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우나영“서양 동화의 주인공에게 한복을 입혔습니다”
앨리스, 신데렐라, 라푼젤같은 서양 동화 속 인물들이 한복을 입었습니다. 친숙한 캐릭터의 새로운 매력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흑요석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우나영은 서양 동화 캐릭터에 한복을 입히는 작업으로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입니다. 동서양의 문화유산을 융합해 그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그의 그림은 언어를 초월해 감동을 전하는 예술의 힘을 실감하게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 깨달아
2019년엔 KF가 주최한 <애니메이션의 확장> 전시회 참여
디즈니, 넷플릭스와 협업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
미국의 만화 레이블과 협업 결과물 곧 공개 예정
Q. 캐릭터에 한복을 입혀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게임회사에서 일할 때 틈틈이 개인 작업을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서양 동화의 주인공에게 한복을 입혀보자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한 건 2010년이었죠.
Q. ‘한복 동화’라는 주제로 2월까지 개인전을 진행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셨나요?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전시도 여러 번 했는데 이번 전시는 조금 달랐어요. 아티스트 한정판으로 작품에 번호를 매기고 사인을 해서 판매를 했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가 전시로 작품 판매를 시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러스트가 일종의 팝아트처럼, 구매하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아서 더욱 기뻤습니다.
Q. 2010년부터 선보인 한복 동화 시리즈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상업적 가치를 인정 받았던 것 같아요. 디즈니,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과 많은 협업을 했는데 그들이 주목한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주고, 낯설면서도 한눈에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게 표현한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원작의 인물이나 소품이 한국적으로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요. 한복이나 한국 소품의 색, 질감,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도 매료되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할수록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Q. 한복과 한국적 소재를 표현할 때 중시하는 점이 있다면요?
제가 생각하는 한복의 특징은 목을 감싸는 비대칭의 깃과 고름, 평면 재단에서 비롯된 독특한 옷주름과 선 등에 있어요. 한복을 잘 모르는 서양인도 보는 순간 서양 드레스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요. 제 그림을 보고 좋아하는 분들이 늘어날수록 한복을 더 깊이 공부하고 철저히 고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복의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담으면서도 각 캐릭터의 특징이 확실히 드러나도록 그리려고 해요. 예를 들어 <라푼젤>의 고델은 한국식으로 표현하려니 <심청전>의 뺑덕어멈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다행히 뺑덕어멈같다고 댓글을 적어준 분들이 있어서 제 의도가 전달됐구나 싶었습니다.
Q. 고델을 포함해 디즈니 악당 시리즈 전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있었나요?
개인전을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SNS에 올리기 시작한 그림들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그릴 때는 <라이언 킹>의 스카를 의인화하는 작업이나 디즈니 악당 시리즈로 처음 시도한 <101 달마시안>의 크루엘라도 재미있었어요. 크루엘라는 달마시안 무늬 모피를 장옷*으로 표현하고 파이프를 장죽**으로 바꾸었는데, 보신 분들이 크루엘라 캐릭터로 바로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장옷: 옛날 여성들이 외출시 얼굴을 가리느라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 쓰던 옷
**장죽: 긴 담뱃대
Q. 크루엘라의 파이프를 장죽으로 그린 것처럼 한국적으로 표현했는데 보는 분들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나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골패가 그랬어요. 마작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골패는 조선시대에 굉장히 널리 사용된 놀이 도구예요.
Q. SNS 댓글을 보면 외국어가 더 많이 보여요. 안젤리나 졸리 같은 헐리웃 스타들이 그림을 인증한 일화도 유명하고요. 기억에 남는 외국 팬의 반응이 있었나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분이 메일을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어려서부터 공주 놀이를 좋아했는데 피부가 하얗지 않아서 공주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대요. 그러다 제가 그린 한복 입은 공주를 봤는데 눈물이 나더래요. 저는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제 그림으로 한복에 관심이 생겼다거나 한복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더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우리 전통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고요.
Q. 2019년엔 전통문화를 널리 알린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장도 받았어요. KF와도 인연이 있고요.
감사장을 받은 건 굉장히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 중 하나예요. 액자에 감사장을 넣어서 벽에 걸어놨는데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작년에는 한덴수교 60주년을 기념해 KF가 주최한 <애니메이션의 확장> 전시회에 참여했죠. 한덴 간 아티스트 교류 프로젝트로 덴마크에도 다녀왔어요. 그 일을 계기로 지금 덴마크국립박물관과도 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북유럽 신화를 한복과 동양화로 재해석하는 작업이에요.
Q.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 이야기>는 여성 전통 복식을 다룬 책이에요. 그 다음 편으로 남자 복식을 다룬 책도 출간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외 활동 계획도 들려주세요.
남자 복식을 공부하다보니 내외법으로 인해 외출이 제한되었던 여자보다 남자 복식이 굉장히 다양하게 발달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복식들을 조명할 생각인데 자료를 조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검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책으로 기다려주신 분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곧 미국의 만화 레이블과 협업한 결과물이 공개될 예정이에요. 한국계 여성 히어로 캐릭터가 한복을 입은 배리언트 커버(variant cover)를 작업하게 되었어요. 배리언트 커버는 코믹북의 표지를 아티스트가 새로 그린 특별한 에디션이에요. 이전에 진행한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은 한국 대중에게 선보이는 작업이었는데 이번에는 미국 시장을 직접 겨냥하게 되어 더욱 뜻깊다고 생각해요.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011. / 사진 제공. 우나영 작가
<화관무 여인>, 2012. / 사진 제공. 우나영 작가
<토르:라그나로크>의 추석 특별 포스터, 2017. / 사진 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