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탈레반의 재집권과 중앙아 국가들의 다층적 외교안보 전략
김정기(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고 테러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이의 부정적 파급에 대한 우려가 크다. 즉 처형과
감금 등 내부 숙청이 진행되고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중앙아 침투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중앙아 국가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물론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모든 세력과 함께하는 ‘개방적 이슬람 정부’
수립을 표방하며 대내외 정치 세력들과 접촉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앙아시아 이웃을 위협할 의도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알카에다, IS 및 기타 테러 단체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내 처리 방향이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위협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급격한 아프간 상황 악화로 인한
아프가니스탄발 안보 불안 확산을 차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역내 5개국
간 정치경제 협력 결속을 강화하고, 강대국과의 협력, 지역 협력기구 및
협의체 등을 통해 현재·미래의 안보위협 요인 제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지만
상당한 예방 효과가 있다고 본다.
우선 중앙아 5개국은 정상들끼리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중앙아
정상들은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직전인 8월 5~6일 ‘제3차
중앙아 정상회의’를 개최(투르크메니스탄, 아바자 리조트)하였다. 여기에서
아프간 사태의 파장은 물론 향후 아프가니스탄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사회 경제적 전제 조건을 논의하였으며, 5개국이 힘을 합쳐 역내 협력
질서를 형성하자는데 공감하였다. 2018년 개최된 1차 중앙아
정상회의에서도 아프가니스탄발 안보위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아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과 열린 관점에서 경제통상 협력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임을 강조한 바 있다. 중앙아 국가들이
힘을 합쳐 자체적으로 안보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협력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중앙아 국가들은 아프간 사태와 관련 미국과도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앙아 국가들은 7월 15~16일간 우즈베키스탄에서 ‘중앙아와
남아시아: 지역적 연계성, 도전, 기회’ 주제로 C5+1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아프간 안정과 평화 문제를 포함하여 지역 안보와 안정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특히 아프간 영토를 통한 C5+1에 대한 위협
및 공격을 차단하고, 안보, 에너지, 경제, 무역,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아프간과의 협력을 촉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작년 6월에도 C5+1 외교장관
회의를 통해 아프간으로부터의 정세 불안감 확산을 억제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이는 미국이 중앙아 지역의 아프간발 안보위협과
정세 불안감 해소에 협력과 지원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셋째, 러시아와도 아프간 사태의 파급을 논의하며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와 아프간 접경지역에서 연합군사 훈련을 시행하고, CSTO
차원에서도 안보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CSTO 중앙아 회원국들에
대한 공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라브로프 외무장관, 7월 7일) 나타낸
데 이어 8월 5~10일간 아프간 국경 근처에서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과
연합군사훈련을 가졌다. 러시아로서도 아프간 사태가 중앙아 질서를
뒤흔들고 테러리스트들의 중앙아 침투가 곧장 자국 침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아프간발 테러리즘, 마약 유통,
종교적 극단주의 등의 위험을 차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중앙아
국가들의 아프간 난민 허용을 반대한 것도 난민을 가장한 테러리스트들의
침투를 우려한 데 따른 것이다.
넷째, 지역 다자기구인 SCO와도 아프간 사태 관련 안보협력을 추구하였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SCO 외무장관 회의(7월 13일) 및 SCO-아프간
접촉 그룹 회의(7월 14일), SCO 정상회의(9월 17일)가 개최되어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논의하였다. 아프간 내 테러단체 활동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 내 평화 및 안정 구축이 SCO
역내 안보 구축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화상으로 참여한 정상회의에서 테러 공동대처를
제안하고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 등 폭력테러 세력·종교적
극단세력 차단과 마약 금지, 국경 수비 등에서의 협력 강화를 강조하였다.
중국으로서는 탈레반이 신장 분리독립단체 ETIM의 중국 내 테러를 지원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아프간 사태와 관련 △ 역내
정례 정상회의를 통한 당면 안보 현안 대응 방향 조율 등 지역적 협력 틀
조성에 나서고 △ 강대국들과의 우호 협력관계 조성 및 강대국 간 상호 견제
유도로 안보위협을 해소하는 외교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 중앙아
5개국은 나름대로 자력구제(自力救濟), 합종연횡(合從連橫),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결합한 다층적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앙아 국가들은 앞으로 자체 국방력 강화에 큰 관심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중앙아 국가들은 전반적으로 전투력 등 군사적 역량이 매우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극단주의와 테러, 마약 밀매에 맞서야 하는
중앙아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 - 아르메니아 간 전쟁에서 보듯이 무인기와
같은 현대화된 무기와 장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국의 실정에 맞는 방산
장비 도입이나 지원을 모색하는 등 군사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러시아, 터키, 중국, 이스라엘 등과 군사 분야 협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 국가들은 과거와는 달리 역내 이해 충돌 문제에서 서로 협력적
의식을 갖고 해결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역시 다시금 중앙아시아에서 전략적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러도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중앙아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여파가 중앙아 지역에도
밀려드는 등 유라시아 전략 공간을 둘러싸고 미·중·러 등 강대국 간
신거대게임이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