠나는 거였다. 하지만 스리랑카 출신의 이 젊은 여성의 부지런함과 쾌활함이 집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레샤를 소개했다. 2년 후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다. “그렇게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제가 사랑에 눈이 먼 게 틀림없어요”라고 이레샤(그녀는 이렇게 불러주길 원했다)는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차별을 경험하게 되었고 결혼 생활이 틀어지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외국인 혐오를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스리랑카로 돌아가 버렸다.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설득해 한국에 돌아오게 했지만, 그때 그녀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서울의 위성 도시인 안양에 살면서 곧 이웃들, 특히 연장자들과 친교를 쌓았다. “이웃 어른들이 저를 좋아하셨고, 그래서 저는 그들과 섞이면서 한국어를 빨리 배웠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게 이전보다 제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걸 훨씬 더 쉽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이웃을 위한 작은 자원봉사 모임을 꾸렸고 오랫동안 안양의 주민자치단체 이사회의 회원으로 일했다.
이레샤는 또한 전국적인 인물이 되었다. 지난 8년 동안 그녀는 결혼 이주 여성 자조 단체인 톡투미를 이끌어 왔다. 2006년에 서울과 인근 위성 도시에서 온 10명이 채 안 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모여 시작한 단체는 이제 온라인 회원이 4,000명, 오프라인 회원이 500명에 이른다. 이런 성격의 단체로는 한국에서 가장 크다.
“단체의 이름은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와 대화를 시작해요’라는 회원들의 희망을 반영하고 있어요”라고 이레샤는 말한다.
“이 단체는 중국, 일본, 필리핀, 러시아,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를 포함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성들로 이루어진 자조 모임이에요. 우리는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자조를 위한 노력
톡투미의 방문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열된 ‘모니카 인형’에 마음이 뺏기기 일쑤다. 인형은 단체의 세 가지 주요한 사업 중 하나이다. ‘모니카’라는 이름은 창작자의 원래 의도를 담고 있다. 모니카는 ‘멀리 있으니까’라는 의미의 한국어 ‘머니까’와 비슷하게 들린다. 그동안 7천 개 이상의 인형이 만들어졌고 하나하나 다른 색깔과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떤 것도 똑같지 않아요”라고 이레샤는 말한다. 각각 다른 모습은 “하나됨 속의 다양성”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인형을 판매한 수익금은 단체의 활동비로 쓰인다.
“모니카 인형은 재활용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문화적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의도를 상징합니다”라고 이레샤는 말한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단체에 가입할 수 있고 그냥 방문을 해서 인형을 만들 수도 있어요.”

“많은 다른 결혼 이주 여성처럼 저도 죽고 나면 한국에 묻힐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받아 주고 대우해 주는 거예요.”

그녀는 한국인들, 공무원과 일반 시민 모두가 자신과 단체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동정의 대상이나 일방적인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봐 주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톡투미의 또 다른 주요 활동은 ‘다문화 런치’로 다양한 국제 메뉴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사업이다. 케이터링 운영은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고 일부 음식은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세 번째 주요 사업은 “이모나라 나눔여행”이다. 자원봉사자 그룹은 다른 나라를 방문해 그곳 아이들과 학교를 지원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 톡투미 회원들과 울산대 학생들이 스리랑카의 초등학교를 방문해 시설과 놀이터를 수리해 줬다. 그들은 이후 학교 아이들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고, 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고정관념 깨뜨리기
이레샤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더 이상 “사회의 지원을 기다리는 외국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강인한 개인들이며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자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그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과거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아요.”
서울에는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결혼 이주 여성이 많이 살고 있다고 이레샤는 강조한다.
“우리는 세금을 내는 한국의 시민입니다. 차별당하고 배제되어도 되는 외국인이 아니에요. 가끔 미디어를 통해 정치가나 거물 기업가가 거액의 돈이나 설비를 이주자에게 기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종종 제대로 분배가 되지 않거나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게 잘못 유도된 복지는 결혼 이주 여성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들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효과를 불러옵니다. 우리는 소수자이긴 하지만 사회적 활동에서 약자는 아닙니다.”
이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직업을 갖는 것이다.
“고용자들은 능력이 아니라 피부색 때문에 우리를 고용하길 꺼려합니다. 가끔 무료 급식소에 전화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하면 그곳 직원들이 환영을 해요.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를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이레샤 역시 직업을 찾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19년 전 한국에 오도록 만든 자신의 꿈, 디자이너의 꿈을 여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소수 인종을 위한 교육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 유감이다. “중국이나 베트남, 태국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어를 잘하지만 스리랑카나 미얀마,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어를 잘 못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게 아주 큰 문제예요. 왜냐하면 우리들의 문제는 대부분이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기 때문이죠.”

이레샤 페라라 대표가 다른 회원들과 함께 만두를 빚고 있다. 톡투미에서는 정기적으로 독거 노인들을 방문해 무료 급식 나눔 활동을 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정책
이레샤는 피상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정부의 다문화정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정부에서 다문화에 대해 말할 때 그건 한국 문화를 외국인에게, 특히 개발이 되지 않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의미예요. 저는 한국인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중국과 일본 외의 다른 아시아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관용적이지 못한 한국인들의 마음은, 특히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한국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이레샤는 생각한다. 한국인들이 좀 더 긍정적인 태도로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기를 조언한다. 지난 몇 십 년간 낮은 출산율로 인해 점점 더 드러나는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다른 결혼 이주 여성처럼 저도 죽고 나면 한국에 묻힐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받아 주고 대우해 주는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첫 세대 결혼 이주 여성들이 차별을 견뎌야 했던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2세대 결혼 이주 여성들이나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차별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호소는 큰 울림을 만들었다. 정부는 이제 다문화가족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의 이주 정책이 여전히 실패라고 지적한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70%가 언어적인 불리함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어떤 다문화 커플은 가정을 이루는 것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가 자신들이 경험한 고통을 똑같이 겪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레샤는 한국 정부가 결혼 이주 여성과 이들의 아이들을 좀 더 잘 돌봐 주길 희망한다. 특히 이 여성들이 남편들보다 훨씬 더 젊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이 여성들 중 많은 이들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될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개인적인 계획
그녀 자신의 개인적인 계획이 무엇인가 묻자 이레샤는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 특히 아이들이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아이들을 위한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레샤와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에 종사하는 남편 사이에는 두 아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레샤는 결혼 이주 여성, 귀화한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작정임을 웅변했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당이 그녀를 단순히 끼워 맞추기 식으로 초대한다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레샤는 필리핀 출생의 국회의원 이 쟈스민 씨가 원했던 안건을 성취할 수 있도록 충분히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녀의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이레샤는 살림을 거의 혼자 해내야 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퇴근 후나 주말에 하길 꺼려했다. “하루에 거의 몇 시간 못 자요. 하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가정 살림은 혼자 해내려고 하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집주인이었던 이레샤의 시어머니가 현명한 결정을 내린 건 분명해 보인다.

최성진 한국바이오메디칼 리뷰 편집장
안홍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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