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연예 토픽 김광석, 그가 살아 돌아왔다

모던포크 가수 김광석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관심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20년이 흐른 오늘에도 깊어만 간다. 올해에는 그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전시와 홀로그램 콘서트가 이어지고 있다.

홀로 통기타와 하모니카 반주로 노래하며 청춘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던 가수 김광석은 1996년 서른두 살 때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2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6월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홀로그램 공연장 K라이브에서는 <김광석 홀로그램 콘서트>와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3차원 영상으로 무대에 부활한 김광석이 하모니카와 기타를 연주하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등을 불렀다.
이 홀로그램 콘서트 제작을 위해 오디션을 통해 고인과 생김새와 체격과 거동이 가장 유사한 현역 연극배우를 뽑아 두 달이 넘는 맹연습으로 고인의 몸짓과 얼굴표정을 그대로 익히게 했다. 그 뒤 생전에 고인이 실제 공연 때 입었던 의상을 입은 대역의 립싱크 노래 연기를 크로마키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여 얼굴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까지 따냈다. 부족한 부분은 전문 애니메이터들이 만든 김광석 특유의 68가지 표정을 덧입혀 보완했다. 9개월 걸린 작업에 비용만 5억 5000만 원이 들어간 이 홀로그램 콘서트는 미래창조과학부 ‘디지털 헤리티지’ 사업의 일환으로 3D팩토리가 맡아서 제작했다 짧고 강렬했던 생애 “처음엔 안타까운 가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부러운 가수라고 생각해요.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 받은 가수가 있을까요? 그는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한 진짜 이야기를 듣는 이들 가슴 한 켠에 깊숙이 던지고 갔어요.” 고인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학기의 말이다.
김광석은 1980년대 민중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밴드 ‘동물원’을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민중가요를 통해 사회의식을 배우고, 팝음악을 통해 세련미를 구축한 그는 동시대가 원하는 노래를 부르면서도 자기 철학을 놓지 않는 영민한 활동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솔로로 독립해 <김광석 1집>(1989)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 Ⅱ>(1995)까지, 스스로를 ‘가요계의 노동자’라 불렀던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무대를 통해 대중을 만나며 열심히 살았다. 1995년 8월 11일 서울 동숭동 학전소극장에서 1000번째 콘서트를 열었을 때, 그는 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중학교 때 읽은 바둑 책에서 바둑기사 조치훈 씨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바둑을 이기려고 두지 않아요. 그저 돌 하나하나 정성 들여 놓다 보니까 기성도 되고, 명인도 되고….’ 저도 1000회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그저 매회 한 줄 한 줄 정성 들여 쳤지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이 모든 일이 여러분 덕입니다. 공연 끝나고 계획요? 별 계획 없습니다. 그저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이듬해인 1996년 1월 6일, 그는 서른두 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자살 이유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009년에 조성된 대구 김광석 거리는 한해 80여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한국 포크의 대들보
김광석의 음악은 특이하다. 얼핏 들으면 포크의 전형 같은데, 깊이 파고들면 여러 장르를 골고루 베어 물고 있다. 가사를 또렷이 발음하고 박자를 정확히 맞추는 그의 정직한 창법은 민중가요나 포크의 정서에 부합하지만 선율 구성에는 팝과 재즈적 느낌도 스며 있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그림이다. 그는 환희와 우수, 우정과 사랑 등 인생의 과정을 그림 그리듯이 노래에 담았다. 해묵은 창법으로 비칠 법한 그의 노래는 그래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작은 키에 투박한 얼굴. 그는 스타의 조건과는 거리가 먼 외모를 지녔지만 가슴으로 내뱉는 소리 하나로 상대방의 감성을 제어하고 조율했다. 어떤 대중문화 스타도 발휘할 수 없었던 그만의 독보적인 힘으로 그는 듣는 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했다. 그래서 한국 포크의 대들보, 아니 ‘올 어바웃 필링’(All About Feeling)의 대명사로 대중의 아낌없는 지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20년 전 바람처럼 사라진 젊은 가수 김광석의 그림자가 단단한 땅이 되어 오늘 우리의 대중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김광석 다시 부르기
2008년 시작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는 대중들이 김광석의 노래와 새롭게 만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를 기리는 뮤지션들이 고인의 음악을 되새기고 재해석하는 이 추모와 헌정의 무대는 9해째 이어지며 ‘김광석 다시 부르기’를 대중문화의 한 모티브로 자리잡게 했다.
2009년 그의 고향 대구에는 ‘김광석 거리’가 조성되었다. 김광석의 어린시절부터 가수로서의 전성기까지 전 생애가 폭 3m, 길이 300여m 골목길에 벽화와 조형물로 집약되어 있다. 이 거리는 한 해 80여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 거리에 자리잡은 소극장 떼아뜨르 분도에서 서두에 말한 김광석 홀로그램 콘서트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흘 동안 열리는 상설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예약제인 이 20분짜리 무료 콘서트를 보려는 관객들로 70석 규모 소극장은 빈자리가 드물다.
지난 4월1일부터 6월26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렸던 <김광석을 보다> 전시회는 고인의 자필 악보, 일기와 메모, 통기타 등의 유품이 공개되고, 고인의 음악세계가 그를 그리워하는 예술가들의 헌정 작품들과 어우러져 8개 공간에 정리된 큰 규모의 전시였다. 7월 16일부터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또 다른 추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의 제목은 <내 안의 김광석, 잘 살지?>. 독특한 부제는 그가 죽기 전 PC통신 팬카페 ‘둥근소리’ 게시판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이다. 한글로 변환하면 “잘 살지?”. 김광석추모사업회 김민기 대표는 “이번 DDP 전시는 ‘나의 김광석’을 ‘우리의 김광석’으로 확장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고금평 (Kim Go-geum-pyung, 金古今平) 머니투데이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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