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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PRING

CULTURE & ART

ART REVIEW 건축 공간을 해석하는 여섯 사진가의 시선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2015년 11월 19일부터 2016년 2월 6일까지 “한국건축예찬 : 땅의 깨달음” 전이 열렸다. 건축을 자연과 인간의 만남의 장으로서 조명한, 한국 건축의 인문 정신을 기린 전시이다.

2004년에 개관한 리움은 서구 문화의 배경을 가진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 세 사람의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로 이루어져 건물 그 자체도 관람의 대상이 된다. 그중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천장이 매우 높고 현대적인 기획전시관에서 한국 전통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보다 먼저 삼성문화재단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건축 사진집 발간이 기획되었다. 한국 건축 역사가들에게 의뢰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간 10곳을 선정하고, 그것을 6명의 사진가가 촬영하게 하여 10권의 사진집을 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공들여 담아낸 한국 건축 이미지가 “책으로만 선보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전시 형태로 재구성하게 되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연출한 큐레이터 이준 리움 부관장의 표현을 빌자면 “사진집 프로젝트의 의미를 미술관 차원에서 좀더 발전적인 담론으로 확대한” 전시이다. 천, 지, 인 키워드로 보는 건축미 전시는 크게 3부로 나뉘었다. 한국 전통 건축을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종교 행위를 하는 곳, 통치 행위의 질서를 구현한 곳,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천(天), 지(地), 인(人)으로 상징했다. 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사람이 하늘과 어떻게 소통하고, 땅에 어떠한 질서를 세우며, 사람들끼리 서로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보고자 한 것이다.
‘천’ 섹션의 부제는 “침묵과 장엄의 세계”이다. 여기에 초대된 공간은 불교 사찰인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와 조선 왕실의 사당으로 유교 정신을 드러낸 종묘이다. ‘지’ 섹션의 부제는 “터의 경영, 질서의 건축”이다.

여기에서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과 18세기에 정조가 새로운 도시로 건설한 수원 화성, 서울의 성곽인 한양도성 등을 보여준다. ‘인’ 섹션의 부제는 “삶과 어울림의 공간”이다. 15세기부터 내려온 양반 씨족 마을의 삶의 모습을 간직해오고 있는 경주 인근의 양동마을, 조선시대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을 가르쳤던 대표적인 공간인 도산서원, 그리고 한국 민간 정원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전라남도 담양의 소쇄원을 조명했다.

이 공간들이 전시장으로 초대됨과 동시에 관람객 또한 이 공간으로 초대된다. 공간을 전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방대한 건축 공간을 전시장 안에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며, 사진과 같은 2차원 평면으로 보여주면서도 관람객에게 입체성과 공간성을 전달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면에 내건 대형 사진을 중심으로 10개의 주요 건축 공간을 배치했다.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관람객이 사진을 통해 공간과 직접 대면하도록 한 것이다. 거기에 다각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들이 더해졌다. 각 공간의 3D 스캔 영상과 건축을 짓는 방법을 보여주는 3D 영상 및 조감도 모형, 건축 관련 유물과 회화, 그리고 한옥의 단면을 바느질로 재현해서 한옥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현대적으로 제시한 서도호의 작품 <북쪽 벽> 등 그 다채로운 구성에서 기획자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건축과 사진의 만남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진가는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재경, 서헌강, 김도균 6명이다. 다큐멘터리와 문화재, 풍경 등 작업해 온 편력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40대에서 70대까지 폭넓다. 사진가들의 시선은 다양하지만 전시장 전체는 일관성을 갖는다.
사진가들은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과 함께 그 공간에 섰을 때 바라보이는 주변의 풍경을 품고자 했다. 고려시대인 11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존해온 해인사 장경판전은 주명덕의 시선으로 관람객에게 제시된다. 해인사 전각의 지붕들 위로 내리는 눈발이 하나하나 보일 만큼 사진은 섬세하다. 느리게 바뀌는 슬라이드 이미지들은 관객들에게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곳곳에 시선을 돌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안에는 정지된 건물들만 아니라 수행하는 스님들의 일상이 있어 이곳이 숨쉬고 있는 종교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흰 눈이 덮인 정전 건물과 바닥에 깔린 돌들이 긴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배병우의 종묘 사진 앞에서는 그 엄숙함에 저절로 발이 멈추어진다. 종묘의 공간감이 더욱 극대화되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 박종우의 3채널 영상 <장엄한 고요(Solemn Serenity)> 앞에서이다. 암막이 처진 작은 영상실 공간의 3면에 가득 찬 종묘의 모습은 단 5분의 시간을 마치 영겁처럼 느끼게 한다. 흑백 위주의 간결한 화면은, 종묘 건축과 제례를 거행하는 사람들, 제례악과 빗소리를 공감각적으로 담아 종묘 공간의 기념비성과 제의성을 압축해 냈다.

