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포커스 도시의 계단은 정원이 될 수 있다

낙후된 도시 변두리 지역에 공공미술로 활기를 불어넣자는 도시재생사업은 그 동안 전국의 많은 달동네를 벽화마을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조용하던 동네가 외지인의 낭만 놀이터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거주자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전쟁의 폐허에서 성장한 서울은 불과 60여 년 만에 인구 천만 명의 국제적인 대도시가 되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배경이 된 강남은 지금 고층빌딩이 즐비한 한국 경제 중심부이지만 40 여 년 전만 해도 과수원과 경작지가 태반인 변두리였다. 반면, 여전히 개발의 기회가 닿지 않아 시간이 멈춘 곳도 있다.
한국은 산지 면적이 전국토의 70% 이상인 산악 지형이다. 서울 또한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다. 그러니 서울에 계단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특히 근대화와 도시 개발의 와중에 빈민층은 고지대 산비탈로 밀려나 불량주택을 짓고 정착했다. 사람들은 그런 지역을 달과 가장 가깝다고 해서 ‘달동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달동네 계단은 그들의 고된 삶만큼이나 가파르다. 요즈음 그 계단이 뜨거운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태원 우사단길 계단장에서 동네 청년 예술가들이 “폴라로이드로 추억을 남기세요”라는 문구로 구경꾼들을 모으고 있다.

계단 장터가 사라진 사연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 이색적인 지역문화를 이루고 있는 이태원 우사단 길에 들어서면 이슬람 서울 중앙서원과 통하는 계단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식당들이 모여 있어 색다른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젊은 층을 불러모으던 이 동네는 2013년 이 계단에 장이 생기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계단 장은 인근 지역 청년 창업가들과 우사단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기획, 운영되었다. 파는 물건이라야 액세서리, 간이 음식, 패션 소품 등이 고작이었고, 그들의 목적은 앳된 흥미와 놀이의 충족, 그리고 작은 수익이었다. 입소문이 나자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우사단 계단은 장터를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흥겨웠다. 그런데 이 장이 지난 3월부터 열리지 않는다. 외지인들이 모여 들면서 주변 임대료가 폭등했고 통행에 불편을 준다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중단되었다. 계단 장을 시작하면서 싹텄던, 허름한 계단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이웃 간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희망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계단은 유명해졌지만, 이웃 간의 유대감은 낮아진 것이다.

계단 그림이 지워진 사연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도 비슷한 경우다. 600여 년 역사의 서울성곽과 문화예술의 거리 대학로를 잇는 이화동 일대는 2006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벽화사업이 시행된 이른바 ‘아트인시티(Art in City)' 11개 시범 지역 중 하나다. 7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늘어선 오래된 가옥들의 벽에 그림을 그리고, 시설물, 조형물, 표지판 등을 정비했다. 특히나 서울성곽 아래 낙후된 연립주택과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했던 달동네 골목의 낡은 벽과 계단이 시선을 끄는 그림들로 단장이 되니, TV 연예프로그램과 인기 드라마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배경으로 사용했다. 그러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곧 데이트 명소이자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 이 마을 계단의 물고기와 해바라기 그림을 주민들이 지워버렸다. 관광객들의 소음과 쓰레기, 사생활 침해 등이 그 원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이 사건은 법적 문제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외지인의 낭만 vs 거주자의 현실 우사단길과 이화동 산동네는 도시인들에겐 희귀한 보석과 같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탁 트인 조망, 미로처럼 펼쳐지는 골목과 계단, 주머니처럼 올망졸망한 공간들은 방문객에게 바둑판처럼 정비된 현대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색적 풍경을 선물한다. 꾸밈없고 질박한 동네의 모습과 주민들에게서 느껴지는 순박함은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거기에 공공미술의 화려함이 보태지고 인기 드라마에까지 조명되었으니 각박한 도시생활에 매력적인 장소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거주자의 입장이다. 이 공공사업의 취지대로라면,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저소득층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쉽게 예술을 접함으로써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적 자긍심을 느꼈어야 한다.

