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GOURMETS DELIGHT] 국밥: 한국인들의 건강하고 정겨운 패스트푸드 조회수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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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안홍범 

서양에 수프가 있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다양한 국이 있지만 그들은 거기에 밥을 말아 먹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본 사람들은 국에 밥을 마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국에 밥을 곧잘 말아먹는다. 더 나아가, 아예 국에 밥을 말아서 내는 ‘국밥’을 즐겨왔다. 오죽 국밥을 흔히 먹었으면 밥과 국을 섞지 않고 따로 내는 ‘따로국밥’이라는 음식이 다 생겼겠는가. 그러나 따로국밥도 내올 때만 따로 내올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국에 밥을 말아 먹는다.

한국식 패스트푸드
전국의 각 지역에는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다양한 국밥이 존재한다. 서울사람들은 장국밥을 즐겨 먹었고 전라도에서는 콩나물국밥, 경상도는 돼지국밥을 즐겨 먹었다. 이북에서는 순대국밥을 흔히 먹었으며 평안도식 장국밥이라 할 수 있는 온반, 함경도식 장국밥이라 할 수 있는 가릿국밥도 있다. 그 외에 김치국밥, 굴국밥, 소머리국밥도 있으며 따지고 보면 한국의 직장인들이 점심에 흔히 먹는 곰탕이나 설렁탕, 육개장도 다 국밥에 속한다.
이러한 우리 탕반 문화의 유래에 대해 저널리스트 이규태(李奎泰)는 “한국인은 가난하니 작은 분량의 식품, 이를테면 많은 식구가 겨우 한두 근의 쇠고기를 나누어 먹자면 이것으로 국을 끓이고 밥을 말아서 먹을 수밖에 없다. 또 우리 민족에게는 외침이 끊일 새 없었으며 쫓기면서 먹자면 탕반 형태로 후루룩 마셔버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밥이 빈곤에 쪼들리고 외침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약소국의 백성들이 생존을 위해 개발해낸 비극의 산물이라는 견해이다.
국밥이 근대화 과정에 탄생한 슬기로운 음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식품학자 이성우(李盛雨)는 탕반이 “개화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도 사회 발전에 따라 외식이나 단체급식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복잡한 가정요리법으로는 급한 대로 대응할 수 없어서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밥이 전쟁터나 노역장에서 간편하게 갖가지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고안된 효율적인 식사법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식 패스트푸드의 원형인 셈이다.

도심에서도, 장터에서도
다양한 국밥 중에서도 원조는 역시 장국밥이다. 지금이야 설렁탕이나 곰탕이 더 흔해졌지만 예전에는 장국밥을 많이 먹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는 장국밥이 대세였다고 한다. 1869년에 출간된 조리서 ‘규곤요람(’閨壼要覽)은 “장국밥은 국수 마는 것과 같이 하는데 밥만 마는 것이다.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조려서 밥 위에 얹고 고기 졸인 국물을 붓는다.”고 했다. 장국밥은 조선간장을 넣고 끓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세기에는 서울 곳곳에서 장국밥집이 성업을 했다. 장국밥집들은 출입구에 하얀 종이로 만든 술을 장대에 높이 달아 표지로 삼았다고 한다.
그렇게 많았던 장국밥집 중에서도 청계천 인근에 있던 무교탕반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서민은 물론 세도가들도 하인을 앞세우고 드나들었으며 때로는 임금도 미복 차림으로 드나들 정도였다고 한다. 지체가 높은 양반이 등장하면 평민들은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를 피했다가 그 일행들이 먹고 나간 다음에야 다시 들어와서 식사를 계속 했다고 한다. 신분의 차별이 있었던 시절임에도 국밥집은 나름대로 계급을 뛰어넘는 식사장소였던 셈이다.
소설가 박종화(朴鍾和)는 무교탕반의 맛에 대해 “이 집의 장국밥은 양지머리만 삶아도 맛이 좋은데, 유통(젖퉁이고기)을 넣어주고 갖가지 양념으로 고명을 한 산적을 뜨끈뜨끈하게 구워서 넣어주니 유통과 산적 맛이 서로 어울려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고 회고했다. 1930년대에는 무교탕반 가격이 설렁탕이나 냉면, 비빔밥 가격의 세 배나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게 비싸게 받아도 장사가 잘될 만큼 맛이 좋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도심의 식당에서 국밥을 팔았지만 지방에서는 장터에서 주로 국밥을 팔았다. 장이 서는 날이면 저잣거리 길목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장작불에 구수하게 끓여내는 국밥은 전국의 장터마다 명물이었다. 몇십리 길을 걸어온 장꾼과 손님들은 펄펄 끓는 국으로 토렴해낸 국밥과 막걸리 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기운을 얻었다.

시원한 맛, 구수한 맛
서울에 장국밥이 있다면 전주에는 콩나물국밥이 있다. 콩나물국밥은 해장국으로도 널리 사랑 받는데 국물이 개운하기도 하지만 콩나물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이 피로회복과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이 덜 깬 아침에 뜨거운 콩나물국밥을 후후 불어가며 먹으면서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건 한국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아닐까 싶다. 콩나물국밥에는 술지게미로 만든 달짝지근한 모주를 한잔 곁들여야 제격이다.
부산과 밀양 등지에서 즐겨먹는 돼지국밥은 투박한 이름과는 달리 잡냄새도 없고 엇구수해서 입에 착 감긴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그곳 사람들이 ‘정구지’라 부르는 부추무침을 얹어먹으면 돼지국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뜻한 것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돼지의 부속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돼지국밥과 사촌 격이라 할 수 있는 순대국밥은 원래 북한지역에서 흔히 먹던 음식이나 한국전쟁 이후 남한으로 전파되어 지금은 전국에서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돼지의 창자에 갖가지 채소와 곡류 등을 넣고 만드는 순대는 서양의 소시지와도 비슷해서 그것 자체로도 먹지만 국밥의 재료로도 훌륭하다. 순대국밥은 들깨가루를 듬뿍 쳐서 가자미식해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국밥으로 선지국밥을 빼놓을 수 없다. 소의 피를 식혀서 굳힌 선지를 시래기와 함께 국을 끓이면 그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선지에는 철분과 각종 비타민, 단백질이 풍부해서 빈혈에도 좋고 숙취해소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서울 저동의 평래옥과 을지로3가의 조선옥에 가면 옛날보다는 단출한 모습이지만 장국밥을 맛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왱이집과 서울 북창동의 전주유할머니집이 잘하며, 돼지국밥은 부산 서면의 송정삼대국밥과 서울 충무로의 가마솥돼지국밥이 맛있다. 순대국밥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함경도찹쌀순대가, 선지국밥은 역시 서울 청진동의 청진옥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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