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Features

2021 AUTUMN

한글, 글로벌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백성을 위한 소리 글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한글은 만들어 낸 인물과 시기, 그리고 목적이 분명한 유일한 문자이다. 또한 한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구분한 최초의 문자이며, 비슷한 소리를 나타내는 자음이나 모음이 형태상으로도 유사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글자로 평가된다.

fea2_1.jpg

서울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 높이 6.2m, 폭 4.3m 규모로 기단 위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동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 교수이자 조각가인 김영원(金永元)이 설계하여 2009년 건립되었다. 세종은 조선의 4대 군주로 한글 창제를 비롯해 과학 기술과 음악을 크게 발전시켜 중세 한반도의 문예 중흥을 이끌었다.
ⓒ 하지권(Ha Ji-kwon 河志權)

한글은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이 1443년 완성하고 1446년 반포한 글자이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한국어 음성언어는 존재했지만, 그에 맞는 문자언어가 없어 오랜 기간 사람들은 한자와 한문으로 음성언어를 표기해야 했다. 하지만 한자와 한문은 중국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한국어 음성언어를 제대로 표기하기가 어려웠다.

말과 글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한자와 한문을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한 지배 계층은 이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업에 종사해야 하는 일반 백성들은 이를 배워 사용하기 어려웠다. 세종은 일반 백성들이 글자를 쉽게 배워 사용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데 천착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한글이었다.

세계 문자사를 거시적으로 봤을 때 한글도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수천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다른 주요한 문자들에 견주어 봤을 때 한글은 창제 배경이나 제자 원리에 있어 뚜렷한 특징이 존재한다.

세계 문자사에서 한글은 어떤 유형으로 분류되나?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표음문자(phonography)와 표의문자(logography)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문자는 음성언어(spoken language)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고, 음성언어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음성언어를 구성하는 단위 가운데에는 음소(phoneme)나 음절(syllable)처럼 어떤 소리에 해당하지만 그 자체로 의미는 갖지 않는 것이 있고, 형태소(morpheme)나 단어처럼 어떤 소리에 해당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특정 의미를 갖는 것도 있다. 전자가 표음문자이고, 후자가 표의문자이다.

표음문자에 속하는 한글 문자 체계에서 ‘ㄱ’, ‘ㅏ’ 같은 글자는 한국어 음성언어의 어떤 자음과 어떤 모음을 나타낼 뿐 의미와는 상관없다. 반면에 표의문자인 한자 ‘首’는 중국어 음성언어의 어떤 단어와 대응되는데, 이 단어는 ‘shǒu’라는 소리를 갖고 있으며 또한 머리, 으뜸, 우두머리라는 의미도 갖는다. ‘首都’가 중국어 단어 ‘shǒudū’를 나타낼 때는 이 의미가 살아 있다. 하지만 ‘首尔’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나타내고 ‘shǒu’ěr’로 발음될 때에는 본래의 의미가 없어진다. 이는 표의문자 체계에 속하는 어떤 글자를 필요에 따라 본연의 방식이 아닌 특수한 방식으로 사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용법을 ‘가차(假借 rebus)’라고 한다.

fea2_3.jpg

『석보상절』 6, 9, 13, 19권. 1447. 금속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세종의 명으로 둘째 아들 수양대군(뒤의 세조)이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설법을 담아 편찬한 책이다. 여러 불경에서 발췌해 모은 글을 한글로 번역하여 엮었으며, 문장이 매우 유려하여 당시 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 국립중앙도서관

한글은 다른 문자의 영향을 받았을까
인류가 사용해 온 문자들은 대체로 표의문자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표의문자를 표의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표음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점차 후자의 용법이 우세해지고 마침내 후자의 용법만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 표음문자다.