2013년 시작된 이 계단장은 이태원 우사단길을 서울의 새 명소로 만들었지만 그에 따른 임대료 폭등과 통행 불편 민원을 불러왔다. 계단장은 결국 올해 3월에 사라졌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그러한 만족감은 잠시였고, 놀이터이자 친교공간, 쉼터이던 계단과 골목이 혼잡해지면서 생활환경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불만감만 커져갔다. 외지인들의 낭만과 그곳에 사는 거주자들의 현실적 삶 사이에서 상반된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이 계단의 그림을 지우자 행정당국은 공공자금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훼손했다고 법적인 책임을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행정당국이 주민들에게 법적으로 손해를 따지거나, 어렵사리 만든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이화벽화마을 주민들은 “낡고 지저분하고 어두웠던 동네가 벽화 덕분에 깨끗하고 환해졌다”는 쪽과 “주거지에 관광이 웬말이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는 쪽으로 나뉘어 타협점을 모색하고 있다.

이화벽화마을은 서울성곽길 중 동쪽 낙산의 능선을 타고 도는 낙산 구간 아래 언덕에 자리잡은 오래된 마을이다.

바람직한 도시재생사업
문제의 핵심은 그 공간을 즐기려는 사람들과 그 지역 주민이 함께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계단과 같은 도시 공공 인프라에 관한 논의에서 사용 권리만을 중심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이해 당사자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 지역주민도, 놀러 온 이들도, 모두 시민이고 동등한 공공재 사용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도시에서 벽화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태동하였다. 당시 불합리한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민중운동이 확산되었고 일부 작가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벽화로 표현하였다. 이런 벽화들도 예술 주체와 주민 간에 갈등을 빚곤 했거니와, 도시미관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그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순수 미술 벽화 운동의 시발점은 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이 학교 인근 골목들에서 시작한 거리미술전이 제공했다. 학생들이 지역 주민들의 동의와 협조 아래 충충한 동네 벽을 창의적인 벽화로 채워나간 이 거리미술전은 정부 차원의 문화환경 가꾸기 사업 수립의 한 계기가 되었고, 올해로 24회를 맞는다.

주민들이 계단의 그림을 지우자 행정당국은 공공자금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훼손했다고 법적인 책임을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행정당국이 주민들에게 법적으로 손해를 따지거나, 어렵사리 만든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까?

중요한 것은 사업의 자생성과 주민 참여일 것이다. 정부가 이끌더라도 시작은 그에 기초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도시공간 재생 사업이 가능할 것이며, 그 결과물이 현대 도시에서의 인간성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도시 재생사업은 도시를 유기체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방향, 시민 중심의 공유 개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도시재생 종합 플랜’도 계획부터 시행까지 주민들을 주축으로 한 맞춤형 정비방식을 도입해 그 공간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관점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에 맞는 맞춤형 정비, 주민 참여. 물리적 성과보다는 지속성 있는 동력의 형성” 등이 내용의 골자다.
우사단과 이화동의 계단을 이러한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계단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또 계단은 사람들이 앉아 쉬며, 도시를 관람하는 스탠드 역할도 한다. 이런 계단의 기본적인 기능 위에 프로그램을 입히면 된다. 그리고 영역을 구분하면 된다. 이웃과의 이해가 충돌하는 건 영역이 구분되지 않아서다. 영역 구분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도시 활용 아이디어는 수명이 길지 않다.
계단에 정원을 꾸미면 어떨까? 스카이라인 가든, 컨테이너 가든, 루프 가든 등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정원 만들기를 들여다보면 도시공간과 인간이 자연을 매개로 어떻게 지속적으로 아름답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주민이 손수 가꾸는 계단정원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곽희수 (Kwak Hee-soo, 郭熙秀) 이뎀도시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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