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DMZ: 철책선을 통해 엿본 금지된 땅 기획 특집 5 냉전의 마지막 현장을 시각예술을 통해 다시 본다,
큐레이터 김선정이 말하는 ‘리얼DMZ프로젝트’

‘리얼DMZ프로젝트(Real DMZ Project•RMP)’는 DMZ와 그 접경지역의 다층적 의미를 현대미술로 해석하고 기록하는 기획이다. 2012년에 강원도 철원 안보관광 코스의 일부 시설을 활용한 장소특정적 전시를 연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실험적 전시와 학술 포럼을 병행하며 이어져 왔다.

마그누스 뱃토스 (Magnus Bärtås) 작 <승리의 외침(Claims of Victory)>(2015)은 평양과 서울의 두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기념하는 방식을 나란히 대조해서 보여주는 영상물이다.

DMZ는 모순적 공간이다. 분단이 만들어낸 군사적 완충지대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 중이다. 사람 발길이 끊긴 덕분에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환경의 보고가 됐지만 언제든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접경지대이다. 그러나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이남 일정 구간에 설정된 ‘민간인통제구역’에 자리잡은 남한 최북단 마을들에는 평범한 지역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산다. ‘리얼DMZ프로젝트’는 DMZ의 정치 군사적 함의를 넘어 이 이율배반적 속내를 짚어내는 데에 무게중심을 둔다.
RMP를 처음 구상하고 이끌어온 큐레이터 김선정 씨(SAMUSO: Space for Contemporary Art 대표, Kim Sun-jung 金宣廷)는 기획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1953년 휴전협상에서 미국과 유엔, 북한과 중국이 당사자로 나섰고 우리는 빠졌다. 대한민국이 주도적이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DMZ의 의미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싶었다.” 그를 만나 참여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DMZ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분단의 재해석
고미석 왜 DMZ인가? 분쟁의 장소를 예술프로젝트로 기획한 계기는? 김선정 2008년 경계(Border)를 테마로 한 일본작가 미야지마 다츠오(宮島達男 Tatsuo Miyajima)의 전시를 기획했다. 접경지역인 파주 임진각과 연천 태풍전망대 등을 배경으로 남북을 가르는 북위 38도 선을 상징하는 숫자 '3'과 '8'을 사람들의 몸에 페인트로 칠한 뒤 촬영하는 작업이었다. 그 전시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회조사 과정에서 정작 한국 사람인 내가 DMZ에 별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했다.
그 뒤 DMZ에 관한 기록과 예술작품을 축적해 나가겠다는 목표 아래 10년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처음부터 국내뿐 아니라 외국 작가들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DMZ 자료조사와 연구를 병행했다. 군사분계선이라는 경계를 바라보는 시각, 분단이 남긴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연구, 환경문제 등으로 시선을 넓혀 가고 있다. 서울의 아트선재센터에서는 퍼포먼스,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등 현장 전시 연계 작업을 병행한다.

프로젝트의 주요 무대는 강원도 철원군이다. 1945년 광복 직후 38선이 그어지면서 철원은 소련군정 관할로 넘어갔다. 그때 노동당사 같은 공산정권의 시설이 들어섰다가 휴전 이후 남한으로 편입됐다. 철원은 전체 DMZ의 3분의 1이 지나는 지역이라, 이남은 대한민국 철원군, 이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원군이다. 한국전쟁 때 중부전선 장악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일명 ‘철의 삼각지’로 상징되는 지역이다.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했기에 한때 물류와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으나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됐다.

지역민과의 소통
그동안 프로젝트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첫 해에는 사람들이 가기 어려운 접경지대에서 전시가 주로 이뤄졌고 기간도 짧았다. 철원군 안보관광 코스 내 일부 시설, 심지어 땅굴 깊숙한 곳까지 전시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졌다. 기존 작품을 가져와서 전시하는 것과 달리 이 프로젝트는 대부분 새로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들이 DMZ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데 긴 시간을 들여 만든 전시를 짧게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허전했다. 해마다 행사 내용을 수정 보완한 끝에 허가를 받아야 들어가는 지역 안에서 열리던 전시에서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의 전시로 변화하고 있다. 지방의 예산 지원을 받아 열리는 프로젝트인데 정작 주민은 배제됐다는 아쉬움에서 2015년 주민들이 자주 왕래하고 휴가 나온 군인들이 많이 찾는 동송읍으로 전시장소를 옮겼다.

