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 사람의 일상 노래방 주인 김정원 씨의 유쾌한 인생

전직 회사원 김정원 씨는 한 해 전 서울 도심 집 근처에 노래방을 개업해 오후에 출근하여 심야까지 일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카운터에서 동네 고등학생에서 노부부까지 다양한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자신의 일상을 그는 아끼고 사랑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노래방을 연 지 일 년 남짓 된 김정원 씨는 손님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이라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면 실제로 마음 뿌듯한 순간들이 많고, 그래서 행복하다.

노래 부르기는 강렬한 자기표현이다. 한국인만큼 이 표현욕구가 강한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집 근처에 노래방 두어 군데 없는 마을이 없다. 우리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노래방에 간다. 감정이 차오르면 그걸 노래방에 가서 풀어내는 게 자연스럽다.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노래 솜씨도 놀랍지만 무대에 나서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노래솜씨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마이크만 잡으면 아무나 가수 뺨치게 노래를 한 곡조 멋지게 불러 제낄 줄 안다. 그게 노래방 덕분인지, 노래 부르는 욕구가 그만큼 커서 노래방이 많아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비 오는 날 혼자 온 손님
서울 지하철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 건물 지하에도 노래방이 있다. 서촌노래연습장!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래 연습이 필요한 사람도 오라는 주인장 김정원(Kim Joung-won 金正院) 씨의 마음이 담긴 간판명인가? 그렇다고 노래 연습 코치를 둔 곳은 당연히 아니다.
그는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을 크게 직장인, 학생, 가족, 친구로 분류하면서 여기에 근래에 한 가지 부류가 더해졌다고 강조했다. 바로 혼자 오는 손님. ‘혼밥’과 ‘혼술’이 대세이듯 노래방에도 혼자 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혼자 와서 슬픈 노래를 실컷 부르고 가는 손님들이 많다.
“개업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예요. 비 오는 날 어떤 분이 오셔서 연장하고 연장해서 혼자 세 시간쯤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그 손님의 기분이 저에게까지 전해져서 계산할 때 ‘비가 와서 기분이 우울하시죠?’ 라고 말을 건넸어요. 호의로 한 말이었는데 그 분은 자기 기분을 노래방 주인에게 들킨 게 싫었나 봐요. 그 뒤로 다시는 오지 않았어요. 그냥 지나가다 불쑥 들른 것이어서 다시 찾을 일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아무튼 그 기억 때문에 손님의 마음 상태를 엿본 듯한 말은 절대로 삼가는 철칙을 갖게 되었어요.”
무리 지어 오는 손님들은 아무래도 한잔 한 상태이기 쉽다. 물론 깍듯한 손님도 많지만 술 기운에 내일 자리에서 일어나면 전혀 기억나지 않을 경솔한 행동을 하는 손님도 없지 않다. 김정원 씨는 각양각색의 손님들에게 친절로 일관해야 한다. “스트레스 풀러 온 손님들이잖아요. 평소보다 반말도 쉽게 하고 요구도 많아요. 그런 걸 대범하게 넘길 줄 알아야 해요. 저처럼 쾌활한 성격이 노래방 일에 도움이 되지요.”

오후 3시부터 새벽2시까지
일과는 비교적 단순하다. 오후 3시에 문을 열고 새벽 2시에 닫는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10시에 “일찍” 닫는다. 올해 마흔한 살인 그는 “젊을 때 바짝 벌어놔야 한다는” 각오로 가끔 장모님이나 아내의 도움만 받으며 종업원 없이 혼자 일한다. 명절 당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한 해 마지막 날과 첫날에만 “특별히” 쉰다며 “노래방은 거의 연중무휴이니 나는 많이 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처에 살아서 출근시간은 차로 10분이면 족하다. 2시에 가게에 나와 한 시간 동안 방 6개와 사무실을 청소하고 가게 문을 연다. 10월 초중순, 11월 말에서 12월 중순께는 문 열자마자 첫 손님이 오는 날이 이어진다.

김정원 씨는 우울했던 사람도 잠시 기분을 풀 수 있는 이런 공간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3시에 오는 손님은 대개 시험 기간인 주변 고등학생들이에요. 끼리끼리 몰려오죠. 흔히 아이들이 버릇없다 하지만 이 동네 학생들은 단정하고 예의 발라요. 한두 시간 신나게 노래하고는 꾸벅 인사하고 가요. 곧장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날 시험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겠지요.”
내가 취재 간 날 낮에도 1.5평(약5m2)짜리 방 서너 군데에서 고등학생들이 큰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방의 문이 열리고 학생들의 애교 섞인 외침이 들린다. “아저씨, 서비스 10분만 더 주세요.” 정원 씨는 “30분 더 줬어” 서글서글하게 대답한다.
“이상하게 대학생은 거의 안 와요.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준비에 정신 없어서 시간이 없나 봐요. 하긴 고등학생처럼 부모에게 용돈을 맘대로 타서 쓰지 못하니까 노래방에 돈 쓸 여유도 별로 없겠지요.”
한 시간에 작은 방은 1만5천 원, 단체 손님용 큰 방은 3만 원을 받는다.

