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이 사람의 일상 내 이름은 ‘고3엄마’

대한민국의 고3 엄마는 자식에게 “네 인생은 너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한 해 눈 질끈 감고 자식의 인생에 2인3각 경기를 하듯이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기를 고뇌 없이 명쾌하게 치르는 엄마도 매우 드물 것이다.

오전 7시가 가까워오자 고3 딸의 등교 준비를 지켜보는 손애란 씨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5분 후에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까딱하면 놓칠 것만 같아서이다. 아무 말 없이 속을 끓이던 손씨가 남편에게 승용차 키를 쥐어주기 직전, 딸이 방에서 튀어나와 쏜살같이 현관문을 나선다.
“지각하면 안 되죠.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으니까요. 한 학년에 세 번까지는 괜찮다고 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생활기록부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이에게 완벽한 생활기록부를 만들어 줘야죠.”

아이와 함께 고3이 되어
딸을 보낸 뒤에야 손씨는 출근을 위해 남편과 집을 나서며 딸의 학원 시간을 서로 확인한다. 오늘은 손씨가 오후 8시에 학원까지 태워다 주고 남편이 오후 10시에 학원에서 집으로 태워 오기로 정한다. 그래도 주중은 수월한 편이다.
“토요일엔 오전 10시부터 수업이 있어요. 차 태워서 들여보내고 두 시간 동안 기다려요. 끝나면 점심 사 먹여서 오후 1시 수업에 들여보내고요. 세 시간 후에 집에 데리고 와선 오후 7시에 맞춰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강남의 학원으로 데려다 줘요. 밤 10시에 끝나면 다시 데리고 오구요. 아빠들이 더러 조금 거들긴 하지만 대개는 거의 온종일 엄마가 기사가 되는 거죠. 일요일도 비슷해요.”
입시 학원가에 늘어선 승용차 행렬엔 그렇듯 이유가 있다. 기꺼이 아이들의 발이 된 엄마는 아이와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공부는 아이의 몫이지만 학원 사이 이동을 담당하는 것, 학부모 집단에서 캐어온 정보로 적정한 학원을 선택하도록 해주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때론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와 밤을 함께 지새우며 고통 분담도 자청해본다. 그래서 엄마의 삶과 아이의 삶이 조금씩 밀착되어 가고, 아이가 고3으로 사는 1년은 그 밀착의 정점을 찍는다.
손애란 씨는 그 1년을 어떤 호흡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19살 자식의 한 부분이 되어 걸어야 하는 길은 어떤 길일까? 그는 해마다 60만 수험생 엄마들이 지나는 그 길을 비교적 담담한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짐작해보거니와, 때론 자식의 앞날을 위해 내 가치관의 한 귀퉁이를 잠시 접기도 하는 ‘내 삶의 예외적인 기간’을 살고 있으리라. 고등학교 교사이자 고3 엄마로 살아가는 손씨에게 이 난해한 시기에 대해 물었다. 고3엄마의 일상을 넘어 오늘의 교육 현장을 두루 짚는 그의 이야기에선 시대의 단내가 났다.

공부는 아이의 몫이지만 학원 사이 이동을 담당하는 것, 학부모 집단에서 캐어온 정보로 적정한 학원을 선택하도록 해주는 것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때론 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와 밤을 함께 지새우며 고통 분담도 자청해본다.

