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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PRING

LIFE

ENTERTAINMENT 일반인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토크쇼

평범한 가정의 고민거리가 텔레비전 토크쇼의 주제가 되고 있다. 출연자들은 오락성과 다큐의 경계에서 웃고 울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의 집 식구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에 시청자들은 자신의 경우를 대입해보고,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훈수를 두기도 한다. 이제는 사라지다시피 한 이웃 사이 유대 관계의 TV판이다.

TV에는 유명 연예인들의 육아나 연애 같은 일상사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그 틈새에서 일반인들의 고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TV가 이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는 아주 큰 열쇠구멍이 된 셈이다. 이는 마치 밥 때가 되면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던 시절이 지나가고 혼자 밥 먹는 인구가 늘어나자, 역설적으로 TV속에서 ‘먹방’이 만개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가장 고민스러운 사연 뽑기
KBS 2TV예능 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일반인들의 갖가지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5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이 엽서에 털어놓은 사연 중 매주 세 편을 골라 읽어준다. 이어서 고민의 제보자가 직접 나와 심경을 토로한다. 기이한 습관이나 취향을 지닌 가족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자신의 특이한 외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강력한 입담을 자랑하는 네 명의 진행자들은 주인공의 사연에 동조하거나 짓궂은 질문을 던져가며 사연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제보자의 가족이나 친구, 또는 고민의 유발자를 등장시켜 그들의 말도 들어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제보자의 고민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제보자 쪽에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초대된 게스트들은 제보자의 사연이 진짜 심각한 고민거리인지 아닌지 의견을 교환하고, 최종적으로 방청객의 투표를 통해 가장 고민스럽다고 인정되는 사연을 뽑아 상금을 준다. <안녕하세요>는 재미있게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토크쇼일 뿐, 고민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고민을 토로하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과정에서 제보자의 고민의 무게가 덜어지고 자연스러운 중재가 이루어지곤 한다. 물론 정말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해 보이는 — 정신의학적 문제나 법적인 문제를 품고 있는 — 경우도 있고, 제보자의 사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끔찍한 편견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진행자들은 적절한 위로를 통해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을 막지만, 논쟁적인 소재가 등장한 다음날에는 인터넷에서 뜨거운 대리전이 불붙기도 한다.

관찰 카메라에 담긴 양쪽 입장
올해 4월에 시작된 SBS의 <동상이몽-괜찮아, 괜찮아>는 부모와 자녀 사이 갈등을 듣고 해결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매회 한 가족의 고민을 다루는데, 단순한 토크쇼의 형식을 벗어나 관찰 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갈등을 보여준다. 딸을 심하게 감시하는 어머니의 사연이나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고 동네를 배회하는 딸의 사연 등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이런 가족의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찍는다. 필요할 경우 심리검사를 의뢰해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양쪽의 입장을 고루 보여준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제보자의 입장에서 사연과 영상을 보여주며 스튜디오의 패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연과 영상을 보여준다. 관점이 뒤바뀌면 갈등의 양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며, 이러한 충돌을 통해 시청자들은 양측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출연한 가족들 역시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 몰랐다는 것이다. ‘동상이몽’이라는 제목처럼, 부모와 자녀가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에 빠져,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이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동상이몽>은 <안녕하세요>보다 예능의 느낌은 덜하고 중재의 역할은 강화되었다. 제시되는 갈등도 더 심각하고, 제작진이 가족의 문제에 개입하는 정도도 더 높다. 스튜디오의 패널들은 일종의 배심원처럼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상세한 비판과 조언을 한다. 가령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는 사춘기 딸을 둔 부모에게 딸의 귀가시간을 11시로 늦춰주고 약속을 받아내도록 조정한다. 그들은 부모에게 자기 방이 없는 딸을 위해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해주라는 조언도 한다. 골자만 요약하니 매우 단순한 조정으로 보이지만 합의와 화해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가족 간 갈등의 세부를 화면으로 지켜보게 되는 시청자들은 이를 통해 자기 집안 내 가족 간 소통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된다. 프로그램이 출범한 초창기에는 가족의 문제를 흥미 본위로 과장해서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제작진의 사과로 위기를 넘겼다.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프로그램이 폐지되지 않은 것은 가족의 화해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의 취지나 중재의 효과에 대해 시청자들의 공감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 훈수 두기
과거에 사람들이 농촌 공동체에 속해 살거나 도시에서도 이웃 간의 교류가 많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시절에는 한 가정의 문제가 이웃에게 알려지는 일이 흔했다. 개인의 고민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요, 가족의 갈등도 한 가정만의 갈등이 아니었다. 마을에는 비밀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이 가족의 일에 자연스럽게 조언을 하거나 개입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도시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거문화가 바뀌고, 90년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개인간 경쟁이 심화되자, 이런 전통적인 이웃 간의 유대관계가 끊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고민이 있어도 친척이나 친구, 이웃들과 고민을 나누지 못하는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년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한국은 회원국 중 최저점수를 기록하였다.

함께 이야기할 상대는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고민이나 소통의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고민이 생기면 인터넷 익명게시판이나 SNS에 글을 올린다. 그것을 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거나 훈수의 댓글을 단다.
예전 같으면 현실의 친구나 이웃이 들어줄 법한 고민을 TV가 대신 들어주고, 시청자들은 TV를 통해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을 충족한다. 그리곤 다른 사람의 삶도 나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 안심하고, 자신의 삶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에 안도한다. 많은 사람들의 실제 삶이 파편화될수록, 타인의 일상을 비추는 TV프로그램들은 흥할 것이다. 그리고 온 국민이 동네주민인양,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관심과 조언의 강도도 높아질 것이다. 옆방에서 일가족이 자살해도 모르는 고립된 사회에 살면서, 여전히 일상의 고민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는 환상을 붙잡으려는 아이러니컬한 욕망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황진미(Hwang Jin-mee, 黃鎭美)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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