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산책

문학 산책 평론 내가 바로 그때의 나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서울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영등포에서 홍대까지, 그리고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그 동안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그간 내 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이야기들 중 하나가 바로 <프라자 호텔>이다”—작가의 말

김미월(Kim Mi-wol金美月)의 단편 <프라자 호텔>은 여성 작가들이 서울의 이곳 저곳을 배경 삼아 쓴 테마소설집 <서울, 밤의 산책자들>(2011)에 처음 발표되었다. 서울 중심가, 시청을 마주 보고 선 호텔이 소설 무대다. 별나게도 국내나 국외 휴양지가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삼십 대 중반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런 휴가 보내기는 몇 해 전부터 이 부부의 연례 행사처럼 이어져 왔는데, 이번에 두 사람이 선택한 프라자 호텔은 여느 호텔들과는 다른 의미로 이들에게 다가온다.
소설은 화자의 대학 시절 연애 이야기와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현재 이야기를 오가며 이어진다. 소설 속 정황 묘사로 보아 2009년 여름인 현재 시점에서 부부는 호텔 창밖으로 덕수궁 대한문을 내려다보며 몇 달 전 그곳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불과 1년여 만에 친족 부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로 삶을 마감한 전 대통령의 돌연한 죽음에 그를 지지했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렸고, 화자의 아내도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조문을 했던 것.

그런가 하면 화자는 라이터와 커피를 사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가 시청 앞 광장에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기를 반복하는 삼보일배 시위대와 마주친다. 서울 용산 재개발에 반대하며 철거 예정 건물 옥상에서 시위를 벌이던 세입자 다섯 명이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용산 참사’ 유족과 시민들이다. 시위 도중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완벽한 온도, 완벽한 습도, 완벽한 청결 상태, 완벽한 서비스, 완벽하게 대접받는다는 느낌.” 비싼 돈을 주고 투숙한 부부에게 제공되는 쾌적한 호텔의 서비스와 우비도 우산도 없이 폭우 속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유족 및 시민들의 상황은 자본과 민주주의, 그리고 소위 ‘보수’와 ‘진보’가 자주 부닥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압축적,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이 작가는 부부의 호텔 휴가를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이라는 맥락 안에서, 나아가 80년 광주 학살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뒤에 깔고 그려 나간다.
부부가 투숙한 호텔이 화자의 대학 시절 시위 현장에서 가깝다는 사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와 연결된다. “한마디로 백설공주 같았던” 화자의 대학 동기이자 연인 윤서는 대학 시절 시위 현장에서 시위를 느긋하게 구경하던 중년 남자의 말을 엿듣게 된다. “어린 학생들이 뭘 안다고, 어차피 졸업하고 사회 나가면 다 잊어버릴 거면서 왜 자꾸 데모질이냐고. 그래 봐야 차만 막히지 세상은 안 바뀐다고.” 아닌 게 아니라 화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으며 이제 어느 정도 살 만해져서 도심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중년 남자의 말대로 대학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잊은 것일까?
작가는 이 질문에 즉각 답하는 대신 약간의 우회로를 거친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는 믿을까. 그때의 일을 기억이나 할까. 내가 바로 그때의 나라는 걸, 우리가 바로 그때의 우리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화자의 자문에 이어지는 마지막 문단에 일종의 반전을 숨겨 놓는다.

화자의 자문은 일차적으로는 청춘 시절 무산된 어떤 크리스마스 약속에 대한 언급이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는 중의적 해석을 향해 열려 있기도 하다. “바로 그때의 우리”라는 구절을 풋풋하게 데이트하던 청춘이 아니라―아니 그와 더불어―시위대에 섞여 스크럼을 짜거나 도망 다니다가 기성 세대의 냉소적 반응을 접했던 청년들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화자가 “증명” 가능성을 따져 보는 것은 서투르기에 더 아름다웠던 지난 시절 연애의 순정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열정이기도 하다는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2004년에 등단한 김미월은 2000년대 또래 작가들과 비슷하게 젊은 세대의 궁핍과 고투를 주로 다뤄 왔다. 첫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2007)에 그는 고시원, 골방, 반지하 원룸 등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형 젊은이들을 등장시켰다. 주인공 부부와 비슷한 나이인 삼십대 중반에 발표한 단편 <프라자 호텔>은 김미월이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이 거쳐 온 젊음을 돌이켜보는 한편 현재의 자신을 청춘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재봉 (Choi Jae-bong, 崔在鳳)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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