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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UTUMN

생활

식재료 이야기 배추가 없었다면 김치는 어찌 되었을까?

중국이 원산지인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이며, 한반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영양 공급원이다. 십자화과(Brassicaceae)에 속하는 다른 채소들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지만, 사실 배추는 생각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채소이다.

주식인 쌀밥의 소비가 늘면서 궁합이 잘 맞는 배추 김치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환상적인 조합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배추 김치는 쌀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발달한 반찬이기 때문에 쌀 소비가 줄어들면 배추 김치의 수요도 함께 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나희덕(Ra Hee-duk 羅喜德) 시인의 시 「배추의 마음」을 읽으면 마음이 애틋해진다.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시적 상상력으로 배추에 인격을 부여한 시인이 있을 정도로 배추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채소이자 중요한 먹을거리다.

십자화과의 잎채소
배추는 무, 고추와 함께 한국인이 즐겨 먹는 3대 채소 중 하나다.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한국 배추(Korean cabbage)’라는 고유의 품종도 있다. 배추는 형태, 즉 잎이 뭉친 정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포탄처럼 전체가 단단하게 뭉친 것이 결구(結球) 배추이고, 밑동 부분만 뭉친 것이 반결구(半結球) 배추, 그리고 잎이 모아지지 않은 것이 불결구(不結球) 배추다. 이 셋 중 주로 결구 배추와 반결구 배추를 재배해 먹는다. 이 두 종류가 빨리 자라고 수확량이 많으며, 저장하기 쉽고 다루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야기겠지만, 한국 배추는 다시 ‘서울 배추’와 ‘개성 배추’로 나뉜다. 서울 배추는 키가 작고 잎 색깔이 연한데 반해 개성 배추는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색깔이 짙다는 차이점이 있다.
잎채소인 배추는 식물 분류상 십자화과에 속한다. 십자화과 채소에는 무, 양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일 등이 있는데 이 중 서양인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양배추, 브로콜리 등은 이미 웰빙 식품으로 지위를 굳혔다. 그러나 배추와 무는 그 효능을 밝힌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어, 다른 십자화과 채소에 비해 아직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맛 좋고 영양도 풍부한 가을 배추
배추는 저열량 식품으로 생각보다 훨씬 건강에 이로운 식품이다. 생것은 100g당 12㎉로 양배추나 적양배추의 절반 수준으로 매우 낮다. 삶거나 소금에 절여도 14㎉에 불과해서 그다지 부담이 없다. 나트륨은 11 mg이 들어 있어 18 mg이 함유된 양배추보다 낮고, 신체의 저항력을 강화시키는 비타민 A의 함량은 263IU로 98IU인 양배추보다 높다.
배추에는 변비와 비만 예방에 유익한 식이섬유가 풍부한데, 다른 채소보다 부드럽고 열을 가하면 부피가 크게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특히 장에서 발효돼 가스를 방출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도 돋보인다.
배추의 효능을 언급할 때 가장 강조되는 부분은 암 억제 효과가 입증됐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의료 종사자의 추적 조사에 등록된 4만 7000여 명의 식습관을 조사해 “배추와 브로콜리의 섭취가 많을수록 방광암 발생 위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배추의 항암 효과에 대한 다른 연구들도 여럿 된다. 한국식품연구원이 간암에 걸린 실험용 쥐에게 다양한 채소를 먹인 결과, 배추와 무를 먹인 쥐는 일반 사료로 키운 쥐에 비해 간암의 크기가 절반 정도로 줄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가을 배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을 정도로 늦가을 배추 맛은 아주 일품이다. 게다가 소화도 잘된다. 그 이유는 수분이 95.6%나 될 정도로 많아서인데, 이런 이유로 배추는 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채소이다.

