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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벗들 한국 독립영화의 후원자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올해로 세 해째 들꽃영화상(Wildflower Film Awards)을 이끌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왕성하게 피어나는” 한국 독립영화를 들꽃에 비유한 이 상은 20년을 이어져 온 그의 한국영화 사랑이 의미 있는 결실을 향해 나아갈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음을 말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영화 평론가 달시 파켓은 2012년 임상수 감독 <돈의 맛(The Taste of Money)>에서 한 재벌 가문의 정계 뒷거래를 돕는 미국인 역으로 출연했다.

우리는 지난 6월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서울의 북쪽 구도심에 있는 한 지하철 출구에서 만났다. 그는 “눈이라도 내렸으면 Waiting for the Snow”이라고 써 있는 우산을 들고 있었다. 인근의 인디스페이스에서 그 제목의 영화를 보고 오는 길이며, 거기서 선물 받은 우산이라고 했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근처 골목을 따라 요리조리 들어가니 한국식 대문과 조그만 정원이 있는 카페가 나온다. 그의 목소리가 작고 한국어 발음이 완벽하지는 않아서 우리는 거의 코를 맞대다시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해째 치른 들꽃영화제
달시에게 방금 보고 온 영화에 대해 물어보았다. “장희철(Jang Hee-chul) 감독의 첫 작품 <미스 진은 예쁘다Beautiful Miss Jin>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마지막 날이라 보러 간 거예요. 그런데 관객이 저 혼자였어요... 모두 합해도 아마 천 명도 안 들었을 거예요. 한 3만 명만 들면 제작비 건지고 스탭들에게 보너스도 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대작 영화에만 몰리는 게 안타까워요.”
이야기는 자연히 그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들꽃영화상으로 넘어갔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격려하기 위해 2014년 봄에 처음 만들어 올 4월 세 번째 행사를 치렀다. 순제작비 10억 원 미만의 저예산 영화 중에서 우수한 작품과 영화인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들꽃의 야생성이 독립영화의 척박성과 딱 들어맞는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일이지만 제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름답고 창조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독립영화들을 무수히 보면서, 그런 작품들이 반드시 재조명 받아야 한다고 줄곧 생각했어요. 영화상을 만들어 시상식에 초점을 맞추면 대중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지요. 당신이 직접 해보라는 말에 힘입어 시작했는데, 기금이 모이지 않아 포기하려고 했어요. 지금은 영화 투자 수입 배급사 ‘쇼박스’ 등 여러 곳에서 지원을 해주어 상황이 많이 나아졌어요”
들꽃영화제는 이제 꽤 널리 알려지고 신뢰도 쌓아가며 성장하고 있다. 한 대학의 교수로부터 “우리 영화과에는 들꽃영화제를 목표로 영화 만드는 학생들이 있다”는 전화를 받고 가장 기뻤다고 한다. 여유가 생기면 그 동안 트로피 30개를 만들어준 도예가 이하린씨(Lee Ha-lin)씨에게 제일 먼저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한다.

영어강사에서 한국영화 전문가로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영화 관련 일에 푹 빠져 살아왔다. 내 주위에는 김기덕(Kim Ki-duk), 봉준호(Bong Joon-ho), 박찬욱Park Chan–wook) 감독 영화에 꽂혀서 한국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한국에서 한번 살아보려고 온 서양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은 대학의 영화 관련 강의, 해외 영화제에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일, 또는 직접 영화 만드는 일을 한다. 달시 파켓은 아마 그 모든 역사의 첫 페이지를 연 사람일 것이다.
1997년 처음 서울에 와서 고려대학교 영어강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한국영화 볼 만한 걸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모두 손사래 치며 말했다. “에이 별거 없어요”, “보지 말아요”, “시시해요.”
실은 그 당시가 한국영화의 큰 파도가 몰려 오기 시작한 때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 그는 <접속(The Contact)>, <8월의 크리스마스(Christmas In August)>, <쉬리(Swiri)>, <초록물고기(Green Fish)>, <조용한 가족(The Quiet Family)>, <정사(An Affair)>, <처녀들의 저녁식사Girls' Night Out>, <넘버 쓰리(No3)>를 보며 한국영화에 빠져들었다.
“타이밍이 딱 좋았어요. 제가 한국에 오고 나서 5년 간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할 정도로 좋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홍상수(Hong Sang-soo), 김기덕, 김지운(Kim Ji-woon) 감독도 다 그때 데뷔했어요.”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를 사랑하던 청년 달시 파켓은 미국 미네소타주 칼튼 칼리지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했다. 인디애나 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러시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딸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응용언어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대학원에서 어울렸던 한국인 유학생들과의 인연으로 고려대에서 영어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잠시 한국에 머물다 체코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한국영화 좋아하는 미국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서 그에게 한국영화에 대한 영문 보도자료, 홍보물 등을 작성하는 일을 맡겼다. 여기에 착안해서 그는 개인 웹사이트 코리안필름(koreanfilm.org)을 열었고, 한국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다.
“주로 리뷰를 써서 올렸는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페이지뷰가 하루에 3만 정도 되었어요. 방문객은 하루에 7천 명. 특히 토론방은 불이 났지요.”
영국 영화잡지 <버라이어티>, <스크린 인터내셔널>에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고정 지면을 얻은 것도 그 덕분이다.