이집트 표의문자에 영향을 받은 페니키아문자는 표음문자화되어 서쪽으로는 유럽의 그리스문자, 키릴문자, 로마자 등으로 발전했고 동쪽으로는 서아시아의 히브리문자, 아랍문자 등으로 이어졌다. 표음문자의 발달에서 일정한 경향이 관찰된다. 히브리문자, 아랍문자 등은 자음과 모음 가운데 주로 자음만을 온전히 표기한다. 이런 문자를 자음문자(abjad)라고 하는데, 이 서아시아의 자음문자가 인도로 가서 자음중심문자(abugida)로 발달한다. 자음 뒤에 오는 모음이 기본 모음(default vowel)일 때는 아예 표기하지 않고, 그 외의 모음일 때는 특수한 부호(diacritic)를 첨가함으로써 나타낸다. 티베트문자도 기본적으로는 자음중심문자지만, 모음 글자가 약간 더 독립적이다. 파스파문자에 가서는 모음 글자가 자음 글자로부터 독립하기에 이른다. 모음 글자가 자음 글자와 완전히 대등한 단계에 이른 글자가 알파벳인데, 파스파문자는 자음중심문자와 알파벳의 중간 단계이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볼 때 동쪽으로 갈수록 모음 글자의 독립성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시기적으로 티베트문자와 파스파문자보다 약간 뒤에 출현한 한글은 이러한 경향이 극단에 이르러 온전한 알파벳이 만들어진 경우다.

한글은 몇 명이 만들었을까?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천만 명 이상의 사람이 사용하는 주요 문자들은 모두 최초의 발명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변천하고 확산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직 한글만이 예외이다. 한글은 한 개인에 의해 매우 짧은 시간 동안 발명된 문자이다.

한글을 조선 시대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의 여러 학자들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꽤 널리 퍼져 있지만, 여러 사료를 종합해 보면 세종 개인의 창조물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 시대의 임금이 왕위에 있는 동안 조정에서 일어난 일과 그 외 여러 사실들을 정리한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 25년 12월 기록 말미에 그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한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만약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만들었다면 그 과정이 당연히 실록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록에 한글 창제 과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신하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왕이 한글 창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세종은 중국 음운학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당시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분석하고 각 음소의 특징, 음소들 사이의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한글을 혼자서 다 만들고 난 뒤에야 한글을 사용하여 책을 편찬하는 등의 일에 집현전 학사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fea2_4.jpg
fea2_5.jpg

『월인천강지곡』 권상(卷上). 1447. 금속활자본. 미래엔교과서박물관 소장.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직접 지은 시가집(詩歌集)이다. 한글 창제 이후 만들어진 가장 첫 문헌 중 하나이며, 언어학적 가치와 문학적 가치로 201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 미래엔교과서박물관, 문화재청 제공

표음문자로서 한글의 특징은?
한글은 표음문자 중에서도 음소문자이고 음소문자 중에서도 알파벳이다. 문자 체계의 기본 단위가 음성언어의 음소에 대응하고, 자음 글자와 모음 글자의 지위가 대등하다. 이 점에서는 로마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로마자를 비롯한 다른 문자 체계의 경우 어떤 두 음소가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나타내는 두 글자의 모양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영어 표기 체계로서 로마자를 생각해 보면, p와 b는 양순음(bilabial), t와 d는 치조음(alveolar), k와 g는 연구개음(velar)이다. 조음 위치가 같다고 해서 각 글자들의 모양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또한 p, t, k는 무성음(voiceless)이고 b, d, g는 유성음(voiced)인데, 무성음과 유성음 역시 글자들끼리 형태상 유사성이 없다. 반면에 한글은 양순음은 ‘ㅁ, ㅂ, ㅍ, ㅃ’, 치조음은 ‘ㄴ, ㄷ, ㅌ, ㄸ’, 연구개음은 ‘ㅇ, ㄱ, ㅋ, ㄲ’으로 조음 위치가 같은 글자들이 형태상 유사하다.