겨울철 옛 한국인들의 주식
살림 솜씨가 노련한 나이 든 주부들과 달리 김치를 사 먹는 요즘 젊은 주부들은 어떤 배추가 좋은지 모를 것이다. 배추는 속이 꽉 차고 묵직한 것이 양질이다. 또 잎은 얇고 부드러우며, 밑동이 잘 뭉쳐 있어야 한다. 겉잎에 검은 반점이 있으면 속까지 그럴 확률이 높다.
요즘처럼 배추가 사계절 내내 출하되지 않던 과거에는 김장철에 맞춰 가을에 수확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 나온 것이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지나 기온이 더 떨어지면 잎이 단단하게 뭉치고 맛이 없어진다.
한국인들은 배추로 국을 끓여 먹고, 양념을 해서 무쳐 먹기도 하며, 제철인 가을이나 겨울에는 지역에 따라 밀가루 반죽을 얇게 입혀 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주된 용처는 바로 김치다. 예로부터 김치는 반식량(半食糧)으로 통했다. 겨울은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없는 계절이어서 김치는 비타민 C 등 필수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급원이었다. 특히 다른 음식을 섭취하기 힘들었던 가난한 서민에겐 더욱 중요한 양식이었다.
김치가 이렇게 한국인에게 중요한 반찬이었기 때문에 ‘김장’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김장은 입동을 전후해 장기간 먹을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었던 오랜 전통이다. 혼자서는 김장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김장철이 되면 동네 주부들이 서로 품앗이를 해 주곤 했다. 김치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배추이기 때문에 김장철에 양질의 배추를 확보하는 일은 주부들의 숙제였다. 김치를 담글 때 재료의 배합 비율은 각 지역과 가정마다 기준이 천차만별이고 이에 따라 맛도 각양각색이다. 또한 김장은 새우젓이나 생굴, 신선한 생선 등을 넣어 담가서 천천히 발효시켜 먹기 때문에 영양도 더욱 풍부하다.
한반도에서 요즘과 같은 배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때는 18세기로 추정되는데, 오늘날과 같이 고춧가루로 양념한 빨갛고 매운 배추 김치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이후다. 고추가 배추보다 뒤늦게 이 땅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18세기 이전에는 소금물로만 김치를 만들었을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이 먹는 것과 같은 배추 김치가 등장한 18세기는 조선의 경제 활황기였다. 주식인 쌀밥의 소비가 늘면서 궁합이 잘 맞는 배추 김치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환상적인 조합은 최근 조사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연구팀이 2016년 『식품과 건강 저널』(Journal of Nutrition and Health)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한국인이 하루 3회 이상 섭취하는 음식 1, 2위가 쌀밥과 배추 김치였다. 하지만 식단이 서구화되면서 육류 소비는 증가하는 반면 쌀 소비량은 계속 감소 중이다. 배추 김치는 쌀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발달한 반찬이기 때문에 쌀 소비가 줄어들면 배추 김치의 수요도 함께 줄 것으로 보인다.

배추는 국을 끓이거나 소금물에 살짝 절인 후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쌈을 싸서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 편육과 생굴을 연한 배추 잎에 싸서 먹는 보쌈은 요즘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최근에는 양배추가 항암 식품, 골절 예방 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잘 익은 김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그릇에 담았다. 배추 김치는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기본 반찬이다.

서양인들이 사랑하는 양배추
서양에서는 양배추가 한국의 배추 같은 대접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의 의사’라는 별명을 지닌 양배추는 올리브, 요구르트와 더불어 3대 장수 식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가격도 저렴해서 그런 말이 생긴 것 같다. 양배추는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호사가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훈계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디오게네스가 비위생적 환경 속에서도 90세까지 살았던 비결이 양배추 덕분이라고 말한다. 양배추는 배추와 마찬가지로 저열량, 고칼슘, 고칼륨, 고비타민 C 식품에 속한다. 100g당 열량이 24㎉에 불과해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의료계에서 양배추가 높이 평가되는 것이 비타민 U의 존재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194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은 “양배추 즙이 위궤양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일주일가량만 양배추 즙을 섭취해도 궤양이 빠르게 치유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질이 바로 비타민 U라고 설명했다. 비타민 U는 나중에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타민으로 밝혀졌다. 인공조미료의 주원료인 글루타민은 위장관 내 세포 재생을 돕는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양배추가 항암 식품, 골절 예방 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박태균(Park Tae-kyun 朴泰均)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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