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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SUMMER

호텔에서 즐기는 여름 보양식

무더운 날씨에 기력이 떨어지는 여름철이면 한국인들은 생기를 되살리는 보양식을 먹곤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몰 럭셔리’ 소비가 사회 현상이 되면서 고급 호텔의 인기 메뉴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름 시즌, 호텔들이 앞다퉈 출시하는 대표적인 보양식을 소개한다.

삼계탕은 가장 대중적인 여름 보양식이다. 영계의 내장을 빼고 그 안에 찹쌀, 대추, 수삼, 통마늘 등을 넣어서 푹 고아 만든다.
ⓒ 클립아트코리아(Clipartkorea)

기온이 30도가 넘는 여름이 찾아오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지친다.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 시원한 음료를 마셔도 더위로 찌뿌둥해진 몸이 나아지지 않는다. 찬 음식은 열기를 잠시 식혀 주지만, 체력을 보강해 주지는 못한다. 여름철 더위로 기진해진 몸을 보호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치가 필요한데, 한국인들은 주로 뜨끈한 보양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보양식은 말 그대로 ‘몸에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기운을 북돋워 주는 음식’을 말한다. 삼계탕, 추어탕, 민어탕, 장어탕, 전복탕 등이 주로 보양식 목록에 오른다. 그중에서 닭과 삼을 함께 넣어 푹 끊인 삼계탕은 대표적인 여름 음식이다. 단백질 식품인 닭고기에 약재로도 쓰이는 삼 한 뿌리를 추가하면, 이만한 건강식도 없다. 삼계탕을 대중적으로 먹기 시작한 때를 대략 1960년대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한편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난히 해산물 음식이 많은데, 이는 삼면이 바다인 한국의 지리적인 특성 때문이다.

여름철 보양식의 인기를 호텔들이 놓칠 리 없다.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 엄선한 고급 재료로 무장한 보양식 특선을 앞다퉈 내놓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호텔 보양식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호텔의 고급 빙수까지도 덩달아 히트다. 호텔 인기 음식은 아예 조리가 간편한 밀키트나 즉시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대표적 보양식, 삼계탕
여름철만 되면 호텔 특선 메뉴판에 단골로 등장하는 보양식 중 삼계탕이 단연 으뜸이다. 하지만 일반 식당에서 파는 삼계탕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닭이 특별하다. 친환경 인증을 받거나 토종닭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방목해 기르거나 유기농 사료를 먹여서 키운 닭들이다. 손바닥만 한 전복까지 합쳐지면 육지와 바다의 맛이 그릇 하나에 모여 왈츠를 추듯 어우러진다.

조리법도 특별나다. 삼계탕은 일반적으로 손질한 닭 안에 찹쌀, 밤, 대추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푹 끓인다. 하지만 호텔에 따라서는 별난 조리법으로 특별한 맛을 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닭고기를 얇게 발라낸 다음 전복과 수삼, 능이버섯 등과 섞어 저온에서 익힌다. 그다음 황기, 마늘, 대추 등을 추가해 3시간 이상 푹 끓인다. 전복은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수삼이나 능이버섯도 영양소가 많은 식재료다. 황기나 대추, 마늘 등은 기력을 보충하는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푹 끓인 삼계탕의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더위 따위는 저 멀리 달아나는 기분이 든다.

삼계탕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탕, 국, 찌개 등은 우리 밥상을 대표하는 국물 요리다. 한식의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가 국물이다. 우리 민족을 ‘국물 민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또한 ‘국물도 없다’는 관용구는 어떤 일의 대가로 생기는 이득이나 몫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인다. 그만큼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국물은 기본이다.

서울신라호텔 중식당에서 2016년 선보인 ‘백봉(白鳳) 오골계 인삼 수프’. 백봉 오골계는 깃털은 하얗고 피부와 뼈는 검은색인데, 예로부터 귀한 약선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담백하고 깊은 육수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호텔신라(HOTEL SHILLA CO., LTD.)

고급 생선 요리, 민어탕
민어탕도 대표적인 고급 국물 요리다. 민어의 산란 시기가 7~9월이다 보니, 민어 먹기 좋은 계절은 6~8월이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산란 전이 가장 맛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영양소도 풍부하다. 민어가 대표적인 여름 생선이 된 이유다.

민어회, 민어탕 등 민어 요리가 여름철 대표 먹거리로 등극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0여 년 전, 민어가 조선 시대 임금의 밥상에 올랐던 귀한 생선이란 게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렇다 보니 고급 호텔의 보양식 리스트엔 어김없이 민어탕이 오른다. 다시마를 넣어 맛을 낸 국물에 민어와 무, 배추, 대파 등 갖은 채소를 넣고 끓이면 완성이다.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운 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가 사라지면서 상쾌한 기분이 든다. 한국인들은 그것을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민어를 활용한 요리에 탕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호텔에서는 탕 이외에도 다양한 고급 보양식 재료로 민어를 자주 활용한다. 그중 민어해삼편수는 정성이 많이 들어간 만두 요리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더운 여름에 많이 먹었던 네모난 모양의 찬 만두로 속 재료가 민어와 해삼이다. 민어해삼만두는 민어, 해삼, 숙주 등을 잘 으깨 속 재료로 만들고 그것을 만두피로 감싸 쪄낸 만두다. 그런가 하면 민어껍질만두는 만두피로 민어 껍질을 사용한다. 대략 12시간 냉장 숙성한 민어에 소금을 쳐 간을 한 다음 밀가루와 달걀 등을 입혀 지져 내면 맛난 민어전이 만들어진다. 6시간 숙성을 거친 민어회도 맛이 일품이다.

