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전국노래자랑 흥겨운 노래 잔치의 생명력 조회수 512
저자/소속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성공회대 겸임교수)  
사진작가  
<전국노래자랑>의 평균 시청률은 놀랍게도 11퍼센트가 넘는다. 대중가요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자면,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연하여 최신 인기곡으로 순위를 매기는 <뮤직뱅크>의 높아야 8퍼센트인 시청률을 멀찍이 따돌린 수준이며, 일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방송되는 ‘나는 가수다’의 시청률과도 거의 맞먹는다. 출연자의 독창적 곡 해석을 논하고 미세한 음의 흔들림도 지적할 만큼 시청자들을 음악적으로 민감하게 만들어놓은 최근의 뜨거운 ‘가요 서바이벌’ 대세와 동떨어진 이 프로그램의 ‘미친 존재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서바이벌 경연의 원조
지금은 햇볕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을 신나게 흔들어대는 출연자들 덕분에 인기를 얻는 이 프로그램이, 놀랍게도 40년 전에는 매우 진지한 신인가수 선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1971년 10월, 그때의 제목은 이었는데, 해당 연도 <방송연감>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KBS 각 지방방송국에서 매주일의 톱 싱어를 뽑아 월말결선을 하고, 4개월마다 열리는 기말결선에서 엄선하고, 연말 KBS 전국 아마추어 노래자랑경연을 통해 신인가수를 뽑는다. 연말결선의 우승자는 KBS컵을 수여하고 그밖에도 가수협회 회원자격을 부여하며 신인가수로 데뷔시킨다. 이 프로그램은 묻혀있는 많은 재능을 발굴, 연예계의 풍토개선에 이바지하는 신인들의 등용문 구실을 한다.
<전국노래자랑>은 오늘날 스타의 꿈을 실현하려는 젊은이들의 서바이벌 경연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의 1970년대 판이었던 것이다. 방송시간도 토요일 7시였으니 온 가족이 시청하는 최고의 황금 시간대였다. 텔레비전 보급률이 이제 막 늘어나고 있던 시절에, 지방에 묻혀있던 ‘우리 동네 가수’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우승컵을 안고 가수협회 회원증까지 얻을 수 있는 길이었던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문화방송에서도 곧 이와 비슷한 가수선발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1년에 걸친 경연으로 뽑아 올린 신인가수들은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그저 경연만 흥미로웠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인기는 조금씩 떨어졌고 급기야 1977년에 자취를 감추었으며, 몇 년 후 부활을 시도했지만 역시 인기를 얻지 못해 실패했다. 1970년대 말이 되면 이미 새로운 가수 등용문이 대중의 시선을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었으니,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1977년 MBC의 <대학가요제>를 필두로 각 방송사에서는 대학생과 젊은이를 신인가수로 선발하는 프로그램들을 앞다투어 만들었다. 기성 가요를 부르는 가창력 테스트가 고작이었던 <전국노래자랑>은 창작곡을 들고 나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젊은 감각의 새로운 경향을 뽑아 올리는 이 새로운 경연 프로그램들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원로 코메디언 진행자
<전국노래자랑>이 부활한 것은 1980년 11월이었다. 이제 ‘KBS배 쟁탈’ 같은 수식어는 아예 빠졌다. 연말결선으로 최우수상을 시상하는 제도는 남아있지만,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아마추어 경연대회가 된 것이다. 이로써 <전국노래자랑>은 <대학가요제>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었고,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88년 원로 코미디언 송해가 진행을 맡은 것은, 이 새로운 재미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송해는 1927년생으로 이미 이때 환갑을 훌쩍 지난 나이였다. 더 이상 텔레비전 코미디에도 출연하지 못하는 노인 코미디언을 진행자로 발탁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명확하게 말해준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제 젊고 세련되며 멋지고 진지한 프로그램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럼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중노년, 시골 사람, 학력 낮고 가난한 사람들까지 참여하여, 최신 대중가요의 세련된 경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껏 웃고 떠들면서 즐기는 잔치자리가 되었다. 노래는 주로 서민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부르는 통속적이고 익숙한 유행가들이다. ‘우리 동네 가수’의 중앙 진출을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는 대회가 아니다. 친근한 할아버지 송해가 ‘우리 동네 명물’들이 장기자랑을 하는 신나는 잔치를 찾아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진행을 보아주고 함께 노는 자리가 된 것이다.

긴 생명력의 비결
이제 <전국노래자랑>은 무대 위의 노래를 관중이 관람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없다. ‘00면 00리에서 생선 장사 하는 00살 먹은 000입니다’ 식으로 소개를 할 때부터 출연자는 거기 모인 구경꾼들과 한 덩어리가 된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고장 사람이다. 진행자 송해는 타지에서 온 손님이다. 출연자들은 노래를 잘 부르려고 하기보다는 흥겹게 부르려고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과 몸짓으로 관중과 함께 즐긴다. 노래를 못했다고 중간에 ‘땡’ 하는 종이 울려도, 실망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어차피 가수처럼 노래하려고 나온 것이 아니고, 식구 같은 동네 사람들끼리 별로 창피할 것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출연자는 자신의 마을에 찾아온 ‘손님 송해’를 반가워하며, 그에게 자신의 고장을 적극 소개하고 특산물을 가져와 자랑을 하고 입에 넣어주며 맛을 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 고장 특산물을 맛보면서 송해가 맛있다거나 맵다거나 하는 반응을 보이며 과장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출연자와 관중은 모두 손님을 골탕 먹이는 한통속의 악동처럼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한다. 송해는 진행자를 넘어서서 그 고장의 잔치를 구경하는 손님이자 구경꾼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기막힌 재주꾼 출연자를 보면 누구보다도 즐겁게 웃고, 자기 노래에 취해 덩실덩실 춤추는 할머니가 나오면 자신도 끼어들어 춤을 춘다. 손님 송해가 어울려주니, 그 고장 주인들은 더욱 신이 난다.
그래서 <전국노래자랑>은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다. 모두 멋지고 선진적이고자 할 때에, 결코 세련되지 못한 서민들도 누구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히 잘 놀고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다’라는 신경림의 시 <파장(罷場)>의 한 구절이,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고스란히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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