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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UMMER

생활

연예토픽 한국인에게도 이런 한국은 처음

여행을 소재로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들이 어슷비슷한 시도로 식상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포맷의 리얼리티 쇼가 화제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자국의 친구들을 초대해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하게 하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신선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최근 시즌 2에 들어갔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이 최근 몇 년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JTBC의 「비정상회담」이 대표적인 경우다. 2014년 7월에 시작해서 작년 말 휴지기에 들어간 이 프로그램은 매회 특정한 의제를 두고 여러 나라 출신의 젊은 출연자들이 진지한 토론을 벌였는데,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의 입담이 큰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몇몇 출연자들이 케이블 채널 MBC 에브리원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주요 호스트로 등장한다.
지난해 7월 이 프로그램이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외국인들을 앞세운 유사한 예능 쇼들의 재탕이 아닐까 하는 우려 섞인 반응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올 3월에 막을 내린 시즌 1의 경우 MBC 에브리원이 2007년 개국한 이래 최고 시청률인 5.1%를 기록했고, 매회 풍성한 화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으며, 호스트와 그의 친구들은 길거리에서 한국인들이 알아볼 정도의 스타가 되었다.

작은 역발상이 만든 신선함
외국인, 그리고 여행이라는 각각의 소재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이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점을 보였다. 최근의 여타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개 국내 유명 연예인들이 해외 여행을 떠나 현지인들을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던 것과 달리, 이 프로그램은 거꾸로 무명의 외국인들을 한국으로 초대해 여행하게 만드는 정반대의 풍경을 기획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공간과 경험들이 외국인의 시선에 의해 새롭게 변모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을 처음 방문한 독일인 호스트의 친구들은 호텔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를 보고 ‘엉덩이 선풍기’라며 놀라워했고, 고깃집에 설치된 환풍기를 신기해했다. 또 우리에게는 익숙한 음식인 닭백숙이나 치킨이 외국인들에게는 ‘즐거운 모험’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들이 그들에게는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으며, 나아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이 신기하고 놀라운 것으로 바뀌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또 다른 질문을 파생시켰다. 당초 외국인 방문자에게 던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질문이 “어때? 이제 보니 이런 한국은 당신도 처음이지?”라는 질문이 되어 내국인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다른 문화와 취향의 공유
이 프로그램은 출연한 외국인들의 국가별 문화적 특성과 차이를 눈여겨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출연자의 국적에 따라 여행하는 방식도 달랐고, 체험을 받아들이는 반응도 다르게 나타났다. 독일 친구들은 여행에 앞서 철저히 정보를 수집해 계획을 짜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반면에 멕시코 친구들은 사전 계획 없이 용감하게 덤벼들면서 벌어지는 시행착오를 여행의 묘미로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특유의 낙천적 사고 방식으로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우러지는 인도 친구들이 있었으며, 자연친화적 삶을 살아온 탓에 서울의 복잡한 대도시 풍경을 낯설어했던 핀란드 친구들도 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지역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외국인들의 시선에 한국을 비춰 보는 신기한 실험처럼 보였다.
그뿐 아니라 출연자와 시청자 간 상호적 문화의 교감을 증폭시킨 데는 이 프로그램의 형식도 한몫을 했다. 즉, 호스트와 MC들이 스튜디오에서 친구들의 여행 영상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인데, 두 가지 차원의 리액션이 가능했다.
그 첫 번째는 친구들이 처음으로 한국 문화를 체험할 때 보여 주는 리액션이고, 두 번째는 그 리액션을 스튜디오에서 보는 호스트와 MC들의 리액션이다. 시청자들은 이 과정에서 양쪽의 리액션을 함께 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교감과 소통이 더욱 깊어졌다.

2017년 6월 방영된 MBC에브리원의 리얼리티 여행 프로그램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파일럿 에피소드에서 이탈리아인 호스트 알베르토 몬디(왼쪽 사진의 맨 오른쪽)가 세 명의 고향 친구들과 경복궁을 방문하며 한국인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기 다른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출연자들이 저마다 다른 여행 방식을 보여 주었고, 내국인 시청자들은 익숙했던 자국의 광경을 그들의 눈을 통해 새롭게 재발견했다.

외국인을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
이 프로그램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데는 한국인에게 ‘외국인’이란 존재가 주는 남다른 의미가 작용한 이유도 있다.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한 19세기 말 이후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눈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신경을 쓰게 되었는데 그러한 경향은 국제 사회와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1970년대에 들어 더욱 확산되었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한국이 유치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였던 올림픽 경기에서 자국 선수들이 선전을 펼치며 금메달 12개로 종합 성적 4위를 차지한 것은 국민적 자긍심을 크게 높여 주었다. 전쟁 후 잿더미 위에서 외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경제를 일으킨 한국인들에게 외국인들의 관심과 찬사는 그간의 성취에 대한 인정으로 여겨졌다.
외국인들의 평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 같은 정서는 한때 대중문화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칸이나 베를린의 세계적 영화제에서 수상한 감독이나 배우들은 국위 선양에 기여한 것으로 추앙받았고, 수상 작품은 대중성이 다소 떨어져도 관객을 불러모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외국인, 또는 해외에서의 인정 욕구는 최근 들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제아무리 해외 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해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냉정하게 외면하는 게 지금의 대중들이다.
그렇다면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대중 정서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일방적인 상찬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판도 아닌 ‘다른 시각’ 자체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외국인들의 한국 문화 체험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놀라움, 또는 존경심 같은 것들을 주로 담고 있지만, 우리 문화에 대한 비판적 관점도 자연스럽게 담겨 있다.
이를테면 찜질방에서 밤새 값싼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핀란드 친구들이 “핀란드에서는 저녁 시간이 되면 술을 사 마실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렇다. 우리의 술 문화가 이색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음주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으로도 새겨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하며 자신들은 고작해야 1년에 한두 번 정도 미용실을 찾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또한 한국인들의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대한 언급으로 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외국인의 평가에 민감했던 과거의 정서를 뛰어넘어 그들과 동등한 관점의 교류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리 문화와 그들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낫고 못하다를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는 그저 다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다.

정덕현 (Jung Duk-hyun 鄭德賢)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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