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라이프스타일 문화다양성의 시대, 되살아나는 작은 책방들

작은 책방 바람이 불고 있다. 책만이 아니라 문화를 팔겠다는 소자본 책방 운영자들의 발상에 대중이 호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맥주나 칵테일을 곁들인 심야 독서가 가능한 작은 책방들도 문을 열어 직장인들의 퇴근 후 쉼터이자 재충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조용하던 책방 정원에서 갑자기 ‘까르르’ 아이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창 밖을 내다 보니 분홍 머리핀을 꽂고 분홍 발레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꽃처럼 웃고 있다. 그늘 아래 나무의자에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정하다. 잠시 후 책방으로 들어온 아이는 자기와 똑같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소녀의 이야기가 실린 그림책을 사 들고 엄마와 함께 책방을 나섰다. 주말 오후, 책방을 찾은 이들이 모두 따뜻한 시선으로 엄마와 아이를 배웅한다. 위축되는 출판산업, 문닫는 서점들 내가 운영하는 숲속작은책방은 이름 그대로 한갓진 시골마을, 숲 속 가옥을 개조해 만든 작은 서점이다. 인구 3만5천 명의 소규모 농촌인 충청북도 괴산군, 그 중에서도 어울려 사는 이웃이 백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시골마을에 서점을 열었을 때, 대도시에도 문을 닫는 동네 서점들이 늘어만 가는데 구석진 숲 속에 서점이 웬 말이냐고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러나 문을 연 지 2년,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로부터 이 구석진 곳을 찾아주는 이들이 한 달 평균 5백 명이 넘고 매출도 꾸준히 늘어나 서점은 안정적인 운영을 이루어가고 있다. 온라인 서점의 득세로 대부분 인터넷으로 책을 구매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내 맘에 드는 공간에 머물며 책을 고르기 위해 먼 시골까지 책방 나들이를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나는 놀라고 있다.
2016년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펴낸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15년 말, 도서만 취급하는 순수 서점은 전국에 1,559개다. 10년 전인 2005년 2,103개에 비해 544개나 줄어들었다. 특히 1998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후 20년 동안 70%나 감소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서점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대형 체인서점들이 규모를 축소해왔고, 많은 지역 중소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심지어 전국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위 중 서점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이 6곳, 단 한 곳밖에 없는 서점 멸종 예정지역도 43곳이나 된다.
사정이 이쯤 되자 죽어가는 출판과 유통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정부는 각종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14년 도입된 도서정가제이다. 도서 할인율을 15% 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규정은 소규모 출판사와 동네서점의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독자의 이익을 확대하겠다는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도서정가제 시행 2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 이 제도에 대한 찬반 여론은 분분하다. 하지만 나처럼 동네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충청북도 괴산 숲속작은책방 정원에서 열린 1일 카페에서 참가자들이 테이크아웃 커피트럭을 몰고 온 한 바리스타가 제공한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정관념을 깨는 공간들
반드시 도서정가제 시행의 결과라고만 볼 수는 없겠으나 2013년부터 서점의 감소세도 둔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2-3년 간 서점업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죽어가던 동네 서점의 부활이다.
그 선두에 땡스북스(Thanksbooks)가 있다. 젊은이들의 문화거리인 서울 홍대앞에 5년 전 문을 연 이 서점은 온통 옷 가게, 음식점, 카페 등 유흥 소비 일색이던 거리에 새로운 책 문화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동네 서점이 한 군데쯤 있었으면 했어요.” 땡스북스 이기섭(Lee Ki-seob 李起燮) 대표의 바람대로, 이곳은 저녁 6시가 넘으면 부쩍 활기를 띤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작은 카페와 동네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가 가능한 갤러리를 함께 갖추고 있어 ‘홍대앞 명소’로 떠올랐다. 이곳의 특징은 무엇보다 세련된 도서 진열에 있다. 편집과 디자인이 뛰어난 책, 20-30대 도시 직장인과 전문직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각의 책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서울 홍대 앞 땡스북스는 작은 카페와 갤러리를 함께 갖추고 있어 직장인들이 퇴근하면서 편하게 들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트렌디한 서점으로 자리잡았다.

