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DMZ: 철책선을 통해 엿본 금지된 땅 기획 특집 1 DMZ, 통일을 향한 꿈이 자라는 땅

남북한 사이의 군사분계선을 따라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폭 약 4킬로미터, 길이 238km의 DMZ는 군사적 완충지대를 표방하는 이름과는 달리 지구상에서 가장 중무장된 냉전 유적이다. 정전 60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 분단과 대립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이 역설의 공간이 통일을 이루어나갈 상상력의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한다.

임진강의 운해가 피어 오르는 경기도 중서부전선의 새벽, 군 지프가 철책 순찰을 돌고 있다.

그날 UN군사령부의 윌리엄 K. 해리슨 중장과 북한의 남일 대장은 정전협정서의 서명이 끝나자 각각 일어나 다른 문으로 나가버렸다. DMZ가 태어나던 역사적인 날,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악수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 판문점, DMZ는 그렇게 증오와 불신이 낳은 사생아처럼 태어났다.

전쟁도 평화도 없는 곳
그 DMZ가 올해로 63년이 되었다. 사람의 나이로 따지면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짧은 중늙은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DMZ에 대해 너그럽고 관대한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오랜 세월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에 야생동물들이 마음껏 뛰어 노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남북 분단이라는 불행의 반사 이익으로 보물 같은 청정 자연을 얻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DMZ는 결코 ‘기운 쇠한 노인’도 아니고 ‘생태의 보고’도 아니다. 산불이 거듭 휩쓸고 간 거친 벌판, 청산을 가르며 달려가는 남북한 군의 철책선, 능선을 향해 이리저리 파헤치며 올라가고 있는 교통호와 시멘트 계단, 좁고 가파른 군사도로, 여기저기 산비탈에 갈아 만든 북한군의 옥수수밭, 바짝 다가서 몸을 숨기고 가만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북한군의 벙커, 그리고 이를 지켜 보는 한국군 전방초소…. 그곳이 전쟁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DMZ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거기 평화가 있다고 믿을 사람도 없다.

중부전선 최전방경계초소(GP)에서 육군 장병 두 사람이 비무장지대를 내려다보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DMZ란 무엇인가?
정전협정 문서는 0001호 표지판이 박힌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마지막 1292호 표지판이 박힌 동해안 명호리까지를 잇는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의 구역을 DMZ로 명시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의 DMZ는 한반도의 허리에 그렇게 동서로 뻗은 긴 띠이다.
한반도의 분단을 이야기할 때면 흔히 “휴전선155 마일 철책을 따라서”라는 표현을 쓴다. 정확한 표현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 지리학자가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초구까지 남방한계선을 따라 거리를 측정했다. 148 마일(238km)이었다. 또, 정확히 말하자면 휴전선은 실제로는 아무 구분도 없는, 단지 지도 위에 그려진 군사분계선일 뿐이다.

중부전선 비무장지대와 인접한 최전방부대 장병들이 아침 점호 중이다.

관광객들은 DMZ의 남측 철책선을 따라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고요하고 평온한 DMZ를 바라보고 돌아와 그곳을 모든 것이 멈춰진 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교묘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남북한 군은 해마다 2월 중순에서 5월 사이 시계(視界)와 사계(射界)를 방해하는 초목을 태워 없애는 작전을 벌인다. 고대 전법인 화공전이 DMZ에서는 아직도 요긴한 전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2㎞씩 물러나 각각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을 긋고 그 선을 지킨다는 정전협정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다. 한 발짝, 한 발짝씩 철책선을 전진시키는 ‘땅뺏기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불의 전쟁, 지뢰의 전쟁, 땅굴의 전쟁에 이어 최근엔 중단됐던 확성기 방송으로 소리의 전쟁이 재개됐다.
또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DMZ 접경지역 인구 통계는 실제 상주 인구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군인은 늘 ‘숨겨진 인구’이다. DMZ 에 접해 있는 강원도 화천군의 인구는 2015년 현재 27,000명 남짓이다. 그러나 ‘숨겨진 인구’가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DMZ 생태의 비밀 요약해 말하자면 DMZ의 자연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그곳 숲은 화공전법으로 불모화되고, 많은 ‘상주 인구’ 때문에 잘려나가고 오염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자들은 DMZ 일원의 임목 축적량이 남한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훼손된 자연생태계의 복구가 시급하다고 조언해왔다. 그 가난하고 피폐한 숲의 동물들은 남북한 심리전 확성기의 소리 전쟁, 밤마다 철책선 주변을 밝히는 불빛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더러는 지뢰를 밟아 희생된다.
그러나 DMZ 르포는 늘 그곳을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경쾌하게 내닫는 고라니떼, 높은 바위 위에 서서 어딘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고고한 모습의 산양, 막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멧돼지 일가…. 그러나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는 야생동물은 없다. 큰 숲이 사라진 비정한 땅에서 그들의 은밀한 서식처가 노출되고 있을 뿐이다.

