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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UMMER

LIFE

식재료 이야기 ‘겨울 인삼’ 무, 쌀밥의 단짝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밥상에는 늘 무로 만든 찬이 오른다. 쌀밥에 잘 어울리는 맛이 널리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겨울 채소가 귀하던 시절에 무는 비타민 C의 주요 공급원이기도 했다. 요즘엔 사시사철 재배되지만 따뜻한 섬의 겨울 밭에서 재배된 ‘월동 무’가 가장 맛이 뛰어나다.

무는 향신채 이외에 한국인이 가장 가까이하는 채소 중 하나이다. 유럽에서는 빨간 무를 샐러드용으로 사용하고 일본에서는 다이콘이라 부르는 하얀 무를 생선 조림, 메밀 소바, 된장국, 절임 등의 식재료로 사용하는 정도이지만 한국에서는 김치, 국, 찌개의 재료로 두루 쓸 뿐더러 요리의 밑국물을 낼 때도 넣는다. 무청을 말린 시래기, 무를 썰어 말린 무말랭이 같은 저장식품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인은 하루도 무를 먹지 않고 지나는 날이 없을 것이다. 무에 전분을 분해하는 아밀라제라는 효소가 풍부한 것도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한국인이 무를 많이 먹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겨울 인삼’이라 불렸던 비타민의 보고
비닐하우스 농사가 발달하지 않아서 겨울 야채가 귀했던 1970년대까지는 가을에 수확한 무를 얼지 않도록 땅속 깊이 묻어 두고 겨우 내내 꺼내다 반찬을 해먹었다. 그냥 깎아 먹기도 했다. 과일만큼은 아니어도 달고 시원해서 겨울 밤의 별미였다. 이렇게 겨울 동안 간식으로 날로 먹는 무를 동삼(冬蔘)이라고도 불렀다. 값싼 무를 비싸고 귀한 인삼에 빗대었던 데에는 일리가 있다. 인삼만큼의 약효는 없지만 그 시절 무는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C의 주요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무는 채소 중 연간 생산량이 가장 많고 사시사철 재배된다. 그 중 맛이 가장 좋기로는 겨울 밭에서 추위를 견뎌 낸 ‘월동 무’를 쳐준다. 한국의 남쪽 지방은 한겨울 밤에도 기온이 영하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0℃ 이상 10℃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밤을 많이 지낼수록 무의 단맛이 좋아진다. 낮에 광합성으로 전분을 만든 다음 밤 추위에 대비해 빠르게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무의 생존 본능이 단맛을 올리기 때문이다 월동 무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대량생산과 도시 유통이 본격화되었으며 제주도의 월동 무가 가장 유명하다.

깨끗이 세척하여 비닐자루에 포장되어 미국으로 수출된 지도 10여 년 되었다. 반면에 한여름에는 해발 600m가 넘는 강원도 고지대에서 무를 재배한다. 평지의 온도가 30℃가 넘으면 야채들이 생육을 멈추거나 웃자라 무가 푸석거리고 단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밤 기온이 떨어지는 고랭지 재배를 하는 것이다.

여름 별미 열무국수
여름은 어린 무인 열무의 철이다. 다른 무보다 재배 기간이 짧은 열무는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열무김치 국물에 멸치 육수 등을 더해 살얼음이 낄 만큼 얼렸다가 소면을 말아먹는 시원한 열무국수는 길거리 분식점에서도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여름 별미이다. 새콤한 국물에 열무김치와 소면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넣고 씹으면 잠시 더위를 잊게 된다.
여름 국수와 무를 연관 짓자면 냉면도 빠뜨릴 수 없다. 소, 돼지, 닭 등으로 육수를 낸 국물에 메밀로 만든 면을 말아먹는 전통음식인 냉면의 고명으로 오이, 고기, 계란과 함께 절대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무 초절임이다. 무를 2~3mm로 얇게 썰어서 소금, 고춧가루, 식초, 설탕 등으로 맛을 낸다. 메밀을 무와 함께 섭취하는 전통에도 이유가 있다. 메밀 껍질에 있는 살리실아민과 벤질아민이라는 독소 성분을 무의 효소가 중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메밀 소바를 먹을 때 강판에 간 무를 같이 내는 것과 이유가 같다.

여름은 어린 무인 열무의 철이다. 다른 무보다 재배 기간이 짧은 열무는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열무김치 국물에 멸치 육수 등을 더해 살얼음이 낄 만큼 얼렸다가 소면을 말아먹는 시원한 열무국수는 길거리 분식점에서도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여름 별미이다.

담기 쉬운 깍두기
무가 주재료인 깍두기는 수많은 김치 종류 중에서 가장 담그기 쉽다. 나도 배추김치는 재료도 다양하게 장만해야 하고 과정도 까다로워서 담글 엄두를 못 내지만 13살 된 딸아이가 밥상에서 깍두기를 찾을 때면 시간을 내서 깍두기를 담곤 한다. 집 앞 슈퍼에 가서 무 하나를 사다가 가로 세로 높이 2-3cm 정도 되게 썰고 소금을 뿌려 두 시간 정도 둔다. 그러면 소금이 무에 녹아 들면서 무에서 수분이 빠져 아삭해진다. 이것을 멸치액젓, 새우젓, 고춧가루, 찹쌀풀(시간이 없으면 생략해도 된다)로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여기에 쪽파 다진 것을 넣으면 깍두기의 맛이 한층 깊어진다. 담근 후 이틀 정도 지나면 먹을 수가 있다. 닭백숙이나 갈비탕, 설렁탕 같은 국물이 있는 고기 요리에는 배추김치도 좋지만 잘 익은 깍두기가 제격이다. 무가 기름진 음식의 소화도 도우니 맛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 음식 조합이다.
특이한 무김치로는 경상남도 통영을 비롯한 남쪽 바닷가 고장에서 많이 담가 먹는 볼락무김치가 있다. 바다 생선인 볼락(无备平鲉, Sebastes inermis)을 통째로 넣어 무김치를 담는다. 처음에는 비린내가 나지만 두어 달 발효시키면 비린내는 사라지고 어단백질이 숙성돼 풍겨 나오는 특유의 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무와 볼락이 한 접시에 담겨 상에 오르면 처음엔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지만 맛을 보면 어색함이 신기함으로 바뀐다. 억센 생선의 뼈는 발효과정에서 부드러워지고 살은 탱탱하여 김치를 먹는다기보다는 풍미 있는 생선요리를 먹는 기분이 든다. 따뜻한 밥과 함께 먹으면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는 을지로에 있는 통영음식 전문점인 충무집에서 봄철에 맛볼 수 있다.

김진영 (Kim Jin-young, 金臻榮) ’여행자의 식탁(Traveler’s Kitche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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