손애란 씨가 고3 딸과 함께 한 학원에서 새 강좌 소개서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교육 광풍 속을 딛는 걸음들
“대부분의 목동 아이들은 학원 다니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요. 초등학생이 오후 10시까지 학원 수업을 받아도 눈을 비비면서 졸지언정 내가 여길 왜 다녀야 하느냐고 반항하지 않는대요. 주변의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니고 있기 때문에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손씨가 사는 서울 서북부 중산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목동은 강남의 대치동과 함께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지역이다. 학생들은 하교 후 자연스레 학원으로 몰려간다. 학원은 단순히 공부를 의탁하는 곳을 넘어 시간을 의탁하는 곳이 되었다. 아이들은 학원이 자신의 시간을 구획해주는 대로 묻지 않고 따른다. 자기 시간의 주체가 되려 하지도 않고 되지도 못한다. 엄마들은 속으로 그런 현실에 회의가 들어도 여간 한 줏대와 뚝심이 아니고는 아이를 다른 선택으로 이끌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수동적인 학습의 시간을 일탈 없이 버텨내면 목표했던 학업 성취가 보장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손씨는 학원이라는 키워드로 목동과 인천 두 곳을 대비시켰다. 인천은 그의 근무지이자 전국모의고사 평균 성적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지역 중 하나다.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잖아요. 심리적으로 방황하면서 뭔가를 해결하지 못하고 튀어 오를 때 목동의 엄마들은 대체로 아이들을 예의주시하며 대책을 강구하지요. 사실은 학원이 그렇게 방황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요. 사교육이 공부도 담당하지만 아이들의 방황하는 시간도 뺏는다 할까요. 그런데 인천, 특히 공장이 몰려있는 제 근무 학교 인근 지역은 또 달라요. 학교 끝나고 학원 안 가는 아이들은 시간이 많이 남잖아요. 그 시간에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잡힌 아이들도 적고, 부모는 그걸 지도해 줄 시간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어요. 그러니 한창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을 때 무리 지어 다니며 친구에게 빠지곤 하는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죠.”
사춘기 감정과 행동까지 지배하는 학원의 절대적인 위력. 그걸 아는 엄마들은 사교육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위축된다. “엄마들은 항상 불안하잖아요. 내 자식의 성적을 다른 아이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안해하고, 혼자서 공부한다고 하면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그 불안감을 파고들고 부추기는 게 학원이죠.”
그래서 엄마들은 더 좋은 학원, 더 좋은 과외를 찾아 움직인다. 최상위 그룹 소수에게만 유통되는 학원가 고급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인간관계에 공을 들이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회당 수백만 원을 상회하는 전문 과외 수업에까지 눈을 돌린다. 그 과열 양상 속에서 양산되는 것은 기형에 가까운 선행학습 교육과정이다. 한 예로 사교육 과열 지역에서는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미리 배울 정도다. 비정상이 표준이 되어버린 시대, 표준 바깥에 사는 소수는 철저히 소외된다.
손씨는 이 같은 광풍 속을 걷는 자신의 걸음을 이야기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보 속에서 중심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해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죠. 그러나 제 아이에게도 한 학년 정도 앞선 선행학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손애란 씨는 딸이 고달픈 대학입시 준비 중에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며 함께 고3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보살펴야 할 아이의 자긍심
사교육 열기를 누그러뜨릴 정책적 묘수는 없는 걸까?
“딸이 이과거든요. 이과엔 성적 높은 아이들이 몰리기 때문에 내신 성적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어요. 수학 시험에서 실수로 한 문제를 놓치면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공부하는 것이 꼭 살얼음판을 딛는 것 같아요.”
사정이 이러니 입시 사정에서 수능보다 내신의 반영 비중을 높여도, 대학 입시의 방향이 학업 성적 이외의 ‘다양한 활동과 성취’를 장려하는 쪽으로 선회해도 별 효과가 없다, 부모와 수험생과 사교육 시장은 새 제도를 장악할 수 있는 ‘활동 스펙 쌓기’ 에 끊임없이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배우는 과정의 즐거움에 결코 다다르지 못한다. 마음은 그만큼 빈곤해진다.
그 정반대 편에 선 학생들에게도 괴로움은 있다. “요즘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많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닦은 기초가 없어서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아이들이죠. 그들에게는 수업 시간이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정말 흥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좋은 점수까지 낼 수 있는 게 있어요. 온라인 게임이죠. 당연히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밤새 게임하고 가까스로 일어나서 등교한 학생들을 종종 보거든요.”
공부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욕망은 있고, 바로 세우고 싶은 자존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 외로운 마음의 무늬를 읽고 감쌀 만큼 품이 넓지 않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것이 엄마에게 돌아온다. 손씨는 말한다.
“저는 아이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늘 돌아보고 살피는 편이에요. 겸손하면서도 ‘스스로 긍지를 가질 줄 아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거죠. 그런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모녀가 나누는 대화와 마음 덕분일까. 손씨의 딸은 고된 고3의 터널을 별 탈 없이 통과하는 중이라 했다. “마음에 어려움이 깃들면 속으로 삭히는 딸이라 그 마음을 앞서서 읽고 먼저 다독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손씨의 눈에 크고 깊은 세계가 지나간다. 시대가 안긴 가혹하고 부당한 짐을 ‘엄마가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전환하여 얻은 평온이라 할 수 있을까.

강신재 (Kang Shin-jae, 姜信哉)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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