서점의 고정관념을 더 파격적으로 깨뜨린 곳은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북바이북(BOOK BY BOOK)”이다. 가볍게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이곳은 무엇보다 각종 강좌와 저자 강연, 이벤트가 빛나는 서점이다. 거의 매일 저녁 이곳에선 북 콘서트를 비롯한 행사들이 열린다.
“이곳에 오면 젊음의 활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신간도서가 나오면 저자 강연도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작은 콘서트의 연주자들도 개성 넘치고 수준이 높아서 언제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편안한 동네 서점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온라인 서점 이용을 줄이고 책은 꼭 여기 와서 구입하지요.”
지역주민인 가정주부 김수현(Kim Su-hyun 金秀賢) 씨의 이야기이다.

주인이 직접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연희동의 “책바”, 맥주와 하우스 와인이 있는 “B+” 등 가볍게 한 잔 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직장인들의 새로운 쉼터로 입 소문이 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책과 사람을 위한 도심 속 아지트”를 표방하며 논현동에 이어 서교동에도 문을 연 “북티크(Booktique)”는 금요일 밤 10시에 심야서점을 열고 있다. 주말을 앞둔 직장인을 위한 신선한 제안이다.

취향 공동체를 지향한다
최근 한국사회 작은 서점 부활의 동향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복합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는 서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도 서점에서 저자 강연 등의 행사를 열기는 했지만, 출판사가 책을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 혹은 일회적인 이벤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 동네 서점은 다양한 문화 행사들의 중심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인디 음악인들의 공연도 수시로 열리고, 유명강사가 아닌, 좋아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수공예 실습 강좌들도 줄을 잇는다. 캘리그라피,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 전시와 강좌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상 속에 예술을 문화로서 접하게 해주는 주요 거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주제별 서점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행 전문서점, 문학 전문서점, 그림책 전문서점 등 한 가지 주제로 서가를 구성한 편집매장들이다. 여행서점은 단순히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찾는 배낭여행자들이 모임을 꾸리기도 하고, 때로는 공정여행을 기획해 함께 길을 떠나기도 한다. 여행 전문서점이라고 해서 여행 가이드북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여행이라는 행위와 관련된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에세이, 사진집, 독립출판물들을 갖추고 있다.
독립출판물만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도 많이 생겨났다. 독립출판물이란 대량 제작, 대량 배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업적인 출판물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요즘,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리고 찍은 글과 이미지로 책을 완성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개 한번에 100권에서 많게는 500권 내외로 소량 제작되는 이런 책들은 전국 독립출판물 서점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등 획일화된 현대사회에 지친 이들이 자신만의 취미와 개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내게 의미 있는 것, 소음으로 가득 찬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 작고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과 친구들을 원하게 된 것이다.

작은 서점들은 대중의 소규모 취향 공동체에 대한 추구에 부응하며, 다시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등 획일화된 현대사회에 지친 이들이 자신만의 취미와 개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내게 의미 있는 것, 소음으로 가득 찬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 작고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곳, 그런 공간과 친구들을 원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책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또 찾아 나서고 있다.
작은 서점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상품만 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거대산업사회에서, 사람이 먼저 보이고 그 사람이 내게 책이라는 상품을 통해 말을 걸어주는 공간, 온라인 미디어의 익명성에 지치고 고독해진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렸던 ‘마음’, 그리고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그런 공간. 작은 서점의 존재 이유이자 성공 비결이 그것이다.
<서점 vs 서점(Reluctant Capitalists)>의 저자 로라 밀러(Laura J. Miller)는 “독립서점에서 쇼핑하는 건 정치적인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전적으로 옳다. 대형 체인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 아닌, 지역을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산다는 건 자신이 독서하는 시민인지 단순한 소비자인지를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방에 앉아 몇 번의 클릭만으로 여러 가지 할인 혜택을 받으면서 편하게 책을 사는 게 가능한 시대,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때로는 먼 거리 교통비까지 지불하며 일부러 동네 작은 서점을 찾아 책을 사는 일은 단순히 책 한 권을 사는 소비행위가 아닐 것이다.
땡스북스 이기섭 대표는 이런 현상들을 문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문화적인 것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획일적이고 쏠림이 심했었지요. 불경기 저성장 기조를 배경으로 문화 다양성이 생겨나는 것은 서점업계만의 일은 아니고 전반적 사회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일부는 시행착오를 겪고 사라지기도 하겠지만 또 일부는 살아남아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동력이 될 거라 믿습니다.”

백창화 (Baik Chang-hwa, 白昌和) 숲속작은책방 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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