그래비티 서울 판교, 오토그래프 컬렉션(GRAVITY Seoul Pangyo, Autograph Collection)의 레스토랑 ‘호무랑(HOMURAN)'이 올해 여름 선보이는 민어 매운탕. 자체 개발한 특제 소스의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민어와 잘 어우러진다. 고급 어종인 민어로 조리한 음식은 조선 시대 양반들 사이에서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혔다.
ⓒ 조선호텔앤리조트(JOSUN HOTELS & RESORTS Co.)

차가운 보양식, 임자수탕
호텔 보양식에 뜨거운 요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갖은 해산물이 소복하게 쌓인 물회가 대표적이다. 회와 밥을 한 그릇에 담고 비벼 먹다가 물을 부어 마저 먹는 물회는 본래 어부의 음식이다. 먼바다로 조업을 나간 어부가 배 안에서 생채기가 나 팔 수 없는 생선에 밥을 비벼 먹던 데서 비롯됐다. 음식의 시초는 소박하나, 호텔에서는 갖은 고급 재료들을 활용해 고급 물회를 출시한다. 지역별로 재료나 양념,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예컨대 전라도와 제주도는 된장을, 경상도는 고추장을 양념으로 쓴다. 맛이 당연히 달라지는데 이런 양념 맛의 변주는 미식의 즐거움이다.

조선 시대에는 물회가 서민의 음식이었던 데 반해 임자수탕은 왕족의 먹거리였다. 조선 시대 임금들이 여름철 주로 먹은 찬 보양식이다. 오색 고명이 어우러진 임자수탕은 눈이 먼저 즐겁다. 닭을 푹 삶아 살을 가늘게 찢은 다음 양념으로 버무린다. 오이, 황백 지단, 고추, 버섯 등으로 고명도 만든다. 그릇에 양념한 닭고기를 담고, 그 위에 고명을 얹는다. 여기에 부을 시원한 국물이 필요한데, 깨를 활용해 만든다. 볶은 참깨를 으깨 닭 국물과 섞으면 완성이다. 깨 특유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프리미엄 빙수 세트. 왼쪽부터 쑥 아이스크림에 팥과 연유가 어우러진 ‘쑥 빙수’, 제주산 애플망고가 듬뿍 올라간 ‘애플망고 빙수’, 코코넛과 두부, 아보카도로 만든 ‘아보카도 비건 빙수’.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PARNAS HOTEL Co., Ltd.)

‘스몰 럭셔리’의 대표 주자, 빙수
호텔 셰프들이 고문헌을 뒤져서라도 특별한 보양식을 만들려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양식 말고도 그런 바람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빙수다.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빙수는 1930~40년대 손수레에 얼음 덩어리를 싣고 다니던 얼음 장수들이 손님들에게 곱게 간 얼음 위에 팥이나 식용색소 등을 얹어 주면서 보편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70년대엔 고급 제과점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팥과 연유, 얼음이 주재료였고 1990년대에는 통조림 과일을 토핑으로 쓰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눈꽃처럼 보이는 얼음을 사용한 이른바 ‘눈꽃 빙수’, 대패로 깎은 듯한 얼음이 재료인 ‘대패 빙수’ 등이 인기를 누렸다.

빙수의 판도가 달라진 시기는 대략 7~8년 전이다. 일부 호텔들이 출시한 고급 빙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여름철 빙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가격이 일반 빙수보다 적게는 4배, 많게는 10배인데도 찾는 이들이 많다. 고품질 벌꿀, 여러 종류의 베리류, 열대 과일 등이 토핑으로 수북하게 올라간다. 한마디로 호텔 빙수의 특징은 토핑의 최고급화다. 팥을 사용하는 경우도 통조림 대신 국내에서 재배되는 질 좋은 것을 사용하는데, 국산 팥은 단맛이 은은하게 돈다.

고급 빙수의 포문을 연 것은 파크 하얏트 서울의 베리빙수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빙수 열풍의 견인차 노릇을 한 곳은 신라호텔이었다. 이 호텔의 망고빙수는 얼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릇에 망고가 가득 차 있다. 당시 다른 호텔들도 신라호텔을 따라 고급 빙수를 출시했고,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망고빙수 시즌이 돌아왔다”란 말까지 생겼겠는가! 한 그릇 가격이 무려 6~8만 원인데도 여전히 즐겨 찾는다. 이런 이유로 ‘스몰 럭셔리’의 대표 주자라는 별명도 붙었다.

망고빙수의 인기 비결은 당연하게도 망고 때문이다. 열대 과일인 망고는 비타민이 풍부해 맛이 상큼하다.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즙이 흥건하게 나온다. 향도 다른 과일에 견줘 짙다. 코를 대고 과일 향을 맡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색깔도 인기 요인이다. 과육의 짙은 노란색은 눈을 즐겁게 한다. 미식에서 시각은 중요한 요소다. 한반도 기후가 변하면서 요즘 자주 거론되는 과일이 제주산 망고다. 수입산과는 또 다른 풍미가 있다. 그래서 호텔들은 특별히 ‘제주’를 강조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우울감에 젖은 이들이 많은데, 달고 시원한 빙수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혀의 촉각을 건드리는 얼음과 달콤한 맛이 나는 팥과 과일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미향(Park Mee-hyang 朴美香) 음식 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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