서부전선 최전방경계초소(GP)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북한군 초소와 지척에 대치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민통선 안 마을이 고향인 김영범, 김순희 부부는 80년대에 마을 앞 민들레 벌판에 전선휴게소를 연 뒤로 군 검문소를 거쳐 매운탕을 맛보러 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날마다 통일을 기다린다.

금강산을 향해 다시 기차가 달릴 날을 기다린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민들레 벌판은 대한민국 최북단 땅, 북한의 검은 산들이 늘 빤히 내려다보는 마음 편치 않은 땅이다. 그 벌판으로 DMZ가 지나간다. 녹슨 철교도 놓여 있다. 1926년 개통되어 철원에서 내금강 사이를 운행하다가 분단 뒤 영원히 멈춰선 금강산 전철이다. 교각엔 “끊어진 철길! 금강산 90km”라고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새겨져 있다.
70년대 초, 민통선 마을에서 농사짓던 총각 김영범 씨는 동네 처녀 김순희 씨에게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 <님과 함께>의 가사처럼 “저 푸른 민들레 벌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한평생 함께 살지 않겠느냐”고 청혼했다. 마침 한탄강 가엔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아들 낳고 딸 낳고 행복하게 살아 가던 10여 년 후 정말 남편은 군청을 찾아가고 군 부대에 애원한 끝에 그 약속을 지켰다. 푸른 벌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끊어진 저 철길이 이어져 관광객을 가득 싣고 달리지 않겠느냐며 ‘전선휴게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금강산 관광객은 올 리 없지만 그 집 안주인이 끓여 내는 메기매운탕이 보통 맛이 아니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민통선 밖으로 퍼졌다. 그들의 소박한 러브스토리까지 알려져 이제 이곳은 민통선 안의 숨은 명소가 됐다.

1926년 철원 한탄강 위에 세워진 금강산철도 교량인 정연철교에는 “끊어진 철길! 금강산까지 90km”라는 한과 꿈이 서린 문구가 쓰여 있다.

관광객들은 DMZ의 남측 철책선을 따라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고요하고 평온한 DMZ를 바라보고 돌아와 그곳을 모든 것이 멈춰진 땅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교묘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DMZ의 다섯 얼굴
DMZ를 막연히 평화와 생명의 땅 또는 거대한 분단의 상처라고 여겨왔다면 이젠 그런 틀에 박힌 관념을 버리고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첫째, DMZ는 살아있는 전쟁박물관이다.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지구촌의 전쟁이었다. 60여 국가가 직간접으로 참전했으며 공산권 참전국도 10여 국에 이르는 국제 전쟁이었다. 그토록 다양한 민족, 많은 국가가 한곳에서 전쟁을 치른 경우는 인류 역사에 없다. DMZ는 동서각축의 증거이며, 냉전 다큐멘터리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 양측 군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진 정면이 북쪽 구역인 판문각이다.