그리고 비음(nasal) ‘ㅁ, ㄴ, ㅇ’, 평음(plain obstruent) ‘ㅂ, ㄷ, ㄱ’, 격음(aspirated) ‘ㅍ, ㅌ, ㅋ’, 경음(glottalized) ‘ㅃ, ㄸ, ㄲ’ 등 소리 측면에서도 형태상 일정한 관계가 있다. 비음 글자에 획을 더하여 평음 글자를 만들고(ㅁ→ㅂ, ㄴ→ㄷ), 평음 글자에 획을 더하여 격음 글자를 만들며(ㅂ→ㅍ, ㄷ→ㅌ, ㄱ→ㅋ), 평음 글자 2개를 좌우로 나란히 배열하여 경음 글자를 만드는(ㅂ→ㅃ, ㄷ→ㄸ, ㄱ→ㄲ) 식이다. 소리의 관계를 글자 모양으로 잘 반영하고 있는 점은 다른 문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fea2_6.png

한글의 제자 원리와 체계를 간단히 정리한 도표이다. 발음 기관을 형상화한 자음은 발성 위치에 따라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구멍소리의 기본 다섯 글자(ㄱ, ㄴ, ㅁ, ㅅ, ㅇ)를 정하고 여기에 획을 더해 글자를 추가했다. 하늘(ㆍ), 땅(ㅡ), 사람(ㅣ)을 본떠 만든 모음은 세 가지 기본 요소를 다양하게 결합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표현한다.

지리적으로 볼 때 동쪽으로 갈수록 모음 글자의 독립성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시기적으로 티베트문자와 파스파문자보다 약간 뒤에 출현한 한글은 이러한 경향이 극단에 이르러 온전한 알파벳이 만들어진 경우다.

fea2_7.jpg

2021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출토된 한글 금속활자 중 일부. 도시 환경 정비 사업 부지에서 발굴 조사 중 발견된 금속활자 1,600여 점은 모두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처럼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되어 있는 한글 금속활자 600여 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 세종 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해시계, 물시계의 부품과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제조된 총통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조선 시대 여러 관청이 모여 있던 곳으로 이 유물들은 1588년 이후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지역에서 확인된 지하 6개 문화층 가운데 지하 3m 최하층에서 발견되었다.
ⓒ 문화재청

어떻게 보급되고 확산되었나?
한글이 창제된 초기에는 상층 지식인들이 여전히 한자와 한문을 주로 사용했고 한글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점차 한글 사용이 확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성, 불교, 소설의 역할이 컸다.

전근대 시기에는 지배층에서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교육을 충분히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다. 능력과 의욕이 있는 일부 여성은 한문을 배워서 사용했지만, 다수의 여성들은 한문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글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대체로 한글을 사용했다. 또한 타지에 나가 있는 양반 남편과 고향 집에 있는 아내가 서신으로 왕래할 때도 대개 한글을 사용했다. 남편은 한문을 쓸 수 있지만 아내가 한문에 미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글 편지는 당시 한국어의 모습과 한글 사용 양상을 알려줄 뿐 아니라, 당대의 생활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소중한 자료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가급적 많은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한문 불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글로 표기하여 널리 보급했다. 조선은 표면적으로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불교를 배척했지만, 왕실에는 개인적으로 불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꽤 있어서 이들의 후원으로 불경이 간행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가 하면 조선 후기에 들어 계층과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즐기게 된 현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적고 민간의 인쇄 문화도 그리 발달하지 못해 한글 소설을 손으로 필사하고 이를 돌려보는 식으로 소설을 감상했다. 한글을 소리내 읽을 때 내용을 재미있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소설을 읽어 주는 일도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다가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는 데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글을 배워 읽어 보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소설 향유의 욕구가 한글 문해력 향상을 촉진한 것이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소설 유통의 확대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인구의 증가는 한글 사용 확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박진호(Park Jin-ho 朴鎭浩)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전체메뉴

전체메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