김선정 큐레이터(맨 오른쪽)가 6.25 전쟁 때 파괴되어 벽체의 잔해만 남아 있는 철원의 일제시대 얼음창고 터에서 리얼 DMZ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계 그 자체보다는 접경지역 주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공공 장소에서 펼쳐지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란 점에서 지속성을 중시한다. 1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해를 거듭하면서 주민들과 친밀한 소통을 시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리얼DMZ프로젝트 2015: 동송세월'(同送歲月)’은 동송읍의 시장, 성당, 버스 터미널과 빈 시설을 활용해 열렸다. 민통선 안팎의 접근이 제한된 장소를 중심으로 진행된 전시에서 벗어나 상업과 문화시설이 밀집한 곳으로 옮기면서 지역주민과의 직접 소통이 늘어났다. 민통선 마을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그런 방향의 시도인가? 2014년 철원군 동송읍(東松) 양지리(陽地里)에 있는 빈집을 개조해 ‘양지리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국내외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살면서 활동하는 프로그램으로, 10명 정도가 거쳐갔다. 1970년대 대북 선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지금은 75가구 13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인데 처음엔 지역민과 작가가 어색한 관계였으나 지금은 주민들 도움으로 농사도 지을 만큼 친해졌다. 한 아르헨티나 작가는 주민들과 어울려 돼지바비큐 파티를 열고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상 작업을 진행 중이다.”

첼리스트 이옥경(Lee Ok-kyung)이 철원의 민통선 내 마을인 양지리의 버려진 정미소에서 <부서진 하늘 Broken Sky>(2014) 즉흥 사운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 차이
한국의 특수상황을 다루면서도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획득하고자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DMZ처럼 전쟁과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경계’의 문제는 세계인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이슈이다. 베트남은 1975년 통일이 되기 까지 북위 17도선을 따라 남과 북 사이에 DMZ가 존재했다.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로 나뉘었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로 그 경계도 무너졌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의 비무장지대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만들어졌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영토와 사람을 가르는 것, 곧 경계란 테마는 늘 유효하다. 냉전시대를 넘어 난민을 둘러싼 오늘날의 첨예한 갈등을 봐도 알 수 있다. 외국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의 DMZ 해석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학창시절 반공교육을 받은 국내 작가들은 익숙한 상황을 새롭게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외국 작가들은 DMZ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훨씬 큰 맥락에서 접근한다. 참여 작가들은 대체로 국가 민족 이념 등 경계에 관심을 가져온 만큼 자신의 관심사와 DMZ를 어떻게 연계할지를 고민한다. 또한 군대문화 같은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을 찾는 데도 관심이 많다. 안에서만 보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차가운 전쟁과 뜨거운 평화 사이에 있는 DMZ를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국제적 시각, 외부자적 시선이 필요하다.

아르나우트 믹의 <아이스크림 고지(Ice Cream Hill)>(2014-2015)는 강원도 철원 DMZ 접경지역 삽슬봉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즐거운 소풍이 긴장으로 일그러지는 내러티브를 통해 남북 간의 경계와 갈등을 표현한 영상물이다.

