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전통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산담에 앉아서 영원을 생각한다

제주 산담은 집담, 밭담 등 삶의 돌 문화가 발달한 제주도가 간직한 특유의 죽음의 돌 문화이다. 그러나 제주 산비탈에 흩뿌려진 대지예술과도 같은 전통 산담들은 개발의 물결 속에 점점 훼손되고 사라져 간다. 제주문화연구소 김유정(Kim Yu-jeong 金唯正) 소장이 산담의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는 이유다.

화산의 용암은 돌 섬을 탄생시켰다. 불의 섬 제주. 파내고 파내도 끝없는 돌밭. 제주 섬 사람들의 거칠었던 삶의 배후엔 이 돌 문화가 있다. 섬의 밭 돌담은 구불구불 파도처럼 흐른다. 봉긋 솟은 기생화산인 오름의 강줄기가 흘러간다. 그 오름의 능선과 밭 돌담 경계 안에 둥근 무덤이 보이고, 그 무덤을 둘러싼 돌담이 보인다. 그 돌담이 산담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라. 봄날 한라산 기슭의 유채꽃과 어우러진 산담을. 겨울날 적막하게 눈 쌓인 무덤, 그 까만 현무암의 질감 위에 내려앉은 백설의 완벽한 조화를. 거대한 대지예술이다. 제주 미학의 결정체다.
누구나 나면 죽는다. 산담은 삶과 죽음의 경계석이다. 자연과 인간, 죽은 자와 산 자의 시공을 초월한 안식 공간이다. 인간의 유한함을 보여주는 겸손의 미덕이다. 돌 하나 하나 쌓아 올린 사랑이자 죽은 자에 대한 배려다. 어디 돌 위의 생 아닌 것 있으랴.

산담이 준 위안
김유정 씨는 이 산담을 “영혼의 울타리”라고 표현한다.
“마치 땅거미처럼 제주 섬 전체에 흐르듯이 누운 산담의 무리들을 보세요. 얼마나 장대한 규모인지. 이집트 파라오의 피라미드는 사각뿔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상승하는 기운을 뿜지요. 단일 기념물로 하늘에 솟아있기 때문에 웅장하기까지 하고 최대의 무덤으로 회자됩니다. 하지만 제주 땅으로 눈을 돌리면 한라산 자체가 거대한 피라미드입니다.”
그는 20여 년째 돌이 중심에 놓인 제주 사람들의 죽음문화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미학과 과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아름다운 우리 석상-동자석>, <제주 산담>, <문인석> 등의 책을 펴냈다. 그는 외롭고 쓸쓸한 이 길을 사랑한다. 그는 왜 죽은 자들의 울타리를 찾아 나서는 걸까? 거기서 어떤 가치를 발견해 냈을까?

운명이다.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소년은 어려서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의 고향 모슬포는 토속 해양문화에 근현대사의 상처들이 겹쳐진 곳이다. 일제의 비행기 격납고가 있었고, 해방 한국의 좌우익 이념 대립이 빚어낸 최대 비극의 하나인 4.3사건의 현장이었다. 마을엔 고아들이 많았고, 거지들이 많이 죽었다. 그러면 그는 꼭 가서 보려고 했다. 열다섯 살 중학생 때 동네 아이가 죽자 그는 상여를 멨다.
그를 산담으로 이끌어준 이는 할머니였다. 장손인 그를 무척 사랑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 그는 초상 치르는 일을 거들지 않고 집에 있던 올림푸스 카메라로 7일에 걸친 상례를 다 담아냈다. 1981년, 열아홉 살 때였다. 그리고 잠시 잊고 살았다.
전업 문화운동가로 살던 서른여섯 살의 봄날. 생의 관계들에 심한 상처를 받은 그는 도시락을 싸 들고 산으로 갔다. 그늘진 산담에 앉아 술로 고수레하고 망자와 대화를 했다. 인생무상. 내가 왜 그리 분노했던가. 한 때는 생의 기쁨과 슬픔을 겪었을 저 묘의 주인도 무상하지 않은가. 산담에 앉아 술 한잔 하고 영혼의 울타리를 응시하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회복되고 있었다. 따뜻해지고, 삶의 길이 보였다. 그는 산담에서의 가슴 찡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비 온 뒤 안개 자욱한 바람이 사악 불어 물 먹은 억새들이 리듬처럼 소리 내며 쓸릴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당시 우리 사회에는 ‘우리 것’에 대한 예술적 고민이 한창이었다. 그 또한 민족미술이란 무엇인지, 우리 전통미술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그가 찾던 전통미술의 원형이 산담과 그 앞에 마주하고 선 소박한 동자석의 조형미에 다 들어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조상의 묘만큼은 정성 다해 만들고자 했던 선인들의 마음이 거기 있었다. 가슴이 설렜다. 눈 뜨면 산으로 향했다. 돌일을 천하게 생각해서 혹시 자식들에게 피해가 갈까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이름없는 석공들의 가르침은 더할 나위 없는 인생 공부였다. 어느덧 산일을 하는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그는 달려가서 산담을 하나하나 실측하고 내외부 구조를 도면으로 그려 유형을 분석해나갔다. 이렇듯이 오랜 세월 산담을 연구하다 보니 그는 이제 산담을 쌓는 기술도 웬만큼 체득했다.

내가 왜 그리 분노했던가. 한 때는 생의 기쁨과 슬픔을 겪었을 저 묘의 주인도 무상하지 않은가. 산담에 앉아 술 한잔 하고 영혼의 울타리를 응시하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회복되고 있었다. 따뜻해지고, 삶의 길이 보였다.