그렇지만 학생들에게는 할인도 해주고 방금 봤듯이 서비스 시간도 넉넉히 넣어준다.
학생들이 돌아가고 6시 이후엔 좀 한가하다. 8시가 넘으면 저녁식사를 끝낸 직장인들이 등장한다. 이때가 노래방 영업의 절정이다, 주문도 많고 요구도 많아 정신 없이 바쁘다. 이 방 저 방 기분 좋게 날아다닌다.
“직장 상사와 함께 오는 팀들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어요. 상사들은 서비스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데 부하 직원들은 서비스 그만 줘도 된다고 눈을 끔뻑거려요. 상사와 함께라면 노래를 불러도 업무의 연장인 거죠.”
그렇게 이 방 저 방 다니다 보면 금세 11시가 된다. 늦으면 11시 반쯤 직장인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이제 혼자 노래 부르는 이들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대개 흥겨운 노래보다 조용한 노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주인의 기분도 덩달아 차분해진다. 자정 넘어서는 늦게 2차를 마친 손님들이 파상적으로 왁자지껄 찾아오고, 이들을 상대하는 동안에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온다.

회사원이었다가 노래방 주인이 되어
김정원 씨는 회사원 출신이다. 다니던 회사가 사고로 문을 닫자 개인사업을 한다면 업종은 뭘로 할까를 고민했다.
“20년 전에 아버지가 경기도 여주에서 노래방을 하셨어요. 노래방이 잘 되어 돈도 좀 버셨죠. 당시를 그리워하는 맘이 있었던 건지 대뜸 노래방이 떠오르더라고요.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고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자신도 있고.”

김정원 씨는 오후 두 시에 노래방에 출근하여 한 시간 동안 방 6개를 청소한다. 간밤에 여러 손님들의 손을 탔을 마이크도 꼼꼼히 닦아준다.

리모델링한 오피스텔의 지하 공실을 무리해서 사들여 설비를 마치고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빈 방에 들어가 혼자 자주 노래를 불렀다. 아내와 5학년짜리 아들, 1학년짜리 딸까지 온 식구가 “내 노래방 내 기계”로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는 날도 많았다.
“이제 일 년이 넘으니 가게가 바빠지기도 했지만 되려 노래를 안 부르게 되네요. 하하”
눈치 볼 것 없으니 일상은 자유롭다. 흠이라면 퇴근이 늦다는 점. 문 닫고 집에 가서 씻고 나면 3시가 넘는다. 늦게 자니 늦게 일어나지만 그래도 직장 생활 할 때에 견주면 삶에 여유가 생겼다.
“출근시간에 쫓기던 예전보다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좋아요. 아내는 밤에도 제가 퇴근할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리고 있죠. 미안해서 먼저 잘 수가 없다나요.”
그는 그러면서 매주 수요일이면 손을 꼭 잡고 오신다는 80대 부부 얘기를 했다. “바깥분이 치과의사셨대요. 근처에 사시는데 매주 같은 시간에 오셔서 한 시간씩 노래를 부르고 가셔요. 얼굴 표정도 어찌나 밝고 건강하신지. 노후에 저 분들처럼 살자고 아내와 굳게 약속을 했어요”
잊지 못할 손님도 있다. 늘 혼자 와서 어머니에 관한 노래만 골라 부르던 중년남자. 알고 보니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였다.
“열 달 넘게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왔어요. 노래를 부르다 쓰러져서 집까지 모셔다 드린 적도 있어요. 요 몇 달새 통 안 오셔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노래방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곳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고 치유의 공간이다. 카운터에 앉아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김정원 씨에게도 그렇다. 그러니 손님들의 가벼운 무례쯤은 얼마든지 웃어 넘길 수 있다.

“손님이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다고 하시면 저도 스트레스가 날아가요. 노래방 운영은 힘쓰는 육체노동도 머리 쓰는 정신노동도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이 뿌듯할 때가 많으니 참 좋은 직업 아닙니까?”

참 좋은 직업
손님은 하루 평균 몇 명이나 올까. 100명? 200명?
“방 단위로 빌려주는 거니까 전체 인원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계절에 따라 경기에 따라 매출이 다르지요. 수입은...꼭 말해야 하나요? 월급쟁이보다는 나을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공직자 등의 비리를 규제하기 위한 청탁금지법이 노래방에도 영향을 미치다니? “식사 모임이 줄었으니깐요. 정부 종합청사 주변이라 이름난 한정식집이 많고 식사 후에 자연스럽게 노래방에 들르는 게 코스였거든요.”
얼굴을 알 만한 유명한 손님이 오는 날은 정원씨도 들뜬다. 유명 여자 앵커가 남자친구와 함께 온 날, 어려서 열광했던 권투선수, 팬으로 쫓아다녔던 가수가 찾아온 날 그랬다. “제집에 그런 분들이 찾아 오니 얼마나 좋아요. 제가 할 일은 기뻐하면서 그분들이 맘놓고 놀다 가게 해드리는 것밖에 없잖아요.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다고 하시면 저도 스트레스가 날아가요. 노래방 운영은 힘쓰는 육체노동도 머리 쓰는 정신노동도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이 뿌듯할 때가 많으니 참 좋은 직업 아닙니까?”
그는 참으로 대긍정마인드의 소유자이다.

김서령 (Kim Seo-ryung, 金瑞鈴)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Old & Deep Story La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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