둘째, DMZ는 인류학과 한국사의 보고이다. 1978년 주한 미군병사 그레그 보웬(Greg Bowen)은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변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한다. 30만 년 전 DMZ 일대에 현생 인류보다 더 오래된 인간이 살았다는 증거다. 한탄강변과 임진강변의 수많은 산성 등 고대 전쟁 유적들은 거기가 2,000년 전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축했던 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후삼국 시대 인 901년 태봉국(泰封國)은 지금의 DMZ 한가운데 철원에서 건국했다. 918년에는 그 자리에서 고려가 건국했으며,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1392년 조선이 건국했다. DMZ는 한국사의 3개 왕조를 탄생시킨 땅이다.
셋째, DMZ는 근대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이다. 철원평야의 폐허 도시 옛 철원은 1940년대 3만7천 명이 살던 곳이다. 일제의 계획도시로 건설된 철원읍(鐵原邑)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군청, 경찰서, 보통학교, 교회,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금융조합, 기차역, 그리고 북한의 노동당사 등 무너진 채 서 있는 건물들이 옛 시가지를 증거하고 있다. 1945년 해방 뒤 정전협정 때까지 북한 땅이었던 철원에는 1948년 북한에서 설계한 승일교와 1996년 남한에서 놓은 한탄대교가 한탄강 여울목에 나란히 서있다.
넷째, DMZ는 멜팅 팟이다. 휴전 직후 DMZ 밖 민간인통제구역(Civilian Control Zone)에는 100여 개의 빈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을 개척민들로 채우기 위해 이주정책이 추진됐다. 그 결과 민간인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 범위를 가장 넓게 적용하던 1983년, 민간인통제구역 81개 마을에는 총 8,799세대 3만 9,725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그 뒤로 민통선이 북상하면서 많은 마을들이 통제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이들이 독특한 민통선 문화를 만들어 냈다. 각기 다른 언어 습관과 사고, 풍속, 가족사, 그리고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이질적 문화에 군사문화까지 한데 뒤범벅이 되어 ‘제3지대’의 독특한 문화권을 빚어냈다.
끝으로, DMZ는 냉전자연생태계공원이다. 냉전 체제의 지독한 간섭으로 그곳의 자연생태계는 교과서대로 천이(遷移)가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탄이 떨어진 웅덩이가 연못으로 변했고, 인간이 버리고 간 논밭이 늪지가 되었다. 그 늪의 수초들은 고라니의 서식처가 되었고, 곤충과 지렁이는 새와 짐승들을 불러모았다.

남북한 군인들이 화공전을 벌여 온 벌판의 나무들은 곁가지를 포기하고 사는 것 같다. 멀쑥하게 키를 키워 그 밑으로 불길이 지나가게 하는 지혜를 발휘하는지 모른다. 산불이 지나간 후 새봄이면 다시 벌판이 녹색이 되는 것은 불길이 소모품이나 다름없는 1년 생 잎만 불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벌판은 덩치 큰 멧돼지에게는 먹이가 충분치 않은 땅이다. 야생동물들은 지뢰나 부비트랩 같은 무기에 희생되기도 하고, 살아남아 군인들의 ‘잔밥’으로 연명하기도 한다. 향로봉 산맥의 깊은 골짜기에서는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이면 군인들이 부식으로 받은 채소를 덜어 산양을 구제하기도 한다.
한편, 바이러스나 병원체 잠재성도 DMZ가 겪고 있는 독특한 자연현상이다. 한국전쟁 중 유엔군 3,000여 명이 감염됐던 신증후군출혈열이 아직도 발생하고, 광견병과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이 DMZ이다.
DMZ의 다섯 얼굴 모두가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역사문화유산이다. 이는 20세기가 한국인들에게 남겨준 아주 값진 콘텐츠이다. 마치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미래를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제 우리는 이 컨텐츠를 통일을 이루어나갈 상상력의 인큐베이터로 삼아야 한다.

함광복 (Ham Kwang-bok, 咸光福) 한국DMZ연구소장, DMZ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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