밭머리에 무덤을 쓰는 깊은 뜻
장맛비가 제주 중산간의 숲을 적시던 날, 그를 따라 나섰다. 한라산 줄기 교래리 언덕배기가 온통 초록으로 반짝였다. 물 먹은 숲은 고요했다. 이런 덤불 숲에 무슨 묘가 있을까. 이 남자, 성큼 들어간다. 무성하게 자란 잡풀들이 묘를 휘덮고 있다. 지나가다 촉각으로 찾아낸 산담이라고 했다. 이제는 거의 반무당이 된 것일까? 외진 숲길을 헤매다가 순간의 예감으로 산담을 발견하곤 한다고 했다.
경사진 사각의 산담은 계단형이었다. 그는 돌계단을 밟고 조심스럽게 산담 안으로 들어갔다. 키 큰 고사리들을 손으로 헤집자 이끼 뒤덮인 동그란 눈의 동자석이 나타났다. 묘의 좌우에 대칭으로 선 그들 한 쌍은 망자가 부르면 당장 달려가야 하는 영혼의 벗이자 심부름꾼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은 묘비는 이 묘의 주인이 140여 년 전 49세에 생을 마친 김씨 성을 가진 인물임을 알려준다. 산담은 동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망자도 이 솔바람소리, 빗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산담의 유형은 잘도 복잡한데, 이건 전형적인 산담이죠.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 토신단 전부 갖춰졌어요. 지형 때문에 경사를 강하게 주는 돌계단을 쌓아 영혼이 시원하게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어요. 배산임수. 앞이 트이고, 물이 잘 흘러가는 형국이에요.”
겹담산담이다. 상징적인 경계표시인 외담과 달리 겹담은 안담과 바깥담을 쌓은 다음 그 사이를 잡석으로 채운다. 겹담산담에도 직사각형 모양인 것, 등변 사다리꼴 모양인 것 등 많은 유형이 있다.
김씨 묘 가까이 또 하나, 웅장한 산담이 시선을 끈다. 쌍묘다, 부씨 성을 가진 남편과 나란한 여인의 묘. 이 산담엔 영혼이 드나드는 문인 올레(신문神門)가 있다. 돌틈으로 물방울 맺힌 청보라색 작은 산수국 한 쌍이 애도하듯 피어났다.
“죽음의 문화는 산 자의 염원에서 생겨난 산 자들의 비극적 축제입니다.”
산담은 옛날 방목하던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무덤 주위에 쌓았던 울타리였다. 그러다 차츰 가문의 기념비가 됐고, 집안의 위세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됐다. 제주 들녘을 다니다 보면 초라하고 작은 산담에서 이렇게 웅장하게 쌓은 산담까지 다양한 산담들이 보인다.
“경작지에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조상의 무덤을 밭 돌아볼 때 같이 돌보면 여러모로 이로운 점이 많아요. 자기 밭머리에 조상의 무덤을 쓰고 산담을 두르는 행위야말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앞가림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육지의 무덤은 봉분 중심이지만 제주의 무덤은 경계를 표시하는 산담과 혼연일체가 됩니다.”

이름없는 석공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동자석
그가 만났던 이름없는 숱한 석공들은 들판의 스승이었다. 그들이 돌로 빚어낸 동그란 얼굴, 동그란 눈, 포도알 같은 눈동자의 천진한 표정, 나뭇잎 같은 큰 손으로 몸을 감싼 모습,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얼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역동적인 얼굴, 양각의 큰 코, 웃는 입술, 지나치게 작은 손바닥, 댕기머리, 민머리… 이 다양한 모습을 한 천진난만한 남녀 동자들도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는 수백 년의 세월 현무암에 호흡을 불어넣었던 이름없는 석공들의 고뇌와 땀을 느끼고, 제주의 산자락이 아직 이런 석물들을 품고 있음을 축복이라 여긴다.
“동자석의 아름다움은 옹골찬 생동미, 소박미, 풍토자연미, 해학담소미, 파격분방미로 요약할 수 있어요. 과감한 생략의 묘사에서는 현대적 조형미를, 그 재료인 제주 현무암에서는 추상미의 무한 가능성을 엿보게 되지요. 화산섬 제주의 풍토에서 탄생한 동자석은 재료가 형식을 결정한 석상입니다.”
하지만 동자석은 오래 전부터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고 밀반출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는 실제로 우연히 어느 전시 공간에서 낯익은 동자석을 발견하여 무덤 주인에게 되찾아준 적도 있다. 평소 동자석을 실측하고 사진으로 남겨둔 덕분에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산담의 보존
그는 동거미오름의 한 무덤을 제주 산담 미학의 최고봉으로 꼽곤 했다. 그러나 절경의 자리에 누워있던 그 산담은 말과 소들이 훼손시켜 사라졌다. 시멘트와 혼합한 개량 산담이 등장하고 평장이나 납골당 안치와 같은 새로운 장묘 문화로 이동하고 있는 세상이다. 터부시되던 산담 석물들은 파헤쳐져 정원의 조경용으로 쓰이고 있다.
“산담은 제주의 고유성을 지켜주는 토속적 원풍경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더 사라지기 전에 조성 시기별 표본이라도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합니다.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면 다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제주 산담에선 한 사람 한 사람 그 현무암을 등짐으로 옮긴 이들의 노역이 보인다. 보리쌀 한 말 받고 돌을 쌓아주던 이름 없는 석공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제주 산담에는 천 개 만 개 이별의 정한이 담겼다. 이승과 저승 사이는 너무나 가깝다.

허영선 (Heo Young-sun)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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