기억할 만한 작품
기억에 남는 외국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면? 네덜란드 출신 아르나우트 믹(Aernout Mik)의 <아이스크림 고지(Icecream Hill)>는 프로젝트의 커미션으로 1년에 걸쳐 제작된 영상작품이다. 산이 치열한 포격을 받아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내린 듯 보였다는 의미로 ’아이스크림‘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름다운 언덕이 있는 그곳에 무거운 역사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웨덴 작가 마그누스 뱃토스(Magnus Bärtås)는 서울의 전쟁기념관과 평양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촬영한 <승리의 외침>으로 화제를 모았다. 남북 대치상황을 양측 전쟁기념관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영상작품이다. 평양 기념관은 화가 40명이 그린 배경 벽화와 전리품인 실제 탱크와 지프로 꾸며진 반면에 서울의 기념관은 특수효과를 살린 컴퓨터 게임 같은 디오라마를 전시한 대조적인 모습에 인상을 받은 작가가 그 대조성을 두 개의 나란한 화면에 집약해놓았다.
독일작가 잉고 니어만(Ingo Niermann)은 남북한 방문을 토대로 <해법 264-274: 훈련 국가’(Solution 264-274: Drill Nation)>라는 제목의, ‘통일된 한국을 위한 열한 개의 시나리오’를 저술했다. 2014년 프로젝트 때 집필 중이던 이 책의 첫 장을 읽는 낭독 퍼포먼스를 했고, 2015년에 책을 출간했는데, 인터뷰에서 “한국은 DMZ를 전쟁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는 인상을 줬고, 북한은 나라 전체가 전쟁 테마파크였다”라고 말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외국작가들은 뉴스로만 보던 DMZ를 체험하면서 어떤 점에 관심을 보이나? 작가마다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중요한 생태지역으로 부각된 DMZ 자연에 관심을 쏟는 작가도 있고, ‘남북한 주민이 함께 사는 집’ ‘남북한 주민이 공동 조립한 부품으로 만든 작품’처럼, 먼 미래를 구상하는 작가들도 있다.

노순택(Noh Sun-tag)의 사진 설치작업 <살려면 vs. 왔으면 (To Survive vs. Once Arrived)>(2012). 북한의 평강고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철원 평화전망대 옥상에서 찍은 사진 촬영 금지 푯말과 군인의 뒷모습 사진을, 사진 속의 그 장소에 내걸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남한에서 분단경계선은 내외국인이 함께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별난 곳을 방문한 자의 의무는 무엇인가? 보는 것이다, 찍는 것이다.”

“한국은 DMZ를 전쟁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는 인상을 줬고, 북한은 나라 전체가 전쟁 테마파크였다”—잉고 니어만(프로젝트 참여 작가)

국내 작가들의 참여작도 소개해 달라. 국내 작가들은 접경지대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삶, 긴장과 일상의 공존을 생각해보게 했다. 임민욱(Lim Min-ouk) 씨는 전쟁 후 철원 수도국 자리에서 학살됐다고 전해지는 300명에 대한 기록을 아카이브 형태로 선보였다. 구정아(Koo Jeong-a) 씨는 용암대지인 철원의 상징인 현무암으로 평화광장에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사진기자 출신 노순택(Noh Sun-tag) 씨는 DMZ 땅굴 관광객의 뒷모습을 찍는 등 기자적 관점의 사진을 발표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백 번 들어도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DMZ를 실제로 와서 보고 느끼고,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그리고 왜 지역적 문제를 국제적으로 다루는지를 함께 생각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시각예술, 건축, 음악, 인문학, 사회과학의 협업의 통로를 개척하는 김선정 씨. 그는 올해는 이 프로젝트의 전시를 따로 열지 않는 대신 내년부터 영구적으로 남길 수 있는 ‘파빌리온(PAVILLION)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위해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0년 기획의 프로젝트를 더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다짐도 내비쳤다.
리얼DMZ프로젝트는 한국 현대사와 한반도 분단에 대한 이해를 돕는 조사연구의 플랫폼을, 세계사에 기록된 냉전의 유적지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예술축제를 지향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관점과 연계해 인류평화와 공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DMZ 깊이 읽기’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 과녁을 제대로 맞춘다면 DMZ라는 물리적 경계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안에 있는 심리적 경계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줄 것 같다.

고미석 (Koh Mi-seok, 高美錫) 동아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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