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디지털콘텐츠] 사투리도 통번역이 되나요?

[디지털콘텐츠] 사투리도 통번역이 되나요?
- 한류 콘텐츠 속 사투리 활용과 지역 활성화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사람은 혼가지만 졸바로 허민 된댄 허난(사람은 한 가지만 제대로 하면 된다)”, “게민 난 뭘 잘 허민 되는디 마씨?(그럼 전 뭘 잘하면 되는 건가요?)”, “그게 무신 느 모심냥 정해지는 줄 알암시냐?(그게 뭐 너 마음처럼 정해지는 줄 아느냐?)”.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7화에서 고한수(이민호)가 아버지(정웅인)와 나누는 대화는 우리말이지만 자막이 붙었다. 우리가 들어도 생소할 수밖에 없는 제주 사투리이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을 쓴 이민진 작가와 작품을 연출한 코고 나다, 저스틴 전 그리고 대본을 쓴 수 휴 작가는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다. 또한 이 작품이 담아낸 내용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와 1980년대까지 격동기를 살아낸 한국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파친코>는 애플이 1,000억 원을 투자해 제작한 ‘미국 드라마’가 맞다.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1920년대 부산 영도 어시장은 사실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 밴쿠버의 리치몬드 남쪽에 자리한 바닷가 마을 스티브스톤이다. 그런데 영도 어시장을 복원해 지은 세트장에서 흘러나오는 대사에는 어김없이 부산 사투리가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잘 복원된 세트와 연기자들의 복색, 여기에 더해진 사투리는 이곳이 영락없는 부산 영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애플TV+가 거액을 투자·제작해 전 세계에 서비스한 <파친코>는 왜 굳이 한국의 지역색을 담은 사투리에 이만한 고증을 했을까. 외국인들이 이 사투리의 뉘앙스를 알아차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수 휴 작가는 사투리 고증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작품의 번역 작업을 한 황석희 씨는 수 휴 작가가 쓴 대본을 실제 한국에서 쓰는 어투로 바꾸는 작업과 더불어 사투리 복원 작업까지 병행했다. 연극배우 정마린, 변종수 씨가 부산 사투리와 제주 사투리 번역을 함께했다. 이는 말 그대로 대본을 다시 쓰는 정도의 작업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꾼 표현을 수 휴 작가에게 보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고를 감수한 것은 단지 작품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투리 고증 자체가 당대에 희생당한 조선인들에 대한 예우이고,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7화에 제주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고한수 부자가 겪는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이야기에서 제주 사투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당시 노동자로 일본에 온 제주도민들의 숫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많았고, 그래서 이들의 희생을 사투리 복원을 통해 전하기 위해서다.


<파친코> 같은 글로벌 작품이 한국, 그것도 부산과 제주 같은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그 지역성을 드러내는 사투리가 자막까지 달려 소개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로컬문화들이 오히려 더 경쟁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과거 할리우드에서 한국을 소재로 할 때 들려오던 어설픈 외국인 억양의 한국말 흉내와 같은, 그저 로컬을 이용하기만 하는 자세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될 수 없는 시대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간 글로벌 인지도가 급상승하며 세계 시장에서 관심을 보이는 K콘텐츠는 어떨까. 하물며 한국계 미국인이 만든 <파친코> 같은 작품에서도 사투리 고증을 위해 저토록 노력하는 마당에 우리도 사투리가 가진 지역성의 매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끄집어내고 또 해외에도 그 뉘앙스의 차이를 알려야 하는 게 아닐까.


최근 넷플릭스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가 제주를 배경으로 특유의 사투리를 대사로 채워 넣은 건 그런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물론 그 사투리를 우리도 이해할 수 없어 자막으로 해석을 달아 놨지만, 자꾸 듣다 보니 조금은 알아듣게 되고 제주 사투리 특유의 거칠면서도 정감 있는 뉘앙스가 이 작품의 색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사실 <응답하라 1997>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가진 퉁명스럽게 던지는 애정 표현이 이 작품만의 쿨한 정서를 만든 바 있다. 또 <동백꽃 필 무렵>은 충청도 사투리가 가진 구수함으로 드라마에 선하고 따뜻한 공기를 부여했다. 사투리는 지역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뉘앙스가 작품과 만나면 작품의 색깔, 나아가 메시지와 어우러지기도 한다. 더불어 K콘텐츠를 보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지역성을 드러내는 사투리가 또 다른 매력이 되지는 않을까. 이제 사투리도 통번역이 필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