영어 자막 작업과 강의
요즘 그가 주력하고 있는 일은 영어 자막 만드는 일과 고려대 여름 학기(International Summer Camp) 특강, 그리고 해외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래밍이다.
영화 자막 만드는 일을 한 지는 오래 되었다. 지금까지 약 150편 정도가 그의 손을 거쳤다. 오른쪽 팔의 건초염 때문에 한동안 쉬다가 2014년 <국제시장(Ode to My Father)>으로 다시 시작했다. 올해 3월에는 칸영화제에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The Handmaiden)>와 나홍진(Na Hong-jin) 감독의 <곡성(The Wailing)>을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특히 바빴다.
지금은 홍상수 감독의 작품 두 편을 붙들고 있다. 그 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ight Now, Wrong Then)>는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완성된 자막을 감독이 “이런 느낌 아니야!!”라고 퇴짜를 놓는 바람에 달시에게로 왔다.

달시 파켓이 추천하는 한국의 독립영화 10편

우리들(The World of Us): 2016, 감독 윤가은
한여름의 판타지아(A Midsummer’s Fantasia): 2015, 감독 장건재
도희야(A Girl at My Door): 2014, 감독 정주리
10분(10 Minutes): 2014, 감독 이용승
러시안 소설(The Russian Novel): 2013, 감독 신연식
범죄소년(Juvenile Offender): 2012, 감독 강이관
내가 고백을 하면(The Winter of That Year Was Warm): 2012, 감독 조성규
무산일기(The Journals of Musan): 2011, 감독 박정범
낮술(Daytime Drinking): 2008, 감독 노영석
8월의 일요일들(Sundays in August): 2005, 감독 이진우

 

“감독마다 선호하는 자막의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요. 박찬욱 감독은 좀 어색해도 대사의 내용을 다 살리길 원하고, 홍상수 감독은 자연스럽고 간략한 걸 좋아하지요. 영어를 잘하는 홍감독과 작업할 때는 나란히 앉아 즉석에서 입으로 몇 벌의 번역 문장을 제시해주어 ‘느낌’에 맞는 걸 선택하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2009년부터 매년 여름에 하는 고려대 국제캠프에서는 6주 동안 40시간 강의한다. 올해는 한국영화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발탄(Aimless Bullet)>의 유현목(Yu Hyun-mok) 감독론을 펼칠 계획이다. <칠수와 만수(Chil-su And Man-su)>등 7,80년대 한국영화사의 걸작도 되짚어볼 생각이다.
그는 2007년부터 스페인 산세바스찬 국제영화제(San Sebasti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프로그래머로 활약중이다. 2012년에는 이 영화제에서 유현목, 하길종(Ha Gil-jong), 임권택(Im Kwon-taek), 김기영(Kim Ki-young) 감독의 작품 10편을 상영하는 70년대 한국영화 회고전을 구성했다.

“‘The Darkest Decade’라는 제목으로 군사정권하의 한국영화들을 소개했어요. 시대상황, 검열 등의 제약조건을 설명하며 시사회를 했어요. 닷새 동안 하루에 2회 상영이었는데 관객이 아주 많이 왔어요.” 그는 2002년부터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Udine Far East Film Festival)에도 컨설턴트나 패널리스트로 참여하여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힘은 관객
20년 전, 변방의 한국영화가 세계무대에서 각광 받을 거라고 예견했던 달시 파켓. 하지만 그는 지금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솔직히 요즘의 한국영화는 이전만큼 저를 흥분시키지 않아요. 최근 5년 동안 저를 감동시킨 영화가 없었어요. 며칠 전 <곡성>을 보고 SNS에 “5년간 최고의 영화”라고 올렸어요.”
나홍진 감독이 20세기 폭스사와 손잡고 만들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달시 파켓이 제3회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인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 (왼쪽), 홍보대사인 ‘들꽃프렌즈’ 신민철 배우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다.

“한국은 시스템이 너무 강력해서 새로운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아이디어는 좋은데 흥행이 되지 않을 듯하면 아예 제작하지 않거든요. 다들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요즘 상업영화는 다 비슷하고 재미가 없어요.”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점인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달시 특유의 조심스런 성품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들꽃영화제의 스폰서를 잡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독립영화만이 한국영화의 출구라는 생각은 확고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예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라도 흥행 수익으로 투자금을 거두지 못하면 실패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박스 오피스에서 성공 못한 감독들은 다음 영화를 만들 때 어려움을 겪는다. 그가 들꽃영화제를 만든 것은 더 이상 이러한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들꽃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과 영화인들은 적어도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 영화계에나 문제는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큰 힘이 있어요. 바로 관객입니다. 한국만큼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나라는 없어요. 부디 저예산 독립영화를 찾아서 봐주세요. 아주 독특하고 예술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큰 힘이 있어요. 바로 관객입니다. 한국만큼 자국영화 점유율이 높은 나라는 없어요. 부디 저예산 독립영화를 찾아서 봐주세요. 아주 독특하고 예술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
그는 한국에 온 이듬해 연현숙(Yeon Hyeon-sook) 씨와 만나 3년간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들 둘을 두었다.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은 서울의 오래 된 동네 미아동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다. 큰아들은 내년에 조부모가 있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고 한다.
연애하는 동안 둘이 함께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도 보았고 <살인의 추억(Memories of Murder)>을 함께 번역했다. 아내는 아이 둘 낳아 기르느라 영화와는 멀어졌고 최근에 네일 아트 자격증을 따 개업을 궁리 중이라고 했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것이지요.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도 서로 다른데 우리는 얼마나 다를 것인가, 처음부터 그것을 각오했기에 잘 살아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더해 한국영화를 많이 본 것이 한국을, 한국 문화를, 한국 여자를 잘 이해하는 지름길이 아니었을까? 그는 <강철대오(Almost Che)>, <돈의 맛(The Taste of Money)> 등 7편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현장감을 키우고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즐거워서 출연요청이 오면 대개 응한다. 언젠가 한국작가와 공동 창작으로 한국정치, 특히 선거에 대한 시나리오를 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현숙(Kim Hyun-sook, 金賢淑) 케이무비러브(K-MovieLov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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