서헌강의 불국사 사진에서는 늘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한 모습이 아니라 8세기에 국가적 경영으로 창건된 불국사가 지녔을 법한 위엄이 느껴진다. 다보탑, 청운교와 백운교, 극락전 마당을 찍은 전경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석축기단과 단청 같은 세부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본창은 계곡을 끼고 길게 뻗어 있어 한 눈에 파악하기 어려운 통도사를 금강계단 뒤의 소나무 숲에서 조망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계곡을 이용해 만들어진 정원인 소쇄원은 한국인의 자연과 건축관을 잘 드러내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구본창은 정자 안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풍경을 드러냄으로써 건축 그 자체보다는 자연 ‘속’의 건축의 존재를 일깨운다. 틀에 갇히지 않은 배치를 보여주는 궁궐인 창덕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한국 건축이 어떻게 그 터를 해석하고 자연과 소통하는지를 드러내준다. 같은 목조 건축 전통을 지닌 중국의 건축이 크고 우람한 형태감을 중요시한다면, 한국의 건축은 형태나 크기보다 공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보았다. 이것은 한국의 건축관이자 자연관이기도 하다.

흰 눈이 덮인 정전 건물과 바닥에 깔린 돌들이 긴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배병우의 종묘 사진 앞에서는 그 엄숙함에 저절로 발이 멈추어진다. 흑백 위주의 간결한 화면은, 종묘 건축과 제례를 거행하는 사람들, 제례악과 빗소리를 공감각적으로 담아 종묘 공간의 기념비성과 제의성을 압축해 냈다.

고미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
주제에 맞게 요소 요소에 적절히 배치한 회화와 지도, 건축과 관련된 공예품들은 건축물의 공간을 확장하는 한편,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하바드 옌칭 도서관에서 빌려온 <숙천제아도>는 19세기의 한 관리가 42년 동안 자신의 근무했던 관청들을 그리게 한 기록화로, 한국에는 처음 공개된 것이다. <경기감영도>는 경기 감사가 한양의 서대문을 나서 감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12폭 병풍에 그린 것으로, 19세기 당시의 건물들과 함께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모니터를 이용해 화면의 세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 ‘디지털 돋보기’를 사용하면 그림 속 건물과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관찰할 수 있다.
디지털을 이용해 새롭게 선보인 것은 금동불탑의 영상 복원과 세부 이미지이다. 리움이 소장한 고려시대의 금동불탑은 110cm의 소형으로, 현재는 5층으로 되어 있지만 연구를 통해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 모습을 디지털로 복원해 보여준다. 상륜부, 지붕, 난간 등 구조적인 모습과, 처마 끝의 풍탁, 탑신에 새겨진 불상 등 세부 모습이 섬세하게 드러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는 설명보다는 영상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신라> 특별전에 선보였던 석굴암 3D 축조 영상은 8세기 건축물인 석굴암이 어떻게 그처럼 완벽한 형태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축조 과정과 소쇄원 광풍각의 터닦기에서 현판달기까지를 보여주는 3D 영상들은 주춧돌 위에 기둥을 놓고 보를 얹어 지붕 구조를 완성하기까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목조 건축 구조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한국의 현재와 전통 건축
공간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실물 크기로 재현된 건축물도 있다. 전시 초입에는 한국 고건축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과 기둥 위의 구조물인 포작이 실물 크기로 전시되어 있다. 나무가 지니는 따뜻함과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의 단단하면서도 곡선적인 부드러움이 드러난다. 전시의 끝부분에는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건물의 하나인 무첨당(無添堂)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유첨당(有添堂)을 두었다. 이 새 건물은 전통 건축역사가이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김봉렬의 아이디어가 구현된 것이다. 설계자는 ‘없음(無)’을 ‘있음(有)’으로 바꾸면서, 전통 공간에 현대의 눈을 ‘더했다’는 재치있는 명칭을 붙였다. 전통 건축 방식의 목조 누각과 현대적으로 단순화한 철제의 방은 전통과 현대, 양동마을의 두 가문의 결합 등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건물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관람자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 공간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마루가 깔려 있는 누각에서는 시각과 촉감으로 한옥 공간을 느낄 수 있다. 방에는 눈높이에 양동마을 풍경이 슬라이드 영상으로 제시된다. 가장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에 창을 내서 마치 액자 속의 그림을 보듯이 창을 통해 자연과 교감했던 옛사람들의 자연관을 보여준다.

리움은 개관 이래 한 해 서너 차례 여는 특별기획전을 그 동안 <화원대전>, <세밀가귀전> 같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전통 회화와 공예 전시, <앤디 워홀>, <아니쉬 카푸어> 등 현대 작가 전시를 기획전 등으로 꾸려왔으며,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준 부관장은 이 전시가 “과거와 현재, 미술사와 건축,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해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전시라고 자부한다.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현재 70% 이상이 도시화되어 있다. 전통 건축을 삶의 공간으로보다는 여행 중에 찾아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든 모르든 한국에서 자라나 온 공간 체험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인은 여전히 산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터의 중요성을 알고, 집이 남쪽을 향해 있는지를 살피며, 바람이 통하고 밝은 볕이 가득 들어오는 창을 좋아한다. 실내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따뜻한 바닥과 빛과 소리를 투과시키는 종이로 바른 창을 그리워한다.
기획자의 의도대로 관람객들이 그러한 한국 건축의 DNA를 느낄 수 있다면 전시는 성공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한국 전통 건축 문화를 고정적인 것으로 느끼게 할 염려도 없지 않다. 어쩌면 한국의 현재가 전통 건축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기획자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자연에 둘러싸인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 살지 않지만, 전통 건축의 체험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외국인들에게도 자연과 어우러져 온 한국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목수현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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