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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PRING

문화 예술

인터뷰 관객을 잠 못 이루게 하고 싶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백조의 호수」에서 지크프리트 왕자역을 맡았던 김기민(Kim Ki-min 金基珉). 그는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린스키 발레단 최초의 외국인 수석무용수이다. 2016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무용 분야 축제인‘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에서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더욱 다져 나가고 있는 김기민을 전화로 만나 보았다.

김기민의 우아하고 힘찬 도약은 풍부한 표현력과 함께 긴 체공 시간이 관객의 숨을 멎게 한다.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개원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기념 전시회를 위해 발레리노 출신 사진가 박귀섭(Park Gwi-seop also known as BAKi 朴貴燮)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김기민을 촬영했다. ⓒBAKi.

김기민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형 김기완(金基完)과 함께 열 살 때 발레를 시작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발레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바로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다. 3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발레단이 영입한 최초의 동양인 남성 무용수였다. 2011년,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무용수의 잠재력을 믿는다
윤지영 러시아를 자신의 무대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기민 I마린스키 발레단의 뛰어난 무용수였던 블라디미르 킴, 마르가리타 쿨릭 선생님들께 10년 가까이 배우면서 러시아 스타일의 발레에 빠져들었습니다. 2010년 마린스키 발레단이 내한공연을 왔을 때 블라디미르 킴 선생님의 추천으로 유리 파테예프 단장과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6개월 후 오디션을 거쳐 정식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5년부터 지금까지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저를 믿고 지원해 주신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낭만적인 여름과 한국보다 조금 더 긴 겨울밤을 즐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0여 명에 달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무용수 가운데 외국인은 단 2명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발레단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I한국에서는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무용수가 대체로 주역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리 키가 작고 신체 조건이 부족하더라도 배역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적격자라고 판단이 내려지면 그 사람이 주역으로 무대에 서게 됩니다. 무용수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힘이 있죠. 바로 이 점이 단원으로서 제가 자랑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또한 마린스키는 작품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깔을 잘 표현하는 발레단인데, 대부분의 경우 무용수의 다양한 해석과 연기를 제한하거나 제지하지 않습니다.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지크프리트 왕자의 성인식을 예로 들어 볼까요. 이 장면을 연기할 때 무용수가 누구인가, 상황이 어떠한가에 따라 다른 해석과 표현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그날 무용수의 기분 상태에 의해 달라지기도 하지요. .
제 경우 왕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지 않아요. 관객들은 이미 제가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대신 왕자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연기하는 왕자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뭔지 모를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객석에서는 미세한 디테일이 안 보일 것 같지만 다 전달됩니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힘, 나아가 러시아 발레의 힘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선 구소련 당시 발레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도 발레가 주류였기에 상당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죠. 마린스키 극장은 무용수가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입니다.

K2015년 10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실비아」(Sylvia)에서 아민타 역의 김기민이 독무를 추고 있다. 레오 들리브 작곡, 프레드릭 애시튼 안무의 「실비아」는 목동 아민타와 요정 실비아의 사랑을 그린 19세기 낭만주의 발레 작품 중 하나이다. ⓒMariinsky Theatre. Photo by Valentin Baranovsky

그런데 제가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러시아 관객의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관객이 제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제 의상과 동작에 대한 의견을 조목조목 말해 주었어요. 관객이 전화를 했다는 사실도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그 조언의 수준이 상당히 전문적이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관객의 수준이 이처럼 높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 덕분입니다. 하지만 바슬라프 니진스키,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당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무용수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죠. 저부터라도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 앞에서 줄을 섰을 테니까요. 문화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융합되면서 관객의 저변이 넓어지고 수준도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수가 관객의 수준을 높인다
한국에서는 발레가 대중적인 예술 장르가 아닌데, 발레 분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제가 느낀 한국과 러시아 발레 문화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공연 도중 발레리노가 넘어지거나 여자 무용수를 떨어뜨리면 그 실수만으로 무용수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관객들은 실수를 실수로 받아들이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그가 무엇을 보여 주는지를 계속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공연이 끝난 뒤 차분하게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죠. 순간적인 작은 실수를 문제 삼아서 공연의 완성도나 무용수의 능력 전체를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넓게 보아 그처럼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봅니까?
아무런 지식 없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는 것과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죠. 발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관객을 공부하게 만드는 것까지도 무용수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무용수는 관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춤을 춰야 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 춤이 재미있어야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테니까요. 그저 화려한 테크닉만 추구할 게 아니란 얘기죠.
기술적 측면에서 한국 발레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말로 ‘꿀뚜라(культу́ра)’, 즉 문화와 역사의 에너지에 집중해야 할 듯합니다. 한국의 발레 역사는 짧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토대를 만든 선배들과 스승들의 자취를 잘 보고 배워야 합니다.
러시아는 역사에 최우선의 가치를 둡니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는 우리가 존재를 잘 모르는 그의 스승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스승과 스승의 스승에 대한 이해 없이 바리시니코프를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야든 역사의 가치를 인정할 때 진정한 힘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한국 무용수들이 힘든 여건에서 한국 발레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선배들의 업적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관객의 기억을 통해 완성되는 꿈
언젠가 발레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과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가 발레 학교를 세우고 싶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발레를 공부하기 위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려면 그 학교 스타일에 맞춰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 전에 배웠던 학원이나 학교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실제로 그런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심지어 학교를 그만두는 친구들을 많이 봐 왔습니다.
한 후배가 “여태까지 배웠던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게 제각기 다른데 어떤 게 맞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무용수들 가운데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 졸업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 그런 불합리한 제도 때문이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한국에서는 발레리노로서 발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을 위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발레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워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이미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무용가로서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예술가로서의 정점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어렸을 때부터 꾸어 온 꿈이 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원국(李元國) 선생님이 주연을 맡은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본 날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냥 그랬어요. 그때 결심했죠. 나도 저렇게 감동을 주는 무용수가 되자고. 누군가 제게 어떤 춤을 추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어떤 분이 제 공연을 보고 난 뒤 한 여섯 달쯤 잠이 안 오게 하고 싶다”고 대답할 겁니다.
더 나아가 누군가를 치유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습니다. 한번은 공연을 마치고 극장을 나서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1년 전에 네가 나온 「라 바야데르」(La Bayadère) 공연을 봤는데, 아직도 자기 전에 그 음악이 들리고 네가 춤추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제가 출연한 작품, 제가 춘 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제가 무용수로서 그 꿈을 못 이룬다면, 안무가가 되어서든 아니면 제가 가르친 제자를 통해서든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2013년 9월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서 김기민이「라 바야데르」(La Bayadère)의 전사 솔로르 역할을 맡아 화려한 동작을 펼쳐보이고 있다. 그는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의 객원 주역 이후 이 역할을 여러 번 맡았는데, 2015 년 6월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아메리칸 발레시어터가 공연한 나탈리아 마카로바(Natalia Makarova) 버전의 솔로르로 첫 미국 무대에 섰다. 특히 2015년 12월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솔로르 역할은 이듬해 그에게 브누아 르 당스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는 계기가 되었다.
ⓒMariinsky Theatre. Photo by Natasha Razina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제가 출연한 작품, 제가 춘 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제가 무용수로서 그 꿈을 못 이룬다면, 안무가가 되어서든 아니면 제가 가르친 제자를 통해서든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윤지영 (윤지영 尹智煐) 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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